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7화 거절할 수 없는 제안 (1) >
“얼마까지 올라갔다고요?”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그러자 이어진이 내게 자료를 하나 건네며 말했다.
“유가를 이야기하는 거라면 27달러. 이달 말까지 30달러까지 올라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
그리고는 내게 건네 자료의 한 부분, 유가에 관련된 부분을 짚어 보였다.
그곳에는 지난 한 달 새 변동한 유가폭에 대한 내용이 정리되어 있었다.
“30달러요?”
“그래. 30달러. 아마 이대로라면 충분히 도달할 것 같아. 아무래도 중동 쪽 분위기가 심상치 않거든.”
“심상치 않다면?”
“확전(擴戰)”
그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확전이요?”
“그래. 아무래도 전쟁이 아프간에서 끝나지 않을 것 같아. 이미 아프간 전역에 대한 제압은 끝났지만 그곳에서 미국이 얻은 거라고 피와 먼지밖에 없으니까.”
그가 내게 신문 한 부를 내밀며 말했다. 그곳에는 갈수록 깊어지고 있는 미국과 이슬람 국가들의 갈등, 그러니까 서로를 향해 증오를 더해 가고 있는 미국과 이슬람 국가들에 대한 기사들이 나와 있었다.
“하긴 지금까지 이룬 것이라야 탈레반 정권이 물러난 것밖에 없으니 욕심쟁이로서는 위가 쓰릴 만한 일이긴 하죠.”
“그렇지. 그러니 움직일 거야. 터질 것 같던 분노가 가라앉았으니 이젠 그 기회를 이용할 생각이 들 테니까. 지금이라면 아무도 불만을 표시하지 못할 테고.”
그가 쓴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미국의 행태가 어이가 없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타겟은?”
“중동의 산유국들 중 하나. 아마 이란이나 이라크 그쪽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 뭐 이란이야 종래의 앙숙이고 이라크는···.”
그렇게 잠시 말을 이어가던 이어진, 그가 작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실수를 했지. 아무리 과거의 악연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런 말을 내뱉어선 안 됐어.”
그의 얼굴에는 어리석은 선택을 한 사람에 대한 답답함이 묻어 있었다.
아무래도 9.11 테러 후 후세인이 미국을 향해 망발을 한 것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하긴 후세인 그 사람, 앞뒤 못 가리고 말을 내뱉긴 했죠.”
“그렇지. 아니 가뜩이나 독이 올라 있는 상태한테 ‘신의 벌’이라느니 어쩌느냐 하면 어떻게 해? 나 참.”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 그걸 알고 있었으면 걸프전이 일어났겠어요? 아무리 미국이라도 이렇게 전격적으로 전쟁을 치를 거라 예상하지 못했겠죠.”
“그렇겠지. 덕분에 최소한의 명분은 섰어. 후세인이 시선을 잔뜩 끌어 준 덕분에 미국민 개개인의 증오는 더 할 나위 없이 깊어진 상태거든.”
그러고는 천천히 시선을 낮춘 이어진, 그가 고요히 말을 이었다.
“게다가 이란에 비해 이라크는 약체지. 아직 저번 전쟁의 후유증을 벗어나지 못했으니까. 그러니 미국 쪽에서도 이란보다는 이라크를 치는 걸 먼저 생각하고 있을 거야.”
“그래서 OPEC 쪽에서 움직이고 있는 건가요?”
“그쪽 사람들도 눈치는 있으니까. 아무리 이라크가 꼴 보기 싫은 상대라고 하더라도 미국이 앞마당에 들어오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겠지. 아무렴 같은 문화, 같은 종교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니까.”
그가 혀를 차며 말했다.
“하지만 막을 수 없을 거야. 목표를 포착한 독수리는 하강을 멈추지 않을 테니.”
“끝에 무엇이 있든 공격을 하고 말겠죠. 그들의 머리는 그만큼 강경하니까요.”
“그렇지. 그러니 잘하면 도달할 수 있을 거야.”
“도달할 수 있다고요?”
이어진, 그가 슬쩍 나를 보며 말했다.
“네가 예상했던 수치. 배럴당 150달러. 꿈의 숫자가 도래하는 거지.”
그가 손을 그러쥐며 말했다.
그의 눈빛에는 150달러라는 수치에 대한 떨림이 묻어 있었다.
하긴 150달러. 그 수치의 반이라도 그것은 어마어마한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너···.”
“네.”
“설마 여기까지 예상한 거야?”
그가 혹시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느 정도는요?”
“거 참··· 아무튼 네 덕분에 우리가 받은 타격은 적어. 아니 덕분에 돈을 벌었지. 아무래도 단기간에 이렇게 물량이 말라붙을 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그리고선 우리가 거둔 수익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가 거둔 수익, 그것은 9.11 사건이 벌어지기 얼마 전 전 세계에서 긁어모은 원자재들과 희토류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의외의 상황은 의외의 이익을 가져오는 법이죠.”
“누군가에겐 의외의 상황이 아닌 것 같지만.”
그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뭐 가끔 그런 경우도 있는 거죠. 그나저나··· 국내 상황은 어때요?”
그러자 잠시 나를 바라보던 이어진,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유가 선물과 인버스에 투자한 사람들만 노가 났어. 다른 사람들은 죽는 소리를 하고 있고. 코스피도 코스닥도 현재 바닥이야.”
“현재 코스피가 얼마죠?”
“400대. 작년 초에 570대까지 올라갔었던 게 물거품이 됐지. 우리나라 산업 구조상 이런 일에 흔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까.”
그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의 말대로 우리나라 산업구조의 특성상 고유가 시대가 도래하면, 우리나라 산업은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다.
산업의 피.
그것의 수급이 어려워지면 우리나라 경제의 대동맥이 꽉 막혀 버리는 것이다.
피가 없이 움직일 수 있는 생물은 거의 없었으니까.
“대통령도 힘들겠네요. 말년에 일이 계속 터지는 격이니.”
“원래 그런 자리니 감수해야지. 누리는 영광만큼 고통이 존재하는 자리니까. 뭐 그래서 그런지 모르지만 사태가 좀 더 심각해지면 비축유를 풀 수도 있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긴 하더라.”
비축유?
이건 조금 예상외의 이야기였다.
“비축유요?”
“그래. 전시 비축유 2억 배럴. 그 정도의 양이면 한동안 원유 문제에 대한 걱정을 덜어도 될 테니까. 만약 OPEC 감산이 확정되면 물량 확보하기도 힘들어질 테고. 그래서 기업들도 어느 정도 환영하는 눈치야.”
“비축유를 건드리는 건 역풍 우려가 있을 텐데요.”
“어쩌겠어. 경제는 안 좋다고 하는 판국이니··· 솔직히 지금 이 시국에 전쟁이 나겠어?”
그가 슬쩍 나를 보며 말했다.
전쟁.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도 전쟁과 그리 먼 곳에 있는 나라는 아니었다.
분명 요즘 들어 화해 무드로 나아가고 있긴 하지만 내 예상으로 그 또한 그리 오래가지 않는 것이다.
“모르죠. 우리나라는 휴전국가니까. 아무튼 그럼 다른 나라들도 비슷하겠네요?”
“뭐 다른 나라들도 비슷하지. 일단 일본이야 우리나라랑 사정이 비슷하고··· 중국도 기존 유전들의 생산량을 증산하고 있긴 하지만 한계가 있지. 그래서 다들 유전 찾는다고 난리야. 아무래도 이 사태가 단기적으로 끝나지는 않을 테니까.”
“그렇다는 말은···?”
“뭐겠어?”
그가 씨익 웃어 보였다.
“우리 회장님이 바라던 상황이 도래했다는 거지.”
이어진, 그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
며칠 뒤.
아시아 최대의 석유 정제업체이자 중국의 3대 석유 기업.
페트로차이나(PetroChina), CNOOC와 함께 중국의 석유 산업을 좌우하고 있는 초거대 기업.
2020년 기준 연매출 200조원의 매머드급 기업 시노펙(Sinopec), 그 기업의 회장 푸청위(傅成玉)에게 한 가지 소포가 도착했다.
“회장님.”
“무슨 일이지?”
“회장님께 소포 하나가 도착했습니다.”
“소포?”
소포의 수하인은 바로 오라클, 한창 동북성 쪽에서 인지도를 높이고 있는 기업의 이름이었다.
“네. 오라클의 김준영 회장이 보낸 물품입니다.”
“오라클이라면··· 아, 그 동북성 쪽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 회사를 말하는 거구만. 왜 저번에 당서기를 만났다가 동북성 쪽에 그런 이가 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어.”
“그렇습니다. 현재 황금평을 기점으로 움직이고 있는 회사의 오너로 이제 막 스무 살이 되었다고 합니다.”
“허, 이제 막 스무 살이 되었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현재 동북성 쪽의 물류를 빠른 속도로 장악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자 소포를 받은 푸청위 회장은 의아한 마음에 사로잡혔다.
분명 오라클, 그리고 김준영의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그가 굳이 소포를 보낸 이유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단한 사람이구만. 내 아들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참··· 아니 그런데 그런 사람이 왜 내게 이런 물건을 보낸 거지?”
“그건 저희도 잘···.”
“혹시 연락해 봤나?”
“혹시나 싶어 연락을 해 봤지만 그저 초대장이라는 말만 계속할 뿐이었습니다.”
“······혹시 위험한 물품은 아닌가?”
“일단 엑스레이 검사는 깨끗했습니다.”
“그래?”
“네. 그런데···.”
“그런데?”
리우창 회장의 말에 잠시 말을 멈춘 직원, 그가 리우창 회장에게 의외의 말을 건넸다.
“안에 들어 있는 게 아무래도 액체인 것 같습니다.”
“액체?”
“네. 보아하니 500cc 정도 되는 소량의 액체였습니다.”
“아니 오라클 회장이 왜 나한테 그런 물건을···.”
“그건 도무지···.”
그러자 호기심을 느낌 리우상 회장. 그가 사람들을 시켜 소포를 풀어 보게 만들었다.
“뭐 그럼 어쩔 수 없겠군.”
“폐기할까요?”
“아니. 한번 열어 보지.”
“네에? 정말이십니까?”
“그래. 뭐 오라클의 회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설마하니 이상한 물건을 보내지는 않았을 거 아닌가.”
“하지만 혹시 모를 일이니 폐기를···.”
9.11 사태 이후 벌어진 고유가 상황, 갑작스레 벌어진 상황에 가벼운 즐거움을 느낀 것이다.
“아니야. 이런 일로 물러설 수는 없지. 사소한 두려움에 물러서는 건 소인들이나 하는 게 아니겠나. 뭐 오라클 쪽에서도 초대장이라고 했을 뿐이고.”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가 열어 보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하 물론이지. 얼른 열어 보게.”
그리고 잠시 뒤.
“자 그럼 열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호기심 어린 눈으로 소포를 바라보는 푸청위,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석유?”
작은 아크릴 통 안에 들어 있는 검은 석유였다.
“석유? 석유 아닌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아니 그쪽에서 왜 이런 물건을 보낸 거지?”
일순 의아한 표정을 짓는 푸청위 회장, 그가 눈살을 찌푸리며 석유통을 손에 든 그때.
“이게 뭐지?”
그의 눈이 굳었다.
“이건···!”
그리고 그 순간, 푸청위 회장이 소리쳤다.
“이봐! 오늘 일정이 뭐가 남았지!?”
“오늘이라면··· 자연자원부 부장과의 회담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취소시켜! 그리고 지금 당장 황금평으로 차량 대기··· 아니 헬기 띄워!”
“네에?”
왜냐하면 그에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경매 초대장]
시노펙(Sinopec)의 회장 푸청위(傅成玉) 회장님께. 귀하를 저희 오라클이 주최하는 경매에 초대합니다.
[경매 장소 : 황금평]
[경매 일시 : 2001년 01월 15일]
간단하기 그지없는 초대장이었다.
그것도···.
[경매 물품 : 최상급 등급의 석유 5억 톤]
아주 어마어마한 상품이 걸려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