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213화 집어삼키다 (3)
삼성 이재영과의 만남이 끝난 뒤, 우리는 곧바로 태평로를 떠나 대우 본사로 향했다.
“아저씨. 대우 쪽에 약속이 몇 시였죠?”
“2시. 지금 출발하면 얼추 시간이 맞을 거야.”
이재영을 설득하는 것에 성공한 만큼 이제 남은 것은 대우, 김 회장을 설득하는 일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좋아요. 그럼 일단 나머지 사람들은 바로 회사로 들어가서 이재영 쪽이랑 협의한 내용 정리하도록 하세요.”
“응? 그럼 대우는?”
“대우에서는 부풀리기 따위는 하지 않을 거예요. 제가 알기로 그 회사 스타일이 단도직입적이거든요.”
“그래?”
“네. 소수 정예로 이 차와 뒤 차에 탄 사람들만 데려갈 겁니다.”
물론 그렇다고 대우 김우중 회장을 설득하는 일이 이재영을 설득하는 것보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동안의 노력, 이어진이 만들어 낸 인맥이 큰 힘을 발휘했다.
“좋아. 그럼 일단 그쪽에다가 전달해 놓을게. 인원은 최소한으로 하겠다고.”
“네. 아마 그쪽에서도 수락할 거예요. 규모가 작을수록… 비밀이 잘 지켜질 테니까요.”
뭐 저돌적인 성향, 파격으로 유명한 김 회장의 성향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지만.
“그러니까. 지금 김석원이 그 양반이 우리를 두고 간을 봤다 이 말이지?”
나는 내 앞에 있는 남자.
김우중.
넥타이맨의 신화.
하지만 떨어진 프로메테우스가 되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분명 내가 기억하는 그는 떨어진 별이었지만 이 당시 그는 하늘 위에 빛나는 별, 신화적인 존재였다.
때문에 나는 그를 만나며 자세를 바로했다.
이제 곧 그를 집어 먹어야 할 테니까.
“네. 그렇습니다. 회장님. 여기 삼성 측과 김석원 측의 밀회에 대한 자료입니다.”
“그래? 흐음, 김석원이 그 인간 급하긴 급했구만.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
“…궁금한 점이요?”
“그래. 도대체 이 정보를 어떻게 입수한 건가? 보아하니 우리는 물론 삼성 측에서도 알아차리지 못한 정보인 것 같은데?”
“그건…….”
“그건?”
나는 나를 바라보는 김우중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제 밑에 제법 발이 넓은 사람이 있거든요.”
“하, 그런가? 거참, 우리와 삼성조차 하지 못한 걸 그 발이 넓은 사람이 해냈단 말이지?”
“네. 그렇습니다.”
“뭐 좋아. 사람들은 한가지쯤 비밀이 있는 법이니까. 그런데… 한 가지 묻지 자네 내게 원하는 게 뭔가?”
“…원하는 것 말입니까?”
“그래. 원하는 게 있으니 나에게 왔을 것 아닌가, 우리 이사들을 구워삶아서까지 말이야. 아주 돈을 쏟아부었더구만.”
“…알고 계셨습니까?”
역시 한때 신화라 불렸던 자 만만치는 않다.
내가 그를 바라보자 그도 나를 바라보았다.
여유로운 표정으로.
“그런 것도 모르면 물러나야지. 뭐 김석원이 일은 금시초문이었지만.”
“…일단 삼성 측과는 이미 합의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김 회장님께서 수락만 하신다면 이 판을 새로 짜 볼 생각입니다.”
“판을 새로 짠다라. 과연 어떤 식으로?”
그가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를 향해 내가 준비한 파티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니까…….”
그 결과, 우리는 쌍호 김석원 회장이 삼성과 대우의 民堉嗤? 맛깔나게 후려쳐 떼돈을 벌어들이려는 그날, 역으로 쌍호 김석원의 뒤통수를 후려칠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삼성과 대우, 두 기업 모두 이번 쌍호차 인수에서 빠지는 겁니다.”
“…지금 우리더러 인수에서 빠지라고?”
“아, 오해하지 마시죠. 물론 빠지는 건 액션일 뿐입니다. 삼성과 대우 두 기업 모두가 발을 빼는 스탠스를 취하게 된다면 김석원이 그 양반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하나로 줄어들 테니까요. 그것을 노리는 거죠.”
자신이 갑인 줄 아는 을에게 본때를 보여 주기로 한 것이다.
“제법이군. 김석원이의 손발을 자를 셈이야. 쌍호라는 인질을 만들어서 말이지.”
“자업자득 아니겠습니까. 빚쟁이들과 협의도 없이 날로 회사를 팔아치우려 했으니 협박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겁니다.”
“하긴 그렇지.”
그리고 오늘, 우리는 김석원, 그 인간의 심처를 습격했다.
“오랜만이군, 이재영 상무.”
“…회장님도 오신 겁니까?”
“그래. 저 어린 친구가 제법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더라고. 그래서 왔지.”
그것도 그들이 예상하지 못할 타이밍에.
“자 그럼 선수들이 모두 모였으니 시작하도록 하죠.”
김석원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
잠시 뒤.
고개를 들자 보이는 풍경.
그것은 삼성의 이재영, 대우의 김우중, 오라클의 이어진이 김석원을 비롯한 쌍호의 인물湧? 말 그대로 탈탈탈탈 털고 있는 모습, 영혼을 수탈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김석원 회장. 요즘 쌍호그룹 상황이 안 좋다고 하던데 내 착각이었나 보구만. 그래서 하는 말인데 우리 대우는 이쯤에서 쌍호차 인수에서 빠질 생각이야 이거 어떻게 생각하나? 아 물론 이건 질문이 아니야 통보지. 자네도 이해하겠지? 내 뒤통수를 치려 했으니 말이야.”
“아, 김 회장. 오해야 나는 그저 잘 해 보자고… 그러니까 노여움을 풀고….”
“김석원 회장님. 대우 김 회장님은 보이고 저는 ? 보이시나 보봇?. 이번 일로 저희 회장님의 진노가 여간한 것? 아닙니?. 이 사태 회장님께서 온전히 감당하셔야 할 겁니다. 아 그리고 저희 쪽도 이번 인사 사업에서 빠지도록 하죠. 물론 그 외의 사태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쌍호측에서 책임져야만 할 겁니다. 본래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니까요.”
“이, 이 상무. 그건 너무한 처사가 아닐지… 내 의도는 그게 아니라니까….”
거참 무섭게 털리네.
김우중이? 이재영이야 뭐 위치가 위치인 만큼 그간 이런 경험이 많겠지만 이어진이 김석원을 압박하는 모습은 약간 의외였다.
물론 지금에야 궁지에 몰린 쥐꼴이긴 하지만 그래도 김석원 그는 재계서열 6위의 그룹, 쌍호 그룹의 총수였으니까.
“김석원 회장님. 채권단의 대표 자격으로서 귀측에 정식으로 요청합니다. 이번 쌍호자동차 매각 건에서 물러나시길 바랍니다. 만약 그렇지 않는다면 채권단 측에서도 본격적으로 움직일 계획입니다.”
“…본격적으로 움직이겠다고?”
뭐 이 상황에 빚쟁이만큼 무서운 게 없었지만.
“네. 이번 일을 포함해 그동안 저지른 회장님의 배임 행위 전체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겁니다. 그리고 그 압박은 고스란히 쌍호그룹에 쌓이게 되겠죠.”
사실 원래대로라면 이 자리에 내가 앉아 있을 자격은 없었다.
아무리 우리가 쌍호차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고 하더라도 현재 나는 쌍호자동차에 인수 밖의 존재, 그저 이번 사건의 부외자에 불과했다.
그러니 원래대로라면 삼성과 대우에 정보를 전달한 선에서 멈췄어야 했다.
하지만.
‘뭐 입찰자만 대국에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지.’
한 가지 준비 그 덕분에 나는 다른 입장에서 김석원 그를 압박할 수 있었다.
키워드는 바로 채권. 정확하게는 내가 조상제한서 은행들로부터 얻어낸 채권이었다.
왜냐하면 과거 조상제한서와 계약을 맺을 때 한 가지 특약을 추가했었으니까.
‘쌍호 차에 대한 채권의 상당 부분, 조상제한서의 은행들이 가지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그들이 자신들이 가진 쌍호차의 채권 전부를 넘긴다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가 이 자리에 설 수 있을 정도의 권한은 부여할 수 있었다.
그들로서도 김석원의 행위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었을 테니까.
‘자신들의 돈을 가지고 장사를 하려는 자를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었겠지.’
아무튼 이렇게 된 이상 이제 머지않아 김석원은 항복하게 될 것이다.
본래의 역사에서도 삼성과 대우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밀당을 하다가 그 행각이 발각, 채권단의 압박에 쌍용차 처리를 채권단에 넘기게 된 것이 바로 그였으니까 말이다.
‘뭐 이번 일로 인해 그 시기가 조금 앞당겨지긴 했지만.’
그런데 그때.
톡톡-
누군가 어깨를 두드리는 느낌을 받았다.
슬쩍 고개를 돌려보자 그곳에는 이어진, 그가 다른 채권단 사람들과 함께 홀가분한 표정 지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의 표정을 보니 굳이 말을 듣지 않아도 결과를 알 것 같았다.
“끝났어요?”
“그래. 끝났어.”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웃는 이어진, 그의 등 뒤를 바라보자 김석원을 비롯한 쌍호그룹 측 인사들이 마치 영혼을 수탈당한 사람들처럼 멍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그동안 탈탈 털리다 못해 멘탈이 나간 것 같다.
“뭐 보아하니 굳이 묻지 않아도 결과는 알 것 같네요.”
“하하, 그래도 들어봐야 하지 않겠어?”
“아뇨. 알 것 같아요. 쌍호 자동차 매각에 대한 전권 이양. 그거 맞죠?”
그러자 일순, 이어진이 못 이기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맞아. 거참 이번엔 놀랄 줄 알았는데.”
“애초에 우리 1차 목표가 그거였잖아요. 그리고 잘 보이진 않지만 나름 놀랐어요. 이렇게 빨리 결착이 날 줄은 몰랐으니까요.”
“그래?”
“네. 그런데…….”
내가 잠시 말을 아끼자 일순 이어진의 시선이 나를 따랐다.
“그런데? 왜?”
“아니 다른 분들은 어떻게 됐나 해서요.”
그러자 이어진이 알 만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아, 김 회장이랑 이 상무?”
거참, 천하의 김우중과 이재영을 저리 가볍게 부를 수 있는 담력이라니, 어떻게 보면 나보다 더 담이 큰 사람이 이어진이었다.
“네. 그분들이요. 방금 전까지 보였는데 지금은 안 보이네요?”
“뭐 김석원이랑 이야기 끝나고 바로 내려갔어. 어차피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웃으면서 볼 사이는 아니잖아. 안 그래?”
이어진이 슬쩍 웃으며 입을 열었다.
뭐 하긴 그렇긴 하지.
현재, 그러니까 오늘 있었던 삼성, 대우, 그리고 우리의 만남은 공공의 적(的), 김석원이라는 표적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김석원이라는 적이 자신의 모든 실권을 내려놓고 쌍호자동차 매각건에서 손을 떼기로 한 이상, 이제 삼성, 대우, 오라클은 경쟁자, 쉽게 말해 적에 불과했다.
아무리 방금 전까지 서로 힘을 합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결국 목표는 하나뿐이었으니까.
“그건 그렇죠. 그런데… 참 빠른 사람들이네요. 아니 언제 갔어요?”
“김석원이 항복하자마자 바로 가더라고 아, 그렇지 안 그래도 대우 김 회장님이 너한테 한마디 하긴 하더라.”
응? 김우중이?
“뭐라고요?”
내가 묻자 이어진이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번 일 재미있었다고. 하지만… 앞으로는 재미없어질 거라고.”
그 말은 나에 대한 경계가 묻어있었다.
나는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하, 선전포고네요?”
“그렇지. 아무래도 이번 일이 보통 일은 아니었으니까.”
그가 고개를 내리며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쫄 필요는 없다.
어차피 우리에겐 모든 계획이 마련되어 있었으니까.
‘그들이 생각하지 못한 계획이 말이야.’
좋아 그렇다면.
‘나도 이제 본격적으로 움직여 볼까.’
나는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 오라클 사람들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좋아요. 그럼 우리도 이제 움직이기 시작하죠.”
“…계획대로 가는 거야?”
“네. 일단 1차 목표는 성취했으니 이제 다음 페이즈예요.”
나는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 그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일단은 가장 먼저…….”
기회란 왔을 때 잡아야 하는 것이었으니까.
“삼성을 떨어뜨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