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이세계인을 주웠습니다만 (1)
류의건은 오랜만에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의 성좌는 주기적으로 몬스터를 소탕하지 않으면 페널티를 주는 터라 할 일이 많았던 것이다.
미션도 깨고, 회사로 돌아가 실무도 보고, 왜 본가에 자주 오지 않냐는 불호령에 집안 행사까지 출석하고 오는 길이었다.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저러고 귀가하는 것도 피곤하겠지만, 의건은 심지어 잠깐 가게에 들러 양 손에 먹을 것까지 잔뜩 산 상태였다.
지금까지야 집에 가든 말든 사람이 없었지만. 이제는 같이 사는 사람이 있으니 무턱대고 나타나긴 그랬던 것이다.
물론 원래 자신의 집이지만 말이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월급날 치킨을 사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번에야말로 승지에게 페널티에 관련된 얘기를 살짝 꺼내보리라 다짐했으니. 잘 보여야 할 필요도 있었다.
마음의 준비를 하며 그가 현관을 열었다.
“저 왔습니다.”
어색하게 인사를 하며 들어온 류의건을 반긴 건 난장판이었다.
콰장창!
“야 몰아! 몰아!”
“무슨 토끼 사냥도 아니고 그걸!”
“@#%%@!!#@@%3*!!”
우당탕! 뭐가 또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당황한 의건이 털썩 음식을 떨어트리고는 뛰어갔다.
“무슨 일입니까!”
“@#$^@^##$^$!”
대치중이던 세 사람이 동시에 류의건을 쳐다보았다. 둘은 아는 얼굴이다. 채승지랑 유청.
그런데 처음 보는 퉁퉁한 아저씨가 난장판이 된 집안에서 떡 버티고 서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아저씨가 류의건을 보자마자 뭐라고 외치며 달려들었던 것이다.
“@#%@#%%@!”
꼬옥~.
엉겁결에 아저씨에게 꽉 끌어안긴 류의건의 얼굴이 해괴해졌다.
멈칫한 채승지와 유청이 그 극적인 상봉을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그를 붙잡으려고 개고생을 했는데 허무하단 느낌도 물씬 풍겼다.
승지가 물었다.
“아는 이세계인이냐?”
“아니 모르는… 그런데 누구라고 하셨습니까?”
“아는 이세계인이냐고.”
승지가 개판이 된 살림살이를 슬쩍 발로 밀어내며 빠져나왔다.
“던전에서 오다 주웠거든.”
* * *
유청이 거대 스켈레톤에게서 한 팔로 그를 구출했을 때까지만 해도 상황은 아직 심각하지 않았다.
“여기서 기다리십시오.”
그를 떨궈놓고 가려던 유청은 갑자기 옷자락이 콱 붙잡혔다.
“@#%#@$! @#@#%!”
눈이 동그래진 아저씨가 뭐라고 막 떠드는데 모르는 말이 튀어나오자 유청은 당황했다.
“아,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통역… 통역기 어플 켤 테니까.”
이때까지도 아직 그를 외국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유청은 인벤토리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통신은 안 되더라도 미션에서 가끔 외국인을 마주칠 때도 있었기에 미리 깔아놓은 게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세계인 아저씨는 유청이 꺼낸 걸 보자마자 흠칫하고 놀라더니 다시 도망가려고 들었다.
“어딜 갑니까? 위험합니다.”
유청이 다시 그를 붙잡자 이제는 아예 기겁하며 머리를 흔들었다. 한참 뒤에야 유청은 그가 스마트폰을 경계한다는 걸 깨닫고는 멍해졌다.
스마트폰을 무서워하는 외국인 같은 건 없다. 아무리 오지 평원이라도 지식은 전파되는 법이니까.
그렇다면 저 아저씨는 아예 다른 세계 사람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여기까지가 전해들은 상황.
그리고 지금 눈앞에서 생생하게 침을 튀기는 아저씨는 현재였다.
“네 이놈! 이제 신의 심판자가 왔으니 네 놈의 장난질도 끝이도다!”
“하, 뭐래는 거냐.”
골이 아파진 승지가 이마를 눌렀다. 던전을 클리어해서 현실로 돌아왔을 때 저런 덤까지 달라고 한 적은 없다고.
류의건의 집으로 세 사람이 떨어지자마자 낯선 풍경에 놀란 이세계 아저씨가 무작정 도망치려고 했던 것이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두 사람이 붙잡으려고 하던 찰나에 류의건이 도착했고.
온갖 물건을 던져대며 부리는 개판에도 성좌는 마냥 신기해했다.
[하지만 승지가 우리 세계 사람을 만난 건 처음이잖아! 난 너무 신기한걸! 성좌신의 버프로 정말 희귀한 보상이 나온 거야!]
“뭐래. 저런 희귀템은 줘도 안 가진다고.”
승지가 하찮게 손가락질을 하자 아저씨가 더욱 분개해했다.
“이! 이 건방진…!”
“잠깐… 잠시만요.”
류의건이 억지로 달라붙는 이세계 아저씨를 밀어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방금 들었잖아. 던전 갔다가, 클리어했는데, 저 놈도 따라와 버렸어.”
“하지만 던전이 클리어 되면 자신이 들어온 장소로 나가지지 않습니까?”
“…그러게?”
승지가 고개를 기울였다. 그럼 저건 어떻게 따라온 거야. 승지가 대놓고 물었다.
“어이, 아저씨. 왜 왔던 곳으로 안 돌아가고 날 쫓아온 거냐?”
“뭐라! 사특한 주술로 나를 이곳으로 데려온 게 누군데!”
“주술?”
“다 알고 있다! 이 사악한 광대 녀석! 마왕의 명령을 받고 나처럼 귀하고 중요한 인물을 납치한 게지! 어림도 없도다!”
“뭔 개소리야. 그리고 진짜로 납치한 거면 이미 게임 끝난 거 아니냐? 너 집에는 갈 수 있니?”
“이잇!!”
넋이 나간 채로 총알처럼 오가는 대화를 듣고 있던 류의건이 중얼거렸다.
“유청 씨, 혹시 지금 승지 씨와 대화 하고 있는 사람의 말이 이해되십니까?”
“저도 못 알아듣습니다.”
유청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상하게 채승지 각성자만 처음부터 대화가 가능하더군요.”
“야, 야. 분위기 또 몰고 가지 마라.”
승지가 눈살을 찌푸렸다.
“저번에 마왕 잡고 성좌신 버프 받았는데 거기서 이세계 말 자동 번역을 받아서 그래.”
“아아, 그런 거군요.”
류의건이 바로 납득했다.
“어쩐지 승지 씨는 계속 우리말로 말하는데 저쪽과 대화가 통하는 게 이상하다 했습니다.”
“아니, 자네! 이렇게 태평하게 광대에게 말을 걸 때가 아니도다!”
류의건과 승지가 대화를 나누는 걸 본 이세계 아저씨가 마지막 희망이 무너진 것처럼 울상을 지었다.
“어서 빨리 저 놈을 심판하도록 명령하노라! 온 세계에 유명한 신의 심판자의 명성을 다 어디다 팔아먹었는가!”
아까부터 씨부리는 신의 심판자는 대체 언 놈 얘기야?
어차피 자신이 아니면 말을 못 알아듣는 걸 알 때도 됐는데 말이다. 지능이 엄청 낮은 게 분명했다.
흥미진진한 눈으로 보고 있던 승지가 바로 일러버렸다.
“그리고 얘가 계속 너를 신의 심판자라고 부르는데.”
“…네?”
갑자기 류의건의 표정이 확 변하며 서늘해졌다. 온화한 기운이 걷히자 놀랄 만큼 엄격해 보였다.
방금 전까지 그에게 달라붙던 이세계 아저씨도 순간 움찔하며 슬쩍 떨어질 정도였다.
유청도 다소 놀랐다.
“혹시 저 사람한테 류의건 씨 얘기도 했습니까?”
“내가 사실 네 고막도 파냈었나?”
“…하긴 저도 계속 옆에 있었는데 그런 얘기는 못 들었군요.”
한심하다는 승지의 눈빛에 유청이 바로 정정했다. 침울해진 유청 대신 류의건이 가까스로 대답했다.
“신의 심판자는 제 성좌의 이름입니다.”
“아아.”
그랬구먼.
참 나, 누구는 웃고 있는 광대고 누구는 신의 심판자냐.
별 생각 없이 받아들인 승지를 보고 뭔가 설명이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류의건이 덧붙였다.
“승지 씨도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1차 각성자들의 성좌는 아직 이세계에서 생존한 영웅들입니다.”
“그런데?”
“저 사람이 정말 이세계인이라면 제 성좌의 원래 모습을 알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네?”
승지의 눈이 의심스럽게 가늘어졌다.
“아저씨.”
“자꾸 아저씨, 아저씨 거리지 말거라! 무엄하도다!”
“무고 자시고, 지금 보이는 인간들이 누군지 다시 말해 봐.”
엉뚱하게 이름 테스트를 받게 된 이세계 아저씨가 눈을 굴렸다. 승지만 있었으면 거부하고 싶었겠지만 양쪽에 류의건과 유청이 버티고 있어서 눈치를 보는 듯 했다.
결국 이세계 아저씨가 입을 열었다.
“그, 그거야 쉽도다. 저 사람은 무혈제장, 저 사람은 신의 심판자. 그리고 그쪽은 광대가 아닌가.”
정확하게 콕콕 집어서 얘기하는 걸 본 승지의 미간이 좁아졌다.
자신의 광대 성좌야 이미 죽은 사람이니까 모른다고 쳐도.
신의 심판자와 무혈제장은 이세계에서도 유명한 영웅이라며? 그런데 류의건이랑 유청이랑 얼굴을 헷갈려한다고?
그럴 리가.
“당신 실제로 그 사람들 본 적 없지?”
움찔.
정답이었는지 이세계 아저씨가 입을 다물었다.
[이상하다? 그럼 저 사람이 어떻게 성좌들 이름을 정확하게 다 알았을까?]
잠깐 고민하던 승지가 툭 던졌다.
“혹시 이세계인들 눈에는 우리랑 성좌가 구분이 안 되는 거냐?”
그 말에 갑자기 정적이 찾아들었다. 류의건과 유청까지도 놀라 눈이 커지고 성좌마저 느낌표 하나만 띄워놓고 멈춰버렸다.
[!]
“성… 성좌가 무엇이지?”
어리둥절하게 되묻는 이세계 아저씨의 말이 결정타였다.
“그럴 수가…….”
류의건이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유청도 믿을 수 없는지 내뱉었다.
“잠깐만요. 성좌는 그냥 우리를 도와주는 존재 아닙니까? 지금 보이고 있는 현실은 분명히 성좌가 아니라 우리일 텐데요.”
“나도 모르지. 근데 전에 성좌가 존재하려면 무슨 증명치 같은 게 필요하다고 했잖아.”
[존재 증명치!]
“그래. 뭔가 그거랑 관련된 문제가 아닐까 싶은데.”
“던전.”
생각에 잠겨있던 류의건이 다급히 입을 열었다.
“어떻게 그 던전에 들어왔는지 물어보십시오. 왜 들어왔는지도 말입니다.”
왜 물어보는지 모르겠지만 승지는 류의건의 질문을 전달해주었다. 이세계 아저씨가 대답했다.
“그거야 우리나라 영토를 넓히기 위해서지. 토벌전에서 승리해야만 성좌신의 이름으로 토지가 귀속되니 말이도다.”
“거기까진 어떻게 갔는데?”
“평범하게 말 타고 갔노라.”
아나, 근데 이 자식 말투 되게 거슬리네.
승지가 대답을 전달해주자 류의건이 심각하게 질문했다.
“그렇다면 던전이 사실은 원래 당신의 세계라는 뜻이 아닙니까? 던전이 클리어됐다고 사라질 수는 없지 않습니까?”
“아까부터 클리어라고 말하는 그게 뭔지 도대체 모르겠노라!”
이세계 아저씨가 버럭했다. 번역해주지 않아도 반응으로 알아들은 류의건이 진중해졌다.
그의 말에 승지도 이상함을 감지했다. 클리어 된 던전은 정말로 세계에서 사라져버리는 것일까?
“아무래도 던전에 대해서 더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저 마왕의 구역인줄로만 알았는데….”
“하지만 어디서 조사한단 말입니까? 지금까지 각성자들한테 알려진 정보는 다 미스핏 길드로 자료를 집중해서 알아낸 성과인데.”
류의건의 말에 유청이 반박했다.
“혹시나 미스핏 길드에서 공개하지 않은 연구라도….”
“길드 연합이 연구 자료는 불을 켜고 감시하는 데 그런 게 있겠습니까.”
요지는 캐낼 래야 더 캐낼 구석이 없다는 뜻이었다.
그 때 성좌가 외쳤다.
[아니야! 승지야! 우리한텐 또 다른 정보원이 있잖아!]
“뭐? 정보원?”
“정보원이라고요?”
“승지 씨! 그런 분이 계셨습니까?”
무심코 꺼낸 말에 유청과 류의건이 앞 다투어 물었다. 그러나 승지도 성좌의 말을 보기 바빴다.
[정보원이 악당이고 나도 무지무지 싫지만! 거래를 잘 하면 좋은 정보를 줄지도 몰라!]
“악당이라고?”
성좌의 말에 뭔가 가닥이 잡힌 승지가 되물었다.
“너 설마… 큐라 얘기 하는 거냐?”
[응!]
성좌가 해맑게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