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선물 공세 (2)
다나우는 한 명의 흉폭한 예비 폭군이었다.
꼬맹이 성좌가 혼자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눈빛이 돌더니 손가락을 까딱였다.
“너 이리 와.”
“왜, 왜….”
“공주가 오라면 오는 거지 무슨 말이 많아!”
꼬맹이 성좌가 납득하고 후다닥 튀어갔다.
뭐지, 이 익숙한 양아치의 향기.
어쩐지 성좌가 승지를 대하는 태도가 익숙하다 했더니 설마 이런 이유 때문이었나?
아냐, 아니지. 난 양아치는 아니야. 난 건실 청년이지. 그냥 시비가 많이 붙는 거랑은 달라.
승지가 애써 현실을 부정했다.
다나우는 물처럼 유려하고 선이 고운 외모였는데도, 잔뜩 힘이 들어간 표정 때문에 좀처럼 얌전해 보이지 않았다.
“너 부모 없지?”
시작부터 패드립을?!
꼬맹이 성좌가 우물거렸다.
“아닌데… 극단 사람들 있는데….”
“그 사람들이 너한테 잘해줘?”
“으응….”
다나우가 인상을 썼다.
“아니. 공주가 그 사람들보다 더 잘해줘.”
“어?”
다나우가 막무가내로 꼬맹이 성좌의 팔을 끌고 갔다.
행동력이 끝내주는 공주는 그대로 꼬맹이 성좌를 제 방에 감금했다.
미쳤구나. 요즘 애들은.
승지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히는 사태를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저 공주에 비하면 우리 성좌는 아주 얌전한 애였구나. 내가 새삼 깨닫는다.
당연히 억지로 끌려간 꼬맹이 성좌는 사흘 밤낮으로 울어댔다.
“우애애앵!”
“그만 울어! 다른 사람들한테 들킨단 말이야!”
자신의 방에 들어갈 때마다 귀를 틀어막은 다나우가 다그쳤다. 그럼 마음 여린 꼬맹이 성좌가 겁을 집어먹고는 딸꾹거리면서 억지웃음을 만들었다.
그걸 본 다나우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내가 그만 울랬지 언제 웃으랬어?”
그 말에 꼬맹이 성좌가 억지웃음을 멈췄다.
“공주님. 나 집에 가고 싶어.”
“너 집 없잖아.”
여전히 악의 없이 말로 사람을 후려 패는 공주의 말에 괜히 승지까지 스플래시 데미지를 맞아버렸다.
집 없는 설움도 모르는 꼬맹이 주제에…!
꼬맹이 성좌는 시무룩해졌다.
“집은 없어도 돌아갈 곳은 있어.”
“거기보다 여기가 좋잖아. 맞아 틀려?”
“…그건….”
“여기가 더 좋아 아니야!”
“좋, 좋아!”
대답 아니면 죽음을 택하라는 공주의 화법에 넘어간 꼬맹이 성좌가 우렁차게 대답했다.
다나우가 그제야 만족했다.
“그러니까 너 가져.”
“응?”
“나 공주 하기 싫어. 나랑 자리 바꾸자.”
다나우가 풀썩 침대 위에 앉았다. 나풀거리고 고운 옷을 입은 공주와 볼품없는 차림새의 광대가 나란히 앉았는데도 둘 다 어린애라서 그런지 제법 어울렸다.
꼬맹이 성좌가 눈을 깜박였다.
“공주가 왜 싫어?”
“다 재미없어. 전부 바보 같은 얘기만 하고, 내 얘기는 아무도 안 들어.”
“그럼 왜 싫어하는 걸 나한테 줘?”
움찔.
정곡을 찔린 다나우가 볼을 부풀렸다.
하하! 공주 자리 팔아보려다가 망했네!
승지가 낄낄거렸다. 어떻게든 좋은 점을 찾아보려던 다나우가 장점을 한 가지 떠올렸다.
“그래도 방이 넓으면 혼자 울기 좋아. 공주는 제일 큰 방 쓰거든.”
“나 잘 안 우는데.”
“거짓말. 너 아직도 콧물 흘리거든?”
“이, 이건 우연이야! 난 원래 행복해!”
꼬맹이 성좌가 다급히 손목으로 얼굴을 가리며 소리쳤다. 다나우는 지금까지 망나니처럼 굴던 짓을 잠깐 멈추고 물끄러미 꼬맹이 성좌를 응시했다.
“이상하다. 너 슬퍼 보였는데.”
“…….”
꼬맹이 성좌도 덩달아 얌전해졌다. 다나우는 잠깐의 정적을 바로 박살냈다.
“…좋아. 그럼 증명해봐!”
“어떻게?”
“네가 행복하다는 걸 내가 믿게 만들면 보내줄게.”
“…!”
그 때부터 성좌는 열심히 자신의 행복함을 증명하려고 애썼다. 다나우가 들어올 때마다 작은 묘기를 보여주거나, 일부러 우스꽝스러운 장난을 보여준 것이다.
“와하하! 너무 즐겁다! 웃음이 막 나와!”
“하나도 안 행복해 보여.”
다나우는 냉정했다. 그리고 당연히 이 상황이 즐거울 리 없는 꼬맹이 성좌도 슬슬 열이 받았다.
“멋대로 붙잡아 놓고…!”
“그러니까 줄 때 공주 자리 받지 그랬어? 그럼 아무도 뭐라고 안 하는데.”
다나우가 일부러 성좌를 놀렸다. 씩씩거리며 나갔던 꼬맹이 성좌는 곧 얼마 가지도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
병사들에게 걸리면 크게 혼날 거라고 다나우가 미리 겁을 줘놨던 것이다.
결국 하다하다 지친 꼬맹이 성좌는 방에 틀어박혀 울기만 했다.
“훌쩍훌쩍….”
“또 울어?”
끼익. 문을 열고 들어온 다나우가 이번에는 또 놀리지 않고 차분히 다가왔다.
“저리 가.”
“…….”
말없이 다나우는 침대로 올라가 웅크린 성좌의 등을 꼭 안아주었다. 그래도 위로해주는 건가.
하긴 아직 애고 양심이 있으면….
“그러니까 내가 시키는 대로 하랬잖아.”
놀랍도록 차가운 목소리였다.
승지의 숨이 턱 막혔다.
미친 꼬맹이. 저 정도면 광기였다.
꼬맹이 성좌도 더는 저 공주를 상대할 수 없다고 느꼈는지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될 게. 되면 되잖아.”
“약속할 수 있어?”
“응.”
다나우가 꼬맹이 성좌를 다시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빠르게 일을 진행시켰다.
“내가 예전에 입던 옷이야.”
궤짝에다가 드레스를 입혀놔도 저것보단 그럴싸했겠지만, 어쨌든 꼬맹이 성좌는 퉁퉁 부은 얼굴로 공주의 옷을 따라 입었다.
“잘 어울리네.”
다나우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을 뻔했다. 그러나 스스로에게서 웃음기를 감지하자마자 갑자기 자기 뺨을 세차게 내리쳤다.
꼬맹이 성좌와 승지가 동시에 화들짝 놀랐다.
“왜, 왜 그래!”
“아무 것도 아니야.”
어찌나 독하게 때렸는지 벌써 뺨에 시퍼런 멍이 올라오고 있었다.
“아무 것도 아닌 게 아닌데…!”
“시끄러! 내가 아니라면 아닌 거야!”
다나우가 다시 윽박질렀다. 꼬맹이 성좌는 입을 다물었지만 마음에 의구심이 남았다.
혹시 왕이 공주를 학대한 걸까?
꼬맹이 성좌는 그 때부터 슬슬 기어 다니며 주변을 탐색했다. 그러나 왕은 가족에게 신경을 덜 쓰긴 했어도 공주를 특별히 나쁘게 대한 적이 없었다.
뺨에 물든 푸릇푸릇한 멍이 빠질 때까지 다나우는 방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너도 나가면 안 돼. 내가 나가도 된다고 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공주가 되는 거야. 알겠어?”
“으응….”
다나우는 꼬맹이 성좌에게 신신당부했지만, 꼬맹이 성좌는 공주가 잠든 틈을 타 돌아다니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돌아다니다가 발견한 것들을 아무 생각 없이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혹시라도 공주가 그걸 보고 웃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러나 순수한 감정은 아니었다.
공주가 또 웃으면 또 자기 뺨을 때리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꼬맹이 성좌로선 감히 공주의 뺨을 치는 일은 할 수 없었다. 아무리 공주가 자기한테 공주 자리를 준다고 장담해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갑자기 유랑극단에서 떨어져 나와 혼자 남겨진 분노는 아이의 안에도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꼬맹이 성좌는 공주를 원망했다.
‘너무해.’
승지는 무어라 말할 수가 없었다. 단순한 소꿉장난처럼 보이던 이야기가 순식간에 깊은 곳까지 치닫고 있었다.
마냥 승지에게 귀여워 보이고 싶어 하는 성좌로선 절대로 보여주고 싶지 않은 부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왜 내게 선뜻 보여준 것일까.
정말 성좌의 말대로 우리의 연결도가 100%를 찍어서 거리낌이 없어진 걸까?
일부러 자신의 추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자는 없다.
혹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해야 할 게 남아있는 건가?
꼬맹이 성좌와 공주는 계속 방안에만 있었으므로 승지는 시점을 바꿔보았다.
단순히 성좌의 기억이라고 생각했는데, 기억 속에 있을 성좌가 모르는 내용도 승지는 엿들을 수가 있었다.
마치 실제로 그 시간에 들어가 지켜볼 수 있는 것처럼.
그는 왕을 찾아갔다.
“준비는 잘 되어가고 있겠지.”
“예. 제국에서 온 배가 관측되었습니다. 수일 내로 도착할 겁니다.”
“이번에는 제발 그들이 실수 없이 해줘야 할 텐데.”
왕이 깊은 한숨을 쉬며 이마를 짚었다.
공주가 결혼하기 위해서 제국의 배에 타는 게 아니었나? 그들이 ‘해줘야 한다’니.
의아해진 승지는 성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성좌신의 가호로 이세계 어까진 번역이 되도 성좌 없이는 고어를 해독할 수 없다는 사실이 발목을 잡았다.
펼쳐진 책조차 손 댈 수가 없으니, 죄다 그림의 떡이다.
승지는 닥치는 대로 시점을 돌려가며 성을 훑었다. 그리고 지하로 내려가는 숨겨진 계단을 발견했다.
비밀 방?
공주의 방은 정확히 비밀 방이 있는 자리에 위치해 있었다. 그리고 비밀 방이 있는 곳은 지금의 승지로서도 들어갈 수가 없었다.
어리둥절해진 승지가 다시 공주의 방으로 들어갔다.
마침 밖을 기어 다니다 돌아온 꼬맹이 성좌가 공주에게 두근거리며 주머니 속에 든 물건을 펼칠 때였다.
“짜잔. 선물이야.”
꽤액!
납작한 두꺼비가 다나우의 앞섶으로 튀어 나가며 턱을 부풀렸다. 심지어 어느 구렁텅이에 빠졌는지 찐득찐득하고 더러운 두꺼비였다.
여느 아이였으면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기 바빴을 장난이었지만 다나우는 마치 꼬맹이 성좌가 그럴 줄 미리 안 것처럼 차갑게 눈을 떴다.
“하나도 재미없어.”
“…….”
“너, 이러면 내가 웃을 줄 안 거지?”
다나우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움찔한 꼬맹이 성좌가 결국 겁에 질려 소리쳤다.
“그래! 나쁜 공주야! 나도 이런 공주 자리 필요 없어! 나갈 거야!”
“안 돼!”
지금까지 참고 참았던 꼬맹이 성좌가 결국 폭발했다. 그가 무작정 병사들이 있는 쪽을 향해 달리자 안색이 달라진 다나우가 침대에서 뛰쳐나왔다.
“거기 서!”
“꺄아아아악!”
쿵! 풀썩! 나이가 더 많은 다나우가 꼬맹이 성좌의 등을 붙잡고 온몸으로 눌렀다.
“가만히 있어! 내일 도착한다고 했단 말이야! 그 때까지만 버텨!”
“싫어! 싫어어어!”
꼬맹이 성좌가 발버둥 쳤다. 그가 꼬집고 발로 차고 이로 물어뜯었다. 다나우도 만만치 않았다.
“너 여기서 나가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다 죽어! 죽는다고!”
“거짓말! 너 대신 날 죽일 생각이잖아! 다 알아! 공주를 죽이려고 하는 거지! 제국한테 공주를 팔아넘기려고 해서 날 대신 바치려는 거잖아아!”
꼬맹이 성좌가 나름대로 추리한 내용을 소리소리 질렀다.
“뭐? 우리 아빤 나 안 죽여!”
다나우도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다. 이젠 들키고 말고 할 정신이 없을 만큼 둘 다 한계에 몰려 있었던 것이다.
다나우가 악을 썼다.
“마왕이 곧 나타난단 말이야!”
“뭐, 뭐?”
공주랑 엎치락뒤치락 싸우던 꼬맹이 성좌가 놀라 멈췄다.
갑자기 시간이 감기듯, 승지의 뒤통수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여기서 웃음의 마왕 봉인이 풀렸다는 게 확실하겠지.”
“예에. 확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