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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잠입…은 무슨! (3)

뻥 뚫린 눈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물. 못이 박혀있는 가슴엔 뿌리처럼 얽힌 핏줄이 꿈틀거렸고 그가 입을 벌리자 귀에서 벌레와 나방이 쏟아졌다.

마치 역병과도 같은 모습이다.

저게 단순히 마왕의 부하라고?

“으아아아!”

넋이 빠져있던 거북목이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군단장과 함께 튀어나온 괴물들이 함께 사방으로 달려들었던 것이다.

가죽이 뜯긴 늑대가 침을 질질 흘리며 먼저 튀어나오고, 진흙 넝쿨같은 털을 길게 늘어트린 짐승이 괴기하게 툭 튀어나온 코로 바닥을 문질렀다.

군단장은 꿈틀거리며 튀어나오는 괴물들을 파도처럼 타며 인간을 바라보았다.

거북목이 다급하게 몬스터를 공격했다.

“이, 이것들은 다 뭐야!”

현실로 막 넘어온 괴물들은 공기 중에 넘쳐나는 생명력부터 빨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승지조차 잠깐 얼이 빠질 정도였다.

[정신 놓지 마!]

성좌가 쫙! 쫙! 하고 터지는 이모티콘으로 어지럽게 시선을 빼앗았다.

[사악하고 강한 몬스터일수록 정신을 공격한단 말이야! 지금 도망치지 않으면 이대로 발이 묶인 채 들켜버리고 말 거야!]

그럼 바로 마왕 소환이다.

퍼뜩 정신이 든 승지가 뒷걸음질 쳤다.

글라세로의 군단장이 뾰족하게 갈린 검을 치켜들었다. 썩어빠진 뼈와 똑같은 색의 검은 보기만 해도 공포심이 차올랐다.

평생 뭘 무서워한 적이 없었는데 지금은 강제로 머리에서 제동을 거는 기분이다.

살고 싶으면 도망가라고.

“내가 저런 거랑 싸우려고 했단 말이지?”

[뭐어? 지금 승지 지능 스탯으로는 어림도 없어!]

“지능을 올려야 싸울 수 있단 얘기는 안했잖아.”

[모든 괴물이 다 정신계 공격을 쓰는 건 아니니까! 게다가 상대할 힘도 없는데 정신만 공포에 맞서면 뭐해!]

괴물을 상대할 땐 일단 정신부터 똑발라야 한다는 건가.

승지가 몬스터들이 뒤엉킨 소음 위로 고함을 질렀다.

“어이! 거북목!”

처음엔 자신을 부른 줄 모르던 거북목이 머리를 쭉 내밀었다.

“너, 너 이 자식! 도망가는 거냐아!”

“살고 싶으면 막기나 해!”

날 지켜주는 게 결국 널 살리는 길이다, 인마.

밀려드는 몬스터를 상대하느라 거북목은 몸을 빼내지 못했다. 그 틈을 타 승지가 오조희를 찾았다.

다른 때 같았으면 몬스터 사냥을 도왔을 테지만, 어차피 이 근처에 있는 놈들은 다 알러트니 당해도 싸다.

벌컥 벌컥 문이 열리며 쏟아져 나온 알러트 놈들은 몬스터 떼를 보고 당황했다.

“어엇!”

“왜 여기서 메인 미션이!”

“살려…!”

팍. 퍼억.

얼굴로 달려든 늑대와 함께 쓰러진 놈들이 버둥거리며 진액을 튀겼다.

생지옥이 따로 없군.

“그르르륵….”

그때 말라빠진 해골 같은 군단장의 얼굴이 승지를 향해 움직였다. 마치 무슨 냄새라도 맡은 것 같았다.

코도 없는 게 뭘 따라와.

무심코 문신을 가렸던 승지가 짜증스럽게 따라온 나방 몇 마리를 쳐냈다. 케엑 거리며 독액을 내뱉은 나방은 금세 바르르 떨며 사망했다.

[으웨엑! 끔찍해! 징그러워!]

“괜히 시간 끌 거 없어.”

차라리 잘 됐다. 엄청난 몬스터 무리에 어그로가 끌렸으니 잠입하기는 오히려 쉬워졌으니까.

그러게 처음부터 납치를 안했으면 내가 글라세로의 던전에 들어가 저주가 악화될 일이 없잖아. 저주가 악화되지 않았으면 군단장이 나타날 리도 없었고.

즉, 이 개판은 결국 알러트의 자업자득이다!

승지가 인벤토리에서 성수를 꺼내 마셨다.

하찮은 나방 몬스터까지 독액을 담고 있으니 마왕인 글라세로는 얼마나 지독한 놈일지.

“막아!”

“알아서 싸울 놈만 튀어나와!”

몬스터를 놔두고 온 뒤쪽에서 점점 큰 소리가 나기 시작했지만, 승지는 미련 없이 더욱 빠르게 주변을 탐색했다.

[찾았다! 검은 징이 박힌 대문!]

바깥의 소란에 보초도 경계가 느슨해져 있었다.

“어이, 지금 무슨….”

승지가 대답을 생략하고 무대 매너를 걸었다.

이놈은 지능이 낮은지 바로 스킬이 걸리며 쿵 떨어졌다.

“열쇠, 열쇠… 젠장 인벤에 넣어놨냐.”

계속해서 두두두 하고 땅 울리는 소리가 가까워졌다. 조급해진 승지가 그냥 힘으로 문을 두들겨 팼다.

콰앙! 쾅!

[ 1콤보! ]

[ 2콤보! ]

있는 힘껏 대여섯 번 쯤 때리자 철갑이 비틀어지며 문이 열렸다.

“끄으응!”

양손으로 잡아당긴 승지는 어두컴컴한 실내를 찡그린 눈으로 살폈다.

말라깽이가 말했던 곳은 여기가 맞는데.

“오조희!”

승지가 소리치자 비어있는 실내로 공기가 우렁 울렸다.

“…승지 씨…!”

한참 기다리자 개미만한 소리가 간신히 귀에 잡혔다.

지하다!

쾅쾅 거리며 내려간 승지가 바닥에서 납작한 문을 발견했다. 이번에도 힘으로 박살낸 그가 문을 뜯어냈다.

짧은 계단이 보이고,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인영을 발견했다.

“스, 승지 씨!”

“맙소사 정말… 정말 구하러 오셨어!”

코스모스 센터에서 봤던 각성자들이 승지를 보고는 환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서둘러 내려온 승지는 다른 각성자들에 비해 완전히 늘어져 있는 오조희를 발견했다.

“이 사람 왜 이럽니까?”

“저희도 잘 모르겠어요…!”

“아까 알러트 대장이 왔을 때까지만 해도 말은 하셨는데!”

[페널티 때문인가!]

그 사이에 승지에게서 상당한 양의 페널티가 흘러 들어갔는지 오조희는 기력 없이 늘어져 있었다.

대충 상황을 이해한 승지가 오조희를 들쳐 업었다.

“일단 튀죠. 멀쩡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 좀 챙기십쇼.”

“네!”

승지는 그들을 묶고 있던 걸 풀어주고는 지상으로 올라왔다.

일단 대피한 다음에 알러트 대장에 대해서 물어봐도 될 테니까.

그런데 바깥 상황은 그새 격변의 현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문을 나서자마자 눈에서 진물이 흐르는 괴물 까마귀가 그들을 향해 발톱을 내리찍었다.

“꺄악!”

“괴물… 괴물….”

순식간에 혼란에 빠진 코스모스 센터 사람들이 머리를 붙잡고 주저앉았다. 특히나 겁을 먹은 건 선생 쪽이 아니라 회원이었다. 패닉 상태나 다름없이 몸을 흔들었던 것이다.

괴물 까마귀는 처음은 경고였는지 한 바퀴를 크게 선회하더니 다시 이쪽을 향해 날아왔다.

“여러분!”

“…! 너…!”

언제 깼는지 오조희가 간신히 실눈을 떴다. 그는 업혀있는 승지보다도 상황파악을 우선했다.

“괜찮아요. 우리 배운 대로만 하면 돼요.”

그가 달래듯이 힘겹게 말을 이었다. 친숙한 목소리에 눈물을 쏟고 있던 눈동자들이 하나 둘씩 고개를 들었다.

“선생님….”

“우리 충분히 할 수 있어요. 코스모스 센터. 이번엔 상대가 사람이 아니니까, 실력을 보여줘야죠?”

단단한 오조희의 목소리에 드디어 선생들도 정신을 차렸다.

“핫, 넵!”

“여러분! 일렬로 서세요!”

센터 선생들은 마치 유치원 반 선생님처럼 빠르게 사람들을 규합했다. 친숙한 인물들이 능숙하게 분위기를 다잡자 마침내 센터 각성자들은 정신을 차렸다.

“3번 동작! 적이 머리 위에서 올 때는!”

“만세!”

체조를 하는 것처럼 두 팔을 치켜든 각성자들 손에서 스킬이 뿜어져 나갔다.

퓻. 푸슛!

“키에엑!”

적중률은 낮았지만 한꺼번에 튀어나오는 공격들이 워낙 많았기에 절반 이상이 괴물 까마귀에 직격했다.

별의별 원소와 공격에 얻어맞은 괴물 까마귀는 바로 숨이 끊어지며 추락했다.

“꺅!”

“선생님! 선생님!”

“우리 성공했어요!”

“잘했어요!”

오조희가 얼른 칭찬했다.

[와악…! 맙소사! 이건 완전히 폭탄 이잖아!]

승지도 놀라 눈을 부릅떴다.

센터에 공격적인 성좌가 많다고는 들었지만 정말 모아놓으니 쏟아내는 화력이 장난 아니었다.

대부분의 길드는 강한 랭커 몇 명을 중심으로 만들어졌기에, 이렇게 높은 화력을 여럿이서 지속적으로 뽑아낼 수 있는 길드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따로 개개인으로 떼어놓으면 평범한 각성자에 불과했지만, 아니 오히려 다른 각성자들보다 무시 받는 처지였지만.

만약 이대로 결집한 채로 성장한다면 순식간에 압도적인 위치로 올라설 수 있을 정도였다.

스탯만 조금 더 올리면 장애마저도 이들을 방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오조희가 이들을 교육하느라 애를 쓴 건가?

“승지 씨!”

퍼뜩 정신이 든 승지가 업혀있던 오조희를 돌아보았다. 그의 눈이 글썽거리고 있었다.

지금 센터 사람들이 보여준 가능성과 구출되었다는 사실이 그를 벅차게 만들었던 것이다.

“고마워요.”

“…….”

“이렇게까지 해줄 줄은 정말 몰랐어요.”

“…뭐, 당연한 거지.”

“아하하.”

오조희가 웃다가 픽 머리를 떨궜다. 승지가 재빨리 그의 머리통을 붙잡았다.

“일단 페널티 스킬부터 취소해. 그러다 너 뒤지겠다.”

“아직 안 돼요. 여길 빠져나가기 전까지는….”

“센터 사람들 잘 싸우잖아.”

“알러트가 남아 있잖아요.”

꿋꿋하게 사람을 공격할 생각은 없는지 오조희가 승지의 목을 끌어안았다.

불편하게 고개를 움직인 승지가 턱을 까딱했다.

“저 꼴을 보고도 알러트가 아직 남아있을 거 같아?”

건물 벽면에 달라붙은 나방 떼의 독액에 유리가 녹아내리는 모습이 멀리서도 선명히 보였다.

간간히 들리는 비명과 괴성은 끔찍하게 희생당하는 상상을 하기에도 충분했다.

움찔한 오조희가 중얼거렸다.

“하긴 보스는 이미 간부들과 도망쳤었죠….”

“그걸 어떻게 알아?”

“해드릴 얘기가 너무 많아요.”

잡혀있는 동안 뭔가 보긴 본 모양이다. 승지가 오조희를 고쳐 업었다.

“일단 그건 튀고 나서 생각하자.”

“앗!”

“저길 봐!”

승리에 희희낙락해있던 코스모스 센터 사람들이 동시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이 낀 하늘에 푸른 섬광이 강처럼 흐르더니 몬스터가 모여 있는 곳으로 곤두박질쳤다.

“류의건이다!”

“류의건이야!”

“도와주세요!”

“여기요!”

랭커를 발견한 센터 사람들이 서둘러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승지는 개 당황했다.

[헉.]

아니, 류의건이 여기서 왜 나와?

메인 미션이 떴다고는 해도 서울 밖까지 미션을 하러 다닌다는 얘기는 못 들었다. 진짜 역대급 몬스터가 아닌 이상.

게다가 방금 미션이 떴는데 이렇게 빨리 온다고?

결론은 하나뿐이다.

“설마 여기 서울이었냐!”

던전 열쇠에 열쇠를 거듭해 고생해서 뚫고 왔더니 고작 서울 다른 곳이라니 어이가 없었다.

“이 알러트 새끼들… 바퀴벌레도 아니고 바로 주변에서 숨어있냐고!”

열불을 내는 승지를 보고 오조희는 의아해했다.

“다행이잖아요? 이제 남은 알러트도 도망칠 테고, 몬스터도 랭커 분들이 잡아줄 테니까요.”

문제는 나지.

죽은 사람이 설치느라 글라세로의 군단장이 나타났다고 하면 뭐라고들 그러려나.

승지는 영문을 모르는 오조희를 급하게 내려놓았다.

“페널티 전이 스킬 해제해.”

“하지만…!”

“바로는 말고. 내가 좀 멀리 도망간 다음에. 지금 저 몬스터도 그렇고 류의건도 그렇고 들키면 곤란해지거든?”

오조희는 어리둥절하게 보다가 곧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승지 씨 일이라면 저흰 무엇이든 도울 거예요.”

강력한 아군이 된 오조희가 승지의 손을 확 붙잡았다.

“그러니 페널티 걱정 말고 가세요! 남은 페널티는 제가 다 처리할게요!”

“얌마, 그건!”

“사랑의 매 해제합니다!”

오조희의 머리 위에 떠있던 페널티 수치가 삐릭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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