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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폭탄 투하 (3)

승지의 탈을 쓴 알러트 보스가 뺨을 쥐었다.

“아, 역시 혼자서는 힘들잖아.”

그가 순간 새초롬한 표정을 지어서 오싹 닭살이 돋았다.

“이 자식, 내 얼굴로 그런 표정 짓지 마라.”

차라리 때리는 게 낫지.

승지가 붕 휘두르는 팔을 피해 그가 타탓 물러났다. 보이지 않는 성좌를 찾듯 시선이 조금 어긋나있었다.

“뭐 좋아. 네가 돌아오지 않아도 난 원래 계획대로 할 테니까.”

“계획이 뭔데.”

[다나우는 마왕이 된 다음에 제국으로 쳐들어갈 생각이었어!]

성좌가 바로 불었다.

제국이라면 두 사람의 고향에서 탈출시켜준 곳 아닌가?

심지어 다나우는 제국에서 마검사인지 뭔지 교육까지 받았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이제 와서 마왕이 된 다음 박살내 버리겠다니.

관심 없는 일이라 대충 뭉개고 말았는데 물어봤어야 하나.

성좌는 몹시 혼란스러워보였지만 금세 중심을 되찾았다.

[걱정 마 승지야! 조금, 조금 많이 당황하긴 했지만 난 언제나 승지 편인걸! 가지 않아!]

성좌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었지만 그토록 찾던 사람 앞에서 하니 제법 각별했다.

“그래. 네가 가면 안 되지.”

[(▰˘v˘▰)]

적은 승지의 얼굴이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천천히 본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다만 그게 얼굴이 아니라 가면이었을 뿐.

피부가 떨어지듯 솟아난 가면은 처음과 다른 모습이 되었다.

“우웩. 벌레도 아니고 저게 뭐냐.”

[다나우.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 가면은 뭐고! 성좌가 된 거 아니었어? 왜 나쁜 사람들 편에서 싸우는 거야!]

“어차피 안 들리잖아.”

승지가 손가락을 뚜둑 거렸다.

“대신 대답을 뜯어낼 순 있지.”

“…….”

다시 가면을 쓰자 기억 속의 어린애처럼 말하던 알러트 보스는 조용해졌다.

성좌가 들어가고 다시 계약자가 나온 건가?

어쨌든 갑자기 변한다니. 누가 봐도 도망가려는 낌새가 아닌가.

말없이 뒤로 물러나는 보스가 혹시라도 던전 열쇠를 꺼낼까봐 승지는 그의 팔부터 구속하려고 했다.

“튈 생각 마라!”

[나도 이대로 물러날 생각은 없어! 다나우! 그냥 가게는 못 둬!]

성좌가 한 발 앞서 인벤토리를 열었다. 승지가 기겁했다.

“멍청아! 인벤토리 안에 무기가 있었잖아!”

[응! 알고 있어! 걱정 마!]

성좌가 자신만만하게 답했다. 양쪽으로 연 공간은 지금까지 승지가 보아왔던 인벤토리와 판이하게 달랐다.

…저게 뭐야?

성좌가 연 공간에서 조금 전에 알러트 보스가 만들어냈던 암흑과 비슷한 어둠이 일렁거렸다.

우뚝 멈춘 승지와 달리 성좌는 냉큼 낯선 공간으로 보스가 있던 자리를 집어삼켰다.

[잡았다!]

승지 눈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사라진 공간만 있을 뿐이었다. 허나 이공간에 들어갔다고 해서 존재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공허 속에서 음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역시. 너도 아직 가지고 있었구나.”

아직?

놀란 승지처럼 성좌도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그게 무슨 뜻이야?]

성좌가 흠칫한 순간 잊고 있던 번태가 소리쳤다.

“선생과 스파이! 교대하세!”

“저 자리로 가면 위험하지 않나?”

“떨어져도 안전해!”

그 때까지 던전 입구에 있던 백정민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자신의 가슴팍을 눌렀다. 그러자 계속 들어오려고 애를 쓰던 류의건과 백정민의 위치가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승지 씨!”

승지의 머리가 홱 돌아갔다. 최자림을 필두로 한 개 팀 팀원들이 승지 뒤쪽에 나타났던 것이다.

[아앗! 우리 팀이다!!]

“뭐야, 너넨 어떻게 들어왔어?”

“촤하핫! 당연히 게임에서 이겼으니까 들어왔지요!”

최자림이 당당하게 바닥을 쿵 찍었다. 그에게 업혀있던 오조희가 급하게 손을 흔들었다.

“다른 팀은 모두 안전하게 탈락했어요!”

“우린 승지 씨를 돕기로 결정했고요.”

바람이 스치는 듯한 느낌과 함께 유월의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승지는 얼이 빠진 채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는 유월을 눈으로 쫓아갔다.

이미 칼을 꺼내 든 유월은 뭉툭한 칼 끝으로 바닥을 긋고 있었다.

콰과광!

공기가 순식간에 두꺼워진 풍압이 방금 전까지 알러트 보스가 있던 자리를 강타했다.

계곡에 부는 바람처럼 공기가 순식간에 꺾어지며 흩날렸다. 아직 성좌가 보스를 붙잡아 놓았다는 확실한 증거였다.

최자림이 씨익 웃었다.

“좋아! 늦지 않았군요! 2페이즈 시작입니다!”

“너네도 나가! 방해 돼!”

“승지 씨. 저희도 각성자예요!”

최자림의 목을 꽉 끌어안은 오조희가 소리쳤다.

“도우려는 거예요! 저희, 같은 팀 아니었나요?”

승지가 순간 말문이 막힌 사이 최자림이 눈을 빛냈다.

“으랏차! 오조희 선생님 부탁합니다!”

“네! 격려의 계단!”

오조희가 최자림의 위에서 짧게 박수를 치더니 그대로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다소 부족했던 최자림의 스탯이 단숨에 강화되었다. 거의 범윤오와 같은 높이로 뛰어오른 것이다.

지휘 스킬만 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저런 보조 스킬까지?

번태도 대기를 끌어오듯 지팡이를 휘둘러 번개를 일으켰다.

“선생! 신성 스킬을 써! 저건 마왕이라고 생각하는 게 나을 걸세!”

“하지만 아직 조절이…!”

“저걸 가둔 걸 깰 정도로만 하게! 아니, 차라리 내 번개에다가 써!”

번태가 여전히 승지 눈에는 보이지 않는 곳을 가리켰다.

답답해진 승지가 소리쳤다.

“성좌야!”

[…그래. 승지를 도우러 온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걸. 내가 승지를 돕는 건 절대 틀린 게 아니야!]

띠링!

[ 서브 미션 : 광대의 정의

광대는 과거의 선택이 현실에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그의 소원을 달성하고 현실의 힘을 되찾자.

보상 : 스킬 ‘페스티벌’ ]

새롭게 나타난 서브 미션이 승지의 눈앞을 가득 채웠다.

이럴 때 망설이지 않는 승지가 다그쳤다.

“소원? 성좌 너 소원이 뭐야!”

[내 소원은….]

쿠구궁!

동시다발적으로 한 곳을 향해 빛과 힘이 터져 나왔다.

류의건의 푸른 신성 스킬과 번개가 뒤섞여 폭발했다. 유월은 그 스킬의 잔여 효과를 고스란히 몸으로 받아내며 칼을 내려찍었고 그 위에서 최자림이 그물을 펼쳤다.

쥐새끼 하나도 빠져나갈 수 없을 견고한 공격의 틈에서 살아남은 건 목소리였다.

“바보 같은 광대 같으니.”

가면 너머의 목소리가 거칠게 울려 퍼졌다. 이미 다나우의 자취는 씻은 듯이 사라진 뒤였다.

성좌 다나우가 계약한 게 원래 인간이든 아니든, 지금은 이미 다른 존재가 된 게 확실해 보였다.

킥킥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리 숫자가 훨씬 많다는 걸 모르겠어?”

[으읏!]

성좌의 대화창이 크게 떨렸다. 아까 보스를 잡았던 공간이 오히려 각성자들의 공격을 받고 약해진 것이다.

이런, 제기랄!

[미안…해! 놓쳤어!]

파아앗!

검은 소용돌이가 일며 성좌가 열었던 공간에서 가면을 쓴 보스가 뛰쳐나왔다.

“아흔 아홉 명의 마왕이 축복한다.”

승지가 달리기 시작했다.

다른 각성자들은 드디어 그를 감추고 있던 결계를 풀었다고 확신하며 다음 공격을 가했다.

저들에게 자신의 성좌가 연 공간이라고 설명할 시간은 없었다. 게다가 승지 자신도 성좌가 갖고 있는 게 마왕의 힘이 아닌 가하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설명은 나중에.

“칼 꺼내!”

[하지만 승지야! 지금 인벤토리에 있는 건 아까 집어넣은 마왕의 무기 밖에 없어!]

“뭐? 다른 건?!”

[그게 잡아먹었나봐!]

“망할! 그럼 그거라도 꺼내!”

[안 돼! 위험하잖아!]

승지가 대화창을 노려보았다.

“내가 감수해.”

단순히 화를 내는 게 아니라 믿어달라는 의지가 섞인 눈빛을 본 성좌가 버틸 수 있을 리 없었다.

결국 인벤토리를 열며 성좌가 소리쳤다.

[승지야! 내 소원은!]

“인간이 번성하리라. 지나치게 번성하리라! 신이 후회할 만큼!”

가면을 쓴 보스가 처음 던전이 열렸을 때처럼 가면을 쓴 인형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백정민과 자리를 바꾼 류의건이 아래쪽으로 내려왔기 때문에 던전의 문은 닫히고 있었다.

[내 소원은…!]

칼 손잡이를 빼든 승지가 고함을 질렀다.

“저거 절대 놓치지 마!”

“그럴 생각 없네!”

번태가 상승하는 가면의 위를 가로막았다. 가면의 몸은 분신이 만들어질수록 점점 중심이 꼬여가며 철사 인형처럼 작아지고 있었다.

맞추기 쉬운 목표는 아니었다.

최자림이 급하게 몸으로 던전 입구를 가로막았다. 하지만 비행 스킬이 없는 그가 뜰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류의건이 가면과 정면 승부를 하듯 양 손으로 칼을 잡고 내려찍었지만 알러트 보스는 모든 공격을 회피하듯 계속 빙빙 돌며 도망치기만 했다.

유월은 더 바빴다. 보스가 만들어낸 분신이 경계에서 벗어나 뛰어내리려고 하는 걸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도주를 막지 않으려는 듯 마지막 승리 칸의 결계를 내린 알러트의 보스는 수십 마리의 분신을 던전 밑으로 뛰어들게 시켰다.

하강하기만 하면 그의 분신은 던전에서 벗어나 안전한 곳으로 이동될 테고, 바로 대피중인 사람들을 노리려는 속셈인 것이다.

저거 도망치려고 다른 사람들까지 휘말리게 할 생각이다!

유월이 있는 곳 주위로 반월을 그리듯 분신들이 썰려나갔지만, 한 사람이 이 넓은 칸을 다 방어하기란 불가능했다.

하나 둘 씩 뛰어든 분신이 던전 밖에서 나타나자 대피하고 있던 초록 헬멧 그린이 급하게 스킬을 쓰는 모습도 보였다.

그걸 보면서도 승지는 막상 손에 쥔 마왕의 무기가 주는 느낌에 몸이 딱 묶여버렸다.

살아있는 괴물의 내장을 쥐듯 꿈틀거리며 뛰는 칼 손잡이가 자신의 맥박까지 가져가려는 듯 쿵쿵 거렸기 때문이다.

뭐 이런 게 다 있어?

수 백 마리의 거머리가 흡혈을 하는 느낌이었다. 승지가 억지로 더 강하게 움켜쥐며 칼을 들어 올리려고 했지만, 구자호의 망치도 들어 올렸던 승지의 스탯으로도 마왕의 무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점점 작아지는 실낱같은 던전으로 도망치려던 알러트의 보스가 칼을 잡고 끙끙거리는 승지를 발견하고는 돌연 방향을 바꿨다.

[승지야!!]

그래! 놓칠 수 없겠지?

승지는 오히려 보란 듯이 칼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저대로 알러트의 보스를 놓치느니 차라리 마왕의 무기를 빼앗길 위험을 감수하는 게 훨씬 나았다.

이걸 미끼삼아서라도 와라!

승지가 필사적으로 발까지 마왕의 무기 밑으로 집어넣으며 들어올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어떻게든 들 수만 있다면 저것한테 한 방 먹여줄 수 있을 텐데!

[승지야!!!!]

성좌가 찢어져라 비명을 지르더니 다급하게 소리쳤다.

[내 소원은 모두가 안전해지길 바라는 거야! 그러니까 그만해!]

“그래서 그만 둘 수가 없는 거라고!”

성좌와 승지의 의견이 정면으로 부딪친 순간.

띠링!

[ 성좌와 계약자의 해석이 갈렸습니다. ]

[ 미션 달성 분석 중 …… . ]

[ 소원과 보상이 뒤섞입니다. ]

쩌적. 바닥에서 칼끝이 떨어지는 느낌과 함께 갑자기 동시다발적으로 귓전에서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딘가 익숙한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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