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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우르릉 쾅쾅 (2)

[모태솔로 특징 1. 이상한 데서 반함.]

화난 모습이 예뻐 보이면 다 틀린 거라던데.

침묵이 길어지자 최자림이 한 마디 던졌다.

“승지 씨. 사과 받아줄 생각 없죠?”

퍼뜩 정신을 차린 승지가 표정을 굳혔다.

지금 여기서 유월이 이상형이라는 걸 들키면 평생 술자리에서 씹힐 탑급 안주거리다. 그것도 뜬금없이 이 상황에서. 형제 팔을 잘랐다고 뺨을 갈겼는데? 절대 안 될 말이지.

특히 유청이 알았다간 완전 개지랄을 할 거다 저 새낀 진짜 두 번 죽이고도 남을 놈이라고.

승지가 정신 사납게 생각을 굴리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은 그가 단단히 화가 난 것으로 오해했다.

유월이 깍듯하게 숙였던 허리를 폈다.

“아까 일은 부디 가족으로서 화가 난 일로만 받아들여 주십시오. 길드장으로서는 분명히 사과드리겠습니다.”

공과 사를 확실하게 구분하는 모습이 또 귀여웠다.

[모태솔로의 특징 2. 별 거 아닌 일로 확대해석 함.]

“큼.”

승지는 급하게 헛기침을 했다. 하지만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팔을 잘라서 미안하다고 해? 돌았나. 저 새낀 내 목을 뚫었는데.

다행히 집주인이 제 역할을 깨닫고 나섰다.

“일단 다들 앉아서 얘기하죠. 진정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류의건의 말에 사람들이 천천히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승지는 여전히 유월의 시선이 자기한테 꽂혀있다는 걸 알아차리고는 한숨을 삼켰다.

하필 상태가 거지같을 때 만나다니. 난 염색했을 때 더 멋있어서.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일단 이상형을 만나 당황한 뇌부터 깨워야 할 듯싶었다.

“물 좀 마시자.”

그러자 머슴인 유청이 알아서 냉장고 쪽으로 움직였다. 그가 한 팔로 달칵 냉장고를 열자 당연히 유월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왜 청이 네가 물을 떠와?”

“제, 제가 떠오겠습니다!”

가뜩이나 눈치를 보던 명구가 후다닥 뛰어나갔다. 보아하니 유월은 지금은 머슴 얘기까진 모르는 듯 했다. 젠장.

[모태솔로의 특징 3. 잘 보이려고 하면 망함.]

승지는 난감한 표정으로 물을 들고 온 유청과 명구 사이에서 입을 꽉 다물었다.

눈치 없는 자식! 그렇게 계속 싸가지 없이 굴더니 왜 하필 지금 얌전히 머슴 짓을 하냐고!

아무리 승지가 모쏠이라도 가족을 노예처럼 굴리는 인간에게 여자가 반할 리가 없다는 사실을 모르진 않았다.

그런데 유청이 하필 지금 자기 죄를 깨닫고 머슴으로 자진납세를 해버리다니.

아무래도 유월에게 잘 보이기는 글렀지?

승지가 뭣 씹은 표정으로 명구에게서 탁 물 잔을 빼앗았다. 그래봤자 유청을 머슴에서 풀어주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으니.

[결론 : 안 생겨요.]

“…근데 너 아까부터 뭐 하냐?”

아까부터 대화창이 너무 적절하게 떴다. 뭔 마음을 읽나 싶을 정도로 절묘해서 은근히 빡친달까.

성좌가 능청을 떨었다.

[갑자기 승지네 문화가 너무 궁금해져서 찾아봤지~.^^ 모태 솔로란 이런 거구나!◝( ˙ ꒳ ˙ )◜]

이자식이 그걸 왜 지금 공부해.

성좌의 장난질에 승지의 혈압이 겨우 냉정해졌다.

하. 그래. 지금 내가 연애질을 할 때가 아니지. 마왕 잡아야 할 거 아니야. 마왕.

하지만 유월은 정말로 연예인보다 더 보기 드문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전투로 다져진 늘씬한 몸과 어울리지 않을 만큼 가녀린 외모에, 순진하고 큰 눈은 특히 눈꼬리가 살짝 치켜 올라가서 매력의 정점을 찍었다.

진짜 실화냐. 어떻게 이 사람이 유청 놈이랑 같은 핏줄이야?

승지가 슬쩍 물었다.

“청월량 길드장이면 누나입니까?”

“쌍둥이입니다. 나이가 같으니 손위구분은 하지 않습니다만.”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유청이 순순히 대답했다. 인마, 너한테 물어본 거 아니야. 존댓말이었잖아.

승지가 빤히 쳐다보는 유월에게 다시 시도했다.

“그 나이에 길드장 하기 어려웠을 텐데 대단하네요.”

유청은 갑자기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냐는 표정으로 신속하게 바뀌었다.

승지 네 놈이 절대로 그런 고운 말을 할 리가 없을 텐데? 라는 심산이 확연히 드러나고야 만 것이다.

…눈치 빠른 새끼.

승지는 포기하고 일 얘기나 하기로 했다.

“유청에게 들었다면 알겠지만, 마왕 사냥에 필요한 병력을 청월량 길드에서 지원받을 예정입니다.”

“내놔, 라는 거군요.”

짧고 강한 말에 승지가 눈을 깜박였다. 유월이 황급히 덧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좀 다혈질이라.”

유월이 민망한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자제해보려고 길드장 자리에 앉았지만 쉽진 않네요. 어쨌든 글라세로 사냥에 청월량 길드도 동참하겠습니다. 단, 병력은 저 혼자입니다.”

그때까지 느긋하게 듣고 있던 승지가 높여오던 말끝을 바로 잘라버렸다.

“길드 건물에 있던 각성자는?”

“문하생들은 저희 길드와 상관없습니다.”

“왜 선을 긋지?”

“…….”

“상관 없다기엔 그 문하생들이 청월량 길드에 가겠다는 걸 아주 열렬히 막아서던 걸로 기억하는데.”

“부디 이해해주십시오. 이번 일이 끝나면 직접 승지 씨를 데려가 모든 것을 설명하겠습니다. 왜 청이가 당신을 살해했는지, 알러트가 무슨 짓을 했는지.”

유월은 침착하게 말을 끝내놓고 무심결에 식탁을 짚었다.

“굳이 그걸 알고 싶으시다면 말입니다.”

쩌적. 무심코 힘이 들어갔는지 유월이 짚어버린 식탁에 금이 갔다. 길드장으로선 어쩔 수 없이 굽혔지만, 본인은 싫은 게 확실했다.

유청이랑 성질머리 하나는 닮았네.

다만 유월은 신기하게도 표정은 그대로인데 얼굴만 붉어졌다 하얘졌다 혈색을 바꿔가며 자기감정을 드러냈다.

피가 빨리 몰리는 타입인 거 같았다.

같잖게 무표정을 연기하는 유청보다 훨씬 통제력이 높았지만, 결과적으로 피부 때문에 감정을 숨길 수 없다는 게 진짜. 빌어먹게 귀여웠다.

“꼭 들으러 가야겠네.”

승지가 비식거리며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감췄다. 유월의 낯빛이 다시 하얗고 침착하게 돌아왔다.

“죄송합니다, 류의건 씨. 식탁은 물어드릴게요.”

“아니, 괜찮습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약간 난감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던 류의건이 얼른 손을 내저었다.

그때까지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던 유청이 끼어들었다.

“어둑시니의 협조를 얻었어도 결과적으로 숫자가 부족하게 되었으니 저도 싸우겠.”

“안 돼.”

유월이 보지도 않고 칼같이 유청의 말을 잘라냈다.

“넌 길드로 돌아가.”

“너한테 한 말이 아냐. 나도 다시 싸울 수 있어.”

“웃기지마. 넌 지금 집 지키는 똥개만도 못해.”

“크흡…!”

이건 진짜 못 참고 웃음이 터졌다.

아, 큰일 났네. 더 마음에 드는데.

나대는 유청에게 한 소리 하려던 승지는 자기 대신 잘라주는 유월이 아주 좋았다.

죽이고 싶은 눈길로 승지를 노려본 유청이 유월의 어깨를 붙잡았다.

“예전에 한 팔로 싸웠어도 넌 이겼어.”

“그건 내가 무기를 안 들었을 때잖아. 그리고 안 쓰는 것과 못 쓰는 건 다르지.”

유월이 갑자기 유청의 손을 강하게 내리쳤다. 충격을 받은 유청이 튕겨나가며 심하게 비틀거렸다.

“아직까지 균형도 제대로 못 잡는 주제에.”

유월이 냉정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너도 나처럼 칼잡이였다면 한 번은 고려해봤을 거야. 하지만 권법을 쓰는 애가 싸운다는 건 말이 안 돼.”

“그럼 칼을 줘. 잡을 테니까!”

“안 돼.”

단호하게 내뱉은 유월이 빙글 몸을 돌리더니 류의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어둑시니 길드 쪽은 어떻게 됐죠?”

류의건이 어색하게 손목을 들어보였다. 차마 이 남매 싸움의 한복판에서 말을 하기도 곤란해 보였다.

유월은 류의건의 손목에 찬 번태의 소환 시계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군요. 어둑시니 길드장의 협력을 얻었으니 바로 대책 회의에 들어가도록 하죠. 미스핏 길드의 전권은 최자림 씨가 이어받았습니다.”

“어! 어! 제가 부를래요!”

최자림은 이곳을 가득 채운 팽팽한 긴장 따윈 알 바가 아니라는 듯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제가 번태 길드장님 부르고 싶어요!”

류의건은 차라리 잘됐다는 표정이었다. 하긴 그가 소환 포즈를 취하는 것도 잘 상상이 안 가긴 했다.

냉큼 시계를 푼 그가 최자림에게 건넸다.

“어떻게 소환하는 진 알고 계신가요?”

“그럼요! 번태 님의 소환 동작은 유명하죠!”

최자림이 싱글벙글 웃으며 시계를 찼다. 유월의 관심이 최자림에게 옮겨가자 유청은 화를 참으며 물러났다.

그러거나 말거나 최자림은 신나서 팔을 휘둘렀다.

“사랑과 정의를 담아! 이 우주의 온갖 악당과 마왕 무리들을 해치울 용사를 불러내도록 하겠습니다!”

“…저 대사도 외쳐야 하는 거냐?”

“아니죠. 최자림 각성자님만 저렇게 하는 거죠.”

“역시 그렇지?”

승지와 명구가 한숨을 쉬었다.

[정말 멋지다! 대사랑 저 동작들까지! 광대의 귀감이야! 나중에 승지도 저렇게 할 수 있도록 메모해둬야겠어!]

“죽인다. 메모하기만 해봐.”

승지가 다급히 으름장을 놓았다.

아무래도 최자림과 좀 거리를 둬야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낀다. 성좌 교육에 너무 안 좋아.

애가 보고 따라 하잖아.

최자림이 마무리 동작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번태 길드장님! 나와 주세요! 소화아안!”

쿠루릉!

멋진 자세를 취한 최자림의 뒤로 새하얀 번개가 내리쳤다.

물리적으로 저게 어떻게 가능한 지 생각하기도 전에 또 다시 우렁찬 목청이 들려왔다.

“누군가 나를 부르신다면!”

“나타나는 게 인지상정!”

“그건 내 대사일세!”

꺅꺅거린 최자림이 대사를 가로채자 마무리 대사를 바꾼 번태가 우르릉 쾅쾅 류의건의 집에 등장했다.

“이거 반가운 얼굴들이 아주 많은 걸?”

유월과 유청이 동시에 일어나 꾸벅 인사했다. 번태가 슥 선글라스를 밀어 올렸다.

“자, 그래서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되나? 마왕이라고 했지?”

“브리핑은 이쪽입니다~.”

최자림이 신난 얼굴로 바퀴달린 의자를 번태에게 밀어다 주었다.

편하게 앉아 다시 설명을 들은 번태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스핏 길드에서 들었을 때도 느꼈지만, 이번 마왕은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겠군!”

“네? 어렵지 않다구요?”

“그렇다네!”

번태는 너무도 쉽게 말해버렸다.

“마침 내가 최근에 얻은 아이템이 있어서 말이야. 글라세로라면 나도 몇 번 던전에 가본 적이 있으니까 대강 특징을 알고 있거든.”

번태는 수염이 난 턱을 슬렁슬렁 문질렀다.

“글라세로의 몸이 시체와 썩은 물, 진흙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내 번갯불이면 전류로 경직시키고 흙을 태워 굳혀버릴 수가 있다네.”

“하지만 아무리 길드장님이 강하다고는 해도 잠깐 충격을 주는 것 이상으로는 피해를 줄 수 없을 텐데요.”

“자! 여기서 따끈따끈한 신상 아이템이 등장하지!”

번태가 가슴에 넣어놓았던 반질반질한 돌을 꺼냈다.

왜… 저걸… 인벤토리에 안 넣어놓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급할 때 인벤토리를 일일이 부른 다음 찾기 어려워서 그런 모양이었다.

시키지 않아도 착착 물건을 꺼내주는 성좌가 있다 보니 승지는 그런 번거로움을 잠깐 잊고 있었다.

“이 돌은 파동의 정령을 굳혀놓은 물건이라네! 이걸 쥐고 내 스킬을 쓰면 공격 범위가 대폭 늘어나게 되지!”

“오오오!”

“자! 마왕이 소환되자마자 최대출력으로 공격해 마비시킨 다음 유월 자네가 핵이 있는 곳까지 뚫어버린다! 그 다음 핵을 파괴하면 일사천리지!”

“그럼 핵을 파괴하는 역할은 제가 맡아야겠군요.”

“아니! 안타깝지만 류의건 자네는 핵에 피해를 줄 수가 없어.”

자연스럽게 번태가 류의건을 제지했다.

“제 힘이 부족합니까?”

“그게 아니야. 안타깝지만 피해를 줄이려면 마왕을 소환하자마자 바로 사냥에 들어가야 하는데, 자네를 위해서 부하 몬스터를 사냥한 다음 다시 각성자까지 대피시키기엔 힘드네.”

“…조절하겠습니다!”

“정말로 마왕의 핵을 깰 만큼 화력을 내면서도 피해 범위를 줄일 수 있나?”

“…….”

이럴 땐 거짓말이라도 할 수 있어야 할 텐데. 류의건은 정직하게도 그렇게 할 수 있다 장담하지 못했다.

잠깐 그를 기다려주던 번태가 류의건의 등을 두드렸다.

“이해해주게. 자네가 너무 강한 탓에 진심으로 정화하려고 들면 웬만한 사람들까지 빛이 되어 버리는 걸 어떡하겠나.”

번태가 류의건을 위로했지만 류의건의 표정은 볼만했다. 무력감, 자책감. 힘을 가지고도 쓸 수 없는 그런 감정들이 뒤엉켜있었다.

“대신 우리 길드에 저격수가 있으니 미리 대기시켜놓을 생각이네. 화력은 장담해도 좋아! 유월이 핵까지 길을 열고 신호를 주는 즉시! 일제 사격으로 핵을 공격한다. 그리고 승리! 완벽하지 않은가?”

번태는 다른 문제들을 잊고도 남을 만큼 환하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과연 랭킹 1위다운 카리스마였다.

승지는 내심 감탄하면서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핵을 깨는 건 내가 하면 되잖아?”

계속 자신을 고생시킨 마왕을 공격 한 번 못하고 물러나는 건 성질에 안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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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라면 99콤보까지 - 광대라면 99콤보까지-6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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