159화 흐름을 바꾸기 위해서는 (2)
트럼프와의 대화를 마친 뒤, 나는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저씨.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금이 얼마나 되죠?”
매스미디어를 통해 사람들의 인식을 개변시키기로 마음먹은 만큼 일단 내가 가지고 있는 타겟, 그리고 그 타겟을 쏠 수 있는 총알을 준비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응 자금? 네 개인 자산을 말하는 거야? 아니면 회사 자금을 말하는 거야?”
“전부 다요.”
그 결과, 내가 지난 2년간의 투자를 통해 만들어 낸 자금 10억 달러와 오라클을 통해 운용하고 있는 자금 30억 달러, 총 40억 달러에 달하는 총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만있어 보자. 일단 네가 가지고 있는 자산이… 이번에 들어온 것까지 다 해서 약 10억 달러 정도, 그리고 회사 운용자금은 30억 달러 정도야.”
순간, 나는 놀람을 금치 못했다.
아니 그동안 제법 많은 돈을 모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벌써?
그 동안 이렇게 많은 돈이 모였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에 놀라움이 컸다.
“전부 다 해서 40억 달러요?”
“어. 요즘 들어 나스닥 시장 주가가 많이 뛰었거든, 덕분에 돈을 좀 더 벌었지.”
아, 그렇다면 이해가 갔다.
안 그래도 요즘 들어 나스닥 시장이 활황으로 접어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까.
‘아마 이제 본격적으로 불이 붙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모든 자금, 40억 달러에 달하는 모든 자금을 전부 다 동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일단 내가 현재 손에 있는 자금의 양이 40억 달러에 육박하긴 했지만, 사실 그 돈의 대부분은 현재 벤처, 패션, 문화 주식 시장 등에 분산 투자 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만큼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돈 대비 실제 유용할 수 있는 자금의 액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 뭐 끽해 봐야 5천만 달러 정도?
물론 내가 가지고 있는 주식을 정리한다면 그 몇 배에 달하는 자금을 만들어 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겠지.’
말마따나 도널드 트럼프 그의 회사와 맺은 5억 달러 단위의 MOU만으로도 내가 그에게 할 만큼 한 것이나 진배없었으니까.
‘더 이상은 미친 짓이야.’
때문에 나는 도널드 트럼프 그의 이미지 변신 작전에 필요한 자금을 만들어 내기 위해 평소와는 조금 다른 방식을 사용하기로 했다.
그것은 바로…
“…준영, 그러니까 나한테 대출을 받으라고?”
대출(貸出).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한다고 도널드 트럼프, 그의 이름으로 돈을 빌리려 한 것이다.
내가 말을 꺼내자 멍한 표정을 짓는 트럼프. 어이없다는 듯 나를 향하는 그의 눈을 그를 바라보며 나는 점심으로 나온 햄버거를 내려놓았다.
“네. 일단 트럼프 씨 이름으로 대출을 받아서 작전을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굳이? 그렇게까지? 아니 그러지 말고 좀 느리더라도 천천히….”
“아니요. 기왕 가는 거 확실하게 가야죠, 시간이란 아무리 많은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것이니까요.”
그러자 잠시 나를 바라보던 트럼프, 그가 이내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긴 하지. 하지만 준영, 그 빌어먹을 돈 귀신들이 나에게 돈을 빌려 주겠어?”
아무래도 필요성은 이해하지만 그 가능성은 그리 크게 생각지 않는 모습이었다.
뭐 그가 어떤 걱정을 하고 있는 지는 알 것 같았다.
일단 지난 몇 년간 그가 회사를 유지하기 위해 무리할 정도로 은행들에 빚을 져 놓은 상태인 만큼 현재 그에게 돈을 빌려 줄 만한 은행은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있어요.”
나는 알고 있었다.
“뭐?”
도널드 트럼프, 그에게 자금을 빌려줄 만한 곳을.
그리고 투자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빅 이슈를 만들어 줄 수 있는 곳을.
“당신에게 돈을 빌려 줄 말한 곳 말이에요.”
“아니 도대체 누가? 어디서?”
“일단, LA로 가죠.”
그 사람은 바로…
“준영. 오랜만이로군.”
조지 소로스(George Soros).
수십조 원 규모의 거대 헤지 펀드 퀀텀(Quantum Fund)을 운용하고 있는 남자.
내가 아는 한 가장 위협적이고 가장 능력 있으며 또 가장 돈이 많은 사람이었다.
“오랜만입니다. 소로스 씨. 그 동안 잘 지내셨나요?”
내가 소로스를 향해 손을 내밀며 묻자 그가 천천히 가벼운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나야 평소랑 똑같지. 그러는 자네는?”
오랜만이었지만 나에 대한 이미지는 그리 바뀌지 않은 것 같았다.
“저도 잘 지냈죠. 그나저나 요즘엔 동남아 쪽에서 움직이고 계시다 들었는데 마침 LA에 계셨군요?”
“그쪽 기후가 아무래도 나랑 잘 안 맞는 것 같아서 말이야. 그래서 이번에 자네 연락을 받자마자 LA로 들어왔지.”
“아, 그러셨군요.”
그리고 그렇게 잠시 소로스와의 대화를 마친 내가 슬쩍 고개를 돌리자, 잔뜩 굳은 표정으로 소로스를 바라보고 있는 트럼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당신은….”
아무래도 소로스 정도면 제법 유명한 사람이니만큼 자신의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챈 것 같았다.
“그래. 이분이 준영 자네가 말한 그분인가?”
“네. 제가 말씀 드린 그분이에요.”
“아하 그러시군. 이거 반갑소. 조지 소로스라고 하오. 실례지만 성함이…?”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라고 합니다.”
“아, 트럼프 씨라. 들어본 적이 있지. 혹시 프레드 트럼프 씨와는 어떤 관계신지?”
“저희 아버지 되는 분입니다.”
그렇게 잠시 후, 소로스가 수행원들과 간단한 대화를 나누고 있던 그때. 도널드 트럼프, 그가 긴장 어린 눈으로 내게 물었다.
“준영, 설마 소로스 저 사람한테 돈을 빌리라는 거야?”
“네. 맞아요.”
“아니 어떻게?”
“그건 트럼프 씨가 알아서 해야죠.”
순간, 트럼프 그가 굳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모든 것을 맡기는 듯한 나의 말에 일순 당황한 모습이었다.
“내가 알아서라고?”
“네. 당신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테니까요.”
물론 나선다면 분명 쉽게 조지 소로스, 그를 설득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해선 바뀌는 것이 없었다.
분명 이미지를 바꾸는 것이 중요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도널드 트럼프 그의 입에 먹을 것을 떠 넣어 주겠다는 말은 아니었으니까.
‘그가 얼마나 할 수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러자 잠시 묵묵한 표정을 짓던 트럼프, 그가 말없이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묵직한 눈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좋아. 보여 주지. 기대하라고. 내 자네가 놀랄 만한 돈을 가져다주겠어.”
그리고선 우리가 LA에 머무르는 며칠 동안 쉴 새 없이 조지 소로스에게 자신을 어필, 결국 그에게서 오케이 사인을 받아내기에 이르렀다.
“좋아. 내 필요한 자금을 빌려 주지.”
“현명한 투자를 하신 겁니다.”
“착각하지 말게. 사실 난 자네를 믿는 게 아니야. 자네를 보증한 준영, 그를 믿는 거지. 그러니 집중하게. 만약 이 돈을 잃어버리면 자네는 나와 준영, 두 사람 전부를 잃게 될 테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투자가 당신이 한 투자들 중 가장 큰 수익으로 돌아올 투자가 될 것이라는 것에 제 모든 것을 걸 테니까요.”
뭐 만약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사상 최대의 투자가 되긴 하겠지.
아무튼 그렇게 작전에 필요한 총알을 장전한 나와 트럼프, 우리는 그때부터 작전을 시작했다.
“좋아. 준영 그럼 이제 이 돈을 어떻게 할 거지?”
“간단해요.”
일단은 가장 가까운 할리우드로 찾아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맥, 학맥, 돈맥을 모두 다 동원해 촬영 중이거나 후반부 작업 중인 영화들 트럼프 씬을 집어넣었다.
“그러니까… 우리 영화 ‘더 록(The Rock)’ 까메오 출연하고 싶으시다고요?”
“그렇습니다. 간단한 배역이라고 좋으니 장면을 만들어 주십시오. 촬영에 필요한 자금 일체는 저희 쪽에서 부담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물론 다소 무리한 일이긴 했지만.
뭐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돈이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고.
우리는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우리의 요청을 거절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신념이 흔들릴 정도의 액수를 들이밀었다.
“100만 달러.”
“네?”
“감독님 앞으로 책정된 돈입니다. 어떻습니까? 씬 몇 개만 찍고 100만 달러를 버는 겁니다. 영화사측과는 저희가 이야기 하도록 하죠.”
그 결과, 우리는 짧은 시간 내에 제법 많은 영화에 트럼프의 캐릭터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하, 하도록 하죠. 하하 언젠가 트럼프 씨를 꼭 한 번 필름에 담고 싶었습니다.”
“하하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자 그럼 계약서를 쓰도록 하죠.”
원래 시간이란 그 무엇보다 더 중요한 법이니까.
‘원래 돈 앞에선 장사 없는 법이지.’
아무튼 그렇게 영화사 전반을 돌아다닌 우리는 곧바로 방송사 하나를 인수, 우리의 입맛에 맞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프로그램 포맷은 이미 만들어져 있다 이 말이죠?”
“네. 그렇습니다. 아이템은 이미 생각해 놓은 게 있으니 이대로 만들어 주시면 됩니다.”
“어떤 것들이죠?”
뭐 아이템이야 이미 확실한 것들이 있으니까.
“네 일단, 취업관련자들을 대상으로 한 ‘어프렌티스’라는 프로그램인데….”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프로그램들을 우리가 인수한 방송사에서 만들어 낼 수 없는 만큼, 쉴 새 없이 움직이며 각 방송사에서 진행하고 있는 방송들, 그리고 준비 예정 중인 방송들에 트럼프의 자리를 만들어 냈다.
“준영, 그러니까 지금 나한테, 그러니까 일을 하라고?”
“네. 물론이죠.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고 하셨잖아요.”
“아니 그렇다고 해도 내가 어떻게 목수 일을….”
물론 그 와중에 도널드 트럼프 그가 목수 일을 하거나 혹은 자신의 회사에서 평사원으로 일을 해 본다거나 하는 일이 생기기도 했지만.
뭐 어때.
원래 그가 가지고 있던 이미지를 지울 수 있다면 그것만큼 더 좋은 것도 없었다.
본디 시청자들이란 친근한 사람들, 자신들이 상상할 수 있는 층위에 있는 사람들을 선호하는 법이니까.
“하하 단 하루일뿐이에요. 트럼프 씨. 단 하루. 오늘 하루만 고생을 하면 당신의 인지도가 1%이상 올라갈 텐데요?”
“젠장,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구만.”
그리고 그 결과, 우리는 불과 3개월이 채 안 되는 기간 안에 미 전역을 돌아다니며.
때로는 토론을.
때로는 봉사를.
때로는 레슬링을.
또 때로는 정치 지지연설을.
매스미디어의 종류, 장소를 막론하고 가능성이 있거나, 혹은 과거 트럼프가 출연했었던 방송들, 그리고 그의 이미지를 쇄신할 수 있을 만한 그런 방송들은 모두 다 선점, 그의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죽겠구만… 정말… 이건 너무 빡빡한데?”
“하하 어쩌겠어요. 그래도 이제 얼마 안 남았으니 힘내시죠.”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그가 기존의 이미지를 벗고 새로 태어날 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