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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거짓말쟁이들의 춤 (4)

승지와 성좌가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길쭉길쭉하게 늘어난 팔다리가 사람들의 허리와 손목을 붙잡고 빙글빙글 돌렸다.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광경이었기에 잠시 당황했던 승지의 눈이 곧 부릅떠졌다.

춤을 추는 사람과 마왕의 부하들은 바닥에서 나타난 검은 문으로 향했다.

삐걱.

강제로 춤을 추는 사람이 가까워지자 닫혀 있던 문이 순식간에 열리더니 마왕의 부하가 사람을 데리고 쑥 들어 가버렸다.

”저것들! 사람을 납치하고 있잖아!“

”네?“

”방금 뭐라고….“

”문을 부숴!“

승지가 냅다 뭉쳐있는 동물 탈을 향해 검을 내리쳤다.

승지의 공격을 피해 마왕의 부하들이 우글거리며 사방으로 퍼졌다.

”으악! 섣불리 건드리지 말게!“

”이쪽으로 오잖아!“

”걱정되면 그 잘난 각성자 놈들한테 지켜달라고 해!“

승지는 검을 휘둘러 길을 트고는 번태가 쳐놓은 번개의 강을 뛰어넘었다.

[어디로 가는 거야!]

”다른 문으로!“

난 랭커들이 없는 쪽으로 간다!

콰당탕!

승지가 거칠게 뛰어나간 모습을 본 동물 탈들이 잠시 그를 응시했다.

그러더니 승지가 움직인 동작을 보고 배운 것처럼 무릎을 굽혔다.

마치 뛰어넘으려는 것처럼.

“히익!”

기괴하게 긴 다리가 위아래로 접히는 걸 본 사람들이 겁에 질려 물러났다.

”번태 길드장!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겠네!“

”대피시켜주세요!“

마음이 급하니 랭킹 1위부터 찾던 사람들의 머리가 이쪽저쪽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방금 전까지 그들을 지켜주던 번태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져 있었다.

”번태 길드장?“

”어, 어딜 갔지?“

다른 사람들은 몰랐으나 번태는 이미 방어막만 쳐놓고 이동한 상태였다.

지금도 끊임없이 울리는 경보가 파티장에만 머물 수 없게 만들었던 것이다.

다행히 그들에겐 아직 랭킹 2위인 류의건이 남아있었다. 안색이 창백해진 사람들이 류의건에게 몰려들었다.

”류의건님!“

”저흰 처음부터 류의건 씨를 믿었어요!“

”여러분 진정하세요. 어렵게 제 쪽으로 오실 필요 없습니다!“

생긴 게 무섭긴 해도 파티장에 있는 각성자의 숫자를 고려하면 전혀 위험한 상황이 아니었다.

때문에 자신도 떠나야 한다고 말하려던 류의건이 류 회장의 시선에 멈칫했다.

아버지의 행동 방식을 너무 잘 알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언론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은 이쪽이다. 그들 중엔 네가 저지른 일을 아는 자도 있다.

위험을 줄이려면 지금 이들에게 신뢰를 쌓아라.

명령 아닌 명령을 빠르게 이해해버린 류의건에게 자괴감이 몸서리치듯 올랐다.

그의 평판이 추락하는 건 무섭지 않으나 신뢰를 잃은 자신 때문에 다른 사람이 피해를 입는 게 두려웠다.

결국 류의건은 이동을 포기하고 차라리 이곳에 있는 위험을 빠르게 제거하기로 했다.

푸른 검이 빛을 뿌렸다.

한편 승지를 뒤따라 나가려던 유월과 유청은 뜻밖의 인물에게 가로막혔다.

”자네들 지금 어디 가나!“

길드 연합의 박편호였다.

”밖에도 소환된 거 보셨잖아요.“

”이쪽을 보호해야지!“

”커넥트 길드장님만 계셔도 충분합니다.“

그대로 나가려는 둘에게 박편호가 엄하게 소리쳤다.

”자네들 애초에 파티에 온 목적이 뭔가!“

”…?“

”어차피 밖에 있는 사람들을 다 구할 순 없어! 지금 이들에게는 대외적인 얼굴이 필요해! 믿음을 주는!“

”류의건 씨가 있잖습니까.“

”부족해.“

박편호의 손이 끈적하게 현관문을 눌렀다.

그러자 그의 스킬이 발동하며 문이 도저히 지나갈 수 없을 만큼 녹아내리며 끈끈해졌다.

”그 채승지인지 뭔지 때문에 난 집도 빼앗겼잖나! 이번에 각성자 세법이 통과되어버리면 난 정말로 망해! 제발 도와주게!“

유월과 유청이 동시에 서로를 흘긋 쳐다보았다.

그리고 입을 모아 말했다.

”알아서 하세요.“

콰앙!

쌍둥이가 스킬이 없는 벽을 그냥 부수며 나갔다.

승지는 성좌가 휴대폰과 연동해 띄워주는 지도를 보며 달렸다.

파티장과 제일 가까운 문은 하필이면 대형마트 앞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나오던 가족이 행사인 줄 알고 동물 탈을 쓴 괴물들에게 다가갔다가 휙 붙잡혀버렸다.

”살려주세요!“

”아아악! 엄마!“

공중에 들린 아이가 빙글빙글 돌았다. 동물 탈을 쓴 마왕의 부하들은 마치 그를 안심시키려는 듯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지만.

짐승의 이가 드러나자 아까보다 훨씬 무섭게만 보였다.

”꺄아아악!“

”무서워! 으아아앙!“

”철수야!!“

그때 바람처럼 파르륵 떨리는 소리가 그들의 귓청을 때렸다.

프레임 컨트롤을 쓴 승지가 단숨에 남아있던 100여 미터를 뛰어넘은 것이다.

”그 손 안 떼냐!“

불량한 양아치처럼 소리치면서 승지의 발이 당나귀 탈을 쓴 인간의 손목을 강타했다.

덕분에 스윙 동작을 하고 있던 마왕의 부하와 붙잡혀있던 아이까지 함께 날아갔다.

”꺄아악!“

[꺅! 승지야! 애 날아간다!!]

안 놓치지.

승지는 둘이 바닥에 나뒹굴기 전에 프레임 컨트롤의 상대를 옮겼다.

아이가 콘크리트에 떨어지는 줄 알고 비명을 지르던 부모가 눈을 크게 떴다.

자신의 아이가 슬로우 모션으로 멈춰둔 것처럼 느려졌기 때문이다.

울던 아이가 놀라서 훌쩍거리는 느린 프레임 동안 당나귀 탈이 아이를 붙잡은 채 빠른 속도로 제자리에서 돌았기 때문이다.

퍽! 쿠당! 지이익!

손이 붙어버린 광대의 슬랩스틱 코미디처럼 혼자서 쾅쾅 바닥에 머리를 찧은 녀석이 찌그러지듯 푹 쓰러졌다.

그동안 승지는 느리게 계속 떨어지고 있는 아이를 휙 낚아챘다.

다시 그들에게 돌아온 아이를 본 부모들의 얼굴이 환희로 번졌다.

”고, 고맙습니다…!“

”빨리 튀기나 하시죠.“

승지는 꾸물꾸물 일어나는 동물 탈을 걷어찼다.

그의 얼굴이 무섭게 굳어 있었다.

던전에서 겪었던 개 같은 기억이 계속 떠올랐던 것이다.

만약 지금이 정말로 던전 속이라면 자신이 아는 사람이 동물 탈을 쓰고 와도 망설임 없이 없앨 거 같다.

”제기랄 것들이!“

승지가 울분을 담아 다른 마왕의 부하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은 승지만 보면 무섭게 도망치려고 들었으나 납치를 하던 놈들은 속도가 느려 모두 승지에게 걸리고 말았다.

”안 꺼져? 안 꺼져?“

승지가 후려칠 때마다 여지없이 콤보가 뜨며 몸이 우그러졌다.

마치 발을 구르면 도망가는 바퀴벌레들 같았다.

결국 승지의 방해를 받은 마왕의 부하들은 사람을 납치하는 걸 포기하고 슬금슬금 나왔던 문으로 돌아갔다.

”어딜 도망가?“

승지가 사납게 발목을 잡아당기자 동물 탈 하나가 주욱 끌리며 딸려왔다.

그동안 남은 녀석들은 구깃구깃 몸을 접으며 문틈으로 사라졌다.

남은 것들도 싹 다 잡아 버리고야 말겠다.

승지는 일단 붙잡은 놈의 머리를 발로 꾹 눌렀다.

닭 대가리가 물컹하게 밟히는 느낌이 아주 불쾌했다.

”이 새꺄, 뭐하러 왔어? 범윤오가 보내서 왔냐?“

버둥버둥.

대답 대신 닭 대가리가 허우적거렸다. 승지가 윽박질렀다.

“너네 말 할 줄 아는 거 다 알고 왔다.”

[어! 문이 사라진다!]

도망친 마왕의 부하들을 다 삼키자 문이 삐걱거리며 접히더니 사라질 조짐을 보였다.

”벌써 다 튀는 거냐!“

승지가 혀를 차며 마왕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길어져 봐!“

쑥.

명령대로 늘어난 무기가 여전히 뿅망치의 형태라 승지가 덧붙였다.

”위협적으로!“

즉시 붉은 뿅망치 부분이 창날로 바뀌었다.

승지가 그대로 동물 대가리를 누른 채 힘껏 사라지는 문을 찔렀다.

빠직!

나무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으나 문은 고정되지 않고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띠링!

[ 완벽한 콤보가 실패했습니다! 사용한 이세계의 힘만큼 페널티를 받습니다. ]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놈들이라 콤보형 스킬을 쓸 만큼 콤보 숫자를 맞추기가 어려웠다.

저릿하고 몸에 오는 페널티의 충격을 손을 몇 번 터는 것으로 무시한 승지가 다시 무기를 원래 형태로 되돌렸다.

”야… 아니?!“

치이익!

던전 문이 사라지자마자 닭 대가리에 달린 부리가 크게 열리다니 거품이 쏟아져나왔다.

그대로 즉사해버린 것이다.

고무 타는 냄새를 풍기며 녹는 마왕의 부하를 본 승지가 코를 틀어막으며 뒤로 물러났다.

”젠장. 이것도 인형이었나….“

[취미도 정말 고약하다! 어째서 이런 모습을 흉내 낸 거야! 굳이 다른 마왕의 부하를 따라 하다니!]

”그 새끼들 대가리 속을 내가 어떻게 아냐.“

승지는 신발 밑창이 녹은 걸 보고 조금 더 어이가 없어졌다.

[승지가 갇혀있던 던전의 주인이 다나우였으니까 승지가 싫어하는 모습을 이용한 거지도 몰라!]

”내 저격이었다고? 생각하는 거 하고는.“

승지가 바닥에 밑창을 문질렀다.

”하여튼 망할 새끼들. 다음 문은 또 어디냐?“

승지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잠시만!]

[어?]

[승지야. 다른 곳에서 열린 나머지 문은 저절로 사라졌다는데?]

”뭐?“

성좌가 영상으로 연결했다.

방송은 이미 생중계가 아니라 속보로 바뀌어 있었다.

”오늘 오후 7시 경에 갑자기 나타난 검은 문에서 마왕의 부하들이 출현하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납치된 사람들의 신원은 아직 전부 파악하지 못한 상태이며….“

”일부 각성자들에게선 이번 일이 알러트의 소행이라는 증언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미 알러트 본진은 모두 소탕되었다고 하지 않았나요?“

”H 호텔에서 열린 파티에서는 희생자가 없다고….“

”지금 현장에 나와 있는 어둑시니 길드장을 포착하였습니다.“

승지는 양복을 입은 그대로 날아다니는 번태를 발견했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 보이는 검은 문마다 번개를 내리쳤는지 상당히 피로한 몰골이었다.

그러다 곧 촬영 카메라를 발견했는지 바로 하얀 섬광이 번쩍이더니 사라져버렸다.

”아니 씨. 이젠 얼굴 공개한다면서 왜 저렇게 수상하게 구는 거야.“

[승지야, 승지야! 이것도 봐!]

성좌가 영상이 아닌 커뮤니티창도 띄웠다.

[ 오늘 검은 문 본 놈들 있냐? (댓글: 23)

이번에 나온 괴물 새끼들 다 초면이던데? 마왕 누구임?

ㄴ 몰라 ㅅㅂ ㅈ같이 생겼음.

ㄴ 그거 마왕 아니고 인간이 한 짓이라던데?

ㄴ ㅇㅇ 사실 각성자들이 다 짜고 치는 판인 거 아직도 모르냐? 하여튼 각성 못한 게 죄다 ㅋ

ㄴ 나도 납치당할 뻔했음.

ㄴㄴ 응 꺼져. 인증 없음 안 믿어~.]

[ 타이밍이 이럴 수가 있냐? (댓글 : 48)

아니 ㅅㅂ 알러트 다 잡았다면서 갑자기 류의건 폭로영상 뜨고 랭커들 ㅈ목질 하는거 뭐임? 진범 아니라고 지들끼리 이빨 터는 거?

그럼 때맞춰 나타난 던전 문은 뭔데?

ㅈ나 짜고 치는 냄새 남.

ㄴ 음모론 안 사요.

ㄴ 사실 범윤오 좌가 옳았던 거다. 어리다고 꼰대 랭커 새끼들이 안 끼워줬을 확률 100%. 꼴받아서 다 뒤엎은 거임.

ㄴㄴ100프로 이 지랄. 걔 말고도 미자 랭커 많고요? 뇌피셜 지렸다.

ㄴ 알러트 가입 링크 드림. 비각성자들의 답은 여기밖에 없다. ]

[ 전 류의건 각성자님 믿어요 (댓글 : 152)

지금까지 해오신 선행이 있는데 사람이 그렇게 이중인격처럼 범죄조직을 운영했을 리가 없어요.

ㄴ 솔직히 걘 금수저라 그런 거 할 필요 없긴 함.

ㄴㄴ ㅇㅇ ㅇㅈ.

ㄴ 근데 걔 빼고 다른 랭커들은 의심스럽지 않냐. 솔직히. 어차피 걔네 각성해서 돈 ㅈ나 잘 버는데 세금도 안내고 ㅅㅂ. 대기업보다 더함. ]

보다보다 역겨워진 승지가 외마디 욕설을 내뱉었다.

”…시발?“

여론은 개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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