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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화 거인(巨人) (2)

“그건 이놈한테 물어보든가.”

김귀란이 말을 마친 순간, 정영주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거인의 기세.

마치 금방이라도 나를 밟아 버릴 듯한 무거운 분위기. 무형의 힘이 나를 내리 누른다.

역린(逆鱗).

정영주 회장에게 대북사업이 평생의 바람이었던 만큼 그것을 포기하라는 말이 그의 심경을 거스른 것이다.

하지만 내게 그 기세가 느껴진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의 눈빛이 나에게 닿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시선이 다시 김귀란을 향한 것이다.

“김 회장. 지금 나랑 장난치자는 건가?”

정영주 회장이 날카로운 어조로 김귀란을 찔렀다.

방금 전까지 김귀란을 누이라고 부르며 친근하게 대하던 정영주는 어느새 사라지고 그곳에는 한 마리 웅크린 호랑이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전생에 들었던 정영주 회장의 성격대로 맺고 끊음이 정말 바람과 같았다.

아마 일반인이었다면 그의 표변, 날카로운 눈빛에 일순 숨이 멎었겠지.

하지만.

“장난? 내가 장난 같은 걸 칠 사람으로 보이나?”

김귀란도 보통은 아니었다.

정영주 회장이 쏘아 내는 날카로운 기세를 마주 대하며 차가운, 하지만 곧고 단단한 표정으로 그를 노려본다.

극과 극.

강과 강.

그 둘의 사이에서 마치 불꽃이 튀기는 것 같았다.

김귀란의 날선 반응에 정영주 회장의 눈이 더욱더 깊어졌다.

“그럼 나는 그럴 사람으로 보이나? 그동안 연락도 한번 없어서 오냐오냐 해 줬더니 와서 한다는 소리가 뭐? 일을 접어? 이유는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놈에게 물어보라? 김 회장. 이러면 곤란해.”

주변을 돌아보니 드문드문 보이던 사용인들의 모습이 어느새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폭풍전야.

나는 비바람이 몰아치기 직전의 기운을 느끼며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본디 자석의 N극과 N극이 마주치면 그 충격으로 두 자석의 사이가 멀어질 뿐 가까워질 수 없다.

이런 성격의 둘이 아까 본 듯 반가이 인사를 나눈 것은 수십 년의 세월과 실향이라는 동질감, 그리고 과거에 있었던 비즈니스들에 대한 기억들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 같은 어린애. 정영주의 말에 따르면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놈이 헛소리를 하는 것까지 받아 줄 만한 사이라는 것은 아니다.

분명 김귀란은 내게 바톤을 넘겼지만 정영주로선 그것을 인정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을 것 같은 분위기니까.

차라리 이렇게 된 거 그냥 김귀란이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일순 약한 생각. 쉬운 길로 가려는 본능이 불쑥 머리를 치밀어 올렸다.

하지만.

‘그럴 수 없지.’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 떠오른 나약한 생각을 갈기갈기 찢어 버린다.

내가 아는 한 남이 만들어 주는 세상은 없다.

내 손에 오롯이 잡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내가 만든 것뿐.

분명 나는 전생에서의 삶, 남이 던져 주는 개밥을 먹으며 살았던 삶과 이제 완전히 결별해야 하기로 하지 않았나.

게다가.

‘정영주가 제일 혐오하는 인간이 바로 게으른 인간이다. 그런 이들은 자신의 맡은 바 일을 내일로, 그리고 다른 이에게 넘기는 이들이니까.’

그러니 나 또한 움직여야 한다.

김귀란이 내게 넘긴 기회. 그 기회를 살려야만 그로인한 이득을 온전히 내 것으로 할 수 있었다.

‘좋아.’

결심을 굳힌 나는 지금까지 뒤집어쓰고 있었던 어린 아이의 탈을 살짝 벗었다.

그리곤 빠르고 단호하게, 칼을 꺼내기 직전의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회장님.”

그러자 일순 두 사람의 시선이 내에게 향했다.

두 명의 회장.

나는 나를 바라보는 두 시선 중 내게 낯선 눈빛.

정영주 회장의 시선을 마주보며 입을 열었다.

“제가 말씀 드리겠습니다.”

순간, 금방이라도 터질 듯 매섭게 빛나던 정 회장의 눈동자에 이채가 감돌았다.

“무슨?”

“회장님께서 이번 사업을 포기하셔야 하는 이유 말입니다.”

그러자 정영주가 우묵하니 묵묵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높이 솟은 코와 눈썹보다 위에 위치한 귀, 가늘게 찢겨 있으나 커다랗고 또렷한 눈동자와 바위처럼 장대하고 단정한 골격. 그리고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

정영주 회장의 사후 관상가들이 정영주 회장의 관상을 용(龍)의 상이라 평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오늘 보니 그 이야기가 마냥 틀리지만은 않은 것 같다.

정면에서 바라본 그의 모습은 실제 그의 체구보다 더 크고 묵직했다.

“어린아이가 끼어들 만한 일이 아니다.”

무척이나 거친 목소리. 지금 이 상황에 대한 불만이 담긴 목소리였다.

정회장의 말에 나는 손끝이 저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나 또한 그와 버금가는 기세를 뿜어대는 사람과 벌써 일 년 째 마주하고 있는 몸. 빠르게 정 회장의 기세를 받아 넘기며 입을 열었다.

“후회하실 텐데요?”

“후회?”

정영주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김귀란을 바라보았다.

마치 각오하라는 듯한 표정. 이 실수에 대한 죄를 물을 것이라는 듯한 눈빛. 아무래도 그는 내 이야기를 들어볼 생각 자체가 없는 것 같았다.

‘거 참 성격 한번 무지하게 급하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이대로 정 회장과의 대화가 끝난다면 영영 다시는 그와 마주할 수 없을지 몰랐다.

그렇다면?

내가 가진 무기를 투척하는 수밖에.

“회장님. 회장님께서 기다리시는 남북정상회담. 취소될 겁니다. 김일성 그 사람이 그때까지 버티지 못 할 테니까요.”

나는 불편한 기색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정 회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러자 정 회장의 움직임이 갑자기 정지. 한동안 가만히 있더니 눈을 부릅뜬 얼굴로 김귀란을 바라보았다.

웬만한 일이었다면 코웃음을 치고 넘길 만한 사람이었지만 사안의 심각성이 그를 움직였다.

“이 이야기 진짜야?”

그러자 김귀란이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 듣는다더니 이제 들을 생각이 생겨?”

“흰소리 말고. 이 이야기 진짜야? 정말로?”

“김일성이가 죽을 때까진 모르지. 아직은 살아있으니 그냥 가능성이 높은 이야기 정도로 생각하라고.”

가벼운 김귀란의 말. 그 말에 정 회장이 못마땅한 안색으로 휘휘 고개를 저었다.

“그럼 가짜구만. 며칠 전에 김일성이 지미 카터랑 그 양반이랑 대동강에서 뱃놀이 하는 사진을 봤으니까. 쯧, 하긴 그 양반이 그렇게 쉽게 죽을 리 없지.”

아무래도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 김일성의 건강이 양호하다는 것을 믿고 싶은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본 김귀란이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며 말했다.

“정 회장. 그 양반 나이도 이제 팔십 둘이야. 저녁에 인사하고 아침에 곡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란 말이야. 거기다 말마따나 그 양반 나이가 얼만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도 이젠 없잖아.”

하지만 정 회장은 완고한 태도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아니 그쪽 의료진이 보통 의료진인가? 들어보니 유럽에서 초빙한 의사들이 24시간 당직을 서고 있다더만. 그놈들이 멍청이들도 아니고 김일성이한테 이상이 있었으면 당장 조치를 취했겠지.”

그러자 잠시 정 회장을 바라보던 김귀란.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박통 생각 안나?”

순간, 정 회장의 표정이 싹 굳었다.

“김 회장. 여기서 박통 이야기가 왜 나와?”

보아하니 조금 불편한 모습. 그런 그의 모습에 김귀란이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

“나나 자네나 그 양반은 안 죽을 줄 알았어. 천 년 만 년 살다가 귀천할 줄 알았지. 그런데 어떻게 됐나? 제일 믿던 사람 총에 죽었지 않나. 그리고··· 말마따나 자네도 그때 운이 안 좋았으면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것 아니야?”

정 회장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받았다.

“젠장. 말을 해도 무슨 그런 말을···.”

그리고는 잠시 김귀란을 바라보던 그가 속는 셈 치겠다는 듯, 영 미덥지 않은 시선으로 나를 향했다.

“···좋아. 그럼 물어나 보자. 그러니까 지금 네 말은 김일성이가 죽고 정상회담이 파투 난다는 말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확실히요.”

“뭐 왜 굳이 김 회장이 자기 입으로 말을 안 하고 너를 통하는진 모르겠지만. 좋다 장단을 맞춰 주지. 그럼 말해 보거라. 네 말이 사실이라는 증거는 있느냐?”

“증거요?”

내가 되묻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그래 인석아 증거. 증거가 있어야 사람이 말을 믿을 거 아니냐. 그게 없으면 니가 아무리 번지르르한 말을 해도 결국 다 거짓부렁인 법이야. 그러니까 날 설득하려면 내가 네 말을 믿을 수 있게 증거를 가져와야지. 안 그래?”

정 회장이 고요한, 하지만 매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묵하게 들어간 눈과 입은 웃고 있었지만. 차갑고 싸늘했다.

“그건 그렇죠.”

“그래. 그러니까 말해 보거라 네 말. 증거는 있느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뇨. 없어요.”

“···그럼 누가 그 정보를 내게 전했는지는?”

“그것도 말씀드릴 수 없어요.”

그러자 정 회장이 화가 난다기 보단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허 참. 이런 어이없는 녀석을 보았나. 아니 증거도 없다 증인도 없다 그런데 나 보러 니 말을 믿으라고?”

“네. 맞아요.”

“이봐 김 회장. 이거 뭐하는 짓···.”

그때.

나는 정 회장의 말을 끊으며 말을 이었다.

“대신 김일성이 죽는다는 거에 대한 증거는 없어도 제 말이 사실이라는 거에 대한 증거는 있어요. 그리고 회장님이 왜 그렇게 북에 가고 싶어 하시는지도 알고 있구요.”

“뭐이 어드레?”

정 회장의 입에서 사투리가 새어나왔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적으로 정영주 회장이 대북사업을 벌인 것에는 몇 가지 해석이 있었다.

첫 번째는 정영주 그가 살아생전 끊임없이 이야기했던 이유.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 땅 통천에서 여생을 보낸 뒤 그 땅에 묻히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해석.

그리고 두 번째는 1992년 제14대 대통령선서에서 패배, 그로인한 보복으로 축소된 현대의 현대 바운더리를 넓히려는 방법으로 대북사업을 밀어붙였다는 해석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위의 두 가지 해석 모두 어느 정도 일리는 있는, 일정부분 영향을 미친 이유들이었지만.

거인(巨人) 정영주.

인생의 희노애락을 모두 맛본 남한 제일의 거부.

그가 부득불 고향인 북한으로 가려는 이유들 중에는 그것 이외에 아주 개인적인 이유도 하나 끼어 있다는 것을.

내가 고개를 들어 정영주 회장이 있는 쪽을 바라보자 그가 차게 식은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회장님.”

“그래.”

나는 타오르는 등걸불 같은 그네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회장님이 그토록 찾으시는 분···.”

순간, 정영주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그러니까 회장님의 첫 사랑은···.”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고향인 통천이 아닌 청진에 살아 계세요.”

정영주의 철벽이 무너졌다. 완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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