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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갑자기 분위기 친선전 (5)

“믿을 수 없는 패배! 패배! 패배애~! 길드장들이 연달아 3연패를 기록했습니다!”

드디어 웃는 걸 멈춘 최자림의 해설에 다시 대련장이 시끄러워졌다.

“이 놀라운 결과에 모두들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죠! 당연합니다! 채승지 씨는 우리의 루키! 미스핏 길드의 새로운 에이스니까요!”

“너네 길드엔 안 들어간다니까!”

승지가 꽥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덕분에 실망으로 가득 차있던 미스핏 길드원들은 다시 활기가 살아났다.

비록 실험체는 거부했지만, 길드에 영입만 하면 실험에 비벼볼 수는 있다!

갑자기 눈이 번뜩인 미스핏 길드원들이 채승지에게 열광하기 시작했다.

“꺄아악! 채승지 씨!!”

“멋있어요!”

“우리 길드에 꼭 필요한 인재다!!!”

“길드장을 상대로 삼연승을 하지? 대! 다! 나! 다!”

“눈부셔!”

미스핏 길드원들은 또라이만 뽑냐??

너무 속이 빤히 보이는 짓거리가 오히려 정직해보일 지경이다.

기가 막힌 승지와 달리 이연주의 얼굴은 한 층 더 침울해졌다.

“…어쩔 수 없죠. 패배는 패배니까요.”

생각보다 순순히 돌아가려는 이연주를 승지가 붙잡아 세웠다.

“잠깐만.”

“네? 아. 그러고 보니 옷값도 달라고 했었죠. 치료받으러 하얀 길드에 올 때 얘기하면 같이 지급해드릴게요.”

“아니 누굴 쫌팽이로 알아. 손 치료하고 가라고.”

[응? 승지 쫌팽이 맞잖아. 옷값 달라고 한 거 승진데.]

시끄러.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나도 원래 같았으면 신경도 안 썼다고.

하지만 그냥 한 대만 때릴 생각이었는데 손에서 저렇게 피가 줄줄 흐르면 신경이 쓰이잖아.

물론 톱 같은 걸 들고 나타난 이연주의 문제지만.

새빨간 게 줄줄 흐르는 장면은 누구의 것이든 별로 보고 싶지 않았다.

승지가 팔짱을 꼈다. 반팔만 입었더니 좀 추웠다.

“찝찝해서 그래.”

설마 자기 상처를 걱정해 줄줄은 몰랐는지 연주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러더니 생긋 웃는다.

“그거 아세요?”

“?”

“굳이 치료의 우선순위를 따지자면 승지 씨에게 맞고 날아간 김정진 씨와 박편호 씨가 더 심각할 지도 모른답니다.”

“그래 이놈아!”

“흠흠, 이 나이엔 척추를 조심해야 하는데…….”

이때다 싶어 두 길드장이 엄살을 피웠다.

“아주 멀쩡들 하신데?”

“훗. 혹시 승지 씨 나름대로 걱정한 거라면 고맙게 받죠.”

언제 꺼냈는지 이연주가 작은 포션 병을 던졌다.

“이건 약속은 약속이니까.”

날아온 포션 병을 가볍게 받아낸 승지가 미간을 찌푸렸다.

[선물이네!]

성좌는 마냥 좋아했다. 병 주고 약 주냐.

“옷값은 길드 오면 같이 드리죠.”

“번거롭게 하네.”

“승지 씨가 꼭 와달라는 뜻이랍니다.”

불길한 여운을 남기며 이연주가 내려갔다.

쳇. 다친 곳은 없지만 연달아 세 명을 상대했더니 꽤 피곤함이 몰려왔다.

그렇다고 여기서 끝내기엔 아깝지.

승지는 이연주가 내려간 뒤로 잠잠한 길드장 쪽을 바라보았다.

왜 다음 사람 안 올라와?

“다음 차례 유청 아니야?”

애초에 다른 곳을 보고 있던 유청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처음부터 올라올 생각이 없던 모양이다.

“오오오! 승지 씨의 정확한 지명! 마지막 피날레에 역시 유청 씨가 빠질 순 없겠죠!”

“유청 씨는 길드장이 아니지 않습니까?”

류의건이 물었지만, 다른 길드장들은 오히려 유청의 지목을 반겼다.

연패의 쓴맛을 복수해주길 바라는 욕망이 눈동자에서 불타올랐던 것이다.

“뭐 어떤가. 올라가게!”

“암. 청월량의 유청이면 완전히 길드장이나 마찬가지지!”

“…저랑은 상관없는 일입니다.”

귀찮은지 유청이 사양해보았지만 길드장들은 아예 등을 떠밀었다.

“에이! 자네도 명색이 같은 연합인데 빠질 수야 있나!”

“친선 대결이니 솜씨를 보여줘야지.”

“저도 유청 씨가 어떻게 싸울지 기대되네요.”

연달아 세 사람이나 몰아붙였지만 유청도 어지간히 싸우기 싫은지 계속 사양해댔다.

뭘 저렇게 빼. 내가 그렇게 허접해보이냐?

[승지가 연달아 세 명이나 이겼잖아! 피곤해보여서 쉬라고 사양하는 게 아닐까?]

“절대 그건 아닐 걸.”

오히려 나중에 피곤하다는 이유로 졌을 때 변명하지나 말라는 소리를 할 인간이다.

표정이 썩었네, 썩었어.

“정말 사람 피곤하게 하는군요.”

“아직 시작도 안 했거든.”

승지의 말에 유청이 노골적으로 한숨을 쉬었다. 지금까지와 달리 류의건은 이번 싸움은 말리고 싶어 보였다.

유청이 강한 것도 강한 거지만, 전혀 승지를 봐줄 생각이 없는 태도가 한몫했다.

“유청 씨는 무기를 안 쓰시니 더 조심….”

“알아서 조절합니다.”

유청이 류의건의 권고를 잘랐다. 그가 시큰둥하게 자세를 잡는 걸 보고 류의건도 어쩔 수 없이 물러났다.

반대로 승지는 오히려 잔뜩 신이 났다.

드디어 붙어보는구나!

처음 봤을 때부터 점찍어놨던 강자다. 게다가 같은 권법 계열 각성자이니 뭐든 보고 따라서 배울 생각이었다.

아쉽게도 자신의 해맑은 성좌는 무술의 무도 몰랐으니까.

대신 보상은 잘 뿌렸다.

[ 미션 승리 추가 보상! 스탯 분배치 5 ]

[ 친선 대결 상대 결정!

네 번째 미션 보상이 스킬 ‘허공답보’로 고정됩니다! ]

허공답보?

이번 서브 미션은 대련 상대에 호응해 스킬을 받는 구조로 되어있었다. 즉 유청을 이기려면 필요한 스킬이 바로 저거라는 소린데.

승지는 의아함을 참으며 다시 싸울 준비를 했다.

어쨌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스킬을 먹으려면 30콤보는 때려야 한다.

세 번째 승리 보상으로 받은 스탯도 모두 체력에다가 투자했다.

“그럼 마지막 대결을 시작합니다!”

승지는 최자림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프레임 컨트롤을 걸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어느 곳에서도 페널티 창이 뜨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야?

“…….”

시작 신호가 떨어졌는데도 유청은 아무것도 안하고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만보고 있었다.

진짜로 아무것도 할 생각이 없어서 프레임 컨트롤 페널티가 뜨지 않았던 것이다.

“하.”

승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설마 이대로 져줄 생각으로 올라온 거라면 정말 실망이다.

땀 한 방울 안 흘리고 보상을 얻어봤자 기쁘지 않았다. 저렇게 동냥하듯이 툭 내던져주는 승리보다 차라리 지더라도 진심으로 부딪쳐 주는 편이 나았으니까.

저절로 주먹이 쥐어졌다.

상대하기 싫으면 끝까지 싫다고 할 것이지.

이건 근성을 떠나 인성 문제다!

그렇게 생각하며 달려든 승지가 유청과 눈이 마주친 건 단 1초.

갑자기 페널티 창이 나타난 것도 일순간이었다.

“!”

저게 무슨…?

승지는 어렴풋이 붉은 흔적만 보았다. 너무도 빠르게 바뀌는 페널티 수치가 잔상으로 남은 것이다.

늘어나는 건가? 아니면….

불가해함으로 변해가는 승지의 초점은 순식간에 의문점에서 멀어지고 말았다.

정확히는 초점이 아니라 승지 본인이 멀어진 것이었지만.

[승지야!]

부우우웅.

갑자기 숨이 턱 막히는 느낌보다 몸이 뒤로 날아가는 게 더 빨랐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연무장 벽에 부딪치기 직전에 간신히 류의건이 뒤통수를 붙잡고 있었다.

“…커흑.”

반사적인 기침이 튀어나오자 류의건이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괜찮으십니까!”

시발 명치가 깨진 것 같다.

언제 어디를 얻어맞은 줄도 모르겠는데 몸에 힘이 안 들어갔다. 심장부터 저릿한 통증이 몸의 신경을 지배한 것 같았다.

어떻게든 기를 쓰고 일어나려던 승지는 류의건의 손에서마저 굴러떨어지고야 말았다.

다급하게 다시 붙들려는 손을 쳐낸 승지가 맨땅에 주먹을 쥔 채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승지야 제발 무리하지 마! 너 방금 얼마나 날아간 줄 알아?!]

“이 자식…….”

“…….”

승지는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내뱉었다.

“…방금 그거… 어떻게 했냐….”

“지금 그게 궁금합니까!”

기가 막힌 류의건이 소리쳤다. 아니 궁금할 수도 있지.

“끄으응… 세게도 때렸네….”

[내가 승지 때문에 못살아 정말! 흐엉!! 다친 건 괜찮아?]

다행히 충격은 오래가지 않았다. 승지가 끙끙거리며 일어났다. 유쳥은 승지가 입에 들어간 모래를 퉤퉤 뱉으며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말했다.

“끝났습니까? 당신이 졌군요.”

이놈 보게?

승지의 얼굴에 황당함이 퍼져나갔다. 굳이 기다렸다가 졌다고 말할 것까진 없잖아, 임마.

저렇게 나오니 당할 걸 알면서도 삼류 악당처럼 다시 싸워보자는 말이 목구멍까지 튀어나왔다.

“정말로 순식간에 끝난 승부였습니다! 아아, 아쉽게도 오늘 경기는 여기서 막을 내려야할 것 같군요. 채승지 씨, 괜찮나요?”

“괜찮아!”

“소리 지르는 걸 보니 아주 멀쩡한 가 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여러분!”

최자림이 호들갑을 떨어준 덕분에 생각보다 별 거 아닌 것처럼 넘어갈 수 있었다.

쓰읍, 근데 대체 어떻게 한 거야?

뒤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류의건을 냅둔 채 승지가 배를 까봤다. 그러자 정확히 명치 부근에 찍힌 손자국이 보였다.

오, 미친. 이런 거 영화에서 봤어.

손자국을 눈으로 보니 아프다기보다는 신기했다.

[맙소사! 멍들겠잖아!]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제가 더 일찍 받아냈더라면!”

성좌랑 류의건이 번갈아 말했다. 그러나 첫 타에 워낙 놀랐을 뿐 의외로 몸에 남은 충격은 별로 없었다.

승지가 끌어올렸던 티셔츠를 다시 내리며 대꾸했다.

“진짜로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십쇼.”

“아… 하지만.”

“자! 지금까지 구경해주신 분들 고생하셨구요, 이대로 끝내면 아쉽겠죠? 다음 순서로는 고기 파티가 예정되어있습니다!”

“뭔 파티?”

승지의 황당함은 양손에 커다란 비닐봉지를 들고 온 서명구의 등장으로 현실화되었다.

“헉…… 최자림 각성자님… 말씀하신대로 고기 사왔어요!”

“잘했으, 명구야! 자 다들 모이쎄요!”

“진짜 회식이라고? 여기서?”

미스핏 길드원들이 착착 불판을 꺼내고 연탄을 얹었다. 방금 전까지 분명히 싸움 구경만 하고 있었는데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여긴 나 빼고 다 돌았어. 확실해.

벙 찐 승지가 소리쳤다.

“지금 고기가 문제야?! 그래서 나 마왕 잡을 때까지 전력으로 쓴다는 거야 만다는 거야!”

“어? 아 원래 목적이 그거였죠. 승지 씨의 실력은 제대로 확인 했으니 걱정 마시고 일단 드세요!”

“암. 자네는 충분히 강하네. 인정해주지. 실전을 조금만 거치면 되겠어.”

김정진이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그러나 이미 시선이 고기에 고정된 시점에서 신뢰도가 떨어졌다.

“으흠, 난 소고기 아니면 안 먹는데.”

박편호까지 완전히 불판에 집중하자 승지의 어이는 하늘로 승천해버리고 말았다.

아, 내 혈압.

대체 난 무엇을 위해서 열심히 싸운 거냐.

[ 네 번째 대련 패배! 서브 미션이 종료됩니다!

총 획득 보상 : 스탯 분배치 15, 스킬 ‘예스 커맨더’, ‘가드 크러쉬’ ]

때마침 나타난 상태창이 허무함을 그나마 달래주었다.

그래. 보상이라도 얻었긴 한데.

저 인간들, 마왕을 못 잡는 게 아니라 안 잡는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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