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잠입…은 무슨! (2)
“이자들인가?”
“예.”
지하실에서 올려다본 문은 역광이라 들어온 자가 누구인지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누가 보아도 알러트와 한 패인 자였기에 승지가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실망하던 오조희는 곧 흠칫 놀랐다.
그자가 계단을 다 내려왔는데도 얼굴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가면이 아니라 불투명한 안개가 그의 존재를 지워버리듯이 감싸고 있었다. 스킬임이 분명했다.
게다가 그를 따라온 자들이 굽신거리는 걸 보니 상당히 높은 직위에 있는 게 분명했다.
“찾으시던 각성자가 이 중에 있으십니까?”
“흐음.”
그는 목소리마저 안개에 싸인 듯 불투명했다. 오조희는 최대한 그의 특징을 기억하려고 애썼다.
어차피 잡혀온 이상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이 자의 흔적을 알리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은 조직 간부가 나타나자마자 몹시 당황해서 고개를 숙이기 바빴다. 어쨌든 인질이 되었으니 그들을 보지 않는 편이 살아남기 용이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뚜벅거리며 벌벌 떠는 선생들을 지나온 알러트 간부가 망설임도 없이 오조희 앞에 멈춰 섰다.
“내가 데려오라고 했던 게 얘였나?”
“예. 그렇습니다.”
“읏!”
알러트 간부는 긴장한 오조희의 턱을 들어올렸다. 이리저리 뺨을 잡고 돌려보던 그가 불만스럽게 말끝을 올렸다.
“왜 이렇게 상했어?”
“운반하면서 차질이 있었나 봅니다. 담당자를 데려올까요?”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라 이미 다른 놈한테 스킬을 써주고 있잖아.”
“!”
오조희의 눈이 커졌다.
“당신이 그걸 어떻게….”
“이름 한 번 거지 같다. 사랑의 매가 뭐냐?”
큭큭 웃은 간부가 탁 손을 놓자 오조희가 그대로 풀썩 떨어졌다. 오조희가 이를 악물었다.
“대체, 당신들은 우릴 데려다 뭘 할 생각인 거죠!”
“나머지 스킬은 쓸모없어. 내가 찾던 각성자도 아니고.”
간부는 오조희의 말이 아예 들리지 않는 것처럼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모욕당한 기분에 오조희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내 말 안 들려? 우리도… 사람이란 말이야!”
“알아.”
안개 너머로 간부가 짜증스럽게 쳐다보는 느낌이 났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이…!”
“시끄럽고. 얘한테 쓸모 있는 스킬은 페널티 전이밖에 없으니까 지금 시전 대상은 취소시켜서 써먹어.”
“죽어도 스킬 취소 안 해!”
오조희가 바락 소리쳤다. 다른 선생들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말렸지만 오조희는 분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사람을 도구 취급하는 인간들에게 붙잡혀서 살기 위해 각성자가 된 게 아니었다.
간부는 한숨을 쉬기도 아깝다는 듯 내뱉었다.
“그럼 네가 스킬 쓰고 있는 대상을 죽이지 뭐. 어쨌든 네 스킬은 써먹게 될 걸.”
“이 나쁜…!”
철퍽! 누군가 스킬을 썼는지 오조희의 입이 꽉 다물어졌다.
“나머지 애들은 별 거 없네. 대충 던전에 던져 놔라.”
“보스!”
“아, 격 떨어지게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뭔데?”
“침입자가 나타났습니다!”
누군가와 긴박하게 연락을 하고 있었는지 목소리가 제법 초조했다. 지하실에 내려온 간부가 알러트의 보스라는 사실에 놀라워하던 오조희가 흠칫했다.
이상하게도 침입자라는 얘기에 승지의 얼굴이 먼저 떠올랐던 것이다.
보스가 투덜거렸다.
“또 어떤 놈이 집적거려? 지난번처럼 잘못 안 거 아냐?”
“아닙니다! 확실히 저희 알러트를 노리고 쳐들어온 놈입니다!”
“띄워봐.”
가슴에 거울을 품고 있던 각성자가 재빨리 허공으로 던졌다. 그러자 스킬의 일부인지 거울이 확장되더니, 이 자리에 없는 사람의 얼굴을 비췄다.
“크악!”
빠각!
승지 씨?
거울 속에서 몰려드는 악당들을 때려잡고 있는 건 누가 보아도 승지였다.
오조희는 경악하는 선생들을 재빨리 돌아보았다. 혹시라도 그들이 승지를 알아보는 기색을 보여서는 안 됐던 것이다.
눈으로 한 입단속에 재빨리 다른 코스모스 센터 사람들이 침묵했지만 눈동자는 거세게 흔들리고 있었다.
정말로 승지가 그들을 구하러 올 줄이야!
오조희는 희망으로 일렁이는 눈빛을 감추려고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승지는 혼자고 이곳엔 알러트의 보스와 부하들이 잔뜩 있는데도 어쩐지 승지가 무사히 이곳까지 도달할 것만 같았다.
찌잉.
순간 확 올라간 페널티에 눈앞이 또다시 흐려졌지만 오조희는 기뻤다.
자신의 페널티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승지가 비각성자 알러트 일당을 무사히 쓰러트리고 있다는 뜻이니까.
다른 부하들이 쑥덕거렸다.
“누구야?”
“고작 한 놈 가지고 뭘 하는 거야?”
“무능력한 자식들.”
“보스. 저희 쪽에서도 제대로 된 각성자를 보낼까요?”
“어, 보내 봐.”
보스가 즉답했다. 뜻밖에도 그는 관심을 나타내며 몸을 기울였다.
“저놈 스킬이 내가 찾던 거 같은데? 쓸 만해 보여.”
“그게 정말입니까?”
“꼭 잡아오겠습니다!”
보스의 반응에 눈이 돌아간 부하들이 앞 다투어 말했다.
“쯧. 이럴 줄 알았으면 해외에 각성자 애들 좀 적당히 보낼 걸. 꼭 필요할 땐 없다니까.”
“대신 제가 가겠습니다!”
“네가 가면 저거 쓰기도 전에 폐기해야 하잖아. 적당히 수준 맞춰서 하나 보내 놔.”
“예!”
빠르게 대답한 부하가 곧 어디론가 연락하는지 작게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오조희는 승지를 향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지만 저렇게 잘 싸우는 승지를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알러트의 반응이 조금 무서워졌다.
승지 씨, 제발 무사하셔야 해요.
그가 간절히 기도했다.
* * *
[ 24콤보! ]
팔꿈치로 적을 쭉 밀쳐버린 승지가 훅하고 손을 털었다.
와, 겁나 지친다.
어째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냐.
사람을 상대한다기보단 바퀴벌레를 잡는 기분이다.
분명히 개개인은 강하지 않은데 떼로 달려드는 게 귀찮았다.
“씁, 근데 도대체 아까 말했던 징이 박힌 까만 대문은 어디 있는 거야? 건물을 다 돌아봐도 안 보이네.”
[그냥 승지가 길을 잘못 찾고 있는 거 같은데?]
“아냐, 말라깽이가 이쪽이랬….”
승지가 뒤를 돌아보았다. 어쩐지 허전하더라니 납치한 인간들 위치를 불었던 말라깽이가 사라져있었다.
언제 튀었어, 이 새끼?
너무 싸움에 심취한 나머지 그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젠장, 싸울 동안엔 무대 매너 걸어놨었는데. 시간제한이 있는 스킬이었냐.
이러니 갑자기 알러트 놈들이 창궐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무대 매너에서 풀려난 녀석들이 본진에 연락을 했을 테니까.
“좀 귀찮게 됐네.”
[그렇다고 포기할 거야?]
“누구 마음대로.”
포기를 해도 내가 한다.
어쨌든 말라깽이가 말했던 감금 장소는 확실히 외우고 있었으니 찾아내기만 하면 됐다.
싸움을 지속하는 대신 도주를 선택한 승지가 프레임 컨트롤로 몇 번이나 자신을 가속했다.
[승지야 조심해!]
부웅.
눈앞에 확 나타난 상태 창을 따라 승지의 허리가 뒤로 꺾였다. 그의 상체가 있던 자리에 회전하는 까만 모닝스타가 호를 그리며 날아갔다.
“피, 피하다니…!”
“뭐냐 넌?”
훌쩍 뒤로 물러난 승지가 경계 자세를 취했다.
철그렁거리는 사슬을 쥐고 있던 각성자가 흉악한 무기를 늘어트렸다.
“너 빠른 애구나?”
승지는 대답 없이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거북목인 각성자는 잔뜩 주눅이 든 것처럼 보였다.
“널 잡으면 간부로 승진시켜 준댔어. 순순히 잡혀줄래?”
“너같으면 그러겠냐?”
승지는 이번에도 또 호구 하나가 왔다고 생각해 그냥 그를 건너뛰려고 했다.
그런데 도망가려는 승지의 앞에 갑자기 화르륵 불꽃이 솟아올랐다.
“!”
[아닛!?]
“얕보지 마!”
쿠아악!
불꽃의 벽을 통과한 쇳덩이가 승지를 향해 날아왔다. 순식간에 도망칠 장소가 없어진 승지가 급히 허공답보로 뛰어올랐다.
저놈이?
담벼락에 착지한 승지를 본 거북목이 히죽 웃었다.
“아까부터 싸우는 거 다 봤어. 너, 지능이랑 관련된 스킬은 하나도 없지?”
“뭔 소리야?”
“흐흐흣, 그저 물리력만 키운 각성자가 얼마나 약한지 이제부터 알게 될 거야.”
거북목이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기분 나쁜 자식이네, 저거.
미간을 찌푸린 승지는 잠깐 거북목과 대치했다. 경계는 순식간에 올라가는 그의 손목과 함께 끝났다. 모닝스타와 불꽃이 한꺼번에 승지를 노렸던 것이다.
콰아앙!
거북목의 공격에 제대로 얻어맞은 담벼락이 무너져 내렸다.
“또 피했어!”
피하긴 뭘 피해?
모닝스타는 피했지만, 불꽃은 끝까지 그의 뒤를 쫓아왔다. 뒤통수가 순식간에 화끈해졌다.
“안 놓친다아!!”
거북목이 째지는 소리를 내며 쫓아왔다.
젠장, 돌아가서 한 방 먹여주기엔 불꽃이 너무 거슬리잖아.
쳐맞는 건 익숙해도 화상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게다가 스킬로 만들어낸 불꽃이니 만큼 한 번 건드리면 순식간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불꽃의 속도는 아주 빠르지 않았지만 간간히 붕붕 날아오는 모닝스타 때문에 방향을 계속 바꿔야한다는 게 문제였다.
거북목도 나름대로 싸워본 경험이 많은지 스킬과 무기를 조화시켜서 공격하는 솜씨가 제법이었다.
잠깐 고민하던 승지가 거북목을 향해 무대 매너를 날렸다.
“웃!?”
그런데 바로 마비되어 쓰러질 줄 알았던 거북목은 똑바로 그 자리에 버티고 서있었다.
승지의 눈이 커졌다.
“뭐야, 너 왜 안 먹혀!”
“흐응, 뭐, 뭐야. 너, 너도 정신계 스킬이 있긴 있었구나?”
거북목은 달달달 다리를 떨면서도 입을 나불거렸다.
“안타깝지만 내가 너보다 지능이 높은 모양이야! 끄오옷, 버텨낸다!!”
저런 모지리보다 내가 멍청하다고?
순전히 스탯 빨로 지능이 더 높을 수 있다는 건 알지만 순간 욱해버렸다.
빡친 승지와 달리 성좌는 다급하게 띠링거렸다.
[승지야, 스탯 싸움에서도 밀리면 답이 없어! 도망치자!]
“지능 좀 밀린다고 튀라고?”
[힘으로 이길 수 없는 상대잖아!]
승지의 얼굴이 냉정해졌다. 아무리 그래도 저딴 자식에게 등을 보이고 도망치기엔 자존심이 상했다.
분명히 방법이 있을 텐데.
“히힛, 도망 안 가네? 자아~, 받아라!”
생각에 빠진 승지를 향해 거북목이 다시 공격을 해왔다.
바로 그때.
띠링!
[ 메인 미션 발생! ]
뭐라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악의 상황까지 승지를 향해 돌진했다.
[ 메인 미션 : 글라세로의 군단장
저주받은 인간의 냄새를 맡고 마왕의 명령을 받은 글라세로의 군단장이 현실로 넘어왔습니다. 그를 제거하십시오. 만일 군단장이 추격에 성공하면 바로 마왕이 소환됩니다.
권장 자격 : 스탯 합산치 50이상, 지능 30이상에 해당하는 각성자.
보상 : 없음. ]
[아, 안 돼! 하필 지금!]
성좌가 비명을 질렀다. 갑자기 나타난 메인 미션에 당황한 건 거북목도 마찬가지였다.
“어, 어어? 뭐지? 갑자기 미션?”
빌어먹을.
그러나 지금 승지만큼 가장 최악의 상황에 놓인 자는 없을 것이다.
주변의 공기가 심상치 않게 일렁였다.
그리고 승지의 몸에 새겨진 마왕의 저주를 찾아 무시무시한 괴물들이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