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3 / 292화 붕괴 (2)
공항에서의 일을 마무리한 우리는 곧바로 뉴욕, 월스트리트 오라클 뉴욕 지사로 향했다.
“사람들은 다 모인 상태인가요?”
“일단 연락해서 지금 현재 뉴욕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다 지사로 모이라고 해 놨어.”
“얼마나 모였죠?”
“월가 현지 인원 15명, 그리고 뉴욕과 뉴저지에 있는 사람들까지 모두 다 해서 30명 정도. 이 정도면 부족할까?”
시간이 부족한 만큼 최대한 빨리 일을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인원의 질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얼추 그 정도면 가능할 거예요. 어차피 기본적인 사항들은 이미 파악해 놓은 상태니까요. 하지만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일단 다른 인원들 모두 스탠바이 해 두세요.”
“알았어.”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의 등장에 놀람을 금치 못하는 모습이었지만 그리 큰 혼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들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잘들 지내셨나요?”
“아니 보스. 보스께서 직접 오신 겁니까?”
“네. 제프리는 오랜만에 보니 살이 좀 쪘네요?”
대부분 미국 현지 직원들, 과거 미국에서의 나를 기억하던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다 보스 덕분입니다. 보스 덕분에 요즘 밥 사 준다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저는 그저 투자 권유를 했을 뿐인데 말입니다.”
“하하 뭘요. 다 제프리 복이죠. 제프리가 흔들리는 고객들을 꽈악 잡아 준 것만 해도 그런 대우를 받을 가치는 충분해요.”
아무튼 오라클 인베스트먼트 시절부터 이곳에 있었던 이들, 그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눈 뒤 나는 그들 모두를 불러모았다.
“자 다들 오늘 제가 여기 온 이유가 궁금하겠죠?”
“물론입니다. 혹시 다른 소스가 있는 겁니까?”
“다른 소스가 있다면?”
“그렇다면 당장에라도 움직일 겁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요. 보스의 소스는 언제나 달콤하니까요.”
그들을 이번 일에 병력으로 삼기 위해서였다.
“정말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이번 소스는 꽤 덩치가 큰데요?”
“많을수록 좋은 것(The more the better) 아니겠습니까. 이미 저희는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정말 후회하시지 않겠습니까? 이번 일을 시작하면 한동안 퇴근이 없을지도 몰라요?”
“이거 겁을 주시는 거 보니 정말 큰일인가 보군요.”
“큰일이죠. 무서운 일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 열매는 달콤할 겁니다.”
“하하 그렇다면 바라는 바입니다. 안 그래도 요즘 집 사람이 살 좀 빼라고 성환데 그렇게 무섭고 위험한 일이라면 살은 좀 빠지겠죠.”
뭐 그들 또한 나중이 되면 지금을 기회라고 여길 테니까 말이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제프리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 드리죠.”
“Sir. 명령만 내려 주십시오.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뭡니까?”
“일단… 지금부터 외부와의 통신은 모두 다 정지됩니다. 그리고 일체의 연락도 금지합니다. 기간은 약 한 달. 그동안 여러분들은 이곳에 머물게 되실 겁니다.”
“네에? 아니 보스 그건….”
나는 나를 바라보며 놀란 눈을 보이는 그들, 그들을 향해 단호히 입을 열었다.
자유.
나는 이번 일을 위해 당분간 그들의 자유를 내 것으로 만들 생각이다.
“원하지 않는 분은 지금이라도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지금 이곳을 나간다고 하더라도 일체의 불이익이 없을 것이란 것을 약속해드리죠. 물론 제가 가져온 소스는 구경도 할 수 없겠지만 말입니다.”
이런 방법을 사용할 만큼 이번 사건이 가진 무게가 무겁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잠시 찾아온 고요. 그 틈바구니 속에 사람들의 시선이 교차한다.
그리고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뉴욕 직원들의 대표격, 제프리가 입을 열었다.
“……정말 그 정도로 중요한 일이란 말입니까?”
아무래도 이렇게까지 할 줄은 예상하지 못한 것 같았다.
하긴 지금껏 내가 이런 말을 꺼낸 것은 처음이니까.
“물론입니다. 지금부터 당신들의 24시간은 제 것입니다. 여러분의 모든 행동에는 감시가 붙을 것이고 여러분의 일거수일투족은 저희가 관리하게 될 겁니다.”
“하지만 그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입니다. 죄송하지만 보스. 이 나라에서 자유는 그 무엇보다 더 중요합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자유를 돈으로 사려고 합니다.”
“네?”
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번 일이 끝나면 다들 대부호가 되어 있을 겁니다. 당신들이 이 나라에서 하지 못하는 일은 없게 되겠죠. 왜냐하면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나는 사실에 의거한 미래를 말했다.
그러자 사람들의 표정이 묘하게 변화한다.
“앞으로 벌어질 일, 제가, 아니 우리가 할 일은 역사에 남을 겁니다. 여러분이 참여하시던 참여하시지 않던 말이죠.”
“그렇다면…….”
“후회하시지 말란 말입니다. 저는 역사를 만들 거거든요.”
나는 자신있게 말했다.
뭐 나의 말이 허풍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도 상관 없었다.
그들이 믿던 믿지 않던 내가, 아니 곧 우리가 하려는 일은 미국이라는 거대한 배, 세계 초강대국의 경제에 구멍을 넓히는 일이니까 말이다.
“자 그러니까 결정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도전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이대로 포기하시겠습니까?”
그리고 그렇게 사람들이 시선이 나를 향하고, 다음 순간 그들의 입이 열렸다.
*
찰칵-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든다.
그러자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이어진의 모습이 보였다.
“몇 명이나 남았어요?”
내가 묻자 그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모두 다.”
“정말요?”
“그렇지. 그렇게 도전적으로 말했는데 나간다고 할 사람이 있을까? 아무리 순해 보여도 저들은 상어야. 그리고 미국인이고. 프론티어쉽이 넘친단 말이지.”
그가 내게 서류를 건네며 말했다.
그것은 계약서, 싸인을 한 이들이 비밀을 발설할시 천문학적인 규모의 물질적 보상을 지불한다는 계약내용이 명시된 계약서였다.
뭐 계약의 내용만 보면 양아치 같은 계약이지만 그리 문제될 건 없었다.
이 계약서가 효력을 발휘할 일만 없다면 어마어마한 보상을 약속했으니까.
“뭐 그럴 거라 생각하고 던진 말이에요. 지금은 믿을 만한 사람들이 필요한 시점이니까.”
“그래서 믿을 만한 사람들이라 그런 계약서를 썼어?”
“일의 무게가 무게니까요. 그나저나 그럼 바로 일에 착수한 거예요?”
나는 계약서들을 수습하며 말했다.
그러자 이어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일단 지금까지 투자한 자금과 투자자들 그리고 투자한 회사의 주식들을 분류하고 있어. 아무리 해일이 오더라도 진주를 버릴 순 없는 법이니까.”
“그렇다고 너무 욕심을 부려선 안 될 거예요. 일단 제일 중요한 일은 먼저 해일을 피하는 거니까. 일단 적당히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거죠. 이번 파도는 분야와 규모를 가리지 않을 테니까요.”
“알고 있어. 그럼… 매도 타이밍은?”
그의 말, 호기심에 가득한 그의 표정을 바라보며 나는 입을 열었다.
“3일 뒤 금요일. AOL(America Online)과 타임라인의 합병이 있는 날이죠.”
일순 꿈틀거리는 그의 눈,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 최대의의 인터넷 회사와 최고의 미디어 회사 간 결합, 그날이라면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주식을 정리할 수 있었다.
“1,000억 달러짜리 공룡이 탄생하는 날이야. 다들 그날을 기점으로 나스닥의 황금기가 도래할 거라 생각하고 있어.”
“그러니까 보다 더 쉽게 털 수 있겠죠. 아마 모두들 생각할 거예요. 눈치 없는 호구 덕분에 황금티켓을 손에 쥐게 됐다고요.”
그가 피식 웃으며 말을 받았다.
“윌리윙카의 황금티켓 말이지?”
“네. 아마 그들에게는 초콜릿보다 더 달콤한 것이 바로 돈이니까요.”
나는 슬쩍 손을 들어 O자를 만들었다.
앞으로 3일 뒤 AOL과 타임라인은 합병한다.
당시 두 회사의 합병은 새로운 세기, 21세기를 선도하는 기업의 탄생이라 사람들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양사의 역량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미국의 ‘신경제’를 이끌 것이라 예상했던 것이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IT라는 마법, 새로운 산물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것으로 보였을 테니까.
하지만 그들의 예상은 처참하게 빗나가 버린다.
합병 협상의 근거였던 AOL의 수익전망은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기 시작하고 그로 인해 닷컴 버블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꿈이 깨지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그런 미래를 상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욕심이란 때론 눈앞에 보이는 진실을 외면하게 만들죠.”
그들이 그런 것을 바라지 않고 있기에.
“욕심이라… 무섭구만 그러고 보니 일본 버블이 터질 때도 딱 이랬던 것 같은데.”
나는 씁쓸한 표정을 짓는 이어진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잃어버린 20년까지는 오지 않을 거예요. 아마 한 사오 년쯤 가겠죠. 물론 그 이전에 이런저런 일들이 터져나가겠지만.”
“잃어버린 20년?”
아차.
그러고 보니 아직 이런 어휘가 사용되지 않는 때다.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짓는 이어진 그를 향해 슬쩍 고개를 저었다.
“일본 경제가 그만큼 불황일로를 겪고 있다는 말이에요.”
그러자 잠시 고개를 갸웃하던 그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일본의 장기불황은 이미 일반화가 되었으니까.
“그렇다면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겠네. 3일이라면 그리 넉넉한 시간은 아니니까.”
“그렇죠. 그러니까 사람들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준비 좀 해 주세요.”
“한국에서 사람들을 좀 불러왔으면 편했을 텐데.”
“그쪽에서도 할 일이 있잖아요. 연락은 해 놨죠?”
“레이첼에게 연락은 해 놨어. 일단 사람들 준비해 놓으라고. 그리고… 언제든 투입할 수 있게 준비하라고.”
역시 눈치가 있는 사람이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잘하셨어요. 이번 일 잘 끝나면 제가 아파트 하나 사 드릴게요.”
“겨우?”
“아파트 한 동인데요?”
순간, 이어진 그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스케일 참. 그런데 준영아.”
“네.”
“이걸로 끝이야?”
“끝이냐뇨?”
내가 묻자 그가 조금을 겸연쩍은 표정을 짓는다.
“아니 버블이 터지는 만큼 돈을 세이브 한다는 건 좋아. 기름이 가득한 집에 불똥이 튀기기 전에 튀는 것은 당연하니까. 그런데… 이대로 끝내기엔 좀….”
그의 표정에서 나는 익숙한 감정을 느꼈다.
욕심.
혹은 사냥본능. 그것이 묻어났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이대로 끝낼 수는 없죠.”
“……방법이 있어?”
“말씀드렸던가요? 저는 이번 기회를 통해 부자가 될 거예요.”
“준영아 너는 이미 부자야. 아니 네 손에 들려 있는 돈만 해도….”
나는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막았다.
“100조.”
“뭐?”
“저는 이번 게임에서 최소 100조 원 이상을 벌어들일 생각이에요. 그리고 그 돈으로….”
나는 손을 꽈악 그러쥐었다.
“…태평양을 먹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