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90화 북상하는 폭풍 (2)
일본을 통해 30억 달러의 자금을 만들어낸 우리, 우리는 곧 본격적인 사냥 준비를 시작했다.
“아저씨.”
“어.”
“지금까지 들어온 돈은 모두 다 달러로 준비해 놨죠?”
이제 얼마 뒤 있을 사냥에 들어가면 현재의 정비 상태에 따라 그 성공도가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물론이지. 소량의 엔화를 제외한 자금 모두 달러로 바꿔 둔 뒤 상태야.”
“얼마나 남겨 놨죠?”
“한 1억 달러 어치 정도? 뭐 엔화도 일단 기축통화 중 하나니까 아마 쓸 곳이 있겠지.”
“그건 그렇죠. 좋아요. 그럼 이제 마지막 준비를 시작할까요?”
일단 가장 먼저 우리는 로스앤젤레스, 천사들의 도시로 가 지금까지 나와 함께 손을 맞춰 온 존재. 조지 소로스와 그의 측근들 그리고 그들의 파트너들을 만났다.
“오랜만이네요 소로스 씨. 이렇게 직접 뵙는 건 한 달 만인가요?”
본격적인 작전에 들어가기 전 그들과 구체적인 작전의 일정, 그리고 세부적 자금의 흐름 등을 조율하는 동시에 조밀한 연락망을 구축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하하, 그래 준영. 오랜만이군. 그런데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네. 저번에 태국에서 뵙고 처음이니까요.”
“…그동안 시간이 제법 빠르게 가긴 간 것 같구만. 그래 이번에도 바쁘게 움직일 테지?”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아요. 저희한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으니까. 그나저나 새로운 연락망 구축이 마무리되었다는 소리가 들리던데, 사실인가요?”
물론 얼마 전 있었던 태국 공격, 그때 사용하던 연락망이 있긴 했지만 당시 실제 작전에서 부족한 면모가 보였던 부분들이 존재했던 만큼 그 부분들을 보완하기 위해서였다.
“그렇지. 일단 사람들은 전부 다 준비해 뒀네. 필요한 것들도 이미 다 갖춰 놨고.”
“…기존 연락망과의 차이는 있나요?”
“기본적으로는 비슷하지 하지만 그전보다 더 세밀하게 더 많은 돈을 들여 구축해 뒀어. 예를 들어… 이번엔 저번과 달리 위성까지 하나 섭외해 뒀지.”
“…네? 위성이요?”
“그래. 위성.”
“아니 제가 아는 그 위성이요? 도대체 왜?”
“동양에 이런 말이 있다지.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고. 혹시 모르잖은가 뭐 별다른 일은 없겠지만 이번 일의 크기가 크기인 만큼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거참 스케일 하나는 대단하구만.
하지만 뭐 그렇다고 나쁠 것은 없었다.
소로스가 위성을 섭외한 것은 분명 예상외의 일이었지만 어쨌든 그를 통해 더 완벽한 연락망이 만들 수 있을 테니까.
“…대단하신데요?”
“별로 대단할 것은 없네. 지인들 중에 소련제 위성을 하나 가진 사람이 있었거든. 요즘 같은 시가엔 위성 한두 개쯤 가진 사람은 흔하니까.”
…그게 흔한 일이었나?
아무튼 그렇게 조밀한 연락망을 구축한 뒤, 소로스와의 만남을 마친 우리는 곧바로 미국 뉴욕으로 갔다.
그런 뒤 그동안 쌓아올린 인맥을 동원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
“트럼프 씨. 이쪽은…?”
“아 준영 소개하지. 이쪽에 있는 사람은 루퍼트 머독(Rupert Murdoch). 흔하디흔한 통신 재벌들 중 하나지.”
우리의 이번 작전에 미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이뤄지는 일이긴 했지만, 이번 일, 이번 사건이 불러올 파장의 규모가 규모인 만큼, 미국이라는 국가 내에서 일정한 함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이들을 우리 편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루퍼트 머독 씨요?”
“그래. 왜 저번에 자네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인터뷰 하지 않았나? 그 회사가 이 사람 거야.”
“…알고야 있죠.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지만. 반갑습니다, 머독 씨. 저는 오라클 인베스트먼트의 김준영이라고 합니다.”
그들의 힘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는 지난 일본의 일에서도 여실히 알 수 있었으니까.
“반갑네. 준영. 자네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네. 그런데 이번 태국 사건 말인데….”
“아, 그 사건 같은 경우에는….”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일에만 전력을 기울인 것은 아니었다.
일단 미국이라면 내가 가진 거의 모든 것들이 존재하는 땅, 이제는 나의 기본이나 다름없어진 땅이었다.
그런 만큼 이 땅에선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제법 많았다.
“그러니까 레이첼. 여기서 자금을 더 만들어 수 있을 거라는 거죠?”
“네 보스. 일단 기존에 투자했었던 회사들의 경우 빠른 성장을 보이고 있는데다가 이번 사태, 그러니까 태국 사태로 인해 미국 주가가 요동치면서 예상외의 수익이 나왔거든요.”
“…얼마나 나왔죠?”
“대략적으로 봤을 때 일단 가용가능한 자금은 3천만 달러 정도예요.”
순간, 나는 놀람을 금치 못했다.
3천만 달러.
분명 내가 가진 자금에 비해 일견 적어 보일 수도 있는 자금이지만 하나하나 보면 일반인들은 생각지도 못한 큰 금액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렇게나 많이요?”
“네. 게다가 나스닥 상장사들 성과도 좋아서 다음 달 말까지 2천만 정도는 수익을 거둘 수 있을 것 같아요. 게다가 저희가 투자한 벤처 회사들 중에서도 IPO 이야기가 나오는 회사가 여러 곳 있는 상태고요.”
“…그럼 총 가용자금이 얼마나 되는 거죠?”
“일단은 30억 하고도 2천만 달러 정도는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수치상으로 따지만 앞으로 두 달 사이 2천만 정도는 더 가용 가능해질 테고요.”
아무래도 내 예상보다 더 미주 지역 투자의 수익이 좋은 것 같았다.
“…뭔가 선물을 받은 느낌이네요.”
“하하 선물이라기보다는 추수에 가깝죠. 다 보스께서 뿌려 놓으신 씨앗이니까.”
그 뒤, 모든 일을 마무리 한 우리는 우리들의 베이스캠프. 이번 일의 사령탑인 홍콩으로 돌아왔다.
“후, 도착했네.”
“고생하셨어요, 아저씨.”
불과 일주일이 약간 넘는 짧은 일정이었지만 밀도로 따졌을 때엔 한 달 이상의 가치를 지니는 시간이었다.
“그래. 고생했지. 지난 일주일동안 정말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면서 다닌 거니까.”
“에이, 누가 보면 정말 그런 줄 알겠네. 그래도 기내식은 빵빵하게 나왔잖아요. 좌석도 퍼스트클래스고.”
“……어휴 말이나 못하면.”
그리고 그렇게 모든 준비가 다 마무리된 8월, 태국 정부가 긴급경제재건대책을 발표하고 있던 그때, 우리는 만반의 준비를 갖춘 채 본격적인 공습을 시작했다.
“…아저씨.”
“준비 끝났어.”
“좋아요. 그럼…·.”
100억 달러에 달하는 돈과 대한민국의 명운.
두 가지가 걸린 싸움이 비로소 시작된 것이다.
“공격을 시작하죠.”
*
8월.
태국의 몰락을 바라본 주변 국가들.
태국과 같이 해외 자본을 유치 자국의 산업을 육성하는 방식의 경제 개발 방식을 답습하던 국가들이 공포에 질려 자국의 경제를 정리하고 있던 그때.
우니는 공격을 시작했다.
[신용평가 기관 무디스, 말레이시아 및 동남아 3국의 신용등급 ‘하향’ 가능하다 ? 이코노미스트(싱가포르). 1997. 08. 04]
[태국의 IMF구제금융 신청, 동남아 경제 모델의 실패인가? - 월스트리트 저널. 1997. 08. 05]
[전문가들, 태국의 사태는 피할 수 없는 사건 이른바 동남아 경제 모델의 ‘공세종말점’ - 니혼게이자이. 1997. 08. 05]
가장 먼저 우리는 우리의 진군을 주변에 알린 우리는 등장과 동시에 사람들을 자극하는 기사들을 쏟아내는 한편, 그동안 쟁여두었던 총알을 동남아 국가들에 퍼부어댔다.
[퀀텀 펀드. 56억 페소(필리핀). 매도주문]
[타이거 펀드. 2억 5천 링기트(말레이시아) 매도주문]
[메가 어드바이저스. 2천억 루피아(인도네시아) 매도주문]
일견 그 전에 있었던 태국에 대한 공격과 비슷한 양상이었지만.
문제는 그 이전의 공격, 태국과의 일전에서보다 그 공격의 속도와 밀도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동안의 경험과 태국과의 일전으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우리의 공격력은 한층더 강화 됐으니까.
[달러(USD) / 필리핀 페소 26.40 ▲ 3.70]
[달러(USD) / 말레이시아 링기트 2.52 ▲ 0.50]
[달러(USD) / 인도네시아 루피아 2165.12 ▲ 240]
그러자 태국의 붕괴 이후 차츰차츰 흔들리고 있던 동남아 국가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등의 나라들을 향해 해외자본들의 러쉬가 미친 듯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말레이시아 갑작스러운 화폐가치 폭락에 분노, 환율 ‘절대 사수’ 할 것 ? 매X경제. 1997. 08. 06]
[태국에 이어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까지, 기회인가 위기인가? - 경X일보. 1997. 08. 06]
[해외 자본들, 대박을 노리고 묻지마 투기 시작! 동남아 국가들 ‘흔들’ - 조X일보. 1997. 08. 06]
마치 메뚜기떼처럼, 이미 태국을 공격하며 돈맛을 본 자본들이 ‘기회는 이때다’라고 외치며 해당 국가들의 통화를 물어뜯은 것이다.
“왔다. 드디어 왔어.”
“젠장, 이번 기회는 절대 안 놓쳐.”
“긴장 놓지 마. 속는 순간 지는 거야. 무조건 올인이다.”
본래 피라냐 또한 온순하지만 피 맛을 본 순간 돌아 버리는 법이었으니까.
[달러(USD) / 필리핀 페소 27.90 ▲ 1.50]
[달러(USD) / 말레이시아 링기트 2.82 ▲ 0.30]
[달러(USD) / 인도네시아 루피아 2485.12 ▲ 320]
물론 그렇다고 우리의 타겟이 된 국가들, 태국 주변에 있는 국가들이 우리들의 공격에 그저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자칫 잘못하면 먹힌다.’
‘정신을 놓는 순간 국가의 경제가 넘어간다.’
태국이라는 선례를 본 이상 그들도 그들 나름의 방법으로 우리들, 그리고 우리의 뒤를 따라 온 메뚜기떼들을 털어내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예를 들어 필리핀 같은 경우 우리의 공격이 시작되자마자 콜금리 인상과 환율 변동폭(밴드) 확대, 시중은행에게 빌려주는 단기금리를 12%에서 25%로 두 배나 올린 것은 물론 나중엔 최고 32%까지 올렸다.
돈을 빌려 쓰는 입장에 있는 필리핀 은행이나 기업은 죽을 지경이지만, 외국 자본에게 많은 이익을 보장해 주는 조치였다.
그리고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언론플레이를 통해 조지 소로스로 대표되는 헤지펀드 세력을 비판하는 가하면 외환을 풀어 자국의 환율을 방어, 자국의 환율 변동폭을 완화, 환율밴드를 탄력적으로 운용했다.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이번 위기를 벗어나려 한 것이다.
“최대한 버틴다! 우리는 태국처럼 무너져선 안 돼! 우리가 지면 나라가 결딴나는 거야!”
“해외채권들 모두 다 확인하고 만기 연장 신청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환율 지키고!”
“빌어먹을, 태국만 안 도와줬었으면 여유가 좀 생겼을 텐데.”
뭐 문제가 있다면…
“아저씨.”
“어 준영아.”
내가 가만히 있을 생각이 없다는 거지.
“준비했던 정보 있죠?”
“…그거?”
“네. 그 자료 전송하세요.”
[말레이시아, 8월 중 1달러당 4.5 링기트로 통화가치 폭락 - Oracle]
[인도네시아, 루피화 가치 폭락, 1997년 10월 8일 IMF 구제금융 신청 - Oracle]
[필리핀, 페소화 가치 폭락, 이후 10년간 인플레 지속 - Oracle]
나는 쐐기를 박아 넣었다.
동남아의 눈물. 그리고 누군가가 흘린 눈물만큼 누군가는 웃는 것이 주식시장의 법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