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남의 떡 뺏어 먹기 (2)
[비겁하게 다른 사람의 노력을 가로채가다니! 정말 용서할 수 없는 인간이야!]
승지가 쫓아가는 동안 성좌는 열심히 분통을 터트렸다.
[우리가 대신 복수해주고 보상을 가져가자!]
“복수는 모르겠지만 보상을 돌려줄 생각은 없다는 점에서 너 좀 나랑 맞는다.”
[헤헷. 난 무조건 승지 편이니까~!]
승지가 갈림길 앞에서 멈췄다.
“근데 그새 안 보이네. 어디로 쨌지?”
[멀리 가진 못했을 거야!]
“넌 추적 스킬 이런 거 없어?”
[스킬은 미션으로 얻어야지! 흐음, 일단 찍어볼래?]
“나 운 개털인 거 알잖아.”
[맞다. 그럼 내가 찍어줄게, 오른쪽으로 가자!]
승지가 오른쪽으로 뛰어갔다.
확실히 자신보단 성좌의 운이 좋은지 바로 도망쳤던 각성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역시 못 쫓아오는구만, 정의로운 새끼.”
낄낄거리며 손안에 있는 물건을 파헤쳐보던 막타범이 골목 입구에 나타난 승지를 발견했다.
“응? 넌 뭐냐?”
승지를 알아본 막타범이 눈썹을 찡그렸다.
“아까 뿅망치질 하던 미친 새끼 아냐?”
“하나 진짜.”
평생 들을 미친 소리를 오늘 다 듣는다.
“욕 좀 작작해라, 이 ㅆ발 새끼야.”
[승지야, 너부터 하지 말아야지.]
“난 해도 돼.”
성좌랑 말하느라 자문자답하는 승지를 본 각성자가 헛웃음을 내뱉었다.
“웃기는 새끼네 이거.”
“근데 왜 혼자냐? 같이 있던 놈은?”
“이게 날 언제 봤다고 말을 까? 죽고 싶어?”
“그새 싸우고 찢어졌냐? 팀워크 한번 끝내준다, 야.”
[와 정말 서로 하고 싶은 말만 한다.]
둘의 소통력에 성좌가 감탄했다.
[저렇게 싸우는데 어쩜 이렇게 둘 다 대답해줄 생각이 없지?]
“아, 좀 시끄러!”
버럭 소리를 지른 승지가 뿅망치를 내밀었다.
“아무튼 막타 먹은 건 축하하는데 내가 다시 네 뒤통수를 쳐야겠다. 어차피 너도 훔친 거니까 유감없지?”
“뭐야?”
막타범이 뿅망치와 승지의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폭소를 터트렸다.
“푸, 푸하하학! 이거 진짜 돌은 놈이네.”
막타범의 눈이 음흉해졌다.
“누가 누굴 쳐? 정신이 나가려면 곱게 나갈 것이지, 얌전하게 봐주려고 해도 이 형님이 거슬려서 안 되겠네.”
[우웩! 멘트가 저게 뭐야! 승지야, 해치워버려!]
“너 어떻게 멘트라는 말도 아냐?”
성좌의 말이 더 황당한지 승지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 비열하게 웃음을 흘리던 막타범이 달려들었다.
“가만히 있어!”
표정 하고는.
확실히 멘트가 더럽긴 했다.
승지는 쿵쿵거리며 뛰어오는 막타범의 공격을 피했다.
생각보다 속도가 느렸다.
약한 놈인가?
잠깐 그렇게 착각한 순간, 막타범의 공격이 벽에 직격했다.
콰아앙!
충격을 받자마자 요동치던 시멘트로 발라진 벽이 순식간에 박살 났다.
“헐.”
무식하게 힘만 투자한 놈이잖아.
어쩐지 뭘 믿고 킹고블린한테 달려드나 했더니, 류의건이 모든 공격을 대신 방어하는 동안 치명타를 먹일 만큼의 능력은 있는 모양이었다.
그마저도 대부분 류의건이 체력을 떨어트려 놓아서 가능했겠지만.
하긴 각성자라면 저 정도는 해야지.
[승지야! 네 스탯은 아직 일반인이라는 걸 기억해!]
상태창이 다급하게 튀어나왔다.
나도 알아!
승지가 급히 몸을 피한 순간 상대의 주먹이 상태창을 뚫고 지나갔다.
“오오, 잘 피하네?”
머리 위에서 비웃는 걸 본 승지가 가볍게 뿅망치를 올려 쳤다.
뾱!
“크악!”
[ 1콤보! ]
정확하게 사타구니 아래쪽을 강타한 뿅망치에 막타범이 놀라 소리쳤다.
그러나 백이면 백, 차이면 끔찍한 고통을 선사할 부위가 생각보다 멀쩡했다.
그래봤자 뿅망치로 맞은 거니까.
“커윽, 미, 미친! 이거 완전 또라이 아냐?”
“으, 나도 후회중이다 지금. 괜히 거길 때렸나 찝찝하게.”
승지의 혼잣말에 아래쪽을 부여잡으려던 막타범의 얼굴이 벌개졌다.
“이게 죽고 싶나!”
부웅 휘두른 공격을 피해 승지가 뿅망치 끝을 닦듯이 계속 내리쳤다.
뾱뾱뾱뾱!
[ 2콤보! ]
[ 3콤보! ]
[ 4콤보! ]
[ 5콤보! ]
경쾌한 소리는 좋았지만 때리는 사람도 맞는 사람도 어이가 없긴 마찬가지였다.
“아니.”
뾱!
“너 아까부터.”
뾱!
“진심이냐?”
뾱뾱!
애써 신중한 표정을 유지하려던 승지의 입술도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젠장, 소리가 너무 웃기잖아.
유일하게 신난 건 광대 성좌뿐이었다.
[잘한다! 채승지! 잘한다!]
“잘하긴 뭘 잘해?”
둘 다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공격하고 피하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틈이 보이면 승지가 뿅망치를 내리쳤다.
상대는 피하기도 쪽팔린 지 그냥 그걸 다 맞아줬다.
“쥐새끼 같이 도망치기는!”
“쥐라고 하지 마라. 나 오늘 그 말에 예민하거든?”
다행히 빠르게 피하고 때리면서 콤보가 끊기지는 않았지만 대신 진하게 현타가 왔다.
“나 진짜 이걸로 계속 때려야 하냐?”
제발 주먹이라도 쓰게 해줘.
승지의 간절한 바람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안 돼 안 돼~. 우리의 목표는 99콤보까지 가는 거야. 순수한 스탯에선 승지 네가 너무 밀려!]
그럼 진작 스탯을 올려주던가.
당장 집안을 물바다로 만들어서 쫓겨날 위기를 만든 원흉이 저러니까 더 빡치네.
어쨌든 뿅망치로 때리는 덕분에 상대가 완전히 방심하기는 했다. 공격 자체를 피하려고 들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힘의 차이는 압도적이었다.
빠악!
[승지야!!]
“크윽!”
제대로 얻어맞은 승지가 그대로 밀려났다.
와, 충격이 뼛속까지 스며드네!
내 콤보에 비하면 진짜 묵직한 한 방이다.
바닥에 털썩 쓰러진 승지를 보며 막타범이 침을 찍 내뱉었다.
“아까부터 혼잣말은 조지게 하네.”
“…….”
“야, 죽었냐?”
“죽기는, 시발.”
“허, 말을 하네? 미친놈은 매가 약이라는데.”
“그래? 난 내가 맞고 자라서 미친 것 같은데!”
승지가 바로 일어나 달려들었으나 그래봤자 공격 수단이 뿅망치다.
뾰뵥! 뾱!
“나 참.”
끝까지 뿅망치를 들고 달려드는 승지를 본 막타범이 가볍게 그를 걷어찼다.
꽈앙! 탕!
아, 씨 하필 쓰레기통에다가.
구부러진 철판에 부딪친 머리에서 기어코 피가 흘러내렸다.
“별 거지 같은 게.”
더 걷어차려던 막타범은 축 늘어지는 승지의 팔을 보고는 멈칫했다.
실수로 진짜 죽인 건 아니겠지?
그랬다간 당장 페널티가 뜰 텐데. 다행히 기절만 했는지 상태창이 조용했다.
“앞으로 미치려면 곱게 미쳐라.”
막타범이 선심 쓰듯이 내뱉고 몸을 돌렸다.
후우.
길게 숨을 내쉰 승지가 조용히 성좌를 불렀다.
“야.”
[괜찮아? 어떡해! 많이 다쳤잖아!]
“호들갑 그만 떨고, 나 페널티 얼마나 쌓였는지 확인 좀 해봐.”
[……어?]
당황한 성좌의 상태창이 느리게 나타났다.
[그게 무슨 소리야?]
“아까 고블린 잡을 때도 그렇고 지금 싸울 때도 그렇고 페널티 받았을 거 아냐?”
상황 상 50콤보를 넘긴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꾸준히 싸우다가 끊겨서 누적된 게 좀 있을 것이다.
[그, 그건 그렇지만 페널티를 어디에 쓰게?]
“광대의 축복, 있잖아. 그거 한 번 써보자.”
승지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지금 상태론 안 돼. 뭐라도 변수가 있어야겠어.”
잠깐 멍하니 떠있던 상태창이 차차 상황을 이해했다.
[자, 잠깐 승지야! 설마 이 상황에서 도박을 해보겠다는 거야?]
“그래.”
[페널티가 반드시 좋은 걸로 바뀐다는 보장도 없어! 오히려 지금보다 악화될 가능성이 훨씬 많아!]
요란하게 요동치는 상태창에게 승지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네가 어떻게 바꿀지 결정해. 내 성좌라며. 널 믿어.”
그거 말고 딱히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차분한 승지의 눈동자에 비치던 상태창이 동요했다.
[……승지야.]
“난 당하기만 하고선 못 살아. 너 저 새끼 그냥 가게 둘 거야?”
[그건 나도 싫어. 잠깐, 좋은 방법이 하나 생각났다!]
“말해봐. 아니, 넌 띄워야지.”
[우리 서브 미션!]
성좌가 급하게 상태창을 띄웠다.
그곳엔 원래 해야 할 미션이 떠있었다.
[ 서브 미션 : 튜토리얼 (2) ]
“지금 다시 튜토리얼을 하라고?”
[그게 아냐! 원래 모든 각성자들은 이 튜토리얼을 끝내고 ‘경계’ 스킬을 받기로 되어있어.]
성좌가 열심히 설명했다.
[하지만 페널티로 미션을 강제로 바꿔버린다면? 지금 상황에 도움이 되는 스킬을 얻을 수도 있을 거야!]
“좋아, 그걸로 가자.”
[승지야! 이 선택은 신중해야 해. ‘경계’ 스킬은 괜히 튜토리얼 보상으로 주는 게 아니야!]
“나중에 손해 봐도 상관없어.”
지금 이길 수만 있다면.
“해!”
[알겠어, 그럼 각오한 거지?]
[ 광대의 축복이 발동됩니다! ]
거대한 주사위가 허공에 나타났다.
상태창이 날아가 그걸 건드리는 순간, 자신에게만 보이는 주사위가 회전하기 시작했다.
* * *
“야! 나와!”
승지를 두들겨 팼던 막타범이 어슬렁거리며 골목을 두리번거렸다.
“이 새낀 왜 안 와?”
류의건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서 일부러 갈라져서 움직였다. 이쯤에서 합류해야 하는데, 상대가 보이질 않았다.
“씨바 설마 걸린 거 아냐?”
류의건은 분명히 아직 토벌전을 하고 있을 거다.
하긴, 만약 같이 싸웠던 놈이 안 나타나도 그만이지. 킹고블린을 잡고 얻은 보상을 혼자 먹으면 되니까.
이게 더 개꿀인데?
낄낄거리며 가려던 막타범의 뒤통수를 누가 내리쳤다.
“야!”
“씁, 뭐야!”
벌컥 화를 내려던 각성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푸핫!”
보자마자 빵 터진 각성자를 본 승지의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미, 미친 푸하하! 너, 설마 아까 걔냐?”
“시끄러워.”
어금니를 악문 승지가 시뻘개진 얼굴로 이를 갈았다.
이… 이 망할… 성좌 같으니.
* * *
돌아가던 주사위가 멈추는 것과 동시에 상태창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 광대의 축복 발동! 페널티로 서브 미션이 강제로 변경됩니다! ]
“확인할래.”
[ 서브 미션 : 광대의 마음가짐!
성좌와의 연결도를 올리려면 성좌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 그의 직업에서 오는 고충을 대신 체험해보자!
광대 이해도 : 0/100
보상 : 스킬 ‘프레임 컨트롤‘ ]
여기까지 봤을 때는 뭐가 문제인지 몰랐다.
그러나 성좌가 제대로 설명하기 시작하자 아무리 납득하려고 해도 뇌가 꼬여버렸다.
“광대한테 진짜 이런 게 필요하다고?”
[수치심을 잊어, 승지야! 그리고 세상을 만끽해!]
성좌는 그야말로 열과 성을 다해 승지를 꾸며놓았고, 그 결과 승지는 이대로 그냥 머리를 박고 기절하고 싶었다.
광대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의 정석이 있다. 우스꽝스러운 모자를 쓰고 빨간 코에, 하얗게 분장을 한 거 말이다.
그걸 다 했다.
음식으로.
“아하하하학! 미치겠다! 하, 시발!”
각성자가 아예 배를 잡고 뒹굴었다.
밀가루와 물을 섞어 얼굴에 치대 바르고 바나나 다발을 머리에 얹었다. 그리고는 어렵게 방울토마토에 구멍을 뚫어 코에다가 꽂았다.
토마토 냄새가 독한 줄 누가 알았겠어, 빌어먹을.
토마토는 그냥 밍밍한 물맛 과일 아니었냐고.
한국에서 음식으로 장난치면 사형이라고 말해도 외국, 아니 이세계 성좌 놈은 들어 처먹질 않았다.
[아주 멋져! 정말 광대다워!]
칭찬 하지 마. 더 빡쳐.
왜 하필 토벌전이 일어난 장소에 화장품 가게는 없고 마트만 있냐고.
…아니다. 상상하니 화장품이든 분장실이든 끔찍한 몰골로 만들어놨을 거다.
이 성좌 놈은 기어이 날 수치심의 절벽에서 밀어버릴 생각이니.
[자아, 잘 알고 있지? 100 퍼센트 채워야 해!]
“그 프레임 컨트롤이라는 스킬이 안 좋기만 해봐.”
이를 뿌득뿌득 간 승지가 양손을 들어 올렸다.
“나한테 이 짓을 시킨 걸 평생 후회하게 해줄 테다.”
[걱정 말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