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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 잡아먹고 먹고 먹고 먹고 (2)

서명구는 다나우가 범윤오의 성좌라는 것까진 이해했다.

하지만 어차피 성좌의 위치가 곧 각성자의 위치인데 다시 성좌만 찾으라는 요구는 이해하지 못했다.

“어차피 둘은 똑같은 거잖아요?”

“달라. 설명하기 복잡한데.”

승지의 머릿속에는 직감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잔상이 남아있었다.

때때로 뇌는 자신이 알아차리기도 전에 무의식적으로 정보를 종합한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따라서 승지가 지금 납득하는 과정은 이미 무의식에서 일어난 일을 다시 의식 차원으로 재현하는 것에 불과했다.

범윤오는 성좌를 훔치는 놈이다.

그렇다면 다른 인간들에게 성좌를 잠깐 줬을 때 그의 성좌는 무엇이 되는가?

광대 성좌가 유량에게 흡수될 뻔 했을 때 그도 잠깐 승지와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각성자가 성좌에게 속하는 게 아니다.

성좌를 훔치고, 잃어버리고, 새롭게 가질 수 있다면.

성좌가 각성자에게 속하는 것이다.

“다나우라는 성좌를 찾아봐.”

“저기 그런데 성좌를 찾을 수 있는지는 둘째 치고 제 스킬을 쓰려면 이름뿐만 아니라 얼굴도 알아야 합니다.”

“뭐? 그냥 설명으론 안 돼?”

“발동 조건이라….”

“그건 나한테 있어!”

갑자기 광대가 인벤토리를 열더니 떨그렁하고 커다란 초상화 하나를 떨어트려놓았다.

예전에 이세계에 갔을 때 보았던 다나우의 초상화였다.

“너 이걸 언제 훔쳤냐?”

“비, 빌린 거야!”

“어쨌든 해보겠습니다!”

서명구가 초상화를 들어서 제대로 한 번 보고는, 눈을 감았다. 그가 손을 올리자 펼쳐진 책에서 실처럼 꿀렁이는 빛이 올라오더니 곧 한 점을 나타냈다.

“떴냐!”

“됐다!”

서명구가 황급히 책을 원형 지도로 만들어 띄웠다.

“저, 정말로 검색이 될 줄이야!”

“어디야, 저기가?”

지명을 읽던 서명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서울인데요?”

“미친.”

승지가 오함마를 짚으며 급하게 일어섰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지금까지 코앞에서 숨어있었다 이거냐?

“젠장, 빨리빨리 일어나! 또 공항까지 가야 되잖아!”

“승지 씨! 기다리세요!”

사라설이 급하게 인벤토리를 열었다.

“장소가 서울이라면 저희 길드한테도 열쇠가 있으니까요!”

눈에 익숙한 글라세로 던전 열쇠가 달랑 사라설의 손에 잡혀 나왔다.

“와, 씨! 잘 됐네! 당장 문 열라고 해!”

“이래서 길드가 좋은 거죠!”

“표원 씨? 지금 제 말 들리시죠? 글라세로 47번 던전으로 길드원 한 분만 빨리 넣어주세요!”

사라설이 급하게 연락하며 던전 열쇠를 비틀었다.

곧 철퍽거리며 열리는 던전 문을 손으로 잡고 벌린 승지가 성급하게 뛰어들었다.

얼마 달리지 않아 던전 속에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미스핏 길드원이 보였다.

“채승지 님? 대체 무슨 일…?”

“설명은 나중에!”

승지가 순식간에 일본과 한국을 건너뛰었다. 미스핏 길드원들도 바로 뒤따랐다. 사라설이 숨 가쁘게 달리며 울상이 되었다.

“으아, 이거 밀입국인데!”

“원래 나라로 돌아가는 건데 뭐 어때!”

“헉, 박편호 길드장님? 왜 그런 꼴로…?!”

“손님 받아라, 표원아!”

최자림이 휘파람을 불며 박편호와 서명구를 번갈아 반대쪽 던전 문으로 던져 넣었다.

쿵! 콰당!

“크억?!”

자료실 한 쪽으로 밀려난 박편호가 벽에 머리를 부딪쳐 기절했다. 완전한 일반인이 최자림 손에 잡혀버린 결과였다.

“아니, 이게 무슨.”

엉겁결에 최자림 손에 붙들려온 길드원도 던전에서 빠지면서 바로 문이 닫혔다.

그러거나 말거나 승지는 곧바로 프레임컨트롤을 사용했다.

콰당탕!

잔상 같은 바람이 일더니 승지의 모습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춰버렸다. 당황한 서명구에게 바로 대화창이 떴다.

“아까 위치 전송해!”

빠르게 목표한 장소로 가고 있는지 바람 소리가 엄청났다. 허둥지둥 정신을 차린 서명구가 얼른 바라는 대로 해주었다.

그 덕에 승지는 주소 마지막 자리까지 확실하게 전달받을 수 있었다.

“…이 돌아버린 새끼가.”

“왜? 왜 그래?”

비로소 승지와 단 둘이 된 광대가 마음 놓고 머리를 내밀었다. 그러나 승지는 뚫어져라 상태창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서명구가 보낸 주소가 지나치게 눈에 익었던 것이다.

“빌어먹을, 내 옛날 집이다.”

“응? 어디가? 승지랑 나랑 처음 만난 곳 말이야?”

“아니.”

승지가 이를 뿌득 갈았다.

“내가 태어난 곳.”

“……!”

광대가 숨 막힌 소리를 냈다.

“다나우가 왜 승지네 집으로 가?”

“모르지. 가족을 인질로 잡을 속셈인지.”

승지가 냉정하게 읊조렸다.

“근데 잘못 골랐다. 이제 와서 가족 가지고 협박해봤자 별로 잘 먹히진 않을 거거든?”

“설마…!”

광대는 다나우가 얼마나 가족을 아꼈는지 떠올리려고 애썼다. 그런데 정작 머릿속에 나타난 건 자신을 보는 다나우였다.

함께 살아가자고 웃던 얼굴이 아직도 꿈만 같았다.

광대가 급하게 머리를 저었다.

그 다나우는 죽었어. 지금 다나우는 마왕이 되려고 하는 성좌 다나우다.

“범윤오야. 범윤오가 거기 있을 거야. 승지네 가족을 이용하려면 승지랑 같은 사람이어야만 하잖아!”

쥐어짜낸 억지 논리였으나 승지는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어차피 다나우나 범윤오나 그에겐 별다른 차이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부하들에겐 달랐던 모양이다.

“…이것 봐라?”

승지는 지금까지 가속해오던 프레임을 서서히 늦췄다.

원래 자신이 알던 골목에 인간들이 즐비하게 늘어서있었다.

“니들은 폭탄도 못 된 쫄따구들이냐?”

“네가 올 거라는 걸 보스가 말해줬지.”

하나같이 흉흉한 기세를 풍기는 인간들이었다. 그러나 승지는 코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간부들은 서로 마왕이 된다고 지랄, 잡혀간 사람들은 폭탄으로 만들어서 지랄. 니들은 무슨 지랄을 할 거냐?”

“네가 죽기 전에 성좌를 가져오라는 명령이다.”

“스킬도 없는 네깟 것들이?”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말에 그들의 관자놀이가 꿈틀거렸다.

“지금 우리가 점거하고 있는 장소가 어디인지 모르나? 가족이 무사하길 바란다면 지금 당장 항복해라.”

“싫은데?”

승지가 어깨에 지고 있던 오함마를 한 손으로 잡고 콘크리트 바닥에 긁었다.

“이미 잡혔으면 어차피 좆된 건데 내가 너네들 말을 왜 들어야 하지?”

“가족의 목숨이 아깝지 않나!”

“잘못 골랐어.”

승지가 피식 웃었다.

“난 가족 같은 거 필요 없거든.”

허세인지 진담인지 지켜보던 인간들이 하나같이 미간을 찡그렸다.

승지는 오히려 더 크게 입 꼬리를 찢었다.

“그냥 쳐!”

휘익! 떠엉!

오함마를 크게 휘두른 승지가 그대로 머리를 찍었다.

[ 1콤보! ]

“크악!”

옆머리에서 피가 분출하며 제일 앞에 있던 인간이 쓰러졌다. 그들이 흠칫하는 게 보여 승지는 터무니없이 폭소할 것만 같았다.

“쫄지 마. 새끼들아. 어차피 포션 하나면 살아날 거. 아님 병원에라도 데려가든지.”

“각성자들은 인간을 상대로 잘 싸우지 못할 거라더니 틀렸군.”

주춤거리던 그들이 큼지막한 주먹을 들어올렸다.

그런데 그 주먹의 크기가 비정상적으로 컸다.

거의 얼굴만한 주먹을 본 승지가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뭐냐, 그게.”

“다나우가 약속한 대가를 치르기 전까진 페널티를 감당해야 한다. 우리의 마왕님에게 바치기 위하여.”

“이 새끼들, 인간도 아니었네?”

승지의 말을 기점으로 그들의 뼈가 가시처럼 부풀었다. 간신히 인간의 형상을 유지하던 덩치들의 몸이 순식간에 망가졌다.

찢어진 인간 가죽을 몸에서 튀어나온 가시에 매단 괴물들이 점처럼 새까만 눈을 드러냈다.

“저건…! 가시 트롤이야! 부르그골의 부하들이잖아!”

광대는 거의 기절할 것 같았다.

강대한 드래곤의 마왕인 부르그골은 쉽사리 힘을 빌려주지 않았다. 그런데 다나우는 기어코 다른 마왕들을 데려온 것으로도 모자라 부르그골까지 끌어들인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막연히 승지라면 이번 일도 잘 해낼 거라고 생각하던 광대마저도 심장이 콱 조여들었다.

아찔하리만큼 큰 광대의 절망을 눈치 채지 못한 승지가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럼 더 좋지!”

승지가 남아있던 일말의 주저함을 깡그리 날려버렸다.

상대가 괴물처럼 보일수록 자신에겐 너무나 유리했다. 왜냐하면 힘은 그대로고, 자신은 강한 상대가 필요했으니까!

“어디 저 놈들은 대가리를 몇 번 두드려야 깨지나 볼까?”

승지가 힘껏 어깨를 당겼다. 아까 그에게 얻어맞았던 인간도 곧 가짜 피를 흩뿌리며 일어났다.

가시 트롤이 뿌득거리며 움직일 때마다 돌로 된 담장에 금이 가며 무너져 내렸다.

애애애애앵!

어디선가 미션 대피 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하자, 승지는 그걸 시작종으로 받아들였다.

“먼저 간다!”

따앙!

바닥에서부터 퍼 올리듯이 오함마를 올려친 승지의 팔을 타고 진동이 퍼져나갔다.

일부러 가시가 없는 턱을 노렸는데도 마치 바위를 때린 듯이 단단했다.

“소용없다.”

솥뚜껑만한 양 손이 곧장 무기를 으깨려고 들었다.

끄드드득!

그러나 가시 트롤이 좀처럼 우그러지지 않는 쇠뭉치 부분을 누르는 순간, 덫이 튀어나오듯 뾰족한 가시가 분출했다.

“아, 속았냐? 그거 인간이 만든 게 아니라 니들 마왕이 주고 간 거거든.”

“…! 이건…!”

“으랏차!”

승지가 그대로 양쪽으로 무기를 휘둘러 완전히 가시 트롤의 손바닥을 찢어놓았다.

“크르르륵!”

고통 섞인 신음이 터져 나왔다.

“왜? 새 가시는 마음에 안 드냐?”

승지가 킬킬거렸다. 망치 양 쪽으로 튀어나온 가시 때문에 마왕의 무기는 마치 곡괭이처럼 보였다.

좋지, 좋아. 하나씩 정수리를 찍어버리게.

가시 트롤들이 아까보다는 경계하는 기색으로 승지에게 다가왔다.

“그런데 열 받네?”

승지가 무심하게 오함마를 휘두르자 바로 가시 트롤의 팔에 가시가 찍혔다.

아마 그 정도는 별 타격이 없으리라 판단한 가시 트롤이 무기를 받고 승지를 공격하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승지는 오히려 그가 받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찍은 그대로 힘을 실어 상체를 숙였다.

빠악!

똑같이 가시에 찔리는 걸 무시한 채 가시트롤의 옆얼굴을 잡은 승지가 머리에 매달리듯 트롤의 가슴에 발을 디뎠다.

“무기만 무서워하지 말고 나한테도 쫄아야지, 이 잡것들아.”

뻐억!

그대로 승지의 주먹이 연달아 가시 트롤의 얼굴에 내리꽂혔다.

“끄르륵!”

숨구멍을 제대로 직격했는지 거품이는 소리가 났다. 아직 콤보가 제대로 쌓이기 전이라 제대로 짓이기기도 전에 가시 트롤의 손이 위로 쳐들렸다.

속으로 혀를 차며 승지가 다시 후퇴했다. 물론 박혀있던 망치를 빼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무기가 있으면 콤보 연계가 훨씬 여유롭거든.

승지가 분노해서 쿵쿵 달려오는 가시트롤의 이마로 망치를 던져버리며 주먹을 쥐었다.

“한꺼번에 덤벼! 콤보 끊기니까!”

겹겹이 파도처럼 덮치는 트롤들을 향해 프레임 컨트롤을 갈기며 승지가 공격을 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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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라면 99콤보까지 - 광대라면 99콤보까지-18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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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라면 99콤보까지 - 광대라면 99콤보까지-18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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