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 폭탄 투하 (2)
번태는 세상이 밝아지자마자 바로 뇌룡을 낙하시켰다.
목표를 확인한 용의 아가리가 무섭게 하강했다.
실제로 채승지와 가면을 쓴 알러트가 대화할 수 있던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쿠르릉!
번쩍이는 뇌전에 급히 뒤로 물러나는 채승지와 달리 알러트는 미동도 않았다.
머리카락을 바짝바짝 태우는 번개가 내리꽂혔다.
콰과과광!
암흑만큼이나 짙은 빛이 터졌다. 스킬을 가한 번태마저도 잠깐 눈을 감았다 떠야만 했다.
유황과도 비슷한 타는 냄새가 났으나.
체구가 작아진 네모 가면이 여전히 멀쩡한 채로 위를 올려다보았다.
“어허!”
번태가 지팡이를 휘둘렀다.
“역시 알짜배기는 보스란 말인가!”
아무리 자신이 대한민국 랭킹 1위 각성자라지만, 그 유명한 알러트의 본진에 들어간 것치고는 너무도 쉬웠다.
던전의 입구는 계속 열려있었다. 번태의 진입을 도운 백정민이 던전 입구에 발을 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은 뭘 하지, 사장님?”
“자넨 얼굴이 안 보이게 좀 더 물러나있게!”
번태가 다시 지팡이를 들어 올리자 지직거리며 번개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번태의 스킬은 위력은 컸으나 시간이 걸리는 게 흠이었다. 물론 마법에 비하면 턱없이 빠른 속도였지만.
그 새를 참지 못하고 채승지가 알러트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괴물 자식아!”
스륵. 승지의 주먹을 피해 가면 알러트가 미끄러지듯이 움직였다.
“천둥 번개를 맞아도 멀쩡한 게 사람이냐?”
“사람인 걸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잖아.”
톡톡톡. 가벼운 걸음으로 승지를 피한 그가 살며시 소매를 걷어 올렸다.
“봐, 사람 팔.”
“얼굴이나 까.”
“싫어.”
승지가 프레임 컨트롤을 날렸다. 그러나 역시 스탯으로 따지면 부족하다.
승지는 변칙적으로 가면 주위의 공기에다 프레임 컨트롤을 걸어보았다. 시야를 방해해 볼 속셈이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눈으로 보고 피하는 게 아니었는지 승지는 물론, 번태의 두 번째 공격까지 자연스럽게 피해버렸다.
콰과광!
뇌룡이 몸부림치며 바닥을 찍고 튕겨 올랐다. 번태도 나름대로 머리를 썼는지 단순한 일격이 아닌 수류탄처럼 연쇄 폭발을 일으켰다.
그러나 승지가 줄기차게 주변 시야를 바꿔놓고 있는데도 가면 알러트는 공중제비를 넘듯 가볍게 뛰어넘었다.
그 사이 관객들이 모두 대피한 걸 확인한 류의건이 푸른빛을 거세게 피워 올렸다.
그리고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기세로 거대해진 검을 결계에 후려쳤다.
두우웅!
[멀쩡하잖아!]
변함없이 견고한 결계를 무시한 번태는 미리 합이라도 맞춘 듯 알러트를 구속했던 가죽끈을 내려보냈다.
스킬이 아니라 아이템인지 각각 살아있는 뱀처럼 움직인 가죽 끈이 맹렬하게 알러트를 추적했다.
승지도 그 혼란의 틈바구니에 섞여들었다.
벼락이 떨어지고 잡아 묶으려는 혼돈이 가득한 가운데 가열차게 움직이는 건 승지와 알러트 둘 밖에 없었다.
“목적이 뭐냐.”
“인재 영입.”
어이가 없어진 승지가 헛웃음을 내뱉었다.
“진심이냐? 알러트가 너 같은 괴물 소굴인데 들어갈 인간이 있게?”
“그 반대야. 오히려 좋아할 걸? 내가 조직원을 어떻게 모집했는데? 다들 각성자라는 괴물이 되고 싶어 하거든.”
그가 킥킥거렸다.
“왜 하늘에 뜬 인간이 카메라를 부수라고 했겠어? 그는 아는 거야. 정의가 아니라 힘이 사람을 모여들게 한다는 걸.”
“개소리.”
“내가 끔찍하면 끔찍할수록, 강하면 강할수록 사람들은 모여들 거야.”
승지는 그가 뭐라고 지껄이든 하나도 신경 쓰지 않았다. 원래 악당들은 이상한 말을 하는 법이니까.
그러나 상대적으로 싸움에서 떨어져있던 성좌는 그의 말을 고스란히 생각하고 말았다.
[…이상해.]
뭐가.
승지는 급하게 날아드는 번개를 피하느라 속으로만 물었다.
이상하다면 이상했다.
자신이 사람인 걸 보여주겠다고 말한 뒤로 네모 가면은 한 번도 공격하지 않았다.
그저 그를 잡기 위해서 날아오는 번태의 공격과 승지의 공격만이 계속해서 교차하고 있을 뿐이었다.
[저 말투, 저 내용. 분명히 내가 들어본 거야. 아는 사람이야.]
[……하지만 그럴 리가 없는데.]
성좌는 얼빠진 인간처럼 중얼거렸다. 승지가 시야 방해되니까 치우라고 말하려는 순간, 성좌가 짧게 대화창을 띄웠다.
[…다나우?]
“뭐?”
승지가 가면을 붙잡으려던 손을 멈췄다. 그리고 원래 그가 가야했던 자리에 창이 내리꽂혔다.
“미안하네! 목표가 도저히 가만히 있지를 않아서!”
위쪽에서 번태가 소리쳤지만 승지의 관심은 이미 꿰뚫릴 뻔한 손바닥에서 떠나있었다.
승지가 멈추자 가면도 멈췄다. 그를 향해서 내리치는 검은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 그의 머리 위에서 퉁퉁퉁 빗겨나갔다.
숨을 가다듬으며, 승지가 물었다.
“너 이름이 뭐야.”
“안 말해줘.”
“그럼 성좌는?”
가면이 고개를 갸웃했다.
“성좌 이름이 다나우냐?”
“…….”
아무 표정도 없는 가면 위로 그늘이 드리웠다.
“거기 있어?”
[거짓말….]
성좌끼리는 서로 알 수 없다. 그와 계약한 각성자를 통해서가 아니면.
하지만 이 반응을 보면 생판 모르는 타인일 리가 없지.
진짜냐?
승지가 찌푸린 표정으로 바라보고만 있자 네모 가면은 머리 위로 떨어지는 번개와 칼의 폭풍을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광대라는 이름을 보고 너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정말일 줄은 몰랐지만.”
[진짜야? 진짜 다나우야?]
성좌가 조급하게 말했지만 승지는 질문을 옮겨주는 대신 중얼거렸다.
“맞는 거 같다.”
그렇게 만나고 싶어 하던 다나우를 눈앞에 두고도 성좌는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도대체 어떻게 되먹은 자식이기에 소꿉친구가 악당 대가리 노릇을 톡톡히 하면서 나타나냐고.
그리고 승지는 곧 다나우가 원래 마왕이 되려던 인간이라는 걸 떠올렸다.
싹수가 노랬지.
“야, 성좌. 정신 차려. 자세한 얘기는 붙잡아놓고 들으면 돼.”
[하지만, 하지만.]
여전히 멍해있던 성좌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지금 승지를 지켜야 하는 건 누구보다도 자신이라는 걸 깨달은 듯 했다.
[이제야 이해가 가! 승지야! 지금까지 다나우가 보여준 스킬들 말이야!]
[다나우는 살아있었을 때 마왕의 힘을 훔쳐다 쓸 수 있었어! 그러니까 성좌가 된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 스킬이 똑같을 거야!]
“그 얘길 왜 이제 해!”
승지가 소리치자 가면이 퍼뜩 움직였다. 그저 여유롭게 도망치던 지금까지와 달리 정면으로 승지를 노리고 달려드는 모양새였다.
“이제 찾았으니 됐어.”
카랑.
그의 손에 칼이 나타났다. 양 손에 단검을 쥔 그가 크게 휘둘렀다.
“내 놔. 내 광대.”
“어딜!”
승지가 날아드는 가죽 끈을 억지로 잡아채며 검을 휘감았다.
[ 타리야의 채찍 : 목표한 상대를 영원히 추적한다. 절대로 끊어지지 않는다. ]
그가 붙잡자 잠깐 아이템창이 떴다가 사라졌다.
랭킹 1위가 쓰는 장비는 역시 달라도 다르다. 아니었으면 진작 끊어진 채찍 때문에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끼긱. 끼기긱.
턱 끝까지 다가온 단검을 힘껏 끈으로 조이는 승지와 찌르려는 가면이 팽팽하게 힘겨루기를 했다.
살아있는 채찍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다른 부위를 휘둘러 손목과 팔을 구속하려고 했다.
덩굴처럼 휘감는 채찍을 본 가면이 마지못해 팔을 가늘게 만들어 물러났다.
티잉!
승지가 재빨리 가면을 쫓아가려는 채찍을 손에 감았다. 가죽 끈이 팽팽해졌다. 또 한 번 걸려들면 아주 작살내주마.
그동안 성좌는 승지에게 무기를 주려고 인벤토리를 막 연 상태였다.
그런데 저번까지 그득그득 채워져 있던 무기들이 온데간데없었다.
[!]
[어, 어떻게 된 거지?]
그 많은 잡동사니가 모두 사라진 인벤토리에는 마지막으로 삼킨 마왕의 무기만이 남아있었다.
[설마?! 저 검이!]
성좌가 당황했지만 승지는 이미 싸움에 집중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내 놔!”
퓨마가 할퀴듯이 두 개의 궤적이 승지의 어깨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자꾸만 제멋대로 움직이려는 채찍을 힘으로 제압한 승지가 튕기듯 단검을 밀어냈다.
“얜 내 거야. 어딜 탐내!”
[허억! (⸝⸝⸝°O° ⸝⸝⸝)]
이 와중에 감동하지 말라고!
승지는 아예 채찍이 날아가는 방향대로 몸을 맡겼다. 프레임 컨트롤의 정직한 속도 변환과 달리 변칙적인 움직임이 순간적으로 혼란을 가져왔다.
여유를 되찾은 승지가 채찍을 당겼다 놓으며 반동으로 가면을 후려쳤다.
“어렸을 때랑 달라진 게 하나도 없구만.”
“네가 뭘 알아!”
기억이랑 똑같구만, 뭘.
허리를 반월 모양으로 꺾은 가면이 소리를 지르며 물러났다.
“그런데 이상하단 말이야.”
단검을 잡은 뒤로 네모 가면의 움직임이 지극히 사람답게 변해 있었다. 아까 마왕 어쩌고 얘기할 때와는 너무도 달라서 이상할 정도였다.
“네 성좌가 다나우라면, 왜 계속 성좌가 말하고 있는 거지?”
승지가 채찍을 붙들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러자 억눌려있던 채찍이 맹렬하게 날아갔다.
“네 계약자는 어디로 갔어?”
타탓!
정확하게 목표에 적중한 채찍이 절대로 목표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순식간에 그를 묶기 시작했다.
서둘러 날아간 채찍에 손이 쓸렸지만 그보다 얌전히 묶여있는 가면의 모습이 더욱 불안했다.
“내 계약자?”
그가 히죽 웃자 가면 아래로 이빨이 긴 턱이 툭 떨어졌다.
“지금도 여기 있어.”
콰과광!!
그 때 번태의 세 번째 공격이 떨어졌다.
채찍이 가면을 구속한 것을 보자마자 지체 없이 준비하고 있던 다음 공격을 날린 것이다.
이번 뇌룡은 용이라기 보단 거대한 섬광에 가까웠다. 도저히 눈 뜨고 보는 게 불가능한 전류가 뜨거운 대지 위에서 요동치듯 펄떡였다.
“소용없어.”
달그락.
가면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번개를 맞아도 사람은 죽지 않아.”
아니, 죽어.
보통은.
승지가 어금니를 지그시 악물었다.
“그래도 번개를 맞은 사람보다는 번개를 내리는 사람이 더 괴물 같지 않겠어?”
가면이 벗겨진 알러트가 승지를 향해 똑바로 고개를 들었다.
모르는 인간이 그를 향해 바라보았다. 초상화에서 봤던 다나우의 모습과도 달랐고, 막연히 목소리를 듣고 생각한 모습과도 달랐다.
알러트 보스는 한국 랭커 중에 한 명이라면서?
승지의 얼굴을 한 알러트가 히죽 웃었다.
[안 돼, 하지 마, 다나우!]
“어디 스스로한테도 사람이 아니라고 해봐!”
그가 킬킬거렸다.
승지는 여전히 연기가 피어오르는 바닥과, 당황한 번태의 지팡이가 우뚝 서는 걸 보고는 천천히 주먹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대로 자신의 뺨을 내리쳤다.
“우풉?!”
정확히는 알러트 보스의 뺨이었지만.
제대로 안면강타를 당한 그가 눈을 휘둥그레하게 떴다.
“쳐, 쳤어?”
“쳤다.”
“어떻게?! 넌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 거냐?”
“아니 등신이냐? 내 얼굴 보고 흔들리게?”
승지가 코웃음을 내뱉었다.
“내가 여기 있는데 다른 내가 존재할 리가 있냐? 그냥 쓰러트리면 겜 끝이지.”
“뭣! 넌 존재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지금 여기 재현된 건 네 그 자체다! 단순히 외형이 아니라 실질적인 존재의 근원이 내게 왔다고!”
“철학적인 얘기는 됐고.”
승지는 이미 숱하게 스스로와 싸워본 경험이 있었다.
격투게임에서 같은 캐릭터 미러전은 기본 아닌가?
티끌만큼도 흔들리지 않은 승지가 망설임없이 자신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내 제삿날은 내가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