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격변의 대한민국 (1)
청운동에서 돌아온 후 나는 앞으로 다가올 대격변(大激變)을 준비했다.
김일성의 죽음. 그리고 그로 인한 남북정상회담의 정지를 말이다.
김일성의 죽음 이후 벌어질 사회, 경제, 문화적 변화와 우리나라를 둘러싸고 있는 나라들 간의 역학관계 변동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은 물론 나와 나의 주변인들이 휩쓸리지 않기 하기 위해서였다.
‘사건이 사건인 만큼 준비는 철저해야 한다.’
일단 내가 가지고 있는 주식들.
이어진에게 맡겨 놓은 주식들을 중심으로 앞으로의 변화에 어긋난 것이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먼저 남북정상회담으로 인해 떨어지고 있는 종목.
[풍산 9,500▼320 보유수량 63,157]
[협진단철공업사 1,530▼60 보유수량 392,156]
[대영전자공업 4,577▼150 보유수량 133,333]
[한일단조 1,150▼50 보유수량 521,739.]
[한화 10,650▼135 보유수량 56,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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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산, 화학, 비금속광물, 음식료품, 운수창고 같은 종목들을 확인했다.
방산이나 화학은 남북 간의 긴장이 완화될 때마다 떨어지는 것. 그외 음식료품이나 운수 같은 경우는 종전에 있었던 ‘서울 불바다’ 발언으로 인해 상승한 것이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성사로 인해 급전직하 하락한 것이었다.
물론 차트를 보니 그 동안 보합세를 유지하는 종목도, 또 약간의 반등을 하는 종목들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하락세인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잘 떨어지고 있네요.”
내가 그동안의 주가 변동 내용을 보며 말하자 이어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러니까. 저번에 정상회담 발표 나기 전부터 슬슬 떨어지고 있던 게 요즘엔 아주 그냥 팍팍 떨어지고 있어. 아마 강제로 막지 않았으면 몇 군데는 그냥 터졌을걸? 그래도 한화나 풍산 같은 덩치가 큰 기업들은 그럭저럭 버티겠지만 다른 데는 아마 죽어나가겠지.”
이어진이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하지만 떨어져서 다행이라는 모순적인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아마 모르긴 몰라도 해당 기업들 대부분은 지금 죽을 만큼 힘들 것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남북 정상 회담이라는 키워드 하나 때문에 수십, 수백억 원이 증발한 것일 테니까.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기회였다.
지금의 골이 넓고 또 깊은 만큼, 나중에 있을 상승세에서 우리가 거둘 이익은 더 커지기 때문이다.
“뭐 그래도 바로 며칠 뒤면 반등할 테니까 다행이죠.”
“그건 그렇지.”
내 말에 이어진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잔뜩 휘어진 눈과 올라간 입 꼬리. 그 모습은 당첨이 확실한 긁지 않은 복권을 든 자의 모습이었다.
‘게다가 역배당이니 더 기대가 되겠지.’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 또한 이번에 따로 투자를 했으리라.
그런데 가만히 그동안의 투자내역을 살펴보다 보니 한 가지 이상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이번에 매수한 종목들의 매수 가격이 약간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뭐야 들어간 돈이 내 예상보다 더 많잖아?’
분명 내가 이번 사건을 준비하며 주식을 매입에 쓰라 지시한 돈의 액수는 약 20억 원, 저번에 대출받은 돈과 그 전 거래에서 남은 돈이었다.
그런데 현재 내가 확인한 주식의 매입 금액은 언뜻 봐도 30억 원을 조금 넘었다.
약 10억 원의 차이.
거대한 흐름에서는 작은 금액일 수 있지만 현재 내가 가진 자산에서는 매우 큰 수준의 차이였다.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액수에 의아해 하며 이어진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아저씨 이번에 투자한 종목들에 투자된 돈이 제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데요?”
그러자 이어진이 살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눈치 챘어?”
“···이렇게 뻔히 보이는 걸 모를 수가 있나요?”
“하하 이거 주식꾼 다 됐네. 원래 바로바로 안 보이는 건데. 니 말대로 투자된 금액이 좀 많을 거야. 대출 받은 거 이외에 돈이 좀 많이 들어왔거든.”
이어진이 내게 새로운 서류 한 장을 전하며 말했다.
“돈이 들어와요?”
“왜 기억 안 나? 저번에 사 놨던 공기업 주식들. 그중에서 몇 개가 공개입찰 끝나서 돈이 좀 들어왔거든.”
순간, 머릿속에 그간의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공기업. 그러고 보니 지난 2월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 발표 이전 사 놨었던 종목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종목들이라면 공개입찰이 끝난 이후에 정리하기로 한 것 같은데?
“아니 벌써요?”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그가 설렁설렁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 그중에서 제일 큰 게 대한중석이랑 한국비료인데 두 군데 다 짭짤하더라. 한 5억 정도 이득 봤을걸?”
공기업 주들을 매수 하는데 들어간 돈이 5억 남짓한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수익률이었다.
“어디서 가져갔는데 그 정도 수익이 나왔어요?”
“대한중석은 거평에서 그리고 한국비료는 삼성에서 가져갔어. 두 군데 다 인수가액을 미친 듯이 올려 적어서 다른 데는 엄두도 못 냈다더라.”
“오 그래요?”
“어. 거평은 거의 시중가에 2배 정도 삼성은 근 3배를 적어 냈다더라고. 뭐 두 군데 다 보유 자산들이 제법 많은 금싸라기 회사들이니까 그 정도는 감수할 만하다 생각한 거지.”
하긴 사전에 파악한 대한중석과 한국비료 두 기업의 기업 가치를 생각하면 두 배, 혹은 세 배라 할지라도 그리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어차피 기업의 운영이랑 장기적인 이익을 보고 하는 게 일반적이니까.
‘한국비료 같은 경우엔 삼성의 숙원사업이기도 했고 말이야.’
아무튼 그렇다면 좋은 일이었다.
그동안 총알이 약간 부족한 것 같아 걱정이었는데 30억 원 정도라면 눈에 띄는 수익을 거둘 수 있을 것 같았다.
“좋아요. 수고하셨어요.”
“수고는 무슨 다 같이 잘 살자고 하는 일인데. 그나저나 진짜 아깝다. 우리나라도 외국처럼 선물 시장이 열렸으면 이번에 진짜 어마어마했을 텐데.”
이어진이 정말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차며 말했다.
뭐 나도 그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선물시장 그리고 파생상품.
각종 규제로 인해 수익의 한계가 있는 주식에 비해 어마어마한 수익을 거둘 수 있는 황금향이 바로 그곳이었다.
하지만.
1994년 현재 우리나라의 선물시장은 금지. 우리나라의 주가지수선물시장이 처음 개설되는 것은 1996년, 옵션시장이 개설되는 것은 97년의 일이다.
그러니 그때까지는 좋든 싫든 어쩔 수 없이 주식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뭐 어쩌겠어요. 우리가 하고 싶다고 당장 시장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지금은 저희가 할 수 있는 거에 집중 해야죠. 그게 아니어도 돈 벌 구멍이 있으니까요.”
“뭐 그건 그렇지. 흐음, 그럼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은 건가?”
이어진이 짙은 미소를 입에 문 채 내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답했다.
“네. 그래도 자금이 생길 때마다 최대한 주식들 매입해 주세요. 지금으로선 언제 사더라도 무조건 오를 테니까요.”
“하하 알겠습니다 도련님. 이 산쵸는 도련님 말만 따르겠습니다!”
사람 참 넉살은. 어째 점점 더 능글맞아지는 것 같아.
아무튼 그렇게 내 주식에 대한 단도리를 끝내고 난 뒤, 나는 본격적으로 내 사람들의 신상을 챙기기 시작했다.
먼저, 요즘 돈이 돌기 시작하면서 볼 때마다 얼굴이 피고 있는 사람들.
넥스트 게임즈의 사인방.
김경주, 이해진, 송현재, 이상범.
넥스트의 첫 게임 쥬라기 공원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쏟아지기 시작한 돈에 씀씀이가 커진 그들이 혹시라도 남북정상회담 성사에 배팅, 다른 일반적인 사람들처럼 대북주에 투자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걱정에서였다.
그런데?
“에휴, 주식 할 돈이 어디 있겠습니까. 들어오는 돈으로 족족 쥬라기 공원 운영비, 바람의 제국 개발비, 그리고 이사님이 말씀하긴 개인역량 개발비용으로 다 나가고 있습니다···.”
의외로 그들이 투자한 금액은 없거나 있다고 하더라도 극히 적었다.
아무래도 이제 막 본 궤도에 오르기 시작하는 회사. 들어온 돈 대부분을 다시 회사에 재투자 하는 모양이었다.
하긴, 그들로서도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이제 막 속도가 붙기 시작하는 데 딴 주머니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겠지.
원래 주식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르되 그들 대부분은 이제 막 사업에 발을 디딘 이들이었으니까.
“잘 하셨어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회사 내에 있는 다른 직원들한테도 말씀드려 주세요. 괜히 부화뇌동해서 대북주에 투자하려는 생각은 절대 하지 말라고. 아셨죠?”
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하자 김경주가 은근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혹시 이것도 한성발 정보인가요?”
아무래도 내가 한성 그룹을 통해 중요한 정보를 얻은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뭐 내가 처음 그에게 나를 소개 했을 때 한성가의 이름을 입에 올렸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하긴 했다.
그렇다면···.
“···글쎄요? 어떨까요?”
굳이 그 기대를 깰 필요는 없겠지.
그러자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은 김경주가 자신만 믿으라는 듯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무슨 생각들을 하는지는 뻔하지만 내 예상이 틀릴 리는 없으니 사실이나 진배없었다.
뭐 그 외에 확인할 사람이라고 해 봐야 어머니 밖에 없었는데. 설마 주식에 주자도 모르는 어머니가 주식을 했을 리 없···.
“어? 주, 주식··· 준영아 그건 왜?”
어라?
나는 보았다.
내가 혹시 주식을, 아니 정확하게 대북주를 샀냐고 물었을 때 어머니의 흔들리는 두 눈을.
애써 괜찮은 척 하고 있었지만 떨리는 입 꼬리를.
···설마 어머니가 나 몰래 주식을 산건가?
아니 그럴 리가, 전생에서는 물론이고 현생에서도 주식에 주 자도 모르시는 분이었는데?
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었기에 나는 다시 한번 어머니를 바라보며 물었다.
“엄마 설마··· 이번에 주식 투자 했어요?”
그러자 잠시 흔들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어머니, 어머니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 그게··· 조금밖에 안 했어. 옆집 미영이 엄마가 정말 확실하다고 해서···.”
에휴, 그러면 그렇지.
아무래도 제일 위험한 루트로 주식을 접하게 된 모양이었다.
‘이거 확인 안했으면 큰일 날 뻔했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 주식 떨어질 테니까 당장 빼세요.”
“어? 왜? 설마 이거 위험한 거야?”
“네. 무조건이요. 아니 도대체 얼마나 산 거예요?”
하마터면 제일 중요한 사람을 챙기지 못할 뻔했다는 사실에 나도 모르게 약간 날카로운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러자 잠시 조심스런 표정을 짓던 어머니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열··· 열 주 정도···.”
·········.
···진짜 조금이네.
예상치 못한 수량에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정도면 뭐 가지고 계셔도 상관은 없는데 되도록이면 정리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엄마한테 소개시켜 주셨다는 분한테도 말씀드리는 편이 나을 거고요.”
“그··· 그럴까?”
“네. 무조건요. 되도록이면 7월 첫째 주 이전에 정리하세요.”
아무리 10개 주밖에 안 되는 주식이라도 돈은 돈이니까.
아무튼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난 7월 9일.
평소와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던 맑은 여름의 한 날.
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엥-
기다리던 소리가 들려왔다.
오후의 햇살을 가르는 사이렌 소리.
그리고 뒤이어 터져 나온 뉴스 속보.
우리나라 역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할 사건이 도래한 것이다.
<김일성 주석 사망>
[···뉴스 속보입니다. 어제 새벽 2시 김일성 주석이 ?북한 평안북도 향산군 묘향산 특각에서 사망하였습니다. 향년 82세인 김일성 주석의 사인은 급성 심근경색으로···]
나는 주먹을 꽈악 움켜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