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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선전포고 (1)

한편. H호텔.

알러트가 소탕된 기념으로 정재계의 인사들이 모이기로 한 파티는 각성자들의 철통 방어를 받고 있었다.

그동안 알러트를 대중들에게 숨겨왔던 만큼 권력자들이 은밀히 후원해왔다는 홍보를 하기 좋았던 것이다.

2차 각성자로 이루어진 경호진이 떠들썩하게 돌아다녔다.

“30분 뒤부터 도로 통제 들어가겠습니다!”

“기자진 좀 막아봐! 저번에 스킬로 결계를 쳐놨더니 지들이 스파이인줄 알아. 현금으로 돌파 아이템까지 샀더라니까.”

“랭커들은 언제 오죠?”

총 책임을 맡은 길드 연합은 이미 곳곳에 나타난 정령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정령들이 습격한 게 대부분 상위 랭커라는 걸 확인하고는 신경을 껐다.

그들이 막아내지 못하면 어차피 여기 있는 사람이 가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올해 최대의 행사가 될 축하 파티에 집중했다.

각성자들이 아무리 많은 부를 쌓아올리고 있다고는 해도 여전히 법은 따라야 했다.

때문에 각성자들은 이번 일로 입지를 제대로 굳혀두고 각성자 특혜를 끝까지 유지할 생각이었다.

2차 각성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오히려 각성자들만 갖는 면세 혜택 등에 대한 불만도 따라서 폭증했던 것이다.

특히 커넥트 길드의 박편호는 눈에 띄게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돼…!”

휴대폰을 귀에 붙인 그가 연신 손톱을 딱딱거렸다.

파티 시작까지 남은 시간은 세 시간.

그 때까지 제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아야 했다.

뚜르르. 찰칵.

“왜 이제야 받나!”

전화가 걸리자마자 박편호가 호통을 쏟아냈다.

“일이 있었다고? 여기도 지금 중요하단 거 모르나! 정령 같은 건 적당히 끝내고 당장 이리로 튀어오게!”

박편호가 파티장 한쪽 구석에 몸을 숨기고 속닥거렸다.

“괜히 잡음 내고 싶지 않아. 알러트는 다 끝났네! 알겠나? 자네가 직접 나한테 그리 말했잖나!”

화면 건너편에서 누군가 화답했다. 그러자 박편호의 안색이 핼쑥해졌다.

“뭐? 지금 뭘 보라고?”

그가 허둥지둥 휴대폰을 내렸다. 그러자 인터넷과 TV로 동시 생중계중인 화면이 떴다.

거기에 범윤오가 있었다.

“여러분! 지금 방송 되고 있어요? 제 말 들리세요?”

화면은 몹시 흔들리고 있었다. 누군가한테서 도망치듯 초점이 불안했다.

방금 전까지 격렬한 싸움을 했던 것처럼 범윤오의 얼굴은 상처투성이 였다.

“지금쯤이면 모두가 알러트에 대해서 들어보셨을 거예요! 사람을 납치하고, 마약을 파는 미친 악당 놈들!”

그가 헉헉거리며 자꾸만 뒤를 힐긋거렸다.

“어둑시니 길드와 류의건 각성자님이 알러트 보스를 잡았다고 했었죠? 사람들 모르게 비밀로요!”

범윤오가 힘겹게 소리쳤다.

“그거 다 거짓말이에요!”

팟.

화면이 흔들리며 새까만 새로운 화면이 떴다. CCTV처럼 작은 화면 속에선 류의건과 누군가가 돌아다니는 영상이 보였다.

차례로 마약굴, 기절한 사람들이 묶여있는 창고, 수상한 항구들이었다.

몰래 찍은 듯이 화질이 불안정했지만 류의건처럼 유명한 사람을 알아볼 만큼은 되었다.

다시 범윤오의 얼굴이 나타났다.

“저도 도저히 믿기지 않았지만, 저를 공격해오는 바람에 믿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알러트는 진짜 있었어요! 아니, 실재해요!”

유독 앳되게 나오는 범윤오의 눈이 글썽거렸다.

“우린 속고 있었어요! 랭커들은 사실 마왕이랑 결탁해서 공포의 대상을 조작한 거예요! 그래야 계속 자신들이 이득을 볼 테니까요!”

영상을 보고 있던 박편호의 주위로 웅성임이 커져나갔다. 하나 둘씩 영상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완전히 벙 찐 박편호가 입을 쩍 벌린 채 범윤오를 내려다보았다.

“그래도 믿지 못하시겠다면…!”

범윤오가 입술을 깨물며 들고 있던 카메라를 삐걱이며 움직였다.

그러자 뒤에서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쫓아오는 류의건의 얼굴이 클로즈업으로 잡혔다.

평소의 온화한 그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난폭한 기세였다.

“전, 전 도망쳐야겠어요! 이걸 폭로했으니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모두에게 알려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범윤오가 스킬을 썼는지 화면이 어두워졌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까지 극적으로 소리치는 걸 잊지 않았다.

“랭커들은 다들 한패에요! 절대로…! 속지 마세요!”

화면이 지직거리며 꺼졌다.

X됐네.

마찬가지로 영상을 보고 있던 승지마저 말문이 막힐 정도였다.

앞뒤 상황을 다 알고 있는 내가 봐도 그럴싸한데?

연기 미쳤네. 이 새끼.

범윤오가 순진하고 어려서 농락당한 랭커인 척 화면을 쳐다보던 장면을 생각하니 속까지 뒤집어졌다.

[마… 맙소사….]

완전히 암전된 화면을 내리자 주변에서 조금씩 날카로운 웅성거림이 퍼져 나오는 게 느껴졌다.

이미 메인 기사창이 폭발하듯이 속보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모두가 범윤오의 폭로에 벌떼처럼 끓어올랐다.

[이건, 이건 안 돼! 모두가 진실을 반대로 알게 될 거야! 이건 거짓말이잖아!]

성좌가 다급하게 띵띵 거렸다.

[빨리 저건 다 거짓말이라고 하자! 우리도 인터뷰를 하면 되잖아! 류의건이 얼마나 착한 사람인지 다들 알고 있잖아!]

“……아니.”

승지는 언론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잘 알고 있었다.

류의건처럼 착하다고 소문이 난 인간일수록 이럴 때 제대로 물어뜯기는 법이다.

게다가 기본 바탕이 원래 금수저에다 각성자였으니 보통 연예인이 터진 것보다 두 배로 시끄러워질 것이다.

이제 와서 자신은 결백하다, 저건 범윤오가 뒤집어씌운 거라고 발표해봤자?

뒤늦은 발 빼기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류의건 그 자식은 요령도 없다고.

지금 지나가는 1초, 1초의 대응이 향후 각성자들의 방향을 완전히 뒤집어놓을 수도 있다.

게다가 승지 자신도 범윤오의 정체를 아는 사람인데다가 고위 랭커들과 친하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으니.

무조건 막는다.

승지의 고민은 깊었지만 순식간에 끝났다.

그가 마그니를 잡았던 지붕에서 내려와 무기를 집어넣었다.

“지금 당장 위치 파악해봐.”

[류의건 위치 말이야?]

“그건 번태가 확보했을 거야. 우린 번태한테 간다.”

승지가 자리를 박찼다.

* * *

승지가 번태를 찾아냈을 때에는 범윤오가 보냈던 정령을 모두 토벌하고 돌아온 상태였다.

그러나 이제 정령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류의건 씨! 영상에서 나온 사람이 본인이 맞습니까!”

“왜 어둑시니 길드에 몸을 의탁한 겁니까!”

“정말 상위 랭커들 간에 결탁이 있었던 거 맞습니까!”

“류의건 씨!”

“번태 씨!”

“한 말씀 해주시죠!”

쫙 깔린 기자들이 거의 전쟁터를 방불케 할 기세로 문을 두드려댔다.

어둑시니 길드가 몬스터에도 뚫리지 않는 안전시설을 해놓지 않았더라면 진작 구멍이 나고도 남았을 것이다.

[히익. 저길 어떻게 들어가지?!]

거의 사람으로 벽을 세워둔 셈이었다.

저 귀찮은 새끼들이.

승지가 기자들의 등짝을 잡아당겨 양쪽으로 가르려는 그 때.

미리 승지의 연락을 받은 유월이 두리번거리며 문 밖으로 나왔다. 당연히 기자들이 미친 듯이 플래시를 터트렸다.

“유월 씨!”

“유월 씨도 알러트에 가담하신 겁니까!”

“그동안의 친분을 어떻게 설명하실 거죠!”

“왜 여기 있습니까!”

유월은 전부 무시하고는 승지를 찾아냈다. 그가 기자들의 머리를 밟으며 올라가자 기자들이 숨죽인 비명을 질렀다.

“고, 공격한다!”

“랭커들이 정말로 비각성자를 공격하고 있어! 찍어, 찍어!”

찰칵찰칵찰칵.

쏟아지는 셔터 소리 속에서 유월이 승지를 끌어올렸다.

똑같이 귀찮은 기자들을 밟을 수 있어서 차라리 속이 시원해진 승지가 망설이지 않고 기자들을 밟고 뛰어갔다.

“억!”

“아이쿠!”

와르르 쓰러지는 사람들을 힘으로 밀어낸 승지와 유월이 건물 안으로 뛰어들었다.

꽝! 하고 문을 닫는 유월에게서 피를 본 승지가 무심코 물었다.

“다쳤어요?”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유월이 뛰어오느라 다시 터진 팔의 피를 슥 닦아냈다.

“승지 씨 말대로 범윤오가 문제였어요. 빌어먹을.”

처음으로 유월의 욕설을 들은 승지는 비로소 참담한 심정에 빠져들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유청이 류의건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쓰레기 스파이 놈이랑 돌아다닌 겁니까!?”

“…….”

의자에 앉아있던 류의건은 거의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

범윤오를 놓치고 바로 이곳으로 왔는지 몸에 성한 구석이 없었다.

그가 중얼거렸다.

“다 제 잘못입니다. 설마 그걸 촬영하고 있었을 줄은…….”

“원래부터 알러트에 들어가 있는 쓰레기를 어떻게 의심 한 번 안할 수가 있습니까!”

“그 영상 진짜 너였냐?”

승지도 어이가 없어진 나머지 되물었다.

착한 일도 정도껏이어야지. 그걸 대체 누가 알아준다고.

아니, 페널티 때문에 일부러 그런 건가? 망할 신의 심판자 새끼 때문에.

뒤늦게 도착한 승지를 본 류의건이 창백해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알러트의 보스가 죽었다고 해서 모든 피해가 끝난 건 아니라고 생각해서 한 일이었습니다….”

“괜히 어둑시니 길드장이 본진만 털어버리고 손절했겠습니까! 쓰레기들에게 돈을 주기 시작하면 더한 짓을 저지르기 시작한단 말입니다!”

“그만. 우리끼리 싸워봤자 도움이 될 상황이 아니네.”

번태가 격해지는 유청의 말을 끊었다.

“이 문제는 우리가 방심한 것일세. 간부들을 다 잡아왔다고 도와줄 자가 없다고 여겼건만. 본인이 이만한 일을 벌일 줄이야.”

“그렇게 똑똑한 새끼는 아니야.”

승지가 내뱉었다.

범윤오가 또래치고는 똑똑하다지만, 알러트를 조직할 수 있기까지 한 건 다나우의 도움이 컸다.

아마 언론을 이용하라는 것도 다나우의 조언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슬슬 돈 받아낼 구실이 사라졌다고 생각한 백정민이 영상을 보내면서 힌트를 줬던가.

승지가 빠득 이를 갈았다.

“어떻게 보든 운이 좋은 새끼긴 하지만.”

끝까지 운이 좋진 않을 거다. 내 손에 걸릴 테니까.

주먹을 뿌득거리는 승지가 자연스럽게 대화의 중심을 가져갔다.

“반박 영상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냐?

어둑시니 길드에 홍보팀 있다면서. 이대로 둘 거야?”

“당연히 결백을 증명하는 쪽으로 가야지.”

“여론전으로 가면 불리할 텐데.”

승지는 진짜 무슨 죄 지은 인간처럼 창백하게 앉아있는 류의건을 힐긋거렸다.

“너무 좋은 먹잇감이라서 말이야.”

“불리한 건 알고 있지만 지금까지 그가 해온 선행들이 있네. 그거라면 자료도 많아.”

“부족해.”

승지가 딱 잘라 말하자 사람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렇게 치고 박다 보면 애초에 왜 알러트의 존재를 숨겼냐는 반박이 분명히 나올 거란 말이지.”

“…….”

“그런데 그거 당신이 주도한 거라면서.”

승지가 번태를 쳐다보았다.

여기까지 오면서 얼마 없는 지인들이 모두들 승지에게 연락을 걸어댔던 것이다.

그중에서 혼비백산한 서명구가 시키지도 않은 정보를 줄줄 불었다.

“류의건이 아니라 당신 쪽은 마왕과 관련이 있다는 혐의를 벗기 힘들다고 들었는데?”

승지는 그렇게 말하며 손 안에 감춰둔 마왕의 무기를 꾹 쥐었다.

애초에 번태는 이 무기를 어떻게 손에 넣은 것인가?

뻣뻣해진 수염을 한 번태가 고요히 승지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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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라면 99콤보까지 - 광대라면 99콤보까지-16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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