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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 잡아먹고 먹고 먹고 먹고 (3)

콰앙! 쿵! 쿠웅!

가시 트롤들의 육중한 몸이 서로 부딪쳤다. 가죽이 얼마나 튼튼한지 그들끼리는 부딪쳐도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반대로 연약한 인간은 스치기만 해도 압사당할 것이다.

그러나 트롤들의 의도와는 달리 승지를 잡는 것은 몹시 어려웠다. 눈으로 볼 수조차 없었던 것이다.

어디선가 어깨를 밟힌 가시 트롤이 비틀거리면 근처에 있던 다른 트롤이 얻어맞고는 우수수 가시가 꺾였다.

속도로는 따라잡을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가시 트롤들은 바짝 모여 살아있는 벽을 만들었다.

트롤들이 아무리 둔해도 공격당한 방향 정도는 간파할 수 있었다. 잔상처럼 남는 붉은 빛을 감지한 트롤들은 무작정 빛을 따라 움켜쥐고 때리고 으깼다.

마치 어린아이들이 개미를 잡으려고 애쓰는 듯했다.

그 속에서 불개미 한 마리가 된 승지는 닥치는 대로 물고 뜯었다.

가시가 좀 부러지고 얻어맞아도 가시 트롤들은 개의치 않았다. 승지를 몰아넣은 그들은 한 발씩 좁혀 들었다.

확실히 가뒀다는 증거로 몇 번이나 그들의 공격에 인간이 걸리는 느낌이 났다. 물론 치명상은 아니었지만, 상관없었다.

꾸준히 나아가던 가시 트롤들은 완전히 가뒀다고 확신하자 소리를 지르며 남은 자리를 덮쳤다.

쿠쾅쾅! 쾅!

바위가 깨지고 산이 진동하는 듯한 요란한 소리가 고막을 찢을 듯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그 밑에 뭐가 있든 간에 피하지 못했다면 납작하게 깔려 죽을 것이다.

쌓여있던 트롤들은 곧 압사당한 승지가 흘릴 피를 확인하기 위해 바닥으로 시선을 내렸다.

그러나 그들이 볼 수 있었던 붉은 색은 망치와 함께 폭풍을 일으키기 시작한 승지의 머리뿐이었다.

[ 99콤보! ]

꽈광!

폭탄이 터지듯 가시 트롤들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일부는 살점이었고, 일부는 망치 자국이 패인 가죽이었다.

“후.”

다시 정상적인 프레임으로 돌아온 승지가 묵직한 망치를 내려놓았다. 집 한 채를 혼자서 철거해낸 기분이다.

승리를 만끽하기도 전에 승지는 신음하는 트롤을 밟고 넘어갔다.

양쪽 집이 무너지고 시체가 즐비하지만. 경보가 울렸으니 뒤처리는 다른 놈들이 하겠지.

그보다 다나우가 급했다.

승지는 곧장 자신의 옛 집으로 달려갔다. 일단 겉모습은 멀쩡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딱 현관까지만.

“우왓!”

벌컥 문을 연 승지는 순간 아래로 쑥 빠질 뻔했다. 현관부터 바닥이 없었던 것이다.

“이 자식들이.”

승지가 급하게 문틀을 움켜쥐었다. 바닥없는 암흑이 불가사의하게 넘실거리고 있었다.

지옥이 있다면 반드시 이 구덩이 밑에 있으리란 확실을 줄 만큼 깊은 어둠이었다.

함정인가?

승지가 경계하는 동안 광대 성좌가 조심스레 움직였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암흑은 부드럽게 그들을 감쌀 뿐, 빨아들이거나 공격할 기세가 없었다.

“조금 내려가니까 아래쪽이 막혀있어. 아마 거기서부터 다나우가 만들어낸 알, 인벤토리가 있을 거야.”

“좋아.”

승지는 한 손으로 오함마를 훙훙 돌렸다. 가벼운 바람이 일었다. 그대로 승지가 경계를 박살내려는 순간.

어둠이 마치 살아있는 수초처럼 위로 치솟았다.

“웃?”

“승지야 조심해!”

후르르륵.

알집을 건드린 거미처럼 어둠이 벽을 타고 천장으로 붙었다.

공격하지 않잖아?

어둠이 기어 올라간 자리 밑으로 집채만한 알의 위쪽을 볼 수 있었다.

과거에 그는 글라세로가 뿌려놓은 알도 보았고, 성좌의 고향인 나비스에서 준 마왕이 만든 알도 보았다.

다나우가 들어있는 알은 그 둘을 합쳐놓은 것처럼 생겼다. 다만 거기에 다리가 달렸을 뿐.

둥지처럼 알을 감싼 얇은 수십 개의 다리가 깊은 구덩이 벽면을 빼곡하게 채웠다. 마치 더 깊은 곳으로 떨어지기 전에 멈춰둔 것처럼.

빠각. 빠드득.

승지가 다리를 부수며 내려가자 반투명한 표면이 보였다.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 크기에 어울리지 않는 자그마한 인형 같은 것이 알 속에 있었다.

“어서와.”

매끄럽고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자신의 광대 성좌처럼 자그마한 형태를 취한 성좌 다나우였다.

“어째 인간일 때보다 작아졌는데 더 흉측해졌냐.”

“벌써 그런 말 하긴 이를 텐데.”

승지는 코웃음을 치며 발로 남은 다리마저 부러트렸다. 걸리적거리는 검은 다리가 알에서 몇 개 떨어져나갔다.

다나우의 몸이 아래쪽에서부터 서서히 떠올랐다.

“대역이 거기 있어?”

“네 알 바 아니지. 당장 거기서 튀어나와.”

승지가 바짝 알로 얼굴을 들이댔다. 반투명한 껍질 너머로 초상화와 똑같이 여유로운 미소를 지은 다나우가 보였다.

“네가 가둔 인간들. 책임지고 다 꺼낼 준비나 해라.”

“그건 이미 내 손을 떠났어.”

“개소리.”

승지가 겉면을 누르자 다리와 연결된 부분이 다 타고 남은 재처럼 부스러졌다.

“그 안에 있다고 안심할 수 있을 거 같냐?”

“와~. 무서워라. 무서운 협박이네. 도대체 대역이 같은 애가 어떻게 너랑 계약했는지 모르겠는걸?”

“너만 하겠냐.”

승지는 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기부터 꺼내 들었다. 일단 쪼개놓고 생각할 심산이었다.

그런데 무기가 제대로 휘둘러지기도 전에 광대가 앞을 막아섰다.

“잠깐만!”

승지가 찡그렸다.

“뭐하자는 거냐?”

“안 돼, 승지야! 지금 그걸 쓰면 다나우가 먹어버릴 거야!”

“뭐?”

“원래 그 무기는 다나우가 노리던 거였잖아!”

다나우를 만나 감상적일 줄 알았던 광대가 뜻밖에도 이성적인 소리를 했다.

앞서 박편호로 확인한 무기 효과에 잠깐 정신이 팔려있던 승지도 그 말에 퍼뜩 머리가 차가워졌다.

알 너머에 있던 다나우도 이죽거렸다.

“이제 와서 저것 하나 먹는다고 달라지지 않아.”

“그럼 왜 안 말리는데?”

광대가 주저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다나우가 비로소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더 강해져서 나쁠 건 없으니까.”

승지는 잠깐 광대가 다나우에게 지나치게 가까이 가는지 확인했다. 하지만 그는 조심스럽게 알과 거리를 둔 채 승지 옆에 머물렀다.

고개를 돌린 승지가 천천히 무기를 집어넣었다.

“회포는 나중에 풀자고.”

기왕이면 사후에 말이야.

당장이라도 다나우를 붙잡아 이 개짓거리를 끝낼 생각뿐인 승지가 쿵 표면을 쳤다.

금방 열리진 않겠군.

빨릴지도 모르는 마왕의 무기 대신 인류의 유산을 사용하기로 한 그가 손으로 알껍데기를 빠개기 시작했다.

까각! 끄드득!

승지가 눈앞에서 다리를 잡아 뜯고 알을 깨기 시작하는데도 다나우는 여전히 광대에게만 시선을 고정했다.

“반대역. 왜 여기까지 왔어? 이미 내 제안은 영영 거절한 것처럼 굴었잖아.”

“묻고 싶은 게 있어.”

광대는 맹렬하게 알에 달려드는 승지와 다나우를 슬픈 눈으로 번갈아 보았다.

“이 모든 일을 왜 꾸민 거야? 성좌가 되고 나선 모든 걸 다시 시작할 수 있었잖아. 그런 기회를 받았잖아.”

“맞아. 그래서 다시 시작했잖아.”

“시작이라고? 다른 사람들까지 끌어들인 이걸 시작이라고 말하지는 마! 또 마왕이 될 생각이잖아! 여기까지 다 날려버릴 셈이야?”

“그건 내 계약자가 원한 거야.”

“뭐라고?”

승지의 손안에서 다리 하나가 뚝 끊어졌다. 인내심도 함께 끊겼다.

“범윤오, 그 대가리에 총 맞은 새끼! 이 씨발 지가 마왕이 된다고 남은 인간을 다 죽이겠다고 깽판을 쳐? 육시럴 조져버리겠어!”

“승지야 화내는 것도 좋지만 조금만 천천히….”

“욕이 안 나오게 생겼냐고, 빌어쳐먹을! 야! 빨리 다른 인간들 어떻게 꺼내는지 말 안 해!?”

쾅쾅쾅!

승지가 성질을 못 이기고 알을 두드렸다.

그 난리 속에서도 다나우는 승지를 보는 게 아니라 광대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넌 나한테 할 얘기가 그거밖에 없어? 앞으로 우리의 미래가 여기 달렸는데 아직도 계약자 타령이야?”

“너야말로 내 말에 집중 안 해?”

“닥쳐.”

다나우가 까드득 뼈 부러지는 소리를 냈다.

그러자 방금전까지 승지가 뜯어내던 부분이 갑자기 확 벌어졌다. 마치 내장을 토하듯 안쪽 살이 밀려 나온 알이 꿈틀거렸다.

동시에 벽에 붙어 있던 다리가 빠른 속도로 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사각사각사각.

“다나우! 뭐하는 거야!”

“잘 봐.”

“뭘 봐.”

승지가 짜증스럽게 움직이는 다리를 꺾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리는 너무 많았고, 그가 다 부러트리기도 전에 알은 아래로 착지했다.

알이 끼어있던 구덩이가 얼마나 깊었는지, 도저히 일반적인 주택에서 볼 수 있는 깊이가 아니었다.

또한 꺼림칙하게도 밑바닥엔 깨진 알 조각이 즐비했고 벽에 또 다른 인간이 매달려있기까지 했다.

승지의 어머니와 아버지였다.

“…….헉.”

광대는 바로 알아보았다. 한 명은 직접 보았고 다른 한 명은 얼굴을 빼닮아 몰라볼 수가 없던 것이다.

“다나우! 당장 풀어줘!”

그가 급하게 소리쳤다. 정신을 잃은 두 사람은 간신히 숨만 붙어 있는 듯 했다.

저걸 본 승지가 어떻게 나올지 몰라 광대가 초조해졌다.

아무리 상황이 악화 되어도 승지가 다나우를 죽이겠다고 나서는 꼴만큼은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다나우가 무슨 생각으로 그들을 보여줬는지 모르겠으나 승지의 표정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부모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코웃음까지 쳤다.

“안 죽였네?”

“죽이길 바랐어?”

“그럴 리가. 네가 살려서 데리고 있을 인간이라는 생각을 못한 거지.

승지가 비꼬았다.

“아니면 내 눈앞에서 죽이고 싶던 거든가. 안 그러냐, 이 쓰레기야?”

“정말이지 놀랍네.”

다나우마저도 연이은 도발에 참지 못하고 대꾸했다.

“나야말로 대역이가 각성자와 계약한다면 너 같은 것보단 나을 거라고 생각 했는데!”

“그만해! 왜 두 사람이 싸우는 거야!”

졸지에 둘 사이에 낀 광대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이러지 마, 다나우. 네가 정말 마왕이 되어도 난 너에게 먹힐 생각 없어!”

뚝.

다나우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침묵이 불길하게 떠도는 걸 느끼면서도 광대가 빠르게 뒷말을 이었다.

“난, 난 아무리 그래도 남은 사람들을 잊고 마왕의 뱃속에서 편안하게 살아갈 수는 없어!”

“거짓말쟁이.”

“진담이야!”

“그럼 왜 성좌가 됐어?”

다나우가 광대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두근.

그가 걷자 알에서 심장 소리가 들려왔다.

“너도 결국 날 삼키려고 했잖아. 그러기 위해서 성좌가 된 거 아니야?”

“아냐… 난…….”

“무슨 쌉소리들이야, 시발.”

승지가 다가오는 다나우의 알을 걷어찼다. 쩍, 하는 소리가 나며 방향이 바뀌었다.

“네 과거 따윈 관심 없어. 진짜 범윤오 새끼가 어디 있는지 불어.”

옆으로 홱 쏠렸던 다나우가 승지를 노려보았다.

“아무것도 모르니까 관심 없다는 소리를 하는 것뿐이면서, 감히! 너도 범윤오와 똑같아!”

“어딜?”

승지가 발로 지그시 알을 밟았다. 그대로 터트리려는 것처럼 점점 체중이 실렸다.

“그딴 쓰레기처럼 마왕이 될 생각은 추호도 없거든?”

“좋아. 그럼 대답해봐. 네가 왜 지금 부모가 죽을 위기에 처해 있는데도 대역이보다도 걱정하지 않는지!”

그건 정말로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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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라면 99콤보까지 - 광대라면 99콤보까지-19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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