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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 넌 마왕이고 동시에 버러지다 (1)

사람으로 태어나면 안 될 것이 사람의 형상을 입는다.

알에 있던 수포들이 따그락거리며 그의 피부를 덮었다. 마치 익사체에서 수백 개의 따개비가 자라나듯.

부들부들 떨리는 범윤오의 머리 위로 두 개의 뿔이 솟아났다.

까가각까가가가.

기괴하게 꺾인 뿔 사이에선 이상한 진동이 울려 퍼졌다.

번태는 그 이상한 진동을 듣자마자 양쪽 귀를 틀어막았지만 나머지 눈코입에서 동시에 피가 터져 나왔다.

“길드장님!”

“야, 괜찮냐?!”

번태는 머리를 흔들어 오지 말라는 뜻만 강력하게 전달했다.

그가 인벤토리에서 포션을 잔뜩 꺼내 머리에 통째로 들이부었다.

그동안에도 범윤오의 몸으로 옮겨 타는 성좌의 시체들이 점차 부풀었다. 그것들도 하나씩 부화하려는 것 같았다.

“끄릅!”

번태가 목구멍에 걸린 피를 삼키며 지팡이를 내뻗었다. 순식간에 빠직거리는 섬광이 범윤오를 향해 날아갔다.

콰르르릉!

평소에 쓰던 것보다 훨씬 강한 출력이었지만 번태의 번개는 미끄러지듯이 허리에서 갈라져 양쪽으로 흩어졌다.

“댁이 번개를 쓰는 걸 아는 데 설마 대비하지도 않았을까봐?”

범윤오가 키득거렸다.

대강 약발이 듣자마자 번태가 쿨럭거리며 가리켰다.

“허리를 가르게. 아직 알에서 다 빠져나오지 않았을 때 분리해야겠네.”

슈웃!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번태의 위로 승지와 유월이 날아올랐다.

마치 미리 합이라도 맞춘 것처럼 두 사람은 정확히 범윤오의 허리를 가격했다.

까앙!

[ 1콤보! ]

그러나 이번에도 둘의 무기는 그대로 튕겨나갔다.

물질 변환을 했던 유월은 이번에는 통하지 않는 걸 보며 물러났지만, 콤보를 채워야 하는 승지는 그대로 연달아 추가 공격을 하며 쌓인 콤보를 메모라이즈 했다.

젠장, 때리는 곳마다 뭔 타격감이 이렇게 없냐?

“소용없어!”

성가시게 공격하는 승지를 향해 범윤오가 팔을 휘둘렀다. 알 속에 파묻혀있던 팔꿈치가 솟으며 역겨운 액체를 뿌렸다.

“윽, 드러.”

“누가 이용당했다고?”

범윤오가 괴성을 내지르며 알껍데기를 손으로 퍽 박찼다. 빨리 알에서 튀어나오려는 악어 새끼 같았다.

“이 힘을 봐! 하하하! 처음부터 내가 원한 건 바로 이 힘이었다고!”

그극.

범윤오가 휘청거리며 머리를 흔들자 갑자기 삐---하는 이명이 세차게 때렸다.

번태가 당했던 것과 똑같은 공격에 승지도 피를 분출했다.

“꺄아아악 승지야!”

“이거였냐?”

순식간에 입안에 그득 차는 피를 승지가 무작정 삼켰다.

어차피 내 피 아니냐고!

“히엑. 그, 그걸 마셔.”

“컥, 쿠헥. 아무래도 저 자식, 아직 제대로 싸우는 건 못하는 모양인데?”

승지는 피 때문에 차단된 오감각으로도 퉷 하고 말을 내뱉었다.

무작정 방어에만 집중한 저 외피나, 가까이 온 사람을 상대로만 발동하는 공격이라니.

너무 시시할 정도다.

“어디 한 번 현대식으로 가보자고.”

승지는 마왕의 무기에 개념을 전송했다. 조금 진동하던 무기가 곧 변화했다.

“?!”

범윤오의 쭉 찢어진 동공이 위아래로 흔들렸다.

“어디 움직이지도 못하는 놈이 피하나 볼까!”

승지가 괴성을 내지르며 방아쇠를 당겼다.

헤비 머신 건!

오락실 옆자리에서 봤던 그림이 현실로 튀어나오듯 미친 듯이 탄피가 튀며 총알이 발사되었다.

투두두두두!

“크아악!”

순식간에 범윤오의 상체가 알 뒤로 넘어갔다.

[ 8콤보! ]

[ 4콤보! ]

[ 13콤보! ]

숨 한 번 쉴 때마다 콤보가 미친 듯이 올라갔다 끊겼다.

최대한 목표를 맞추기 쉬운 알 쪽에 뒀지만, 반동이 어마어마한지라 계속해서 조준점이 흔들렸던 것이다.

무기 특성에 따라 달라지는 콤보의 특성상 한 번 콤보가 끊길 때마다 핏, 하고 승지의 몸에 베인 상처가 생겨났다.

해치웠나?

성질이 풀릴 때까지 실컷 쏴대던 승지가 뜨겁게 달아오른 총신을 내렸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속에서도 무언가 꿈틀거리는 게 보였다.

“쳇, 약하잖아.”

“지구식 무기는 오히려 위력이 더 떨어져! 무식해보여도 이세계 무기를 써야 확실해!”

“이것도 이세계 물건인데.”

“마왕의 무기가 방금 승지가 썼던 물건을 훨씬 많이 삼키지 않는 이상 진짜 성능은 안 나와!”

대신 더 흉측은 해졌다.

범윤오의 몸을 덮고 있던 수포들이 총알에 맞아 뻥 뚫린 구멍으로 남았다. 실제 피부는 아니더라도 몸에 숭숭 뚫린 무수한 구멍은 환 공포증을 유발할 정도였다.

“우웨엑… 저 마왕 싫어….”

“자네 참 화끈하구만.”

상태를 회복한 번태가 어깨를 짚었다.

“살면서 그걸 총으로 바꾼 사람은 내 처음 보네!”

“구경 값 내놓던가.”

승지가 씨부리며 무기의 형태를 다시 바꿨다.

아무래도 칼이 좋겠군.

가장 흔한 무기를 가장 많이 삼켰을 테니까.

바로 그 흔하고도, 거대한 무기를 들고 유월이 다시 달려들었다.

승지가 쏴대는 중에는 뛰어들 수 없어서 기다렸을 뿐, 사실상 여기서 가장 범윤오의 허리를 끊어놓고 싶은 게 그였다.

“갈라져!”

유월이 소리를 지르며 범윤오의 배를 연거푸 내리찍었다.

퍽! 빠각! 빠득!

바위를 맨손으로 깎아내는 사람처럼 유월이 미친 듯이 칼을 내리찍었다. 몸에 배인 훈련 덕분에 그 동작마저도 지독하게 각이 살아있었다.

그러나 그도 앞서 두 사람이 받았던 공격을 받고는 피를 뿜었다.

승지의 눈이 돌아갔다.

“젠장! 저거 방지할 마법 같은 거 없어?”

“우리 셋 다 지능 캐는 아니잖나.”

“아오, 던전에서 뭐라도 하나 안 주워놨냐고.”

승지가 냅다 칼로 범윤오의 딱딱한 미간을 갈겼다.

이래서야 완벽한 콤보나 필살기를 쓰려고 해도 접근이 불가능했다.

범윤오의 공격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한 번에 한 명씩만 걸리는 약한 공격이었지만.

공격에 당하면 피가 뿜어져 나오며 시야와 청각을 동시에 차단당하는 게 성가셨다.

그때 그들 중에서 유일하게 전투용이 아닌 광대가 외쳤다.

“승지야! 아까 잡아온 다나우를 강제로 붙이자!”

“뭐?”

“내가 유량을 만났을 때 저절로 흡수될 뻔 한 것처럼 다나우도 강제로 범윤오에게 흡수된다면 각성자 상태로 돌려놓을 지도 몰라!”

“!”

번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야 잇, 우리끼리만 아는 얘기를!

승지가 약간 당황했지만 다행히 번태는 깊이 캐묻지 않았다. 상황이 시급하기도 하고.

다행히 유월도 범윤오의 공격 때문에 귀에 피가 차서 유량의 이름을 듣지 못했다.

“좋은 생각일세! 그 다나우라는 성좌가 어디 있는지 아나?”

“여기 오기 전에 잡아놨지!”

승지가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바로 꺼낼게!”

광대도 한껏 밝은 표정이 되어 검은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런데 의기양양하던 광대의 표정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어?”

“어 하지 마. 어, 하고 괜히 놀란 소리 내지마! 불길한 소리 내기만 해…!”

“어…… 없어.”

광대가 기어이 불길한 예감 한 가운데를 꿰뚫어버렸다.

승지의 미간이 박치기를 하듯 조여들었다.

“진심이냐?”

“이, 이상하다? 내가 분명히 인벤토리에 넣어뒀는데?”

“그게 무슨 주머니에서 흘리는 것도 아니고 말이 돼?! 너 지금 다나우 빼돌리려고 수 쓰냐?”

“아냐! 난 차라리 다나우가 성좌가 되는 편이 훨씬 낫지! 어어? 왜? 왜 없지!”

광대가 안절부절 못하며 인벤토리를 마구잡이로 열었다.

그러나 분명히 머리를 잡아 넣어뒀던 다나우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꼭 귀신에 홀린 것 같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네가 그럼 그렇지! 에라이!”

“됐네! 어쨌든 지금 당장 없는 것에 미련 두지 않아!”

번태는 더 오랜 기대 없이 다시 유월과 합류해 범윤오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왜! 왜! 이 끈질긴 것들이!”

버둥거리던 범윤오는 무어라 또 외치기 시작했지만 번태는 아예 오감각이 차단되어도 공격할 수 있도록 허리에 다리를 감고 목을 비틀어댔다.

“우오오오!”

번태가 괴성을 지르며 피를 왈칵 토해냈다. 뿔 달린 범윤오의 머리가 이리저리 비틀렸다.

“캐액! 캐애애액!”

“사람, 쿨럭! 으로 돌아와야지! 쿠어억, 자네도!”

번태가 피를 쏟으면서도 유쾌하게 소리쳤다.

그러는 사이 이미 범윤오의 몸은 알에서 반 이상 빠져나와 있었다.

승지와 유월도 번태를 따라해 안 보이고 안 들려도 공격할 수 있는 자세를 취했다.

칼로 뚫리지 않으니 차라리 조여 버리기를 택한 것이다.

유월이 범윤오의 어깨를 꺾으며 드러눕고 승지가 허리를 짓이겼다.

그의 눈에서도 피가 흘렀지만 손끝에 느껴지는 감각은 선명했다.

산채로 뜯어주마!

세 명의 랭커가 마왕으로 탈바꿈하려는 범윤오를 막 분해하려고 했을 때였다.

“멈춰라아아!”

클랩이 날려 보낸 저주가 귀가 아닌 피부로 철썩 달라붙었다.

“윽?!”

반사적으로 머리를 숙인 승지의 귀에서 피가 콸콸 흘렀다. 그 잠깐의 틈으로 새된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마왕님! 제가 뭐랬어요! 분명히 새 마왕도 그 사람 옆에 있을 거랬죠!”

“닥쳐, 큐라! 저거 잡아!”

승지가 미친 듯이 눈을 깜박거렸다. 평생 흘린 눈물보다 많은 양의 피를 흘려보낸 승지가 간신히 시야를 회복했다.

무시무시하게 입을 벌린 클랩이 그들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굴러!”

승지가 고함을 지르며 범윤오의 몸을 확 잡아당겼다.

프레임 컨트롤 되냐?!

되었다.

승지의 프레임을 따라 범윤오의 몸을 뜯고 있던 두 사람이 영문도 모르고 따라 함께 굴렀다.

젠장! 그래도 느려! 아직 끝에 남은 알 때문에 굴러가는 속도가 썩 마땅치 않았다.

그렇다고 알을 떼어냈다간 즉시 마왕 완성이다.

승지가 옆구리를 틀어쥐고 옆으로 계속 인간들을 굴렸다.

“튀라고! 아님 저것들 죽이던가! 젠장 귀에 찬 피는 대체 언제 빠져!”

“뭐라고?”

“네?”

구를 때 반쯤만 피가 빠진 번태와 유월이 웅얼거리는 소리 따윈 가볍게 눌러버리며 클랩이 고함을 질렀다.

“통째로 삼켜주겠어!”

범윤오도 다급하게 공격을 가한 것 같았다.

그 커다란 입에서 폭포수처럼 피가 터져 나왔으니까.

그러나 아직 마왕으로 다 태어나지도 못한 공격 따윈 우스운지, 클랩은 피가 흐르든 말든 뛰어오는 기세가 멈추지 않았다.

“제기랄! 왜 저거까지!”

“내가 다른 마왕들도 왔다고 했지! 이 빌어먹을 자식아!”

성질이 뻗친 승지가 범윤오의 대가리를 갈기며 일어났다.

“악! 크아아아악!”

성질이 뻗치는지 마구 발광하던 범윤오가 그나마 한 줌의 이성을 발휘했다.

지금 승지를 공격하면 당장 클랩 마왕을 막을 사람이 없으니 바로 잡아먹히게 생긴 것이다.

원수에게 생살을 씹으라고 내주는 심정으로 범윤오가 승지를 향한 공격을 멈췄다.

또옥.

핏방울이 멈추자 승지가 조소했다.

뒈지기는 싫은가보지? 망할 새끼. 어차피 내 손으로 죽을 건데 잠깐 유언이라도 쓰고 있어라.

유월과 번태가 끈질기게 범윤오의 몸을 절단하려고 애쓰는 사이, 승지가 혼자 프레임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마왕 앞을 막아섰다.

클랩이 피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저리 비켜!”

“한 번 싸워봐서 알잖아?”

승지가 거리낌 없이 무기를 꺼내 들었다.

아까 맞은 저주가 벌써 목을 타고 내려가고 있었으니 빨리 끝내야 한다.

“시간 없는데 방해하지 마, 이 망할 마왕 새끼야!”

점점 손가락이 곱아드는 채로 승지가 무기를 평행하게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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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라면 99콤보까지 - 광대라면 99콤보까지-19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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