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9화 검은 용을 쥐어라! (1) >
땅(地).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
인간문명의 근원이자 동서고금 부의 근원.
손에 꽈악 움켜쥐고만 있으면 그대로 돈이 되고, 세력이 되고, 힘이 되는 물건. 그런 물건이 바로 땅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 땅이나 가질 수는 없었다.
땅이란 그 사회, 문화, 정치, 경제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가치가 바뀌는 것. 그리고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에 따라 하루아침에 가치가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패가망신을 면치 못하는 것.
하지만 그러면서도 사람들을 유혹하는 마물, 그것이 바로 땅인 것이다.
그러나 뭐 그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나에게는 그리 큰 관계가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
끼익-
차가 멈추는 느낌. 그 느낌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보이는 풍경, 그것은 흔한 중국의 시골 읍락.
누렇게 황토색을 띈 땅과 그 위쪽으로 푸른 하늘이 맞붙어 있는, 평원 한가운데 자리해 있는 고즈넉한 분위기의 도시 모습이었다.
이곳이 바로 우리가 목적했던 곳.
중국 요령(遼寧)성의 성도 선양(瀋陽)에서 차를 타고 남서쪽으로 5시간쯤 달려 도착한 곳. 저 멀리 보이는 푸른 하늘과 황금빛 갈대밭이 맞닿아 있는 도시 후핑(和平)이었다.
‘허리가 꽤 아프네.’
역시 대륙, 그리 오래 떨어지지 않은 곳에 오는 것에도 꽤나 시간이 걸렸다.
미국이었다면 헬기를 대절했을 거리였을 텐데.
‘헬기 타면 한 시간도 안 걸렸겠지.’
하지만 아직까지 그런 일은 중국에서 금물이었다.
아직까지는 철의 장막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 이곳이었으니까.
그때.
“드디어 도착했군.”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옆을 보자 야성적인 인상의 사내. 정금석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와 함께 내가 노리고 있는 땅을 확인하기 위해 여기까지 동행한 터였다.
“그렇군요.”
내가 그의 말에 대답하자 슬쩍 나를 바라보는 정금석, 그가 피식 웃음을 짓고는 물었다.
“얼굴을 보니 꽤나 피곤한 모양이로군.”
아무래도 얼굴이 티가 났나 보다.
뭐 아무리 익숙해진다고 하더라도 이런 장거리 운행은 쉬이 익숙해지지 못하는 것이었으니까.
“아무래도 거리가 거리다 보니 말입니다.”
때문에 내가 간단히 대답하자 그가 가벼운 웃음을 지었다.
“5시간 정도면 근방이지. 역시 아직 대륙사람 덜 됐구만.”
“뭐 그럭저럭 적응은 되어 갑니다.”
“하하, 그것 참 다행이구만. 그래도 걱정하지 말게 조만간 당에서 이 문제에 대해 정책을 완화한다고 하니까.”
그리고 그렇게 한바탕 너털웃음을 터뜨린 정금석, 그와 나는 천천히 차 밖으로 내려섰다.
그러자.
타악-
흩어 오르는 흙먼지. 만주 벌판의 흙먼지가 푸스스 피어올랐다.
아무래도 아직 비가 오기 전, 건조한 공기가 살갗에 내려섰다.
“그나저나 정말 이곳이 자네가 오고 싶었던 곳인가?”
의아한 목소리. 정금석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긴 그런 생각을 가질 만도 했다.
주변에 보이는 것이라곤 드넓은 벌판과 인구 1만이 채 될까 말까 한 작은 도시. 아니 읍락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의 한적한 소도시의 모습, 그것뿐이었으니까.
하지만.
“물론이죠.”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
“네.”
이곳이 나중에 어떤 곳이 될지. 지금은 한적한 도시. 흙먼지만이 물씬 풍기는 이곳이 어떤 값어치를 가진 곳이 될지 말이다.
왜냐하면 이곳은···.
“이곳이야말로 제가 꼭 한번 와 보고 싶었던 곳이니까요.”
5년 뒤, 중국 동북성 최대 규모의 유전이 발견되는 곳이니까.
나는 짙은 웃음을 보이며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메마른 흙 한 줌을 쥐어 손에서 흘렸다.
그러자 거친 흙먼지가 바람을 타고 흘러내렸다.
“······.”
과거, 그러니까 아직 내가 눈을 뜨기 전, 나는 인터넷에서 한 가지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중국 동북 지역 대경유전 규모의 거대 유전 발견! 가채년수 수십 년! - 한X경제. 2005. 11. 10]
유전, 중국 동북 3성에서 거대한 규모의 유전이 발견되었다는 기사였다.
무려 5억 톤, 연간 생산량 1,000만 톤에 이르는 거대한 유전이 동북 지역에서 발견되었다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때문에 나는 이곳, 중국 시장을 노릴 때부터 이곳, 이 지점을 노렸다.
우리나라의 한 해 석유 소모량의 10% 이상의 석유를 생산할 수 있는 거대한 유정.
중국 2대 유전인 대경유전(大慶油田 추정 매장량 10억 톤), 성리유전(?利油田 추정 매장량 8억 톤) 보다는 조금 작지만 그와 비슷한 규모의 유전을 절대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말마따나 자원, 그리고 에너지, 그 두 가지 키워드는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키워드들이었으니까.
‘뭐 그걸 아는 사람은 지금 아무도 없지만.’
나는 피식 웃으며 손을 탁 털었다.
그러자 푹- 흙먼지가 피어오른다.
그 모습을 본 정금석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이제 보니 아이 같은 면도 있었군. 흙장난이라니.”
“하하, 이 땅에 꽤나 오랫동안 오고 싶어 해서 말입니다.”
“하긴, 뭐 나름 멋이라는 게 있기는 하구만. 평야를 보니 말을 뛰기 참 좋은 곳이야.”
그러고는 천천히 뭔가를 바라보던 그의 시선이 이내 나를 향했다.
“사실 처음 자네가 땅을 본다고 했을 때 약간 오해했었네.”
“그렇습니까?”
“그래. 사실 땅을 본다기에 다른 치들처럼 베이징이나 상하이 그런 쪽의 땅을 보려는 건 아닌가 했지. 그런데··· 이거 참, 아주 내 오해를 박살 내 주는구만.”
그가 피식 웃으며 나를 보았다.
그 웃음엔 자신의 예상이 벗어난 것에 대한 즐거움이 담겨 있었다.
“물론 그쪽 땅들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
“네. 하지만 일단은 이곳이죠.”
말을 마친 나는 발을 쿵- 굴렀다.
그러자 다시금 흙먼지가 푸욱- 피어올랐다.
“이곳의 가치는 그곳의 천 배가 넘으니까요.”
“이곳이 말인가?”
“그렇습니다?”
“하, 참 뭘 보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군.”
그렇게 잠시 나를 바라보던 정금석이 목소리를 낮췄다.
“설마 실수는 아니겠지?”
“실수라 생각하십니까?”
“뭐 나름 이곳에 대해 조사는 해 봤네. 하지만 그럴수록 점점 더 이상해지더군. 이 땅은··· 그래 아무런 가치도 의미도 없는 땅이야. 그저 넓은 평야. 그것이 자랑인 땅이지. 그런데 자네는 이 땅에서 도대체 뭘 보고 있는 거지?”
그의 눈은 짙은 의문을 담고 있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면 나는 입을 열었다.
“제가 보고 있는 것 말입니까?”
“그래.”
“글쎄요··· 제 눈엔 거대한 용이 보이는군요.”
“용?”
“그렇습니다. 하늘을 향해 승천할 거대한 용. 검은 용(驪龍)이 말이죠.”
내 발밑에 꿈틀거리는 용의 느낌이 들었다.
*
정금석과의 외유, 실측 조사를 마친 우리는 곧바로 땅에 대한 투자를 시작했다.
“아저씨 준비는 끝났어요?”
“준비?”
타겟이 명확한 이상, 그 타겟을 내 손에 담기 위해서였다.
“네. 자금이 필요한 타이밍이에요.”
“에이 그게 뭐 준비까지야. 어차피 현금은 빵빵한데.”
“얼마나?”
“저번에 들어온 자금 300억 불. 그거 꽤 많이 남았어.”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긴 해.”
“문제요?”
“그래.”
그것은 중국의 토지 제도. 토지의 소유와 매매 제도가 일반적인 국가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중국 헌법 제10조]
① 도시의 토지는 국가의 소유에 속한다.
② 농촌 및 도시교외의 토지는 법률의 규정에 의하여 국가 소유에 속하는 이외에는 집단 소유에 속한다. 택지와 자경지 및 자영림도 집단 소유에 속한다.
표면적 공산주의 국가.
공산당이라는 초거대, 사실상 유일 정당이 국가를 지배하고 있는 만큼 개인이 토지를 소유할 수 없었으니까.
“개인이 토지를 소유할 수 없다라. 뭐 알고는 있었지만 참 이상한 제도네요.”
“이상하지.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거야. 이 국가의 근본이념이 바로 공산이니까.”
“껍질이 변하더라도 근본은 잃지 말자인가요?”
“아니 썩더라도 티는 내자는 거겠지.”
그러나 그 문제는 제법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뭐, 그러기 위해서 모신 사람이 있죠.”
“모신 사람?”
인간이란 언제나 방법을 찾아내는 법이니까.
“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고 그 법률 자문은 로마인에게 받는 게 좋겠죠.”
“설마, 너···.”
“네. 맞아요. 이번 일엔 형제회 그쪽 라인을 이용할 거예요.”
동북성에서 정금석의 입김이 미치지 않는 곳은 드물었으니까.
“······맡겨 두게. 곧 연락을 주도록 하지.”
“믿겠습니다. 회주님.”
그런데?
그렇게 우리가 큼직한 작업들을 정금석에게 맡긴 채 후핑 지역, 석유가 매장되어 있을 것이라 판단되는 지역의 토지들을 일제히 사 들이고 있던 중, 나는 한 가지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러니까 절대로 움직이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죠?”
그것은 우리에게 토지를 팔지 않겠다 버티는 이들이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니까. 후우··· 얼마나 고집불통들인지 정말··· 갔던 직원들마다 답이 없다고 하더라고.”
절레절레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젓는 이어진, 그의 말에 나는 슬쩍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지금까지 이런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이어진이 고개를 저을 정도의 사람들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아무리 자기가 태어난 땅, 고향이 좋다고 하더라도 자기가 생각한 돈보다 더 많은 자금 앞에선 그 욕망 또한 흐려지는 법이었으니까.
“설마 시세보다 덜 쳐준 거예요?”
“아니 설마, 그럴 리가. 시세보다 더 쳤으면 더 쳤지 덜 치진 않았어. 뭐 그래도 될 정도로 그 지역 땅값이 낮았거든.”
“얼마나?”
“적어도 20% 많으면 30%까지 더 쳐줬어. 규모가 크면 그에 더 추가로 준다고 했고.”
“그런데도 그래요?”
“그렇다니까. 그런데도 요지부동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더라고. 나 참···.”
이쯤 되자 약간 이상했다.
돈 좋아하기로 소문난 중국인들의 특성상 제안을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말마따나 전란이 나면 고향 버리고 우르르 몰려가는 게 그들이니까.
“그 땅을 빼고 사는 건 어때요?”
“힘들어. 후핑시 근처에 있는 마을인데 인구에 비해 소유 토지가 꽤 되거든.”
“그렇다면···.”
“싫어도 그 지역을 손에 쥐어야지. 나름 주변 교통의 요지니까.”
그가 답이 없다는 듯 쩝 입을 다셨다.
그리고 그렇게 한참동안 머리를 벅벅 긁던 이어진이 이내 한 가지 생각났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아, 그런데 한 가지 말 안 한 게 있다.”
“뭔데요?”
“그 마을, 조금 특이한 구석이 있어.”
“특이한 구석이요?”
“그래. 너도 들으면 특이하다고 생각할걸?”
이어진, 그가 피로에 전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뭔데 그래요?”
때문에 내가 묻자 그가 피식-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마을 이름이···.”
“마을 이름이?”
“최가촌(崔家村)이야.”
최가촌?
···어째 마을 이름이 좀 익숙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