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습격 (1)
오조희의 안색이 변했다. 그러나 대처는 신속했다.
“승지 씨는 안에 계세요! 다른 분들은 빨리 대피를!”
어떻게 여기서 가만있냐.
다급하게 달려 나가는 오조희에게 따라붙은 승지가 물었다.
“경찰은?”
“안에 계시라니까요…! 그리고 경찰은 각성자들 문제엔 개입 못해요.”
오조희가 창백하게 질린 안색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각성자들이 비각성자는 해치지 못하더라도, 약한 각성자를 보호해주는 페널티는 없으니까요.”
“…….”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승지도 비각성자였기에 잘 알았다.
만약 어떤 각성자가 승지한테 자기도 약하니 보호받아야 한다는 소릴 했으면 죽도록 패줬을 거다.
어디 비각성자 앞에서 약한 척이냐고.
하지만 오조희는 그들까지 신경을 썼다.
“사람이 충분히 강해지지 못했다고 해서 버림받아야 하나요?”
“…아니.”
승지가 볼 땐 그 자신도 약해보이는 오조희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하지만 너 혼자 싸우는 건 무리야.”
“걱정 마세요! 상대가 각성자라면 전 절대 지지는 않으니까요!”
오조희가 센터 앞으로 뛰쳐나갔다.
“선생님!”
“이쪽이에요!”
“비켜라, 이것들아!”
두 선생이 험악하게 생긴 각성자 하나를 간신히 막아서고 있었다.
조폭 같이 생긴 놈이 쳐들어올 줄 알았더니 그냥 말라깽이잖아?
그러나 스탯 차이는 압도적인지 다른 선생들이 슬슬 밀려났다.
오조희가 재빨리 소리쳤다.
“적을 확인했습니다! 성좌의 목표 확인! 상대는 비각성자와 각성자 모두 포함이에요!”
오조희 앞에 거대한 초시계가 나타났다.
띠링!
[ 피해 추산 중! ]
[우왓! 저길 좀 봐! 페널티 수치화의 영향으로 우리 눈에도 스킬이 보이고 있어!]
저것도 페널티라고?
페널티를 바꾸는 광대의 축복 때처럼 스킬에서 구체적인 형상이 드러난 걸 보니 당혹스러웠다.
게다가 페널티 관련 스킬이라면 이제 자신에게만큼은 모두 보이게 된다니!
째깍거리며 돌아가던 시계가 마침내 멈췄다.
[ 상대의 목표 추정 완료! 페널티를 인정합니다! ]
상태창을 확인하자마자 오조희가 소리쳤다.
“인과응보 발동!”
“크윽?!”
방금 전까지 민첩하게 날뛰던 알러트 일당의 머리 위로 붉은 글씨가 쿵 내려앉았다.
[ 283 ]
“!”
[이럴 수가! 한꺼번에 저렇게 높은 페널티를 부여하다니!]
방금까지 저항하던 알러트가 갑자기 힘을 잃고 무릎을 꿇었다. 서둘러 선생들이 그를 제압하는 사이 그가 소리쳤다.
“네가 오조희냐!”
“어떻게 내 이름까지…!”
“알러트에선 유명하거든. 케헥!”
나불거리던 알러트 일당의 볼이 콱 눌렸다.
“임마, 시끄러워.”
“승지 씨!”
“각성자는 때려도 되잖아.”
“그런 문제가 아니라…!”
“여기서 끝이 아니에요! 선생님! 저 자가 센터에 분신을 풀어놨어요!”
“아무래도 스킬 같은데 해제가 안 됩니다!”
“크크크크.”
승지한테 볼이 잡힌 상태로도 알러트 일당은 낄낄거리며 웃었다.
“네 스킬은 이미 우리한테 훤히 다 까발려진 상태다! 설마 대책도 없이 왔을 줄 알…!”
빠악!
[ 1콤보! ]
승지가 인중을 쿵 때리자 알러트 일당이 눈을 까뒤집으며 기절했다.
“에이, 드러워. 침 튀었잖아.”
승지가 대충 옷깃에다 손을 문질러 닦는 동안 다른 선생들이 얼빠진 얼굴로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쳐다 봐? 시전자가 기절하면 스킬 해제 될 지도 모르잖아.”
“아, 아아, 그렇군요!”
“그냥 때리신 줄 알았어요!”
“분신은 어디로 갔죠?”
오조희는 다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기요!”
“꺄아아아!”
“어딜 가려고!”
막 실내로 피신하려는 각성자들을 가로막은 분신이 겔겔거리며 웃었다.
오조희가 재빨리 목표를 바꿨다.
“인과응보 발동!”
“소용없지! 이쪽엔 성좌가 없거든!”
분신이 껑충 뛰어 잔뜩 겁먹은 각성자의 팔을 붙들었다.
“같이 가줘야겠다!”
“싫어…!”
“안 돼요!”
놀란 각성자가 급하게 밀쳐내는 동시에 팔에서 불길이 일었다. 저대로라면 무난히 뿌리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오조희가 절박하게 뛰어갔다.
“스킬 쓰지 마세요!”
“아?!”
막 피어오르려던 불길이 멈칫했다. 그 틈에 뛰어든 오조희가 분신의 목을 잡고 늘어졌다.
“케엑! 이게!”
분신이 길쭉한 팔을 휘두르려고 하자 지켜보던 승지가 끼어들었다.
“네 녀석! 또 방해하려는 거냐!”
“말하지 마. 침 튀어.”
덥석 얼굴을 붙잡은 승지가 그대로 휙 분신을 내던졌다. 분신은 종잇장처럼 날아갔다.
콰앙!
[ 1콤보! ]
허수아비처럼 쓰러진 분신이 펑하고 사라졌다.
“이럴 수가…….”
눈이 휘둥그레진 오조희의 턱이 바닥까지 떨어졌다.
“사람을 저렇게 쉽게 던지다니…!”
“세, 세다.”
다른 선생들도 놀라 주춤거렸다. 물론 가장 놀란 건 오조희였다.
“승지 씨 정말 각성자였어요?”
“처음부터 그렇다고 했잖아.”
이제야 납득하다니. 승지가 드디어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방금은 왜 말린 거야? 스킬을 쓰게 뒀으면 이런 분신쯤은 저 사람도 충분히 물리칠 수 있었잖아.”
“사람한테 쓰면 안 돼요!”
오조희는 단호하게 말했다.
“가뜩이나 장애가 있다고 다른 사람보다 낙인찍히기가 쉬운데 혹시라도 사람한테 스킬을 썼다간 심하게 배척받을 거예요.”
“의도는 좋은데.”
승지가 손목을 꺾었다.
빠득.
“이런 순간에도 그걸 지키겠다고?”
승지가 오조희가 앞쪽을 볼 수 있도록 비켰다.
센터 입구로 슬금슬금 시커먼 덩치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알러트 일당이 분명했다.
각성자와 분신을 쓰러트려 안심하고 있던 선생들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저렇게나 많이…!”
“망했다…….”
오조희도 초조하게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개떼같이도 몰려왔네. 저렇게 많은데 너 혼자서는 해결 못해.”
“혼자 아니에요. 다른 선생님들도 같이 싸워주실 거예요!”
“예, 예?”
“저희도요?”
어째 본인도 몰랐다는 듯이 더 화들짝 놀라는데?
아까 선생들의 태도를 봤을 때 이 센터를 지키는 실질적인 힘은 오조희인게 분명했다.
“먼저 간 놈은 벌써 당했나?”
“쯧, 각성자 주제에 약하긴.”
킬킬거리며 들어오는 알러트 일당은 전혀 두려움이 없어 보였다. 명백히 자신들 쪽이 머릿수가 많았으니까.
오조희가 급히 스킬을 썼다.
“인과응보 발동!”
그러나 이번에는 효과가 없었다. 승지의 눈에도 페널티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소용없어.”
제일 앞에 있던 눈썹 흉터가 이죽거렸다.
“우린 각성자가 아니거든.”
“뭣!”
“너희들 스킬만 요란했지 사실은 허벌 각성자라며?”
“상대가 허약한 선생들과 장애인들이라면 굳이 각성자까지도 필요 없지.”
“……!”
“선생님…! 어떡해요….”
과연 그 말대로 새로 온 알러트 일당들은 원래 깡패처럼 흉악하게 생겼다.
당황한 선생 중 하나가 소리쳤다.
“너희! 어떻게 각성자도 아니면서 알러트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거지!”
“그걸 내가 왜 알려 주냐?”
“잡아!”
우르르 달려오는 어깨들을 보며 승지가 가볍게 손날을 갈겼다.
“끄억?!”
[ 1콤보! ]
자신만만하게 달려들던 게 무색하게 그가 홱 날아갔다.
쿠웅!
불가능한 높이로 붕 떠서 날아가는 일당을 본 다른 자들의 표정이 변했다.
그동안 랭커들 사이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약해보였을 뿐, 지금 승지의 스탯은 누가 함부로 덤빌 수준이 아니었다.
“넌 뭐야!”
날백수 건달처럼 짝다리를 짚은 승지가 빈정거렸다.
“뭐, 여기서 물어보면 대답해 드리는 게 인지상정 이래야 되냐? 내가 대답할 거 같아서 물어본 건 아니지?”
“이 새끼가!”
“저 씨발 놈 잡아!”
“흠. 진짜 양아치 새끼가 욕하니까 같잖네?”
쿠웅.
승지가 그대로 두 번째 놈까지 날려버렸다.
그렇게 맞은 놈은 바로 쓰러져서 일어나질 못했다.
튜토리얼에 나오는 적도 이것보단 오래 버티겠다. 인상을 확 구긴 승지가 소리쳤다.
“야 이 양심 없는 새끼들아. 상황파악 안 되냐? 안 꺼져?”
“어디서 훈수질이야!”
“? 당연히 난 훈수할 수 있지. 너네 다 ㅈ발라버릴 건데.”
승지가 팔짱을 꼈다. 너무나도 협박이 자연스러운 그 모습에 성좌가 울먹였다.
[흐잉… 아니야…. 우리 승지는! 내가 아는 우리 승지는 이렇게 깡패 같지 않아!]
“진짜 깡패 놈들 두고 그게 무슨 막말이야? 나정도면 준수하지.”
남들이 오해하는 것과 달리 승지 자신은 절대 양아치가 아니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다만 참지 않을 뿐이었다.
도발적인 빨간 염색머리에다가 성질 더러운 낯짝을 보면 길거리에 죽치고 있는 놈들이 꼭 비웃는 소리를 날렸다.
그럼 당연히 싸워야지.
승지가 늘 자신은 운이 없다고 한탄하긴 했지만, 본인이 불운을 자초하는 면도 없지 않아 있었다.
양아치들에게 그날 일당인 몇 만원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죽도록 싸웠다가 병원비로 몇 십만 원을 쓴 적도 많았다. 그리고 다음날 얻어터진 꼴을 보여 알바에서 잘렸다.
아 생각하니 다시 빡치네.
그렇게 살다가 지금 진짜 깡패 놈들을 본 승지의 감회는 남달랐다. 웃음만 나온다고 해야 하나.
“대충 니들 인생 견적 나오니까 괜히 자극하지 말고 가라.”
“미친 놈 아니야 저거?”
“야. 잡아. 저 새끼 각성자여도 ㅈ 되고 아니면 씨발 우리가 더 쪽수가 많아!”
쯧쯧. 잘못된 판단은 삼 대를 망치거늘. 오늘 여기서 니들 대가 끊기겠다.
승지가 다시 공격할 자세를 취하자 성좌가 다급하게 해명했다.
[잠깐 멈춰, 승지야!! 지금 페널티 수치가 위험하다구! 아직 어제 청월량 빌딩에서 싸웠던 페널티도 다 정산이 안 됐는걸!]
쳇. 그러고 보니 비각성자를 패면 페널티가 들어왔었지.
[저 놈들도 그걸 알고 있어! 승지가 페널티를 감당하지 못할 때까지 공격할 속셈이야!]
내가 나쁜 짓을 하려는 것도 아니고 저놈들은 누가 봐도 악당인데 너무한다.
“성좌신이 정의구현 보너스 그런 거 안 줘?”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럼 최대한 페널티 안 받게 미션 줘 봐.”
승지가 성좌와 하는 대화를 멍하니 듣고 있던 오조희가 급하게 끼어들었다.
“잠, 잠깐만요 승지 씨! 정말 싸울 수 있다면 승지 씨의 페널티를 제가 받을 게요!”
“그럴 수도 있어?”
“제겐 그런 스킬도 있어요!”
오조희가 다급히 승지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니 제발 이 곳을 지켜주세요!”
“알았어.”
승지가 간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조희가 빠르게 손으로 하트를 만들며 스킬을 시전했다.
“사랑의 매 발동! 대상은 채승지 각성자입니다!”
“하 넌 또 스킬 이름이 뭐 그따위….”
“씨발, 쳐!”
승지와 오조희가 뭔가 수작을 부리는 걸 파악했는지 알러트 일당들이 견제를 멈추고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그러나 승지의 페널티는 이미 오조희에게 넘어간 뒤였다.
빠빠박!
[ 1콤보! ]
[ 2콤보! ]
[ 3콤보! ]
앞에 오던 놈들을 순식간에 세 명 날려버린 승지가 우뚝 섰다.
몸이 엄청 가볍잖아?
그저 잠이 덜 깨서 몸이 무겁다 여겼는데, 아무래도 어제 청월량 길드에서 난리친 페널티가 적용되고 있었던 모양이다.
오조희에게 페널티가 넘어가자마자 그도 한순간 비틀거리긴 했지만 굳건하게 버텨냈다.
“다들 들어가세요! 여긴 저희가 맡을 게요!”
“네넷!”
“너도 들어가!”
승지가 발로 어깨를 후리며 소리쳤다.
[ 1콤보! ]
“페널티 쌓이면 너 기절한다!”
“기절하기 전엔 들어갈게요!”
오조희가 허둥지둥 들어가는 센터 각성자들을 인솔했다.
[흐윽, 감동이야! ŏ̥̥̥̥םŏ̥̥̥̥ 이런 상황에서 내가 미션을 안 줄 수가 없지!]
덩달아 감격해버린 성좌가 상태창을 띄웠다.
띠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