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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 광대의 대모험 (1)

광대의 축복을 받은 페널티는 한 달 동안 미션을 받을 수 없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단순히 성장이 멈췄다는 것보다, 광대가 스킬 획득으로 모두 써버린 연결도를 복구할 수 없다는 점이 컸다.

번태는 성좌 연결도가 없으면 다시 성좌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미션이 아닌 방법으로 연결도를 올리는 방법도 있네만.”

“그건 예전에 다 올렸어요.”

각성자와 성좌가 서로 간에 신뢰를 쌓으면 성좌 연결도가 상승한다.

광대는 이미 승지가 자신을 믿어줄 만큼 믿어줬다고 생각했기에 연결도를 올리기 어렵다고 보았다.

물론 자신이 승지를 믿는 것도 최상급이고.

“어차피 미션도 받지 못한다면 당분간은 따로 지내도 괜찮겠지.”

번태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승지를 집까지 옮겨주었다.

페널티를 떨궈내자 단순히 체력 고갈이 된 승지는 두 시간 만에 흠칫하고 깨어났다.

두 시간은 잔 뒤에야 빨리 일어나야 한다는 정신의 신호를 몸이 받아들인 것이다.

“일어났구나!”

머리맡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던 광대가 눈꺼풀이 움직이자마자 찰싹 때렸다.

“으… 뭐냐.”

“얼마나 걱정했는데!”

눈을 뜨자마자 큼지막한 눈물방울과 마주친 승지가 흠칫했다. 그가 급하게 광대를 잡으며 상체를 일으켰다.

“마왕 새끼들은.”

“없어! 내가 멋지게 승지를 구해냈는걸!”

광대가 자연스럽게 허풍을 쳤다. 승지야 정신을 잃고 있었으니 광대가 비명을 지르며 도망 다녔는지 알 도리가 없을 터였다.

칭찬을 기대하고 있던 광대에겐 실망스럽게도 승지는 바로 홱 이불을 걷고 일어났다.

“벌써 일어나? 조금 더 쉬어야하지 않겠어?”

“아니, 됐다.”

승지는 눈을 뜨자마자 바로 다른 각성자에게 연락하기 바빴다. 범윤오가 다른 던전이 아니라 지구에 있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럼 예상가는 위치가 있나?”

“한국은 아니겠지. 망할 놈.”

“국제 협조를 받아야겠네요.”

“저번에 보았던 수사관 기억하십니까?”

랭커들과 동시 통화를 하는 승지를 보며 광대는 어쩐지 쓸쓸해졌다.

성좌였을 땐 승지가 보고 듣는 게 자신이 보고 듣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렇게 떨어져 나오니 승지와 자신이 별개의 존재라는 게 새삼스레 사무쳤다.

승지가 너무 크고 멀었다.

“아이샤라는 여자가 국제 수사관이랬어.”

“연락해보지.”

멀찍이 앉아서 보고 있던 광대는 대화에 나온 아이샤가 자신을 발릭이라고 불렀던 게 기억이 났다.

무슨 의미가 있던 게 아닐까?

누군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지만 묘한 분위기가 풍기는 사람이긴 했다.

고민하던 광대는 곧 깜짝 놀랐다. 통화를 끊자마자 승지가 비틀거리며 탁자를 짚었던 것이다.

“승지야!”

화들짝 놀란 광대가 달려갔다. 그리고는 되도 않는 크기로 승지를 받쳐보려고 했다.

다행히 손가락만한 광대가 깔리기 전에 승지가 먼저 알아채고 집어냈다.

“넌 또 뭐하냐.”

“승지가 쓰러지려고 하니까!”

“뭘 쓰러져. 뻐근하기만 하구만.”

승지는 투덜거리며 광대를 식탁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계속 승지를 보아온 광대의 눈에는 위태롭기만 했다.

“승지야, 눕자! 가서 쉬자! 아무리 페널티를 바꿨어도 몸에 남은 충격은 별개일 거야!”

“…….”

승지는 적당히 광대를 무시한 채 상태창을 확인했다. 페널티나 이것저것 스킬을 보는 모양이었다.

왠지 모를 서러움에 광대가 불쑥 말했다.

“…만약에 내가 신의 심판자처럼 강했다면 그 때 돌려보내지 않았을 거야?”

“뭐?”

승지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광대는 진심이었다.

“내가 다른 성좌들처럼 더 강했더라면 함께 싸웠을 거야?”

“무슨 소리냐. 그땐 상성 때문에 돌려보낸 거지.”

승지는 단칼에 잘랐지만 광대의 가슴은 여전히 답답했다.

차마 자신의 입으로 광대 성좌가 아니어서 아쉬웠다고 인정하기엔 지나치게 낯간지러운 말이지 않나.

멋쩍어하던 승지가 어깨를 으쓱였다.

“뭐, 네 말대로 아직 좀 피곤하네. 더 쉴 테니까 들어가자.”

승지 나름대로 봐주는 시늉이었다. 사실 그도 성좌에게 마왕의 무기나 생각을 읽는 문제 등 물어볼 게 많았으나 휴식이 우선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게다가 곧 범윤오 문제도 터질 테니 지금이 아니면 쉴 수 없으리라는 무의식적인 감각도 한 몫 했다.

“어디 가지 말고 있어라. 깨자마자 할 일 많다.”

“우리 이제 미션 못 받는데.”

“그거랑 별개로.”

막 잠에 들려는 승지의 찡그린 얼굴이 순간 자신을 질책하는 걸로 보인 광대가 움찔했다.

“승지야?”

경고하듯 말이 끝난 승지의 고개가 베개에 파묻혀있었다. 다시 기절하듯이 잠든 것이다.

머뭇거리던 광대가 승지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표정이 결연해졌다.

“나 강해질 방법을 찾아올게.”

데구르르.

베개에서 굴러 떨어진 광대가 꼬물거리며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승지의 스마트폰을 꺼내기 위해서였다.

염소 대가리 던전에 들어간 이후로 승지에겐 귀중품은 인벤토리가 아니라 주머니에 넣는 습관이 생겼다.

낑낑거리며 스마트폰을 꺼낸 광대가 이름 하나를 검색했다.

“아이샤… 아이샤.”

묘한 분위기를 풍기던 그는 성좌와 어떤 계약을 맺고 특별한 힘을 얻었다고 했다.

만약 자신도 승지와 새로운 계약을 맺는다면 승지를 도와줄 만큼 강해질 수 있을 터였다.

승지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자신이 광대라고 여간 실망하지 않았던가.

이젠 달라질 거야!

열심히 화면에 코를 박은 광대가 작은 상태창을 켰다.

인터넷으로 대강의 신상 정보를 알아냈으니 경매장을 통해서 특정할 수 있었다.

답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곧장 날아왔다.

[ 발릭? ]

[ 만나고 싶어요. ]

광대도 원래 성좌였던 터라 답장은 즉각적으로 이뤄졌다.

[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띠링!

주소가 하나 배달되었다. 기록을 저장해둔 광대가 스마트폰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으려다가 멈칫했다.

승지가 대충 뒷주머니에 꽂아둔 뿅망치가 보였기 때문이다.

고민하던 광대가 제 몸 만한 크기의 뿅망치를 뽑았다.

마왕의 무기라 살짝 겁은 났지만 그래도 자신은 아직 너무 약했다.

“바깥은 위험하니까!”

뿅망치를 끌어안은 광대가 거실로 나왔다. 잠들어있던 개들이 낯선 인기척에 킁킁거리며 깨어났다.

광대에겐 오히려 반가웠다.

“너희도 같이 갈래?”

광대가 가볍게 인벤토리를 열어 개의 등 위로 떨어졌다.

위엄찬란하게 개의 등을 타고 뿅망치까지 등에 매달자 용기가 샘솟았다.

“좋아! 지금부터 우린 승지 원정대가 되어서 새로운 계약을 따오는 거야!”

“컹!”

신이 난 광대를 따라 개들이 짖자 그가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쉬잇. 승지 깨면 안 돼.”

이제 더 이상 성좌로 연결되어 있지도 않은데 혼자 밖에 나간걸 알면 승지가 무척 화를 낼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도 승지에게 무언가 깜짝 선물로 주고 싶었다.

성좌로 했던 일은 전부 승지가 해낸 미션에서 가져온 힘이었기 때문이다.

온전한 내 힘으로 하고 싶은걸.

“가자, 케로베로스야!”

광대가 우렁차게 지시하며 개들과 함께 스스로를 인벤토리로 삼켰다. 그리고는 현관문 바깥으로 바로 개들을 토해내며 열심히 달리게 만들었다.

목줄도 없는 개들은 당연히 신나서 질주했다.

“우와! 우왓! 왓!”

광대가 다급하게 목털을 움켜쥐었다. 상상했던 것과 달리 개들의 질주는 무척이나 빨랐다.

승지가 달리는 속도에 비교하면 물론 느리긴 했지만, 지금은 육체가 있는 상태인 것이다.

바람에 날려가지 않으려고 바짝 몸을 낮춘 광대의 몸은 사실상 뿅망치 무게 덕에 날아가지 않는 거나 다름없었다.

“너희들 그런데 어느 쪽으로 가려는 지는 알고 있는 거야?”

“컹컹!”

광대는 가끔씩 빠끔히 머리만 내밀어 방향을 확인했다.

개들은 내키는 대로 달렸지만 방향이 틀릴 때마다 광대가 인벤토리 째로 삼켰다가 원래 방향으로 뱉어냈다.

길을 잃을 걱정은 없겠다!

광대는 살짝 이 모험에 흥겨워졌다. 길거리에 있는 사람들이 주인도 없이 달리는 개 세 마리에 흠칫거리며 도망치는 모습도 마냥 재밌기만 했다.

그 때문에 성좌가 따로 떨어져 나온 게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지 미처 자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미션을 받을 수 없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도.

따그락.

“…헉!”

광대가 다급하게 목털을 잡아당겼다. 그러나 광대의 힘이란 개들에게는 산들바람보다 못한 자극이라 결국 소리를 질러야 했다.

“멈춰! 멈춰 얘들아!”

필사적인 외침이 다행히 닿았던 걸까. 그러나 이미 세 마리의 검은 개들은 하얀 물체들에게 포착되고 말았다.

따각따각.

무기를 든 스켈레톤이 새로운 생명체를 향해 조금씩 머리를 돌리고 있었다.

큰일이다!

광대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런 곳에서 한 무리의 스켈레톤과 마주칠 줄이야!

아까 도망치던 사람들이 실은 개가 아니라 스켈레톤을 피해 도망치던 것이었다!

원래라면 스켈레톤이 소환된 지역 근처에만 가도 바로 미션 창이 뜨면서 위험을 알렸을 것이다.

혹은 승지와 함께 왔다면 저런 스켈레톤 따위는 순식간에 발가락의 먼지보다 못할 정도로 박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승지도 없었고 미션 창도 확인할 수 없었다.

졸지에 한 무리의 스켈레톤과 마주치게 된 광대는 너무 겁이 나서 거의 얼어붙을 지경이었다.

“크르르….”

위협적으로 생긴 스켈레톤을 본 케로베로스야가 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자신을 해할 존재라고 판단한 것이다.

자신이 탄 개의 등이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떨리는 걸 느낀 광대가 황급히 정신을 차렸다.

승지네 세계에선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 댔어! 호랑이가 뭔지는 모르지만 나도 살아야 해!

광대가 다급히 등에 매달았던 뿅망치를 꺼내 양손으로 꽉 쥐었다.

승지가 갓 각성했을 때도 이런 스켈레톤 따위는 쉽게 잡았어.

겁먹지 말자!

“케로! 베로! 스야! 흩어지자!”

마치 광대의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개들이 양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적이 움직이자 자극받은 스켈레톤들이 그들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크아아!”

“꺄아아! 저리 가!”

광대가 비명처럼 소리를 지르며 뿅망치를 휘둘렀다. 그리고 손에 들린 마왕의 무기는 즉각 주인의 뜻대로 형태를 바꾸었다.

빠악!

[ 1콤보! ]

“헛…!”

광대가 숨을 들이켰다.

내가 공격했는데 왜 콤보가 뜨지?

완벽한 콤보는 승지의 스킬이다.

광대가 어리둥절해지는 바람에 콤보는 금세 끊겼다.

뼈를 부딪치며 다가온 스켈레톤은 뿅망치 한 번은 간지럽다는 듯 그대로 손을 뻗었다.

“크엉!”

따닥!

멍해진 광대보다 먼저 그가 타고 있던 베로가 스켈레톤을 공격했다.

힘차게 뛰어올라 허벅다리뼈를 깨문 것이다.

“악! 안 돼! 베로야! 평범한 개의 힘으로는 소환된 몬스터를 상대할 수 없어!”

뒤늦게 정신을 차린 광대가 급하게 개를 말리려고 했다. 그런데.

와작!

날카로운 개의 송곳니가 두터운 스켈레톤의 뼈에 파고들며 금을 만들었다.

“어…?”

광대의 입이 떡 벌어졌다.

“……되네?”

험악하게 스켈레톤을 깨문 베로가 가뿐하게 뼈를 잡고 붕붕 머리를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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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라면 99콤보까지 - 광대라면 99콤보까지-17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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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라면 99콤보까지 - 광대라면 99콤보까지-17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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