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화 진군하는 자 (2)
오라클과 AT&T의 협상.
그리고 그로 인한 신제품 출시와 신제품 가격의 책정. 그것은 전세계 이동통신 업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오라클! AT&T와의 합작으로 신제품 독점적 공급할 것! 초기 물량의 가격은 무려… 299달러! 관련 기업들 ‘당황’ - 월스트리트 저널. 2004. 11. 11]
무려 299달러!
당시 500달러, 아니 많으면 100달러를 호가하던 고부가가치 산업이었던 휴대폰 산업에서 299달러라는 가격은 파격적인 가격이었기 때문이었다.
“299달러? 정말 299달러란 말이야?”
“그, 그렇습니다. 그것 때문에 지금 다들 난립니다.”
“미쳤군. 미쳐도 단단히 미쳤어. 아니 299달러라면 우리회사의 중저가 라인보다 더 낮은 가격이잖아!”
말마따나 300달러 정도의 가격은 플레그 쉽이 아닌 저가형 모델, 그중에서도 제법 년식이 지난 제품들에 책정되는 가격이었으니까.
“…아무래도 그렇습니다.”
“빌어먹을… 설마 오라클 쪽에서 중저가 라인을 노리는 건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버라이즌을 버려둔 채 AT&T 쪽과 독점 계약까지 진행한 것으로 보면 플래그십 제품(Flagship products). 그것도 사측의 사활을 건 제품이라는 판단이 더 타당합니다.”
때문에 사람들은 생각했다.
오라클이 드디어 칼을 빼들었다.
오라클이 AT&T와의 독점을 통해 시장의 독점적 지배를 획책하고 있다고 말이다.
2004년 현재 오라클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25%를 넘는 정도, 그만큼 위협적인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299달러짜리 플래그십?”
“오라클인 만큼 스펙이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아시잖습니까, 오라클의 제품은 오라클-1 때부터 항상 최고 스펙을 추구했다는 거. 아마 퀄컴 등의 특허를 인수한 만큼 생산비 절감이 가능했던 거겠죠.”
그러자 사람들, 찬밥이 된 버라이즌을 비롯한 통신기기 제조업체들.
노키아(Nokia), 모토로라(Motorola), 샤프(sharp), 블랙베리(BlackBerry), 소니(Sony) 같은 기업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긴급이다! 빨리 오라클 제품 정보 입수하고 대응책 마련해.”
이변, 그것의 이유를 찾아 대응하려 한 것이다.
“정보 말입니까?”
“그래! 계약 내용의 세부 사항이든 아니면 제품에 대한 정보든 뭐든! 일단 정체를 알아야 대응을 할 거 아니야!”
그들 입장에선 리스크를 줄여야할 테니까.
“오라클 쪽에서는 정보를 얻을 수 없을 겁니다. 그런 쪽으로는 확실한 회사니까요.”
“알아! 하지만 친구의 입까지 틀어막진 못하겠지! 오라클이 안 되면 AT&T를 뒤지면 될 테니까!”
“하지만 그렇게 하다간 AT&T와의 관계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어차피 AT&T는 우리를 포기하지 못해. 시장을 저버리고 싶은 게 아니라면 말이야!”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분위기가 이상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알겠습니다.”
“어떤 정보든 좋아. 이 사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보라면 그 어떤 것이든 상관 없어. 진실이든 거짓이든 그럴듯한 걸 가져와!”
오라클이 런칭하고자 하는 제품, 그것이 일반적인 휴대폰이 아닌 실험적인 기기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서 술렁거리던 시장 분위기가 차츰 가라앉기 시작한 것이다.
“알아냈습니다!”
“어떤데?”
“그게… 아무래도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일반적은 휴대폰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
“네. 그게… 아무래도 실험적인 제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전면 디스플레이를 채택한 제품이 될 거라고 하더군요.”
본디 시장에서 신기술을 무기로 들고 나오는 물건들 치고 제대로 된 물건들은 없는 법이었으니까.
“전면 디스플레이? 아니 그럼 자판은 어디에 두고?”
“아무래도 터치로 구현할 것 같습니다.”
“터치? 하, 이거 오라클이 미쳤군. 아니 이쯤되면 광오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 누가 터치로 자판을 쳐? 그게 잘 눌리기나 하겠어?”
“그렇습니다. 게다가 새로운 기기에 탑재되는 기능이 꽤나 많은 것 같습니다. 전면 디스플레이와 터치를 제외하고도 MP3, DMB, 네비게이션 등등의 탑재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점입가경이구만 휴대폰을 만든다면서 백화점을 만들었어.”
거기다 오라클에 대한 기업들의 각종 네가티브들, 그리고 서구인들 특유의 차별적 시선까지 더해지면서 오라클의 대한 위협은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받기 시작했다.
“네. 거기다 버라이즌 쪽에서 움직인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자신들을 찬밥 취급한 오라클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을 생각인 것 같습니다.”
“그래?”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계약이 끝나면 오라클과의 계약을 끝낼 생각인 것 같더군요.”
“하하 그 건방진 동양인 놈들 그동안 거들먹거리더니 큰 코 다치겠군. 아니 이 경우엔 작은 코를 다친다고 해야 하나?”
실제 위협이 도래하기 전 자기들 스스로 그 위협을 낮춰 버리겠다는 듯이.
[MS의 스티브 발머 CEO ‘오라클의 신제품 판매량 많아야 1000만 대, 전세계 휴대폰 판매량의 2~3%가 한계일 것’ - 월스트리트 저널. 2004. 11. 20]
[모토로라의 에드 잰더 CEO ‘오라클은 우리를 상대할 수 없다’ - 뉴욕포스트. 2004. 11. 22]
[노키아 멀티미디어 그룹의 북미 지역 담당 ‘오라클의 계획은 휴대폰의 근본을 무시한 행각 처절히 실패할 것’ - 니혼게이자이. 2004. 11. 25]
하지만 그에 대한 오라클의 대응은 간단했다.
[오라클, 신제품 발표 일시 공표! 일시는 12월 23일! 장소는 실리콘밸리! - 한국일보. 2004. 12. 01]
정면대결을 선택한 것이다.
*
“얼마나 모였어요?”
사람들의 목소리, 웅성거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이어진에게 물었다.
그러자 밖의 상황을 확인하고 온 이어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만땅.”
“만땅이라면 1만 5천이요?”
“아니 그 이상인 것 같은데?”
“그 이상이라고요?”
현재 우리가 있는 곳은 샌프란시스코 팔로앨토에 있는 주립 스타디움, 1만 명이 넘는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그 이상이라고?
“얼마나 되는 것 같은데요?”
때문에 내가 묻자 이어진 그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적어도 2만, 그 이상은 될 것 같아.”
“그래요?”
“그렇지. 서 있는 사람들까지 생각하면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고.”
그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의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내 예상보다 더 많은 이들이 모인 것 같았다.
“하하 다른 회사들이 나서서 불을 지펴 준 효과가 나네요.”
“일부러 부채질한 사람이 할 말은 아니지.”
“뭐 불쏘시개 몇 개쯤 줬다고 하죠.”
그리고 그렇게 나는 메이크업을 끝낸 뒤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준비는 다 끝났나요?”
“당연하지. 네가 주문한 대로 한국 방송사들 그리고 미국 내 방송사들이랑 신문사들 인터넷 방송망까지 모두 다 스탠바이 해 뒀어.”
“고생하셨네요.”
“고생이야 회사 직원들이 했지. 그나저나….”
이어진 그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떨리지는 않아?”
“떨리냐고요?”
“그래.”
그가 말을 이었다.
“이제 시작하면 멈출 수 없을지도 모르니까.”
말을 마친 이어진, 그의 눈은 고요하고 단단했다.
“준영아.”
“아저씨.”
“언제라도 말하면 바꿀 수 있어. 네가 원한다면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말이지. 새 시장을 만든다는 리스크를 굳이 짊어질 필요는 없단 말이야.”
“이게 리스크라고 생각하세요?”
“뭐 위험이야 언제나 상존하지. 시장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그가 약간의 걱정을 묻힌 채 말했다.
아무래도 이전에 있었던 기사들, 우리를 향한 네가티브들을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긴 그동안 제법 많은 기사들, 우리 사업의 실패를 예견하는 부정적인 분석들이 줄을 이었으니까.
하지만.
“하하, 걱정하실 것 없어요.”
“걱정할 것 없다고?”
“네.”
나는 피식 웃으며 말을 받았다.
왜냐하면 그 모든 예상들이 선무당질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 소위 전문가라고 하는 이들 중에 자신의 이익과 아집에 따라 헛다리를 짚는 사람들은 비일비재한 법이었으니까.
“우리는 실패하지 않습니다. 역사가 그걸 증명하죠.”
“역사?”
“네. 앞으로의 미래는 이미 정해져 있거든요.”
그러자 그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묘한 표정을 지었다.
“거참 넌 가끔 그러더라.”
“그런가요?”
“그래. 그런데… 네 말대로라면 이렇게 요란하게 하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니야? 미래가 이미 정해져 있다면 이렇게 크게 움직이지 않아도 충분하잖아?”
그가 핵심을 짚었다.
“예전에 누가 말하더라고요.”
“뭐라고?”
“성공은 쇼맨십이라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시선이 필요하다고. 골방에서 아무리 자랑을 해 봐야 결국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그러니까… 저는 쇼를 할 거예요. 아주 거대하게. 제가 바라는 게 꽤 크거든요.”
그가 눈을 꿈틀거렸다.
“사람들의 입에 씹힌다 해도?”
“즐겁게 씹혀 줘야죠. 성공은 질투를 부르는 법이니까.”
“……적이 많이 생길 수도 있어.”
“오라고 해요. 저는 그 적을 제물로 밟고 설 겁니다.”
나는 이어진,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그와 눈을 마주치며 말을 이었다.
“아저씨. 저는 신화를 만들 거예요.”
“신화?”
“네. 그리고….”
나는 천천히 나의 미래를 펼쳤다.
“…다른 이들의 꿈이 되겠죠.”
과거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 그는 신화가 되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패러다임을 개창함으로써.
그런 만큼 나 또한 신화가 될 것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내 앞에 놓인 길의 방향을 확실하게 알고 있었으니까.
“…제법 거창한 꿈이네.”
“하지만 설득력 있는 꿈이기도 하죠.”
“혼자서 가능하겠어?”
“아뇨.”
나는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저는 혼자 간다고 한 적이 없어요. 저는 함께 갑니다. 홀로 오롯이 빛나려 했던 누군가와는, 갈 때까지 홀로 빛나던 그와는 다르게 말이죠.”
그리고 눈이 마주친 나와 이어진, 그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앞으로 제법 바빠지겠네.”
“뭐 즐거운 일이지 않겠어요? 그만큼 더 바쁘게 돈을 번다는 이야기니까.”
“준영아 의식할지 모르지만 넌 이미 부자야.”
“원래 돈이란 게 그렇죠.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저는 뼛속까지 배금주의자니까요.”
그렇게 대화를 마친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그럼 가 볼까요?”
“…좋아.”
그리고는 나는 내 앞에 있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무거운 발걸음.
그렇게 잠시간의 시간이 흐른 뒤.
“여러분.”
내 앞에는 수만 개의 눈동자, 수만 개의 욕망을 담고 있는 시선들이 자리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