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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 오늘 들킬 것이다 (1)

하늘에 긴 그림자를 남기며 비행기가 날아갔다.

난생 처음으로 인천 공항에 발을 들인 승지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쳇. 이런 식으로 첫 해외여행을 가게 될 줄이야.

미스핏 길드에서 박편호의 수상함을 감지한 승지는 현장검거에 나서기로 했다.

범윤오 수색에서 박편호는 일본만을 고집했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한지 요샌 아예 국내에 들어오지도 않는다고 한다.

대신 그곳에서 대기하며 아이샤에게서 위치를 전해 받는 대로 기습에 들어간다고 한다. 만.

영 수상쩍단 말이지.

미니 선글라스를 낀 광대가 쏙 튀어나왔다.

“일본 여행이다!”

“들어가, 인마. 네가 일본을 알아?”

승지가 광대의 머리를 꾹 눌렀다. 이세계에서 온 녀석이 여행이란 소리에 그저 신나했다.

“헤헷. 그런데 꼭 승지가 가야할 필요가 있는 거야?”

“내 연락은 안 받을 테고, 뭔가 꿍꿍이가 있으면 현장을 덮치는 게 낫잖아.”

이제는 인벤토리에 들어간 성좌와 대화하는 게 익숙해진 승지가 대답했다.

“게다가 그 녀석, 예전부터 어딘가 구렸어. 내 월급 떼먹고 튄 사장이랑 관상이 비슷하거든.”

“호엥!”

어차피 성좌와 떨어진 상태로는 직접 범윤오를 조지러 갈 수도 없었다.

게다가 지금은 혹도 달려있으니 크게 무리할 생각은 없었다.

“승지 씨! 같이 가요!”

저 멀리 승지를 따라온 미스핏 길드원들이 줄줄이 뒤를 이었다.

추적에 필요한 서명구와 세트로 다니는 최자림까지야 그렇다 치지만, 사라설까지 오겠다고 할 줄은 몰랐다.

“단순한 여행 아닌 거 알지?”

“그럼요! 하지만 통역은 필요하시잖아요?”

사라설은 5개 국어 가능자였다. 던전에서 나온 고어 연구까지 합치면 거의 언어 덕후 수준이다.

생긋 웃은 그가 손짓했다.

“출국 수속 밟으려면 이쪽이에요!”

사라설이 익숙하게 그들을 이끌었다.

공항 안은 생각보다 북적거렸다.

갑자기 미션이 뜨고 괴물이 나타나도 여행을 갈 놈들은 간다 이거군.

“각성자들은 전용 창구에서 따로 수속을 밟아야 해요.”

“어차피 스킬이나 던전 열쇠 때문에 각성자들이 마음대로 드나들지 않냐?”

“엄밀히 말하자면 그건 불법 입국이니까요. 게다가 알러트처럼 조직을 이뤘다면 모를까 개인이 던전을 이동수단으로 쓰긴 많이 힘들죠.”

하긴 공통적으로 겹치는 던전 열쇠가 두 개 이상은 나와 줘야 비로소 통로 역할을 할 수 있을 터였다.

목에 카메라를 건 최자림이 끼어들었다.

“게다가 인벤토리에, 스킬까지 가지가지 많잖아요? 테러 위험 때문에 각성자 입국은 아주 까다로워요.”

그냥 걸어가면 될 줄 알았던 통로에는 시커먼 스캐너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저건 뭐냐?”

“성좌 스캐너예요! 각성자 관리소에서 쓰는 기계의 큰 버전이죠!”

“류의건 각성자님의 회사에서 주로 만드는 게 저거예요.”

서명구가 비로소 아는 체를 했다.

각성자 시대에 접어들면서 각성자들이 떼돈을 버는 것은 단순히 코인이나 미션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각성하지 못한 민간인들의 안전을 위해서 만드는 제품 원료로도 돈을 벌었던 것이다.

“승지 씨도 던전 깨면서 이것저것 많이 갖다 팔아보셨을 거 아니에요?”

“그냥 경매장에서 찾길래 판 건데.”

승지는 삑삑거리는 기계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하긴 지금 내가 쓰는 핸드폰도 류의건이 성좌 연동형이라서 준 거였지.

“어떻게 저런 걸 만들 수 있는 거냐?”

“뭐 기술자들이랑, 관련 스킬 얻은 사람들이랑 이래저래 연구하지 않을까요?”

“듣기로는 제품 생산이 가능한 관련 성좌가 있는데 회사 기밀로 취급한다네요!”

스캐너는 아래를 지나가면 간단하게 성좌의 이름이 떴다.

경계 스킬이 없으면 인식하지 못했던 각성자 관리소 기계보다 훨씬 성능이 좋아보였다.

[ 성좌 : 웃고 있는 광대 1 ]

[ 성좌 : 날고뛰는 백부 ]

[ 성좌 : 수도의 기도자 47 ]

[ 성좌 : 다리 저는 학자 ]

좌르륵 뜬 성좌 이름이 하나같이 다 낯설었다.

미스핏 길드에서 서로 안지도 꽤 됐는데 이제야 성좌를 알았네.

새삼스러운 승지와 달리 다른 사람들은 다른 의미로 감탄했다.

“크으, 이런 거 전 세계에 팔면 얼마나 받을까요? 류의건 씨 부럽다! 이거 말고 던전 제약에 미션 감지기에…! 돈을 쓸어 담겠네요!”

“왜 저만 47번이에요? 다들 엄청 좋은 성좌셨군요….”

“명구 씨 상심하지 마세요! 승지 씨도 1번인걸요!”

음. 역시 쟤네 대화는 안 듣는 게 정신건강에 좋겠군.

미리 티켓을 구매한 승지 일행은 바로 탑승구로 향했다. 인벤토리가 있었으니 따로 짐을 맡길 필요가 없었다.

문 옆에 선 직원이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네 분 모두 각성자신가요?”

“네. 맞아요!”

“스캐너 확인 후 수면제 안내 도와드리겠습니다.”

“수면제?”

놀란 승지의 목소리가 커졌다.

“앗, 설명 드리는 걸 잊었네요. 안전 때문에 그래요! 아직 각성자의 스킬과 인벤토리를 완전히 봉쇄하는 법을 찾지 못했거든요.”

어둑시니 길드에선 되던데?

…번태 그 양반이 또 비밀로 했나보군.

아무리 안전 때문이라지만 갑자기 수면제라니 당황하고 말았다.

“쓸 데 없는 짓 아냐? 일부러 안 먹거나 재워놓고 밖에서 습격하면 어쩌려고?”

“어쩔 수 없는 안전 절차죠. 성좌신의 페널티만으로는 자폭 테러까지 막을 순 없으니까요.”

“아.”

종교에 미친놈들이 생각나자 승지의 안색이 굳었다.

하긴 각성자는 전세계에서 나타나니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였다.

가만, 그럼 인공적으로 각성자를 만드는 알러트가 더 위험한 거 아니야?

갑자기 납치된 인간들의 안전이 심각하게 느껴졌다.

원래 사람 팔아먹는 게 더 비싸다고 하는데. 알러트 같은 범죄 조직이 인신매매라고 안 했을 리가 없을 듯 하다.

잠깐. 여기서 인간들 잡아다가 각성자로 만들어서 테러를 시키면 이거 씨발 매국노 새끼잖아?

갑자기 범윤오가 일본에 있을 지도 모른다는 게 아주 그럴 듯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젠장할. 박편호 새끼가 진짜로 범윤오 편에 붙은 거면 넌 진짜 내 손에 죽는다.

승지가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는데 최자림이 호쾌하게 어깨에다 팔을 걸쳤다.

“에이, 승지 씨! 까짓 수면제 정도야 비각성자들 안심하라고 먹는 건데 뭐 어떻습니까!”

“손 떼라.”

“여차하면 랭커들 소환해서 처리하는 문제니까 너무 걱정 마십쇼!”

최자림이 슬그머니 손을 떼며 히히덕거렸다. 승지가 한숨을 삼켰다.

“수면제 그거 확실한 거야?”

“100퍼센트 천연 던전 소재로 만들었으니까 몸에 영향을 미치거나 중간에 깨는 건 염려 마세요!”

직원이 필사적으로 안심시켰다. 아무래도 공항에서 거부 반응을 보이는 각성자가 한 둘이 아닌 모양이다.

날 걱정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굳이 거부할 이유가 없던 승지가 입을 벌렸다.

“그럼 지금 먹으면 됩니까?”

“아, 잠시만요. 비행시간을 계산해서 처방이 나올 거구요. 지금 드시는 게 아니라 탑승 직전에 승무원이 복용확인을 하실 거예요.”

직원이 빠르게 티켓을 받아 목적지를 입력했다.

그러자 잠겨있던 서랍이 덜컹 열리더니 시간대별로 줄지어놓은 약이 보였다.

한 사람당 두 알씩 꺼낸 직원이 자그마한 소주잔 컵에 알약을 담아주었다.

“이대로 들고 들어가셔서 직원 앞에서 삼키시고 입 안 보여주시면 되세요.”

어쩐지 기시감이 빡 드는 방법이다.

“……이거 교도소에서 하는 방식 아냐?”

“아하핫…. 네. 확인 차 혀 밑도 들춰보니까 너무 불쾌해하지 마시구요.”

완전히 죄인 취급이구만 이거.

승지가 지울 수 없는 불쾌감에 알약을 내려다보았다.

괜히 던전 열쇠 값이 비싼 게 아니었군.

이 정도로 비각성자가 각성자를 믿을 수 없다면 어떻게 같이 사는지 모르겠군.

만약 불시에 나타나는 미션이 없었다면 진작 일이 터지고도 남은 거 아냐?

문득 승지는 번태가 과도하게 호쾌한 모습만 보여준다던가, 제일 먼저 호감도가 높은 류의건부터 언론전에 당했다는 게 떠올랐다.

아무리 대단한 각성자들이라도 현실을 저버릴 수는 없다.

각성자들의 돈벌이도 최종적으로는 현실의 자본이니 말이다.

이 땅에 발붙이고 사는 한 아무리 대단한 성좌를 갖고 훌륭한 스킬을 가져도 사람들의 규칙에 따라야만 한다.

‘이 땅’에 발붙이고 사는 한.

승지가 우뚝 멈춰 섰다.

“승지 씨?”

다른 사람들이 갸웃했다.

“무슨 일 있어요?”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런 말 하면 제일 신경 쓰이는 거 아시죠?”

순간 사로잡힌 생각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려웠던 승지가 불쑥 뱉었다.

“…범윤오가 정말로 멍청한 놈인가?”

세 사람의 눈이 동그래졌다.

“성적표라도 찾아다 드릴까요?”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라. 다른 알러트 조직원들이 뭘 믿고 걔를 따랐을까?”

승지가 던진 질문에 최자림이 흐음 하고 턱을 짚었다.

“역시 돈이겠죠?”

“권력이죠! 악당들은 힘을 원하잖아요!”

“그럼 지금은?”

승지가 미간을 찌푸렸다.

“본진도 다 무너지고 랭커들이 이를 갈고 범윤오를 찾는데 마약 판매도 중단했다면서? 그럼 그 밑에 놈들은 뭘 믿고 기다려? 지금은 돈도 뭣도 없잖아.”

“흐으음?”

“나중에 크게 보상할 테니까 기다려라! 이런 게 아닐까요?”

“그런데 그 밑에 놈들 전원 다 인내심을 갖고 기다린다고?”

승지는 코스모스 센터에서 만났던 알러트 조직원을 아주 잘 기억하고 있었다.

그냥 길거리 양아치라고 해도 믿을 만큼 별 볼일 없는 놈들이 이토록 철저하게 꼬리가 안 잡힐 수가 없었다.

본진 소탕 이후로 알러트에 연루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길드 연합의 눈에 띄지 않았다.

아무리 던전을 이용해 이동한다고 해도 예전에는 간간히 몇 명씩 붙잡았다고 들었던 것이다.

하다못해 담배를 피우고 싶어서라도 잠깐 외출했다가 걸리는 게 인간이다.

그런데 사람을 납치해간 후에도 너무 조용한 게 마음에 걸렸다.

“마왕 놈은 현실에 범윤오가 있다고 했지만, 어차피 마왕 새끼 말이라 백 퍼센트 믿을 순 없지.”

“하지만 아이샤나 명구의 스킬에도 범윤오가 여기 있다고 뜨는 걸요?”

“그 위치가 수십 명이라며. 어차피 개뿔 소용도 없는 거.”

승지가 쯧하고 혀를 찼다.

“훔쳐간 성좌가 많으니 그걸로 뭔 개짓거리를 했나보지. 어쨌든 알러트의 진짜 본진은 현실에 없을 거야.”

“그럼 저희 어떡해요? 가, 가지 말아야 하나요?”

일본 가는 비행기와 공항 사이에서 그들이 멈춰있었다.

승지가 팔짱을 꼈다.

“아니. 가긴 간다. 알러트 이동 방식 기억 안 나냐?”

알러트는 현실에 문지기를 둬 던전을 이용했다.

문지기들이 스킬을 사용해 숨었든 성좌를 이용했든 아무튼 그들이 현실로 오갈 창구는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납치한 인간들을 팔아먹거나 식료품을 구매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하다.

클리어 하지 않는 던전에 영원히 머물 순 없으니까.

문제는 랭커들이 그걸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이지만.

“박편호는 계속 한 구역만 갔으니 뭔가 수상한 걸 발견했을 지도 모르지. 아님 본인이 배신한 개새끼던가.”

내내 눈치를 보며 기다리고 있는 승무원 앞까지 간 승지가 알약을 삼켰다.

“그거 알아보러 가는 일본이다.”

승지가 입을 벌리고 완벽하게 약을 삼킨 입안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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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라면 99콤보까지 - 광대라면 99콤보까지-18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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