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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즐거운 나의 집 (2)

“자세한 내용은 듣지 못했습니다.”

“물어보면 되지.”

뚜르르. 승지는 바로 번태에게 전화를 걸었다. 허나 그는 던전에 있는지 전화를 안 받았다.

[바쁜가봐!]

나오면 연락 달라고 메시지를 치는 승지에게 유월이 말했다.

“승지 씨.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청이에게 더 시킬 일이 없다면요.”

당연히 유청한테 시킬 일은 엎드려뻗치라는 것 말고는 없었지만 승지가 아쉬움을 드러냈다.

“벌써 가려고요?”

“오랫동안 자리를 비웠으니까요. 할 일도 많고 량이한테 가족이 모인 모습도 보여줘야죠.”

가족 얘기가 나오자 유청은 승지가 정말 순순히 보내줄지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내가 뭐 그렇게 막되어 먹은 놈인 줄 아나. 안 낀다, 새꺄.

“다음에 밥이라도 꼭 한 번 사겠습니다. 이번 일로요.”

[꺅! 이번 일이라는 걸 콕 집어서 강조하다니! 둘만 밥 먹자는 얘기를 자연스럽게 할 줄 도 알고! 우리 승지 역시 성장했어!]

성좌가 중간에 톡 튀어나와 또 법석을 떨어댔다.

나라고 계속 얼 탈 수는 없잖냐.

기껏 마음의 준비를 한 승지에게는 가엽게도 여전히 이성간의 대화는 녹록치 않았다.

“승지 씨는 뭐 좋아하시는데요?”

“예?”

유월의 기습 질문에 당황한 승지는 면접이라도 보는 것처럼 재깍 답했다.

“저 아무거나 잘 먹습니다.”

“정말 아무거나 다 괜찮으세요?”

“넵.”

“승지 씨랑은 제가 정한 식당으로 가고 싶어요. 괜찮으시죠?”

“물… 물론입니다.”

승지는 여전히 얼떨떨한 채 대답했다.

[헉 뭐야? 유월 쪽에서 먼저 승지한테 관심을 보인 건 처음이잖아!!]

흥분이 고조된 성좌가 마구 대화창을 날아다녔다.

진짜 나한테 호감 생겼나? 지금 옆에 유청이 보이는데도?

유월은 눈이 뒤집어지는 유청을 말끔하게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

“그럼 예약하고 연락드릴게요.”

“네. 좋습니다….”

승지가 얼빠지게 대답했다.

유월의 단정한 얼굴이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숙였다.

[말도 안 돼! 정말 이세계에서 잘 보인 게 먹혔나? 이러다 진짜 사귀는 건 아니겠지? 설마!]

너무 놀란 성좌는 아예 현실 부정에 들어갔다.

이 자식이, 나 응원한다더니 말이 다르잖아.

그래도 화가 나질 않았다. 유월이! 먼저 식사 약속을 잡았는데! 어떻게 화가 나겠냐!

입이 헤벌쭉 벌어진 승지는 차마 보기 어려운 꼴로 싱글벙글 돌아갔다.

놔두고 간 것도 챙기고 류의건한테 그런 집은 얼마나 하나 물어봐야지.

혹시, 만약에라도 새로 산 집에 유월과 함께 들어갈 수도 있지 않은가!

[승지야 좋은 건 좋은 건데, 김치국은 마시지 말자. 너무 간다.]

그러나 이미 승지는 모솔의 망상이 폭주한 상태였다. 성좌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너와 결혼까지 생각~ 했~어~!]

“아, 알았어! 그만 한다. 자식아.”

성좌가 노래 가사까지 불러준 다음에야 정신을 차린 승지가 남은 일을 처리했다.

류의건은 승지가 돌아왔다는 연락을 받자마자 쏜살같이 돌아왔다.

“승지 씨!”

“어, 빨리 왔네?”

승지가 여유롭게 손을 흔들었다.

이세계가 아니라 어디 옆동네 놀이공원이라도 다녀온 모습이었다.

류의건이 얼떨떨하게 승지를 훑었다. 일단 사지는 멀쩡해 보였다. 그가 걱정스레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그럼.”

오히려 찔리는 쪽은 승지였다.

이세계에 가 있는 동안 류의건의 성좌한테서 힘을 빼앗았던 것이다.

만에 하나라도 중요한 보스 몹을 잡다가 갑자기 스킬을 잃어서 다쳤다거나 그러진 않았겠지? 에이 설마.

승지도 류의건을 슬쩍 살폈다.

“크흠. 나 없는 동안 뭐… 혹시 무슨 일 없었냐?”

“별 다른 일은 없었습니다.”

류의건은 승지의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니면 아직 자신이 류의건에게 그만한 신뢰를 얻지 못했을 수도 있고.

하긴 얼마나 본 사이라고.

승지가 볼을 긁적였다.

“그동안 고마웠다. 방세는 놓고 간다.”

“방세요? 지금 가십니까?”

“응. 이제 짐 빼려고.”

승지는 여전히 혈혈단신인 채로 대답했다. 당장 갈 곳이 없어서 빌린 것치고는 아주 호화로운 생활이었다.

“방세는 얼마 주면 되냐?”

“돈은 필요 없습니다.”

이야, 돈 많다 이거냐.

류의건의 즉답에 승지가 감탄했다. 과연 금수저다운 배포라고 해야 할 지 호구라고 해야 할 지. 승지는 예의상 되물었다.

“진짜 안 받아? 나 돈 많이 벌어왔는데.”

“처음부터 받을 생각 없었습니다. …다만.”

역시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니까.

“부탁 하나만 들어주실 수 있으십니까?”

“해줄 수 있는 거면 하지.”

돈보다 어려운 건 별로 없다고 생각하는 승지가 선선히 대답했다.

류의건은 뭘 그리 엄청나게 어려운 부탁이라도 하는지 신중하게 입을 떼었다.

“스킬 한 번만 제게 써주십시오.”

“그러지 뭐.”

승지가 주먹을 들어올렸다.

“아, 아니! 공격 스킬 말고요!”

“농담이야, 짜샤.”

장난스럽게 대답한 승지가 손을 폈다.

“페널티 때문에 그러지?”

“……예.”

류의건이 고개를 숙였다.

“각성자 관리소에서 승지 씨의 스킬을 봤습니다. 죄송합니다.”

역시 아무리 호구라도 별 생각 없이 잘해준 건 아니었군.

승지는 오히려 대놓고 류의건의 꿍꿍이를 들어서 속이 시원했다. 대충 눈치는 까고 있었지만.

“뭐 그런 일로 그러냐. 화 안나.”

대충 넘어가려는 승지에게 류의건이 진지하게 말했다.

“부디 이 얘기부터 듣고 신중하게 결정하십시오. 지금까지 제게 페널티 스킬을 써주신 각성자분들은 모두 다시는 그 스킬을 쓰지 못했습니다.”

“…엉?”

[으엑?!]

류의건이 가진 페널티가 어마어마한 줄은 알았지만 뭔 저 정도라고?

류의건이 고스란히 낭패감을 드러냈다.

“이 페널티는 제가 각성할 때부터 성좌를 따라온 마왕이 직접 건 페널티입니다. 성좌의 힘으로 페널티로 관리되곤 있지만 사실 승지 씨가 걸렸던 마왕의 저주와도 비슷합니다.”

마왕의 저주 급이라면 쉽게 해결하지 못한 것도 이해가 갔다.

“꾸준히 미션을 하다보면 페널티가 줄어들지 않냐?”

“…제가 부족한 탓에 페널티를 그렇게 계속 줄이지만은 못했습니다.”

승지는 이세계에서 봤던 신의 심판자를 떠올리고는 바로 납득 해버렸다.

대가리에 철가면을 쓰고 다니는 놈이니 당연히 먹통이었겠지.

“그렇다고 그대로 놔둘 수도 없잖아?”

“네. 단순히 저한테만 영향을 미쳤다면 차라리 감수하겠지만 미션을 할 때마다 다른 사람들까지 휘말려버리니… 반드시 제거해야 합니다.”

승지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엄청나긴 하구만. 그런데 그런 엄청난 페널티가 나 하나로 해결이 되겠냐?”

“…각성자로서 승지 씨의 성장은 지금껏 보지 못한 엄청난 속도입니다.”

류의건이 바로 이 지점이 중요하다는 듯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지금까지 만났던 페널티 스킬 각성자들은 모두 너무 약했습니다. 모든 스킬은 스탯이 감당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는 거 잘 아실 테죠.”

“응.”

“그러니 적어도 저와 비슷하거나 더 강한 수준의 각성자를 기다려왔습니다.”

류의건은 갑자기 어깨에 기대를 마구마구 실어놓았다. 약간 당황한 승지가 되물었다.

“그게 나라고?”

“예!”

류의건의 눈이 순수한 기대로 빛났다.

“승지 씨는 저를 뛰어넘으실 겁니다!”

“아하, 이것 참.”

뭐야, 이거 하나도 미안해 할 얘기가 아니었잖아?

승지의 입이 슬슬 곡선을 그렸다. 자신을 향한 기대가 그만큼 크다는 걸 듣고 누가 기분 나빠하겠는가.

졸지에 랭킹 2위와 맞먹는 수준까지 가라니.

[맞아! 승지라면 충~분히 가능해! 세계 제패도 꿈이 아니라니까!]

성좌까지 덩달아 바람을 집어넣었다.

“흠, 흠. 내가 이세계에서 또 스탯을 좀 벌어오긴 했지.”

“역시! 대단하십니다!”

류의건이 열심히 맞장구를 쳐주었다. 승지가 슬쩍 물었다.

“너 스탯이 어느 정도 되냐? 적당히 맞으면 지금이라도 스킬 써주는 건 어렵지 않지.”

기존의 승지 스탯을 종합하면 190 정도 였고, 이번에 이세계에서 벌어온 스탯 100까지 합치면 290이나 되었다.

막 각성했을 때와 비교하면 어마어마한 수치였다.

류의건이 솔직하게 불었다.

“제 현재 스탯 종합치는 550을 조금 넘습니다.”

“컥.”

사례가 들린 승지가 기침을 해댔다.

“괜찮으십니까?”

승지가 신경 쓰지 말라는 듯 손을 마구 휘저었다. 아 씨, 쪽 팔려. 그래도 좀 근접한 수치일 줄 알았더니.

성좌도 땀을 삐질 흘렸다.

[거, 거의 두 배나 되네. ;;;]

역시 랭킹 2위는 쉽지 않다.

승지가 헛기침을 해댔다.

“약간… 부족하긴 하네.”

“역시 바로는 어렵겠죠.”

류의건은 아쉽다는 듯 웃었다.

저 놈이 진짜로 아쉬운 티를 내니까 더 민망했다.

사실 저 쪽이야말로 5년 동안 뭐빠지게 굴러서 얻은 스탯일 텐데 반이나 따라온 내가 양심 없는 거지.

“뭐 조금만 기다리면 금방 따라잡겠네.”

승지가 허세를 좀 섞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니까.

“그런데 어디까지 내 스킬을 봤는지 모르겠지만 내 페널티 스킬은 그걸 제거하는 게 아니라 다른 형태로 바꾸는 거야.”

광대의 축복은 직접적으로 심신에 타격이 가는 페널티를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것에 가까웠다.

첫 사용 때 미션을 바꿔버린 게 바로 그 예시였다. 그 때는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영향력이 어떻게 나타날지 모르는 것이다.

“완전히 없애버리는 게 아닌데 괜찮겠냐?”

“네. 괜찮습니다.”

류의건이 이미 알고 있었는지 굳게 머리를 끄덕였다.

“저는… 이곳에 마왕만 나타나지 않으면 어떤 대가라도 감수할 수 있습니다.”

본인이 치르는 대가란 뜻이겠지.

그걸 파악했으면서도 승지는 말리지 않았다.

본인이 사서 고생하겠다는데 내가 뭐라고 말리냐. 호구 짓도 체질이야.

역시 깔끔하게 방세를 주고 끝내는 게 낫다고 생각하지만. 승지는 승낙했다.

“알았다. 스탯 올라가는 대로 스킬 써볼게. 좋다고 장담은 못한다.”

“감사합니다!”

승지의 경고에도 류의건은 화색이 되었다. 좀 민망할 정도로 허리를 굽혀서 승지가 일어나라고 말려야 했다.

얜 부자면서 왜 이리 허리가 쉬워?

띠리리리!

공기 중에 기본 벨소리가 울려 퍼졌다. 류의건이 스마트폰을 준 뒤로 따로 벨소리를 설정하지 않았던 승지는 뒤늦게 자기 건 줄 알아차렸다.

“아 번태 아재, 드디어 메시지 봤나보네.”

“번태 길드장님이요? 무슨 일로 연락하신 겁니까?”

나도 그게 궁금하다.

승지가 류의건에게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보내고는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자네 돌아왔나!”

화면 너머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갑자기 고막 테러를 당한 승지가 찌푸리며 귀에서 거리를 좀 두었다.

“목청 좀 낮추십쇼. 안 그래도 들립니다.”

“지금 미션 중이라서 말일세!”

과연 아직도 사냥 중인지 꽈릉거리며 번개가 내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실시간으로 지져지는 몬스터 소리에 승지도 덩달아 목소리를 키웠다.

“절 찾았다고 들었습니다?”

“아 그래! 자네가 마왕을 잡은 뒤로 우리 쪽에서 긴히 할 말이 있어서 말이야.”

번태가 딱딱거리며 지팡이로 머리를 쪼개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급적이면 다른 사람들 모르게 우리 길드로 와줬으면 하네!”

승지의 미간이 굳었다.

지금까지 봐온 번태를 봤을 때 그는 별로 수상한 인간이 아니었다. 아니 물론, 변태의 영역으로 가면 매우 수상하고 이상한 인간이긴 했지만.

적어도 악당처럼 보이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그래도 덥석 믿기엔 길드장이란 직함이 마음에 걸린단 말이지.

승지가 고민하자 옆에 있던 류의건이 슬쩍 자신을 가리켰다.

“저어… 죄송하지만 각성자끼리 통화할 때는 이어피스를 쓰시는 편이 좋습니다. 내용이 다 들려서….”

스피커폰도 아니었는데 그걸 듣는다고?

승지가 놀랄 틈도 없이 번태도 모기만하게 들렸을 류의건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대답했다.

“뭐야, 류의건 선생도 옆에 있었나! 류의건 선생까진 괜찮으니 같이 데려오게! 아주 중요한 일이야!”

“그냥 통화로 말하면 안 됩니까?”

“보안!”

번태는 그 말만 외치고는 통화를 뚝 끊어버렸다.

에라이, 이 좋을 대로 사는 인간이.

승지가 떨떠름하게 스마트폰을 집어넣었다.

“따라올 거냐?”

류의건은 당연한 소리를 묻는다는 듯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끝까지 부려먹고 가는구나.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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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라면 99콤보까지 - 광대라면 99콤보까지-1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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