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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 (2)

서명구가 안고 있던 책을 펼쳤다. 스킬을 쓰기 전에 류의건이 그를 제지했다.

“잠깐만요. 무슨 소리 안 들리십니까?”

“소리요?”

꾸드득.

저 멀리 지하에서부터 울리는 진동이 느껴졌다.

“그러고보니 정말 이상한 소리가 나네요.”

“수도 공사하나?”

“그런 얘기 못 들었는데요?”

어리둥절해 있던 그들 주변으로 흙더미가 솟구쳐 올랐다.

“흐억!”

“몬스터잖아?!”

“피하십시오!”

지렁이처럼 튀어나온 세 마리의 괴물을 보자마자 류의건이 칼을 빼들었다.

“케에에엑!!”

스릉.

비명 한 번 울릴 시간에 목을 따라 반듯한 선이 그어졌다. 정확하게 세 마리를 지난 검은 그대로 몸을 분리시켰다.

펑! 퍼펑!

류의건이 자른 몸통에서 튀어나온 핵을 최자림이 날렵하게 터트렸다. 순식간에 시체가 된 괴물이 꼬꾸라졌다.

놀라 굳어있던 서명구가 더듬거렸다.

“어, 어떻게 길드까지!”

“땅 밑으로 접근한 모양입니다.”

류의건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벌써 다른 곳으로도 괴물이 올라왔는지 순식간에 길드 전체가 소란스러워졌다.

최자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다? 메인 미션 떴어? 안 떴는데?”

“다른 사람의 미션에서 나타난 몬스터인 거 같아요. 하지만… 이렇게 전조 하나 없이 습격하다니…!!”

“각성자의 냄새를 맡을 줄 아는 것 같습니다. 정확하게 우리의 위치를 노리고 올라온 걸 보면….”

류의건이 땅에 뚫린 구멍을 응시했다. 당장은 하수구 소리가 더 들려오지 않는 걸 보니 여긴 아까 잡은 세 마리가 전부인 듯 했다.

최자림이 얼른 핵에 박혀있던 비도를 빼냈다.

“자자, 승지 씨 찾으러 떠나려면 다 잡고 가야 돼요! 우리 길드에 전투원은 나밖에 없거든요!”

“빨리 처리하겠습니다.”

류의건이 잠깐 머뭇거리곤 움직였다.

이런데서 시간을 지체한다고 그의 발목이 붙잡히진 않았다. 위험한 사람을 구하는 일은 당연하니까.

다만 나타난 몬스터의 종류가 마음에 걸렸다.

핵이 있다면 분명히 글라세로의 수하일 텐데.

바로 전에 글라세로의 군단장을 잡았는데 또 글라세로의 몬스터가 각성자를 습격한다니.

글라세로가 소환될 때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징조 같아서 불안해졌다.

* * *

[삼!]

승지는 긴저의 메이스를 들고 숨을 몰아쉬었다.

[이!]

벽에 기댄 등이 차갑게 눌려왔다.

[일!]

꾸드드득!

[지금이야!!]

바닥이 파헤쳐지는 소리와 함께 승지가 숨어있던 곳에서 뛰쳐나갔다.

“우악!”

승지는 비명을 지르는 각성자를 무시하고 바로 메이스를 휘둘렀다.

쩌억!

[ 1콤보! ]

[ 2콤보! ]

때릴 때마다 철퇴가 쩍쩍 달라붙었다. 매섭게 때려 박히는 공격에 버티지 못한 핵이 내부에서 터져나갔다.

“뭐, 뭐에요?”

“미션 중입니다.”

“아휴, 조심 좀 하시지.”

납득한 각성자가 지나가는 동안 승지는 때려잡은 꼼장어 괴물을 보며 어금니를 지그시 눌렀다.

이번에도 미션 완료 창이 뜨질 않는다.

대체 몇 놈을 더 잡으라는 거야?

“한 마리가 아닐 거라곤 생각했지만… 염병할.”

이 괴물 놈들은 숨어 있다가 각성자를 습격할 때만 올라왔다.

심지어 여러 마리가 같은 대상을 노리는 일도 없어서 일일이 찾아다니며 조져야 했다.

차라리 다른 각성자들이 각자 괴물을 잡고 미션이 완료되는 걸 기다리는 게 더 빠를 지경이다.

“뭔가 잘못됐어.”

상식적으로 도시에서 이딴 괴물들이 땅굴을 파고 다니는데 진작 건물이 무너지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였다.

아직 지반이 멀쩡한 걸 보면 숫자가 그리 많지 않다는 뜻인가?

게다가 괴물들이 무슨 기준으로 각성자를 습격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글라세로의 저주에 걸린 인간을 찾아 공격하는 것치고는 너무 무작위로 튀어나왔다.

난 미션이 뜨고 1분 정도 지나자마자 바로 공격받긴 했지만. 혹시?

“혹시 본거지가 따로 있는 건가?”

[응? 본거지?]

“글라세로가 보낸 추적자가 연달아 잡혀버린 상황을 생각해봐. 걔도 일단 마왕이니까 쫄따구 싸움을 할 거 아냐? 센 놈을 보냈다가 안 되니까 쪽수로 밀어 붙여보려는 생각일 지도 몰라.”

[하지만 우리가 만난 괴물은 그렇게 많지 않았잖아?]

“바퀴벌레가 한 마리만 보이면 밖에서 온 거지만, 몇 마리씩 계속 보이면 집에다 알을 깠다는 뜻이지.”

단호한 승지의 말에 성좌가 경악했다.

[으악 설마…! 이세계에서 계속 괴물을 보내긴 힘드니까 여기서 번식을 시킬 생각이라는 거야!?]

“바로 그거야!”

[꺄아아악! 징그러워!!]

아무리 생각해도 짚이는 게 그것뿐이거든?

승지는 점점 자신의 가설을 확신하게 되었다.

“왜 서브 미션에서 잡아야 될 몬스터 숫자가 안 떴겠냐고. 계속 생산되고 있는 중이니까!”

[우웨에엑!]

“그래, 역겨워. 결국 이 미션은 괴물 새끼가 어디다 알을 깠는지를 먼저 찾아내야 되는 거였어.”

알인지 새끼인지. 꼼장어가 뭘 낳는 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괴물들은 지하로만 다니니까 분명히 번식하는 곳도 지하에 있을 거야.”

[음… 음… 그러면 처음 이세계에서 넘어온 장소가 가장 유력하겠다!]

“게다가 콘크리트는 못 뚫는 놈들이니까 짚이는 곳은 공터, 공사장, 공원 같은 곳인가.”

[바닥이 흙으로만 된 곳이구나!]

“거기에 물소리까지 나면 백 프로다.”

일단 목적지를 설정하자 자신이 있던 곳과 지나온 곳까지 경로가 머릿속으로 쭉 그려졌다.

막 알을 깠다면 아직 괴물을 멀리까지 보낼 시간이 안 됐을 거다.

이 근방에서 글라세로와 관련된 각성자를 공격할 수 있을 만큼의 거리는 확보하고, 새끼를 까는 동안 발각되지 않을 장소라면?

여기 오는 길에 있던 공사장!

* * *

한편 미스핏 길드는 류의건의 도움 덕에 수월하게 꼼장어 괴물들을 처리할 수 있었다.

“다 잡았나요?”

“더는 없습니다!”

손쉽게 적을 해치웠는데도 류의건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괴물들이 유난히 글라세로의 저주에 걸린 환자들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글라세로의 저주를 노린 괴물들이었다.

시간이 없다. 저들에게 채승지가 당하기 전에 구해내야 하는데!

빠아앙!

그 때 몬스터를 잡자마자 쌩하니 사라졌던 최자림이 덜덜거리는 차를 끌고 돌아왔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바로 달려보죠!”

“성좌신이시여….”

최자림이 운전석에 있는 걸 본 서명구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최, 최자림 각성자님! 제가 운전할 겠습니다!”

“노농, 시간이 없다! 어서 올라타시죠!”

최자림이 활짝 열린 창문으로 팔을 내밀고 아래쪽을 텅텅 쳤다.

아직 지난번 사고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차는 그대로 한 번만 더 박았다간 바로 폭발할 것처럼 생겼지만.

류의건은 무시하기로 했다.

“최대한 빨리 부탁드립니다!”

“아악, 류의건 각성자님 그 말만은!”

“최대! 빨리! 촤하핫, 접수했습니다!”

류의건과 서명구가 올라타자마자 최자림이 미친 듯이 액셀을 밟았다. 서명구는 기절할 것 같은 얼굴로 책을 파라라락 넘겼다.

채승지의 위치를 빨리 알아내는 것만이 그가 살 길이었다.

* * *

철컹!

공사장의 가벽을 건드리자 철조망이 따라 흔들렸다. 당연히 공사장의 출입구는 잠겨있었다.

자물쇠야 쉽게 부술 수 있었지만 혹시 다른 사람한테 들키면 귀찮아지겠지.

타악. 훌쩍 문을 뛰어넘은 승지가 고요한 공사장을 둘러보았다.

[일단 주변에 다른 사람은 없어! 내 눈으로도 안 보여!]

“좋아. 들리는 건?”

[희미하게 나긴 하는데… 괴물이 많이 몰려있으면 소리가 더 크게 나지 않을까?]

“으음.”

수맥 탐지기라도 사올 걸 그랬나.

수맥… 아니 괴물 맥이 흐르는 곳을 찾습니다. 발견 시 기절 가능.

승지는 천천히 주변을 돌아다니며 귀를 기울였다.

한 쪽에 주차된 중장비들과 적당히 쌓아둔 부자재들은 소리도 없이 얌전했다.

공사장은 이제 막 철거가 끝나고 바닥부터 다지는 단계였는지 뼈대조차 올리지 않아 공사장 대부분이 공터였다.

걸을 때마다 땅 밑에 괴물이 있다고 생각하니 무지하게 꺼림칙하구만.

쿠르릉.

탐색하며 집중하니 희미하지만 거대한 물소리 같은 게 들렸다.

찾았다.

수맥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승지가 소리의 근원을 추적했다.

다가갈수록 점점 커지던 소리는 마침내 각성자가 아니더라도 소음이라고 인식할 만큼 커졌다.

쿠우우우우우.

“여기겠지?”

승지가 평평한 바닥을 발로 몇 번 굴러보았다. 생각보다 깊게 들어갔나. 소리는 확실한데 땅이 꽤 단단하다.

승지는 최초로 괴물이 파고든 구멍을 찾으려고 주변을 뒤져보았다. 다시 메꿔놓기라도 했는지 괴물이 파고들어간 흔적은 없었다.

[안되겠다! 우리가 직접 파보자!]

“진짜 삽질하네.”

헛웃음을 지은 승지가 삽 하나를 주워왔다.

각성자라 스탯도 올라갔겠다. 승지는 마음 놓고 푹푹 팠다. 젤리처럼 떠진 구덩이는 순식간에 정수리를 훌쩍 넘길 만큼 깊게 들어갔다.

그러나 들려오는 진동만 더 커져가고 지반이 단단해져서 여전히 괴물이 있는 곳까진 내려갈 수가 없었다.

“에라이!”

흙투성이가 된 승지가 삽을 내팽개쳤다. 까라랑 소리를 낸 삽이 운명을 달리하며 부러졌다.

“이걸론 안 된다!”

[어쩌지! 땅 파는 건 공격도 아니라 완벽한 콤보 스킬도 쓸 수 없잖아!]

“땅에 주먹질 아흔아홉 번을 하는 것도 나름대로 신선하지 않을까?”

[무슨 소리야~! 그러면 콤보가 안 뜨잖아~!~!]

“왜 난 땅을 공격할 수 있어. 격겜에서도 다운기 쓰면 바닥이 박살난단 말이지.”

[승지야, 많이 힘들면 좀 쉬어.]

헛수고에 살짝 눈이 돌아버린 승지가 중얼거렸다.

“이럴 땐 일단 잘하는 놈을 따라 하는 거지.”

랭킹 2위가 했던 짓이면 대충 보장된 미끼다.

승지가 흙투성이가 된 손가락을 이로 물어뜯었다.

[승지야!]

“냄새 맡으면 알아서 올라올 거야.”

살을 비틀자 검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류의건의 피로도 몬스터를 유인할 수 있었으니 글라세로의 저주가 듬뿍 밴 자신의 피라면 분명히 반응이 올 거다.

성좌가 화를 냈다.

[승지 너 정말! 흙 묻은 손을 입에 집어넣으면 어떡해! 피를 낼 거면 손을 씻고 해야지! 지지야!]

“…그게 문제냐.”

[중요한 문제거든!]

구구구궁.

아웅다웅할 틈도 없이 대지가 떨리기 시작했다. 승지가 서둘러 구덩이로부터 떨어졌다.

그런데 구덩이에서 시작한 균열은 멈추지 않고 늘어나더니. 운동장만한 크기까지 넓어지기 시작했다.

…설마 이 일대가 전부?!

다급히 가장자리까지 뛰어가는 승지의 뒤로 괴물들이 꿈틀거리며 솟아올랐다.

[뜨아아아악!]

성좌가 비명을 질렀다. 솔직히 승지 자신도 보자마자 소리를 지를 뻔했다. 이 미친 괴물들아.

통 안에 미꾸라지 백 마리를 집어넣고 꿈틀거리는 장면을 두 배로 징그럽게 만들면 딱 지금 광경과 비슷할 것이다.

어우 씨. 펄떡거리는 거 봐.

제 몸으로 다른 괴물들을 짓누르는 줄도 모르고 계속 올라오려고 버둥거리는 꼴이 정신건강에 심히 해로웠다.

지렁이 한 마리 정도야 귀엽지만 저렇게 모아놓으니 정말 끔찍하군.

“이걸 어떻게 잡냐.”

굳이 저 밑으로 내려가 99번을 때려도 되겠지만, 완벽한 콤보를 채우기 전에 잡아먹힐 게 뻔했다.

“그냥 확 불 싸질러 버리고 싶네.”

자고로 벌레 박멸은 뿌리부터 싹 뽑아야 한다. 초가삼간 태워먹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지.

옆에서 너무 징그러워서 히끅거리던 성좌가 냉큼 찬성했다.

[태워, 태워! 태워줘! 근데 쉽게 불이 붙을까?]

꼼장어 괴물은 피부가 축축하게 유지되는 액체가 흐르는지 겉이 미끈거렸다. 당연히 잘 타지 않겠지.

그들이 펄쩍거리며 올라오려고 할 때마다 역겨운 액체가 튀는 걸 흐린 눈으로 보고 있던 승지가 중얼거렸다.

“올라오면서 흙까지 잔뜩 묻었으니 더 잘 안 타겠지.”

[그러니까!]

“그러니까. 더 태우고 싶다고.”

이세계 괴물들한테 현대 문명의 썩은 물, 석유 맛을 보여주고 싶다 이거야.

승지의 시선은 공사장 한 쪽에 놓인 노란색 탱크에 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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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라면 99콤보까지 - 광대라면 99콤보까지-5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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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라면 99콤보까지 - 광대라면 99콤보까지-5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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