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바겐세일 (2)
우리나라의 재산은 얼마나 될까?
한국은행과 통계청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우리나라가 보유한 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 자산은 약 1경 5512조 원.
이중 부동산, 건물, 설비 등의 비금융자산(실물자산)등이 1경 5050조 원으로 전체 자산의 97%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중 땅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 전체 토지의 가격은 2018년 기준 약 8,223조 원.
1경 5050조원의 비금융자산 중 54.6%의 비율을 차지하는 어마어마한 숫자다.
8,223,000,000,000,000원.
1년에 1조 원씩 쓴다 해도 8천 년을 족히 쓸 수 있는 금액.
단군이래로 하루 50억 원씩 써도 남는 돈이다.
그러니 부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땅을 사는 것만큼 좋은 방법도 또 없다.
아무리 주식! 주식! 하지만 정말 수익률이 좋은 것은 개발이 되는 곳의 땅을 구매한 뒤 존버.
그냥 무조건 버티고 버텨서 토지가 개발된 뒤 파는 것이다.
하지만.
<상위 계층 소득의 태반은 지대(地代)에서 나온다. 이런 지대는 하위 계층으로부터 상위 계층으로 돈을 이전시키고, 일부에게는 이익을 주고 나머지에게는 손실을 주는 방향으로 시장을 왜곡해 왔다.>
-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E. Stiglitz) <불평등의 대가>
토지공개념(土地公槪念).
토지의 구매 및 개발을 제제 하지 않으면 자본을 가진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의 양극화가 심화.
결국 사회가 붕괴한다는 이유로, 국가가 토지에 대한 사유재산권으로 인한 이득취득을 적절히 제한하면서 자본의 투자에는 한계가 생겼다.
‘토지초과이득세’
‘택지소유상한제’
‘개발이익환수제’
정부가 토지 구매 및 사용에 제약을 건 것이다.
하지만 1994년 노태우 정부가 도입한 토지공개념 3법 중, 토지초과이득세가 헌법 불합치 판정을, 택지소유상한제가 위헌 판결을 받아 사리지고.
그동안 환경파괴를 이유로 준농림지의 개발을 막고 있던 ‘준농림지법’이 택지 부족난의 해소와 안정적인 주택 건설이라는 이름하에 폐지되면서 대한민국 전체에 투기, 개발 열풍이 불어 닥치기 시작한다.
전체 국토의 26%!
이 거대한 땅이 드디어 개발과 투기라는 폭풍 속에 발가벗고 맡겨진 것이다.
때문에 나는 국민학교 겨울방학이 시작하자마자 이어진과 함께 시간이 날 때마다 서울, 경기 지역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준농림지법 폐지되고 토지공개념 3법이 헌법불일치 판결을 받기 전에 최대한 많은 땅을, 최대한 빠르고 높은 이익을 가져다 줄 곳을 찾은 것이다.
"아저씨 빨리 출발하죠."
"야 차에 타자마자 인사도 없이 바로 출발한다고? 오랜만에 봤는데 이거 너무하네."
"돈 벌기 싫어요?"
"아이고. 무슨 그런 말씀은. 당연히 벌어얍죠. 어디로 모실까요 도련님?"
물론 다른 사람이었다면 설혹 정보를 알고 있더라도 이곳저곳 정보를 취합하고, 걱정하고, 선택해야 하기에 시일이 걸릴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알고 있는 땅. 내가 들은 땅. 내가 가 본 땅 위주로 토지를 사 모으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 판교 쪽으로 부탁드릴게요. 그리고······."
"그리고?"
"그 다음 화성 동탄, 파주, 김포, 수원 광교, 인천······."
"야. 야. 잠깐만 거길 다 간다고?"
그동안 이 일을 위해 정말 중요한 주식을 제외한 모든 주식을 정리 총알을 꽉꽉 채워 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네. 물론이죠. 돈만 충분하면 살 땅이야 뭐 한도 끝도 없죠."
"허 참··· 내 무슨 말을 말아야지. 그런데 그 땅들을 전부 다 살 수 있겠어?"
아무래도 자금이 되겠냐는 말인 것 같다.
"지금 우리 총알이 얼마나 되죠?"
내가 묻자 그가 운전하던 그대로 입을 열었다.
"네가 건드리지 말라고 한 주식들 제외하고 다 해서··· 한 45억 정도."
어? 45억?
나는 놀란 눈으로 이어진을 바라보았다.
내 예상보다 조금 더 많은 돈이었기 때문이었다.
"45억이요?"
"어. 정확하게는 45억을 좀 더 넘긴 하지."
"···제가 한성 주식은 정리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요?"
"아 그게······."
그가 씨익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저번에 한성유통 주 사면서 잡주들 쓸어버릴 때 한성 하청이랑 계열사들 주식들도 좀 샀잖아. 그게 이번에 올랐어. 너네 할머니 돈 많이 벌었겠더라."
아······.
그러고 보니 저번 금융실명제 때 거의 유일하게 주가가 떨어지지 않은 기업이 바로 한성그룹이었다.
내가 준 금융실명제라는 정보를 단순히 자신의 돈을 지키는 것에만 쓴 것이 아니라 주가가 떨어지는 것에 배팅, 내가 벌어들인 돈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인 것이다.
"설마 몰랐어?"
"아뇨 알긴 알았죠. 그런데 얼마나 벌었는지는 몰랐었어요. 제 생각보다 주가가 더 많이 올랐나 봐요?"
"아마 모르긴 몰라도 몇 십, 아니다 백억 단위로 이득을 봤을 걸? 아무래도 돈의 액수가 틀리니까."
하긴 김귀란이 손에 쥐고 있는 돈은 액수가 다르니까.
허탈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었다.
"휴···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할머니가 다 먹은 느낌이네요."
그러자 이어진이 뭐 그런 걸로 의기소침해 있냐는 듯 내 어깨를 툭 쳤다.
"하하. 뭐 그래도 그 덕에 돈을 좀 더 벌었으니 다행이지. 안 그래?"
?? 그랬다.
비록 지금은 내가 김귀란의 자본을 부러워하고 있었지만 분명 언젠간 김귀란이 나를 부러워 할 날이 올 것이다.
"그건 그렇죠."
"그래. 그러니까 의기소침하고 빨리 가자. 네 말대로 돈 벌러 가야지."
"좋아요. 빨리 가죠."
그때부터 나와 이어진의 본격적인 쇼핑이 시작됐다.
일단은 먼저···
‘하늘 아래 분당, 분당 위에 판교, 판교 위에 광교.’
수도권과 가까운, 그래? 가장 빨리 다녀올 수 있는, 개발 소식이 들려오자마자 확실構? Ⅰだ? 오르는 2기 신도시 위주로.
"일단 동탄으로 가죠. 거기서 시작하도록 해요."
"동탄? 거기가 어디야?"
"아··· 그게··· 맞다! 화성 쪽에 있어요!"
"화성? 화성이라··· 거기 길이 좀 매하긴 한데. 휴 좋아. 도련님. 미안한데 지도 좀 봐 주라."
"네? 지도요?"
생각지도 못한 말에 약간 당황했다.
하지만 이어진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어. 버스 타고는 가 봤는데 운전해서는 못 가 봐서. 왜 못 보겠어?"
아, 그러고 보니 이 시대엔 네비가 없었지.
급격하게 어두워지는 이어진을 바라보며 나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에요 볼 수 있어요. 지도 어디 있죠?"
"어휴 다행이다. 설마 못 본다고 했으면 어쩌나 했거든. 지도 거기 뒷좌석에 있을 거야. 차 살 때 서비스로 넣어 주더라."
덕분에 한동안 팔자에도 없는 인간 네비게이션 노릇을 하긴 해야 했다.
하지만 곧 그것도 익숙해졌다.
"아저씨 좀 더 가서 기흥에서 318번 타야 해요!"
"뭐라고?"
"기흥에서 318번 타야 한다고요!"
익숙해졌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하나하나 신도시 개발 예정지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허허벌판, 끽해야 농밭, 번화가라고 해도 겨우 시골 읍내 정도의 상태였다.
"도련님··· 진짜 여기가 개발된다는 거야?"
"그럼요. 늦어도 4~5년 안에 개발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거예요."
나는 동탄 신도시 예정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른 들판. 분명 논밭으로 가득한 땅이지만 저 멀리 내가 예전에 보았던 오산천과 반석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이어진은 도통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개발은커녕 이건 뭐 조선시대 아니냐? 우리 백투더퓨쳐처럼 타임워프 한 거 아니야?"
"에이 그 정도는 아니죠."
"그 정도가 아니긴··· 야 저기 소 치는 거 안 보여?"
"거짓말 하지 마세요. 아무리 그래도 소까지···."
있었다. 소가.
그것도 코뚜레를 하고 워낭소리를 울리는 소가.
음머-
잘 생긴 누렁소가 우리를 보고 느긋하게 울었다.
"···있네요?"
"그치?"
판교 땅에 갔을 때엔 이 정도는 아니었던 터라 살짝 당황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오히려 잘 된 일이었다.
이렇게 개발이 안 된 땅이라면 개발 소식이 들려왔을 때 그 상승세는 더 할 테니까.
그렇게 나는 영 못 미더워 하는 이어진을 끌고 토지를 확인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왜 본디 땅은 발로 사는 것이라 하지 않는가.
"···땅 사러 가죠."
"어휴 이런 데에 복덕방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에이 그래도 사람 사는 데니까 있겠죠."
다행히 이런 외진 곳에도 부동산, 아니 복덕방은 있었다.
늙수그레한 할아버지가 경영하시는, 작은 슈퍼와 함께 붙어 있는 복덕방에 이긴 하지만 그래도 일단은 토지 거래가 가능한 곳이었다.
"어르신 이 동네 땅 값 시세가 어떻게 되나요?"
복덕방 안으로 들어간 이어진이 묻자, 오수에 잠겨 있던 복덕방 노인이 깨어나 우리를 바라보았다.
"응? 왜? 집이라도 짓게? 이 동네 땅들 죄다 묶여 있어서 사도 아무것도 못할 텐데?"
"괜찮습니다. 얼마나 하죠?"
"그게··· 음··· 지역에 따라 다르긴 한데 반송리는 대충 8,000원에서 10,000원 정도?"
"네? 8,000원에서 10,000원이요?"
순간, 나와 이어진의 눈이 마주쳤다.
비상해진 기억에 따르면 2009년 동탄 땅값이 평당 520만 원 2020년 당시 690만 원을 호가했었기에 적어도 판교정도 그러니까 10만에서 15만 원 정도는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건 대박이다.’
이어진 또한 땅값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지 약간 의아한 듯, 하지만 입가에는 짙은 미소를 걸고 있었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복덕방 할아버지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땅값이 요즘 많이 떨어지긴 했지. 몇 년 전까지는 그래도 15,000원에서 20,000원 정도 했었는데 요 근래는 딱 그 선이야."
"그래요?"
"어. 그래도 땅은 좋은 땅인데 이번에 또 우루과이 라운드다 뭐다 해서 더 떨어졌지. 그래서 나도 요로코롬 담배나 팔고 앉아 있는 거고."
돌아보니 작은 복덕방 겸 슈퍼 안으로 솔, 시나브로, 한라산 같은 담배가 보이고 그 옆으로 가지런히 정리된 두꺼비, 그린 소주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노인의 말처럼 부동산 거래가 그리 잘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혹시··· 판다는 분들은 좀 있나요?"
나는 은근슬쩍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러자 잠시 신기한 것을 본다는 듯 나를 바라보던 노인이 이내 누런 슬쩍 입을 열었다.
"판다는 놈들? 뭐 판다는 놈들이야 쌔고 쌨제. 그런데··· 자네들 정말 살 건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아니 얼마나?"
"글쎄요 일단 소소하게···."
나는 슬쩍 웃으며 입을 열었다.
"10만 평으로 시작할까요?"
몇 년만 기다리면 500배의 수익이 나를 기다릴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