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상대가 전화를 받을 수 없어 (3)
승지가 잡아당긴 몽봉스의 머리가 땅 쪽을 향했다.
몽봉스는 미간이 홱 잡혀 올라가자 바동거리며 아래쪽으로 무게를 실어보려고 했다.
어쩌면 성공하고 다시 균형을 회복했을 지도 모른다.
승지를 노리던 네 번째 기둥이 조준미스로 몸통에 박아버리지만 않았더라면.
콰아앙!!
덕분에 기우뚱하던 몽봉스의 몸이 180도 뒤집어졌다.
자기가 자기 공격에 당해버리다니. 의도대로 되긴 했지만 어쩐지 기분이 떨떠름해졌다.
이게 정말 나보다 지능이 높다고?
어쨌든 승지에겐 호재였다.
콰가각!
세차게 바닥에 꽂힌 창이 승지와 몽봉스의 무게를 받아내며 콘크리트에 거대한 균열을 남겼다.
부러질 듯 말 듯 팽팽하게 휜 창대는 그대로 밀려나며 절반 가까이 파묻혔다.
승지가 목표한 공격은 여기까지가 하나였다.
[ 1콤보! ]
꼬챙이에 꿰인 빙어처럼 몽봉스의 머리가 바닥에 고정되었다.
꾸우웅!
꿀렁이는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뒤집어진 몽봉스의 밑에서 점액이 흘러넘쳤다.
털을 타고 흘러내린 점액이 점점이 떨어지면서 콘크리트에서 독한 타는 냄새가 피어올랐다.
“으. 역겹네, 진짜.”
[마무리 하자!]
승지는 고민하다가 부러진 검을 꺼냈다. 그나마 이게 뿅망치보단 공격력이 높았다.
머리가 고정된 상태로도 몽봉스가 다시 기둥을 움직였기에 승지가 재빨리 자리를 피했다.
기둥이 창을 박살내기 전에 남은 시간은 30초!
승지는 바로 공격을 개시했다.
푸욱!
[ 2콤보! ]
[ 3콤보! ]
[ 13콤보! ]
빠르게 찍는 동작을 반복하자 물렁하게 들어가던 칼에서 잘리는 느낌이 났다.
우드득!
그때 몽봉스가 내리친 기둥이 머리를 고정하고 있던 창을 박살냈다.
틈이 생기자마자 움찔하며 고개를 드는 몽봉스의 위에서 승지가 이를 악물었다.
프레임 컨트롤로 가속까지 했건만 30콤보까지 가지도 못하다니!
승지가 공격한 자리는 그대로 큼지막하게 뚫려있었다. 하지만 몽봉스는 전혀 타격을 받은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몬스터의 머리에 깊게 뻥 뚫린 검은 구멍이 섬짓하게만 보였다.
살을 잘라도 잘라도 데미지를 안 받는다니.
순간 짧은 생각이 승지의 뇌를 스쳤다.
글라세로의 던전에서 본 진흙 괴물은 겉은 끔찍했지만 그 안에 모두 핵이 있었다.
몽봉스란 놈도 크기만 클 뿐 그걸 작살내기만 하면 죽어버릴 지도 몰라.
“젠장!”
그럼 저기 안으로 직접 뛰어들어야 한다는 소리잖아!
승지는 그새 아물기 시작하는 피부를 역겹게 바라보았다. 딱 1초만. 그리고 곧장 안으로 뛰어들었다.
치이익!
“크윽!”
들어가자마자 무언가 녹는 소리가 나며 피부가 따가워지기 시작했다.
잠수하듯 허우적거린 승지는 곧 기분 나쁘게 몸에 감기는 털 사이로 유독 팽팽하고 가느다란 심줄을 찾아냈다.
그걸 따라가니 두툼하고 큰 핵이 손에 잡혔다.
찾았다!
“우우우!!!”
핵을 잡힌 몽봉스가 점액을 마구 분출하면서 저항했지만, 승지는 이미 핵을 아예 터트려버릴 기세로 손에 쥔 뒤였다.
“뒤져!”
콰득!
둔탁한 날이 뻑뻑한 살점을 오롯한 힘으로만 찍어버렸다.
쭈뼛 털이 곤두선 몽봉스가 경련하더니 그대로 축 늘어졌다.
[ 메인 미션 완료! ]
“쿨럭쿨럭…!”
순식간에 먼지처럼 바스라지는 몽봉스의 시체를 들이마신 승지가 기침을 했다.
시발. 진짜 글라세로는 최악이다.
부하들이 다 이 모양인데 본체는 얼마나 ㅈ같아질 생각이냐.
[ 믿을 수 없는 성취! 단독 사냥 보너스를 받습니다! ]
[ 10000 코인 획득. 성좌 연결도 10 퍼센트 획득. 추가 보상 스탯 분배치 3 획득. ]
[ 다음 미션 보상에서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등장합니다. ]
[ 성좌신이 당신을 눈여겨봅니다. ]
띠링 띠링!
연달아 뜨는 보상에 승지가 비로소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쿠웅!
몽봉스가 죽자 주인을 잃은 기둥이 힘을 잃고 비스듬히 무너졌다. 호흡을 가라앉힌 승지가 천천히 그 광경을 구경했다.
“그런데 저게 원래 기둥이 세 개였나?”
[저기 밑을 봐! 각자 다른 속도로 먼지가 되고 있잖아! 공격을 받았던 만큼 빨리 부서지나봐!]
“그래?”
승지는 자기가 첫 번째 기둥을 삼켜놓고 시치미를 떼는 성좌의 말을 굳이 의심하지 않았다.
어차피 본체도 잡았고 보상도 다 들어왔으니까.
“상태창이나 한 번 열어 봐.”
[알았어!]
[ 메인 미션 : 비어있음
서브 미션 : 비어있음
성좌 연결도 : 35 %
스킬 : 완벽한 콤보, 광대의 균형, 상단! 중단! 하단!, 광대의 축복, 프레임 컨트롤 … …, ???, ??? … 정령의 이해.
힘 32
민첩 19
지능 15
체력 18
행운 2 (1~99)
남은 스탯 분배치 : 3
상태 이상 : 글라세로의 저주 (51/100)
+용의 숨결 +숲의 가호
+지지않는 낮의 눈동자 적용 중 ]
“잠깐만. 저주가 오른 건 알겠는데 행운은 투자 안했는데 왜 올랐지?”
운 스탯엔 0이라는 최악만 피하려고 마지막으로 1 투자한 게 전부였다.
[그건 행운이라는 스탯의 특성 때문에 그래!]
“행운이 높으면 말 그대로 운이 좋아지는 거 아냐?”
[사람이 그냥 운이 좋을 수는 없잖아. 신이 개입해서 도와줬다는 뜻이지!
류의건이 원래 받았어야 할 아이템 열쇠장이의 고리 기억나?]
“물론이지.”
[아마 류의건의 행운 수치는 무지무지 높을 거야. 그래서 신도 자기가 주고 싶은 물건을 마음대로 줄 수 있는 거지. 사람은 그냥 와! 운이 좋았어, 라고 하는 식으로!]
“어, 그러면 방금 나한테 뜬 다음 보상 어쩌고 하는 얘기도 결국 신이 주는 선물이란 뜻이냐?”
[응! 성좌신은 각성자가 강하면 강할수록 더 많은 힘을 줘. 그래야 이세계를 빨리 복구할 수 있을 테니까!]
“흐음.”
성좌의 말을 요약하자면 결국 행운의 크기는 신의 관심도라는 뜻이다.
태생 행운 0으로 시작한 승지의 표정이 묘해졌다.
이거 각성하기 전까지 신은 나한테 전혀 관심 없었다는 뜻이네.
물론 이세계의 신이니 승지랑은 어떤 관심도 없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각성했을 때의 시작 스탯은 결국 이세계의 신이 결정한 것이니.
만약 현실에 신이 정말 있었어도, 승지에겐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소리다.
기분 뭣 같네.
쯧 소리를 낸 승지가 스탯이나 찍었다.
“아무튼 내가 행운에 투자해봤자 의미가 없다는 건 알겠다. 이번에 받은 분배치는 민지체에 나눠서 넣자.”
[알겠어!]
[그런데 난 승지한테 가장 필요한 게 등장한다는 것도 궁금한 걸! 다음 미션 보상이 기대 돼!]
그러고 보니 추가 보상으로 그런 게 떴었지.
승지는 막연하게 무기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갖고 있던 무기가 대부분 망가졌기 때문이다.
승지가 개박살이 난 무기의 흔적들을 슬프게 바라보았다.
아니지. 무기야 이번에 코인 들어온 걸로 사면되잖아.
지금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게 있다면.
승지는 맨손으로도 때려잡고 싶은 놈팽이를 하나 떠올렸다.
혹시 복수에 도움이 되는 아이템일지도?
* * *
청월량 길드 건물.
활짝 열려있는 빌딩 문으로 어수선하게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지난번 침입자 소동으로 흔적을 찾기 위해서 도장에 있는 각성자들이 계속 주변을 뒤져보고 있었던 것이다.
타악.
건물 앞으로 소리 없이 정지한 캐딜락에서 뒷문이 열렸다. 차에서 내린 사람을 본 도장 사람들이 허리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길드장님 오셨습니까!”
“상황은요?”
길드장이 뚜벅거리며 빠르게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딱히 발견된 게 없습니다.”
“목적도 불확실하고요.”
“분명히 알러트라고 언급했다던건.”
“그게… 때마침 습격자가 나타났던 다음 날 정말로 알러트가 나타나긴 했습니다.”
“뭐라고요?”
빠득. 순간 분노한 길드장의 힘에 바닥에 금이 갔다.
“길드장님! 실내입니다!”
“진정하세요!”
“…….사건 일어난 날짜 불러 봐요. 찾아보게.”
스마트폰을 꺼낸 길드장이 길드 연합에서만 공유하는 소식 계정을 확인했다.
알러트가 코스모스 센터에서 각성자 납치를 시도했고, 때마침 나타난 메인 미션 덕분에 그들이 발견될 수 있었다.
류의건이 최초 목격자이자 구출자라.
알러트가 연루되었다는 걸 확인한 후로 방송에 송출되었던 영상은 이 계정에서만 다시 볼 수 있었다.
청월량 길드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턱을 문질렀다. 자꾸만 그들에게 접근하는 알러트 때문에 자꾸만 신경이 예민해졌다.
게다가 이번엔 길드 건물까지 쳐들어왔다니. 어떤 간 큰 놈인지 낯짝이 궁금했다.
“청이는. 아직도 안 나왔습니까?”
“네. 던전에 계십니다. 계속 열쇠를 돌려가며 사냥 중이세요.”
“걔는 저번에 호위를 한다고 갔다가 돌아와서는 왜 계속 던전 뺑이만 치는 거야?”
탁탁탁. 마음이 급해진 길드장이 발끝을 떨었다. 경매장을 열어 유청에게 연락했지만 한창 사냥 중인지 전혀 반응이 없었다.
왜 너까지 연락을 안 받는 거니.
어쩐지 자꾸만 불길한 예감이 든다.
* * *
몽봉스를 잡은 승지는 거리 복구 전담반이 오기 전에 자리를 떠났다.
시체는 이미 가루가 됐지만, 괜히 남아있어서 좋을 게 없지. 승지는 다시 모자를 쓰고 사람들을 피했다.
다음 미션이 뜰 때까지 장비부터 구할 생각이었다.
“쓰으읍. 쓸 만한 무기가 없냐.”
성좌가 띄워준 경매장 창을 계속 훑어보고 있었지만, 마음에 드는 물건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일단 승지는 자신의 성향을 둔기로 보고 있었다. 섬세한 검법이나 원거리 무기는 배운 적이 없으니 잘 다룰 자신이 없었다.
실제로 검을 그냥 각목처럼 들고 팼다가 백정민한테 다 뜯겨버린 적도 있었으니까.
그냥 각목처럼 잡고 휘두르기 적당한 무기 없나. 너클 같은 것도 괜찮지.
기본적으로 무슨 무기든 때리는 맛이 좀 있어줘야 한다. 손맛 필수!
[무슨 소리야? 휘두르기 적당하고, 때릴 때마다 효과음까지 터지는 타격감 확실한 무기가 이미 있잖아!]
“아 뿅망치 안 쓴다고.”
질척거리는 성좌를 무시하며 승지가 창을 내렸다.
[ 오크의 쌍날 도끼 팝니다. 300 코인 ]
[ 중고 장비 급매물 삽니다. 24시간 항시 대기. 알림 뜨면 10분 내 대화. ]
[ 오랫동안 써왔던 무기인데 이번에 새 주인을 찾아봅니다. 찔러보기 안 받아요. ]
많은 거래 글 중에서 눈에 띄는 제목이 하나 보였다.
[ 판매품 : 긴저의 메이스
이번에 서브 미션으로 성좌 전용 무기를 얻어 오랫동안 함께해 온 무기를 팔려고 합니다.
상태 A급이고요. 꾸준히 관리해서 길도 잘 들어있습니다.
특수 무기라 구매하시면 사용법 자세히 알려드려요. 근접전에 강하신 분 추천. ]
경매글 밑엔 사진도 첨부되어 있었다. 철퇴 끝이 왕관처럼 각지게 튀어나와 있었고 모서리마다 징도 박혀 있었다.
“흐음, 크기도 괜찮고… 좋은데?”
[게다가 메이스라면 뿅망치랑 휘두르는 법이 크게 다르지도 않으니까 괜찮다! 연습용으로 딱이야!]
“헛소리? 당연히 뿅망치가 연습이고 이게 실전이지.”
거래하겠다고 연락하려던 승지가 멈칫했다.
“아, 근데 이름으로 거래하면 안 되잖아. 일단은 내가 죽었는데.”
[원하면 익명으로도 가능해! 신분을 감추는 것 정도야 미션하면서 비일비재하니까!]
“그러냐? 하긴 어차피 거래할 땐 만나야 하니까.”
익명으로 댓글을 달자 바로 판매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오늘 바로 나올 수 있다기에 바로 장소를 잡은 승지가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