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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일억 이천의 개들 (3)

백정민은 자신이 상종 못할 말종임을 손쉽게 드러냈다.

“난 돈만 주면 어디서든 일한다. 그리고 네가 꽤 많이 벌었다는 소문이 돌더군.”

그냥 무시하려던 승지가 멈칫했다. 자신은 친구가 없다. 허세도 없었다.

즉 이세계에서 떼돈을 벌어왔다는 소식을 어디다 말하고 다닐래야 다닐 수가 없다는 뜻이다.

[헉! ᕦ(ò_óˇ)ᕤ 어떻게 승지가 돈이 많다는 걸 알았지!]

말이 어디서 샜나?

승지가 금을 판 경로를 되짚어보는 동안 백정민이 피식거렸다.

“괜히 범죄 조직 하는 게 아니거든.”

“뒤를 캤다는 소식을 참 더럽게도 말한다.”

“말했잖아. 보스가 널 찾는다고.”

백정민은 대화가 길어지자 입이 심심한지 담배를 찾았다.

“하지만 네 쪽이 좀 더 쳐줄 거 같아서 말이지. 저번에 진 빚도 아직 다 못 갚았지 않나?”

“개소리는 접어두고, 그래서 뭐하자는 거냐. 협박?”

“거래지.”

백정민이 담배를 피우자 개들이 시끄럽게 짖어댔다. 씁, 이 녀석들 점점 마음에 드네. 주인이 싫어하는 녀석을 제대로 알아보잖아.

승지가 을러댔다.

“담배 꺼, 새끼야. 똑바로 얘기부터 해.”

백정민이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연기를 훅 뿜었다.

“어쩌다보니 조직에선 내가 너를 쫓는 걸로 되어 있어서 말이야.”

[으엥?!]

“아깐 마약 판다면서?”

“그건 부수입.”

백정민이 설명했다. 그가 승지를 데리고 조직에 간 일은 진작 들켰는데 어떻게 이빨을 털었는지 쫓겨나진 않은 모양이다.

오히려 승지를 찾는 보스의 목적을 알고는 기회로 삼아 혜택을 얻었으니 말이다.

“진짜 승진도 그거다. 문지기에서 각성자 추격을 하기 위한 스킬이랑 아이템도 꽤 받았으니까.”

승지는 어이가 없어졌다. 이렇게 대놓고 내가 네 추격자요 하는 놈은 처음 봤다.

장발장처럼 승지가 죄인이라면 모를까, 무슨 악당이 더 당당하냐고.

이제 와서 붙잡아서 후드려 패기도 애매해진 승지는 헛웃음만 나왔다.

“날 찾는다는 놈이 마약이나 팔고 있기는.”

“겸사겸사. 그리고 별로 의욕도 없었다. 알러트에서 얻어내려던 제일 비싼 건 이미 챙겼으니까.”

“비싼 거라니?”

“성좌.”

[아하~! 처음부터 알러트에는 각성하려고 들어간 거라는 소리구나!]

그래. 성좌가 제일 비싸다는 말도 이해가 갔다. 비각성자는 절대로 얻을 수 없는 물건이니까.

승지는 이 꺼림칙한 놈에게 돈을 줄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자진해서 알러트를 팔아먹겠다는 정신은 이해했다.

필요한 건 다 챙겼으니 튀어보시겠다?

의리라곤 쥐뿔도 없는 쓰레기 자식이었지만 어쨌든 저 녀석이 당장 속한 집단이 알러트라는 게 중요했다.

빨리 망하는 게 세상에 이로운 집단이니 저런 거지같은 녀석이 나와도 상관없다.

그리고 자신은 돈을 퍼부어가면서까지 알러트를 없애겠다고 노력하는 인간을 둘이나 알았다.

그것도 둘 다 떼 부자인 인간으로.

번태와 류의건을 떠올린 승지가 슬쩍 떠보았다.

“그럼 얼마 정도면 매수되는 거냐?”

“일억 이천.”

승지가 미간을 찌푸렸다. 구체적인 숫자가 저도 모르게 개들을 자신 쪽으로 당기게 만들었던 것이다.

사천 만원 짜리 몸뚱이들이 영문도 모르고 헥헥대며 끌려왔다.

“이것도 들었냐?”

“경찰서에서 그렇게 큰 소란을 피워놓고 모르길 바라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

“…….”

승지의 눈매가 사나워졌다.

혹시 이 근처에서 마약을 팔고 있던 것도 그냥 한 짓이 아니었나.

백정민은 바로 승지의 목전까지 다가와서 얼마나 비싸게 사줄지 재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갖고 있는 정보량과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과시하기엔 참으로 적절하지 않을 수 없다.

성좌도 덩달아 긴장했다.

[으윽, 저거 보통 녀석이 아니잖아…! 하긴 처음부터 이상했어! 승지를 도와줄 때부터 이런 상황이 올 줄 예견하고 있던 걸까?]

내심 동의하고 있던 승지가 마지막 말은 보류했다.

인간이 대가리를 얼마나 굴려야 거기서 여기까지 생각하고 움직이냐?

그냥 지 꼴리는 대로 했다가 꿰어 맞췄다는 편이 더 말이 되잖아. …말이 되어야 하는데.

백정민이 하는 짓을 보면 충분히 여기까지 생각했을 법한 느낌이 풍겨서 꺼려졌다.

[어떡할까 승지야?]

버리기는 아깝고, 데려가긴 꺼림칙하다.

못 먹는 감이라면 옆구리를 터트려버릴 생각으로 승지가 입을 열었다.

“진짜 일억 이천만 먹고 떨어질 생각은 아니지?”

“물론.”

“그럼 일단 닥치고 따라와라.”

* * *

백정민은 그대로 승지 집으로 끌려 들어갔다.

승지가 시킨 대로 집을 청소하고 있던 유청이 개 대신 들어온 시커먼 녀석에 놀라 눈을 떴다.

백정민도 유청을 보고 말했다.

“다른 사람도 있었군?”

“누굽니까?”

“어. 일단 묶어둬.”

승지가 아르르, 하고 울기 시작하는 개들의 목줄부터 풀었다. 유청은 당황했다.

승지가 돌아왔으니 청소한 집만 보여주고 갈 생각이었는데, 뜬금없이 낯선 사람을 묶으라고 지시를 받은 것이다.

게다가 목줄에서 풀려난 개들은 두 사람을 에워싸듯 사나운 소리를 흘리기 시작했다.

“크르르….”

“또 무슨 짓을 하는 겁니까?”

“잘 잡아둬라. 그 놈 진짜 알러트 조직원이니까.”

승지의 대답에 그때까지 혼란스러워만 하던 유청의 눈이 확 불타올랐다.

“진짜입니까?”

“진짜다.”

승지가 아닌 백정민에서 나온 대답에 유청은 두 번 망설이지 않았다.

퍽!

신속하고 빠른 공격이 백정민의 오금을 걷어찼다. 그동안 사냥을 쉬었다곤 하지만 랭커가 쌓아온 힘이 담긴 일격은 순식간에 백정민을 무릎 꿇리고도 남았다.

털썩, 바닥에 무릎을 꿇자마자 유청이 백정민의 목을 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막았다.

바닥에 고개를 처박고도 백정민은 고작 이런 소리나 했다.

“대접이 험한데?”

“닥쳐.”

유청은 그동안 쓸 일이 없던 인벤토리를 열어 험악한 무기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음, 날 죽일 때도 느꼈지만 저거 눈 돌면 대가리에서 이성이란 게 사라지는 군.

승지는 남 일처럼 생각했다.

“죽이지는 마라. 확인할 게 있어.”

유청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짓씹었다.

“어디서 찾았습니까?”

“근처에서 마약팔고 있던데.”

자세한 사정을 생략한 승지가 대꾸했다.

[스, 승지야. 좀 더 잘 대해줘야 하지 않을까? 우리 편으로 끌어들일 생각 아니었어?]

“별로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없는데. 서로 받을 것만 받으면 되는 거 아니냐?”

“그렇지.”

백정민은 반쯤 목이 졸린 상태에서도 대꾸해 유청의 화를 재촉했다. 남들 같았으면 갑자기 제압당하면 좀 기가 죽을 만도 한데 말이다.

한 손으로는 그를 묶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유청이 간절히 승지를 바라보았다.

“말뚝을 쓰면 안 되겠습니까?”

저 미친 살벌한 자식. 하나도 반성 안했잖아.

“안 돼.”

“못이나 망치도 있습니다.”

“좀 현대인다운 발상은 안 되는 거냐?”

결국 유청은 수갑으로 만족해야 했다. 백정민은 여전히 유청에게 눌린 채 식탁 의자에 걸린 수갑을 응시했다.

“나도 나름 각성자인데 이런 수단이 먹히나?”

“던전에서 나온 물건이다. 저 식탁을 부수면 네 손목도 날아간다.”

유청이 차갑게 말했지만 백정민은 오히려 옅게 웃었다.

“도망가려면 손목만 끊으면 된다는 소리군? 아, 그럼 넌 어디서 도망친 거지?”

“…이 개자식이!”

자신의 잘린 팔을 갖고 하는 소리에 유청이 미친 듯이 분노를 뿜어냈다. 활화산도 저것보단 덜 활동적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히익! 나 유청이 욕하는 거 처음 봐! 놔뒀다간 진짜 죽이는 거 아냐?]

“놔둬. 머슴 짓이 적성에 맞나 보지.”

승지가 지나가듯 한 소리에야 겨우 유청이 정신을 차렸다. 비로소 유청이 자신이 저지를 짓이 두려운 것처럼 물러났다.

한참 숨을 몰아쉰 유청이 물었다.

“……어쩔 겁니까?”

“쓸 데가 좀 있어서.”

승지가 느긋하게 소파에 앉자 유청은 의아해했다. 그가 이미 연락을 다 취한 뒤라서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는 사실을 몰랐던 유청은 혼자 초조해했다.

잠시 후 현관에서 벨이 미친 듯이 울려댔다.

찌르르르! 찌르르르!

“알러트를 확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네!”

“부하를 붙잡았다는 게 사실입니까?”

번태와 류의건이 번갈아 닥쳐왔다. 그리고 어리둥절하게 거실에 엎드린 채 묶여있는 백정민을 발견했다.

승지는 마치 노예시장 사회자처럼 태연하게 말했다.

“인사해라. 물주 1, 물주 2시다.”

“반갑군.”

백정민이 진짜로 인사까지 하며 한 손을 들어 올렸다. 유청의 혈압과 동시에 번태와 류의건의 의아함 수치도 치솟았다.

승지는 간단하게 사정을 설명했다. 코스모스 센터와의 인연과 어떻게 자신이 알러트 조직까지 파고들 수 있었는지까지 말이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사건에 일부 관련되어 있던 류의건도 번태도 차츰 이해의 눈빛을 띄었다.

“일이 그렇게 된 거였군!”

번태가 박수를 짝 쳤다.

“인연이란 것이 참으로 신비하여, 여기까지 알러트의 부하가 인도되다니! 성좌신의 이끔이 참으로 놀랍구만!”

“어떻게… 정말입니까?”

류의건은 여전히 믿을 수 없는지 백정민과 승지를 계속 번갈아 보았다.

“뭐 보시다시피 보통 놈은 아닌 느낌이지 않습니까. 어차피 들어온 놈 써먹어도 될 거 같은데.”

“너무 위험하지 않습니까!”

“밖에서 돌아다니게 놔두는 편이 더 위험할 거 같은데. 게다가 어차피 내 집도 알고 있었을 테고. 맞지?”

“그래.”

태연하게 오가는 승지와 백정민의 대화를 다른 사람들은 선뜻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저게 정말로 자신을 잡으러 다닌 추격자와 목표의 대화란 말인가.

승지가 턱을 괴었다.

“아무튼 쓸모가 있을 거 같아서 주워온 겁니다. 예전에 알러트 본진도 데려다 준 적이 있던 놈이니까요. 그리고 본인 입으로 돈만 주면 뭐든 한다는 쓰레기라서요.”

“돈만 있으면 개도 살 수 있는 세상 아닙니까.”

백정민이 거실에 나란히 앉은 케로베로스야를 힐끗 눈짓했다. 의미심장한 말이다.

저 새낀 정말 자존심도 없군.

선뜻 자신을 개로 지칭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짓이 아니었다. 그것도 돈에 스스로를 팔겠다는 개를 말하는 데도 말이다.

아무리 욕을 처먹거나 붙잡혀 험한 일을 당해도 백정민은 계속 이 상황을 주도하고 있는 것처럼 느긋하게 웃었다.

“설마 랭커 1, 2위가 앞 다투어 사러올 줄은 몰랐지만… 확실히 제대로 된 거래처를 뚫어줬군.”

“너 좋으라고 한 일 아니다.”

승지가 쯧하고 혀를 찼다.

류의건이 난감하게 번태를 돌아보았다.

“길드장님.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이번 행사로도 충분히 알러트를 확보할 수 있을 거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하지만 안전장치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 아닌가?”

번태가 태연하게 되물었다. 써먹을 패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법. 이번 윷놀이도 그래서 많은 팀원을 모집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여러 상황을 고려해보듯 번태는 백정민을 보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좋아, 내가 사지!”

번태가 시원하게 낙찰했다. 평소처럼 웃는 얼굴이었지만 눈빛이 조금 서늘했다.

“하지만 자네도 각오해야 될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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