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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의문의 호구 (3)

“내가 본 사람 중에서 당신이 제일 미쳤어.”

“어우, 감사해요. 그치만 왜 말도 없이 나가셨어요. 걱정했잖아요.”

“걱정했다는 사람이 이게 할 짓이야!”

“에이, 이건 다 제가 생각이 있어서….”

“그 손 놓으시죠.”

드디어 최자림이 설명이라는 걸 할 찰나에 방해가 들어왔다.

바로 류의건이다.

승지와 자림이 한 편의 액션 추격을 찍는 동안 뒤에서 같이 쫓아온 모양이다.

돌겠다.

어째 저 놈만 만나면 쪽팔린 꼴은 다 보여 주냐.

스킬을 퍼부어 기진맥진한 승지는 꼼짝도 못 하고 최자림에게 붙들려있었다.

그걸 몹시 심각하게 받아들였는지 류의건의 말투도 강경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입니까?”

“어어어?”

고개를 갸웃한 최자림의 얼굴이 환해졌다.

“맙소사! 류의건 각성자님 아니세요?!! 현 랭킹 2위! 각성자들의 이상향!”

“윽!”

바로 승지를 까먹은 최자림이 손을 놓는 바람에 승지의 얼굴이 바닥으로 쿵 떨어졌다.

죽여 버린다, 진짜.

쫓아와놓고 최자림의 격한 반응에 놀란 류의건이 한 박자 늦게 반응했다.

“그렇…습니다만.”

“꺄오오! 완전 팬이에요! 세상에 얼굴 한 번 보기도 어려운 분을 여기서 만나게 되다니! 악수 한 번 해요!”

최자림이 덥석 손부터 붙잡고 휭휭 흔드는 바람에 류의건은 제때 물어볼 타이밍을 놓쳤다.

하… 집에 가고 싶다. 아무리 개판인 집이라도 가고 싶다.

승지가 썩은 얼굴이 된 걸 본 류의건이 뒤늦게 악수를 끝냈다.

“그것보다 저 분이 무슨 짓을 저질렀기에 이렇게 체포… 납치 하려는 겁니까?”

“음? 저분은 우리 미스핏 길드원이라서요.”

“누가 길드원이야!”

“아, 예비 길드원이셨죠. 맞다 맞아~.”

“길드원이든 아니든 지금 강제로 끌고 가려는 상황처럼 보이는데.”

류의건의 표정이 굳었다.

“제대로 설명을 해주시겠습니까?”

“으음, 어쩐다. 이 얘기는 길드장님 허락도 없이 함부로 하면 안 되는데.”

최자림이 열심히 고민하는 시늉을 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같이 가시죠! 어차피 이번 일은 류의건 각성자님도 꼭 필요해질 테니까요!”

“제가 말입니까?”

의건과 자림이 쿵짝 쿵짝 잘도 대화하는 꼴을 보고 있던 승지가 성질머리를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아니 잡혀가는 나도 상황을 모르는데 누구한테 뭘 말해?”

“채승지 각성자님. 정말 이유를 몰라요?”

최자림이 갑자기 정색했다.

“저희한테 전부 말을 안 한 건 섭섭하지만 지금 얼마나 큰 일이 났는지는 알고 계시는 거죠?”

“뭐?”

승지가 찡그렸다.

[헉, 승지야! 말하는 게 꼭 마왕 소환의 저주에 대해서 알아낸 것 같아! 그래서 쫓아온 거지!]

젠장, 그럴 듯 하다.

성좌의 말대로라면 그나마 저렇게 정신 줄 뒤집고 쫓아온 이유가 설명이 됐다.

하지만 내 입으로 분 것도 아닌데 무슨 수로 그걸 알아냈지? 내 뒷조사라도 했나?

심지어 저주의 내용은 뒷조사로 알아낼 수 있는 내용도 아니었다.

각성자끼리도 서로 말해주지 않으면 각자의 상태 창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승지는 여전히 화가 난 척 하며 되받아쳤다.

“그나저나 나 있는 곳은 어떻게 찾았어? 니들 나 감시해!?”

“쉿, 영업 비밀이에요.”

최자림이 그때까지 붙잡고 있던 승지를 통째로 들어 올렸다.

“우와악! 안 내려놔?”

“버둥거리지 마시죠. 안 떨어트릴 테니까 걱정 마시고요! 거기 류의건 각성자님도 오시죠!”

쌀 포대처럼 승지를 어깨에 걸친 최자림이 손짓했다.

“저 말씀입니까?”

“그래요! 승지 씨든 의건 씨한테든 여기서는 제대로 말씀드릴 수가 없어요~. 게다가 이대로 가면 걱정되시잖아요?”

최자림이 찡긋 한 눈을 깜박였다.

이 화상을 따라가, 말아?

여기서 더 캐물으면 오히려 더 수상하게만 보일 텐데. 감추고 있는 게 또 있냐면서.

[일단 따라가 보자! 정말로 저주에 대해 알았다면 분명히 도와줄 거야!]

…에라이. 나도 모르겠다.

승지는 반쯤 포기한 상태로 최자림에게 매달려갔다. 어차피 돌아가 봤자 미스핏 길드다. 어떻게든 되겠지.

체력도 없고 죽겠네.

하루 동안 기절해 있다가 키위 스무디만 먹고 뛴 기분이 삼삼했다.

[그런데 승지야, 류의건이 정말 우릴 도와줄까?]

글쎄다. 일단 따라오긴 하는데.

승지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최자림의 기가 막힌 위치 선정 덕분에 고개를 내리면 엉덩이가 보이고, 고개를 들면 뒤따라오는 류의건과 시선이 마주친다.

엉덩이냐, 류의건이냐.

…둘 다 싫어, 시발.

이 상태로 뭘 판단하냐 싶어서 승지는 일단 울렁거리는 속이나 가라앉혔다.

류의건은 처음의 당혹스러움이 차차 가시고 어떻게 된 일인지 자신도 반드시 알아야겠는지 침착해져 있었다.

하긴 도로에서 확성기를 틀어댄 다음 뛰어내려서 사람 하나를 업고 가는데 나 같아도 궁금해서 쫓아가 보겠다.

곧 최자림은 아까 뛰어내렸던 차까지 안전하게 승지를 연행해갔다.

차의 상태는 전혀 안전하지 않았지만.

“명구야!”

최자림이 탕탕 트렁크를 쳤다.

도로 위에 엄청난 타이어 자국을 남긴 차는 앞 범퍼가 빠그라진 채로 가로수에 멈춰있었다.

…명구 죽은 거 아니냐.

생판 남인 승지가 다 걱정이 돼서 식은땀이 흘렀다.

다행히 명구는 위기의 순간 극적인 순발력이라도 발휘했는지 멀쩡한 조수석에 머리를 박고 쓰러져있었다.

분위기를 전혀 못 읽은 최자림은 차마 건드리기도 무서운 명구의 등짝을 찰싹 때렸다.

“명구야! 짜식아, 그렇게 불편한 자세로 자면 어떡하냐!”

“야, 야! 사고 난 사람을 때리지 마!”

“에이 승지 씨도 참. 우리 명구 무사해요.”

최자림이 실실 웃으며 한 손으로 명구의 상체를 뒤로 젖혔다.

이마에 피를 찔끔 흘린 명구가 영혼 없는 눈으로 초점을 맞췄다.

“……최자림 각성자님?”

“오냐, 명구야. 일어났어? 승지 씨 잡아왔다.”

최자림이 전리품을 자랑하듯이 어깨에 놓인 승지를 흔들었다.

태연자약한 태도에 기가 막힌 건 승지뿐만이 아니라 명구도 마찬가지였다.

“……다시는 최자림 각성자님이랑 같은 차 안 탈거예요.”

“무슨 소리야, 너 없으면 나는 어떻게 살라고~.”

“제 말대로 조수석에 브레이크 안 달았으면 저 죽었어요!!”

명구가 온갖 설움을 담아 소리쳤다.

그러나 최자림에겐 효과가 없었다.

“음, 역시 무사하구나. 좋아! 류의건 각성자님? 뒷좌석에 승지 씨 좀 실어주세요.”

“아, 네.”

“제발 제 말 좀 들어주세요!”

서러워진 명구가 열변을 토했지만 이미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었다.

류의건은 또 모범생처럼 시킨다고 또 말을 잘 들었다.

최자림의 어깨에서 내려오기 무섭게 류의건이 승지를 인계받아 뒷좌석에 밀어 넣었던 것이다.

“허. 참. 어이가 없어서.”

곧장 나가보려던 승지는 바로 뒤따라 타는 류의건에 출입구에 딱 막혀버렸다.

반대쪽 문은 왜 안 열리는 거야? 진짜 경찰차냐고.

어이가 없어진 승지가 따졌다.

“류의건 씨는 대체 왜 따라옵니까?”

“위험에 처한 사람을 못 본 체 할 수는 없습니다.”

“당신이 지금 위험한 쪽으로 끌고 가고 있다는 생각은 안 합니까?”

“그때는 제가 지킵니다.”

류의건이 쓸데없이 비장하게 말했다.

“지금 당신을 놓아줘봤자 저 사람이 쫓아오면 다시 붙잡혀 갈 테니, 같이 가서 해결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환장하겠네.”

랭킹 2위면 길드 하나쯤은 아무것도 아닌 모양이다.

겁대가리가 없는 건지 진짜 실력이 오지는 건지 알 수가 없다.

한술 더 떠서 운전석에 올라탄 최자림까지 나불거렸다.

“촤하핫! 걱정 마세요! 여기서 제일 위험한 사람은 승지 씨니까! 의건 씨의 성좌도 그건 인정할 걸요?”

“예?”

“뭐요?”

둘 다 놀라서 앞좌석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최자림은 거기까지만 말해주고는 다시 폭주 운전자 모드로 돌아갔다.

“자아 안전벨트 잘 매시고, 승지 씨 놓치면 류의건 씨한테 손해배상 걸지도 모르니까 꽉 잡아주세요~.”

“으으 하느님, 부처님, 성좌신이시여 제발. 최자림 각성자님이 안전운전하게 해주세요!”

명구가 기도를 하는 사이 거칠게 다시 액셀이 밟혔다.

끼기기긱!

타이어 갈리는 소리와 함께 차가 뒤로 훅 빠졌다.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운전에서 살아남으려고 모두가 차량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우와 또 탄다~! 꽉 잡아 승지야~!]

신나서 떠드는 성좌와는 별개로 강한 불길함이 느껴졌다.

제길, 이거 단순히 난폭운전 때문에 찝찝한 느낌이 아닌데.

승지는 어쩐지 자기 발로 호랑이 굴로 걸어간다는 예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심지어 옆에 사자 한 마리까지 태워서.

* * *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드디어 왔군요!”

미스핏 길드의 길드장들이 승지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위풍당당하게 걸어 들어가는 최자림의 등을 보며 승지는 도망갈까 다시 고민했다.

모두 기다리고 있단 얘기에 어째서 미스핏 길드만 떠올렸을까.

승지 일행이 들어간 방에는 온갖 사람들이 다 모여 있었다.

“저 사람이 바로….”

주변과 이질적일만큼 미인인 단발머리의 여자가 입술을 매만졌다.

“채승지 씨군요.”

청월량 길드의 유청이 말을 받았다.

어라, 다시는 볼 일 없을 줄 알았던 저 인간까지 날 아는 척한다고?

승지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들에게도 신경 쓰기 바쁜데 다른 인간까지 한꺼번에 떠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니, 같이 온 사람은 류의건 씹니까?”

“필요할 때는 응답도 않더니…!”

“채천 길드장님. 하얀 길드장님. 그리고 커넥트 길드장님까지….”

류의건도 다소 놀랐는지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어째서 다른 길드장님들이 미스핏 길드에 모여 있는 겁니까?”

“자네 아무것도 못 들었나?”

혹시나 싶어 확인했지만 류의건은 완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자림아. 너 아무것도 말 안하고 모셔온 거니?”

“그럼요! 길드장님 허락 없이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니까요!”

최자림의 말에 어이가 없어졌는지 이화예 길드장이 이마를 짚었다.

“…어쨌든 오셨으니 소개를 안 할 수 없겠군요. 이쪽은 우리 미스핏 길드와 연합인 길드에서 나와 주셨습니다.”

“반가워요, 류의건 씨. 실물로 뵙는 건 처음이네요.”

처음부터 흥미로운 눈으로 보고 있던 여자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하얀 길드장 이연주예요.”

“아… 반갑습니다.”

류의건이 약간 어색하게 악수를 나누자 이때다 싶어 다른 사람들까지 다가와 인사했다.

“저번 메인 미션 때는 신세를 졌네.”

중후한 나이의 남자가 힘 있게 손을 맞잡았다. 채천 길드의 수장인 김정진이라고 한다.

“자네 정말 길드 만들 생각 없나? 내가 전폭적으로 지원해준다니까.”

“무슨 소리세요, 류의건 씨 재산이면 커넥트 길드 비자금도 필요 없을 텐데.”

“아, 노하우 말이야!”

부담스럽게 들이대는 저쪽은 커넥트 길드의 수장, 박편호.

당연히 승지는 들어본 적 없는 이름들이었지만 반응을 보니 각성자들 사이에선 꽤나 알아주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들 중에서도 단연 압권은 류의건이었다.

길드장 말고도 모여 있던 미스핏 길드원들이 모조리 뿅가버린 표정으로 류의건을 흘끔거렸던 것이다.

과연 랭킹 2위. 유명세가 상당했다.

그들이 인사를 나누는 바람에 괜히 중간에 서있던 승지만 어색해졌다.

사람을 불러놓고 뭐지?

차라리 꺼져달라고 하면 가겠는데 왜 내가 있는 걸 납득하고 있는 분위기냐고.

아니, 은근하게 감춰지긴 했지만 오히려 류의건보다 더 시선을 받고 있었다.

“그럼 인사도 나눴으니 더 말할 것도 없겠군.”

스르릉.

김정진의 허리에 있던 검 집에서 칼이 뽑혀 나왔다.

“그래, 당장.”

박편호가 손가락을 굽히자 뭔지 모를 빛이 뿜어져 나왔다.

놀란 류의건이 검을 마주 잡은 순간 그들이 땅을 박찼다.

“이 자리에서 죽여야 해!”

순식간에 그들이 치고 들어왔다. 류의건이 아니라 채승지를 향해.

…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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