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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향긋해요

푹 썩었다. 썩었어.

승지는 버석거리는 비닐 속에서 한껏 인상을 찌푸렸다. 인간들아 분리수거 좀 똑바로 하자. 음식물이 섞여 있잖아.

끝내주는 스킬로 끝내주게 마왕을 잡았는데 하필 장소가 쓰레기 매립지라서 마무리가 더러웠다.

승지가 봉투 속에서 뻗어있는데 바스락거리며 발소리가 다가왔다.

“멀쩡합니까?”

“아쉽냐? 어째 목소리에서 팍팍 그런 티가 나는데.”

“승지 씨? 괜찮은 거예요?”

“아, 괜찮습니다.”

유청에게 꼽을 주던 승지가 바로 태세전환 했다. 그건 유월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아, 씨발. 내 꼴.

승지가 서둘러 일어나려고 했지만, 필살기 한 번에 모든 체력이 소진되었는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아니 내가 정장입고 꽃이라도 주길 바라기를 했냐? 적어도 쓰레기장 속에 처박힌 모습은 안 보여줘야 할 거 아니야!

게다가 뒤이어 나타난 유월의 모습은 놀랍게도 쓰레기장 속에서도 예뻐 보여서 더 환장할 거 같았다.

미치겠다, 진짜.

자신과 똑같이 글라세로의 점액과 쓰레기를 뒤집어썼는데도 저렇게 보일 정도면 이제 내가 문제인 거지, 그치? 빌어처먹을.

속으로 욕을 갈기고 있던 승지를 누군가 간단하게 들어올렸다.

“엇.”

번태였다. 그가 하회탈처럼 크게 뜬 눈으로 이리저리 승지를 돌려보았다.

“자네 인간 맞지?”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말일세! 정말로 글라세로를 잡아버리다니! 어떻게 잡은 건가? 나랑 삼박 사일 날 잡고 말 좀 해보게!”

“삼박 사일까진 아니더라도 우선 다들 쉬어야 할 거 같은데요.”

웃음기가 섞인 류의건의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저 새끼도 경악할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승지를 가장 먼저 안 덕분에 아주 적응해버린 모양이었다. 승지가 딱히 비밀을 감출 성격이 아니란 것도 알고.

“글라세로는 죽었더라도 완전히 소멸하는 마왕이 아니니까요. 몬스터도 다 정리했으니 뒤처리를 해야겠습니다.”

“음, 그렇지! 독이 모공 흡수라도 되면 바로 머리카락이 후두둑 떨어질 테니!”

팟. 아깐 그렇게 움직이지 않던 승지의 손이 바로 머리로 올라갔다.

“하하! 걱정 말게! 자네 머리는 아직 풍성하니까! 그리고 미션을 하다 빠진 머리는 자연탈모만 아니라면 포션으로도 고칠 수 있어!”

에라이, 썅. 왜 하필 지금 힘이 돌아 오냐고.

쪽팔린 짓을 해버린 승지의 얼굴로 피가 몰렸다.

[걱정 마 승지야! 내가 닦아줄게!]

주책맞게 인벤토리를 연 성좌가 쫌쫌따리 머리를 훑으며 글라세로의 점액을 낼름 삼켰다.

“……제발 넌 분위기 파악 좀 해라.”

성좌를 밀어내려고 손을 들던 승지는 무언가 시커먼 걸 보고는 멈췄다.

“어.”

내 꼴이 왜이래.

힘이 안 들어갈 만도 하지. 필살기를 쓰며 글라세로와 실컷 접촉한 대가로 팔과 다리가 반쯤 녹아있었던 것이다.

근데 왜 안 아프냐.

승지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손을 뒤집어보자 류의건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고통 전이 스킬입니다. 승지 씨를 보자마자 해독 스킬이랑 같이 썼으니까 움직이는데 크게 불편함은 없으실 겁니다.”

“이야…….”

자기가 고통을 자처하겠다는 정의 변태를 굳이 말려서 고통 변태가 될 필요는 없겠지.

승지가 짧게 칭찬했다.

“네가 머슴보다 낫다.”

“흠! 그만 움직이죠.”

“그래, 다들 가세! 뒤처리 묻는 건 우리 팀이 해줄 거야. 일단 포션 샤워부터 해야 하지 않겠나!”

번태가 여전히 부리부리한 눈으로 승지를 흔들어댔다. 정말로 글라세로 토벌전이 끝났다는 걸 믿을 수 없는 눈치였다.

“그런데 말이야.”

기어이 눈을 번득이던 번태가 신남을 참지 못하고 번쩍 승지의 척추를 들어올렸다.

“그냥 가면 아쉬우니 세레모니는 한 번 하고 가야지!”

“어어, 이보십쇼!”

“자! 다들 보았나! 여기 글라세로를 무찌르며 탄생한 새로운 우리의 영웅! 채승지 각성자라네!”

번태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승지를 트로피마냥 들어올렸다. 당연히 승지는 기겁했다.

“우와아아아앗!!”

“돌았냐!! 내려 놔!!”

승지는 진심으로 저항했지만 랭킹 1위가 괜히 1위가 아니었다. 똥고집만큼 힘도 거지같이 강했다.

번태는 아예 잘 보이라고 공중으로 날아오르기까지 했다.

“지금껏 몰랐던 최고의 각성자 탄생을 축복하세! 모두에게 영광을! 대한민국 만세!!”

“여기서 대한민국이요?”

“우리도 랭킹전 있으니까요! 마왕? 그건 아무 문제도 아니죠! 찢었다! 세계랭킹 국가대표로 승지 씨도 가보자고요!!”

“가보자고!!”

멀리서 최자림이 신나서 추임새를 유도하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야, 이 프로 선동꾼아! 다른 인간들까지 순식간에 동조해버렸잖아!

쓰레기와 몬스터 위에서 최자림은 아예 지휘까지 해가며 환호를 이끌어냈다.

“채승지!”

“멋지다!”

“채승지!”

“잘생겼다!”

“더 크게!”

“하지 마 미친놈들아!!!”

승지가 진심으로 질색하며 찬양하는 무리들을 거부했다.

[˚‧º·(˚ ˃̣̣̥⌓˂̣̣̥ )‧º·˚ 흐엉엉! 완벽해! 완벽한 마무리야!]

쏟아지는 박수갈채에 성좌가 눈물까지 흘리며 행복해했다. 반대로 승지는 처음으로 글라세로를 잡은 걸 극심하게 후회했다.

그냥 보상만 받고 끝내게 해줘라. 제발. 이런 관심 원치 않아!!

* * *

상황이 좀 진정된 다음에야 번태가 던전 열쇠로 길드까지 길을 열어주었다. 글라세로 토벌전에서 오염된 각성자들은 한꺼번에 어둑시니 길드로 이동해야 했다.

쏴아아아.

승지는 글라세로의 독 때문에 특수 처리 된 샤워 실에서 씻어야 했다.

놀랍게도 어둑시니 길드의 샤워기엔 뜨거운 물과 찬 물을 조절하는 것뿐만 아니라 회복 포션이 섞인 물, 정령수, 마력수가 종류별로 나왔다.

돈이 많긴 많나보네.

덕분에 씻으면서 상처를 회복한 승지가 이리저리 부상을 확인했다.

움푹 패여 뼈까지 드러났던 자리도 말끔하게 살이 다시 올라왔다.

신성 마법으로 치유하기 전까진 내부에 남은 독 때문에 계속 화상처럼 따끔거린다고 했지만.

그거야 뭐 류의건한테 맡기면 되고.

가장 중요한 글라세로의 문양도 드디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말끔해진 팔뚝을 보며 승지가 만족해했다.

속이 다 후련하네. 그동안 저주 하나 때문에 얼마나 골치를 썩였는지.

끼릭.

수도꼭지를 잠근 승지가 머리를 탈탈 털며 나왔다.

이제 보상 확인 좀 해볼까.

씻으면서 보상도 확인하고 상태창도 좀 보려고 했더니 성좌가 죽어도 씻을 땐 욕실에 안 들어오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이제 와서 내외 하냐?”

[꺅! 부끄럽잖아! 어떻게 그래! 승지도 내가 보면서 씻는 게 좋아?!]

“그렇게 구체적으로 말하면 싫지.”

[봐봐! 나도 승지 앞에선 부끄럼 많이 타는 한 명의 광대일 뿐인걸! 좀 더 배려해줘!]

“알았다, 알았어.”

그래서 나오자마자 쪼르르 달라붙는 대화창을 보고도 별 말 안했다.

[우리 승지! 개운해?]

“오냐. 이번에 받은 보상 좀 다 띄워봐라.”

승지가 할아버지 같은 말투로 대답했다.

성좌는 일단 쌓여있는 스탯 분배치 부터 알려주었다.

서브 기본 보상으로 10, 하이라이트 추가 보상 5, 메인 보상으로 받은 건 30인데 2배 보너스 적용해서 60, 결국 총합이 75가 되었다.

이는 웬만한 각성자들이 1년 동안 미션에 매달려야 얻을 수 있는 수치와 맞먹었다.

게다가 히든 보상으로 들어온 스킬도 훌륭했다.

[ 스킬 : 광대의 영역 ]

[ 무대 위에서라면 본래의 힘보다 강해지는 것이 광대! 발동 후 모든 스탯이 30% 향상된다. ]

범위 버프 스킬인가.

여기에 코인까지 어마어마하게 들어왔다. 글라세로 토벌전에서 무기고 뭐고 다 닳아서 박살날 만큼 써버렸는데 이젠 전에 샀던 무기를 열 배로 사도 문제가 없을 만큼 코인이 생겼다.

십만 코인.

마왕 토벌전 보상 두 배, 기여도 1위 보상으로 추가 코인까지 받은 결과였다.

무기뿐만 아니라 이제 본격적으로 각성자 전용 기기나 장비까지 풀세트로 맞춰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기여도 1위 단독 보상으로 성좌신에게 받은 버프까지 걸려있었다.

[ 성좌신의 가호 : 한 달 동안 모든 미션 보상 두 배, 던전에서 가장 희귀한 물건을 찾을 확률 증가, 이세계 언어 자동 해독, 경매장 거래 수수료 없음, 페널티 발생 시 50% 감소 적용.

향후 성취에 따라 버프가 연장될 수 있다. ]

[크으 ヾ(。>﹏<。)ノ゙ 엄청나다! 이정도면 최상급 중에서도 최상급 버프야!]

“역시 신쯤 되면 이정도 보상은 주는 거구만.”

승지도 만족했다. 그리하여 최종적으로 올라간 스탯은 이렇다.

[ 성좌 연결도 : 85 %

힘 50

민첩 35

지능 33

체력 44

행운 30 (1~99)

+용의 숨결 +숲의 가호 +성좌신의 가호 +지지않는 낮의 눈동자 적용 중 ]

스탯만 보면 웬만한 중견 각성자들과 맞먹을 정도였다. 천상계에서 노는 랭커들을 제외하면 어디 가서 절대 꿇리지 않을 텐데. 내 주변에 랭커가 워낙 많아야지.

말하기 무섭게 랭커 하나가 또 등장해주셨다.

“금방 나왔네요?”

유월이 목에 걸친 수건을 당기며 눈짓했다.

와. 방금 씻고 나온 거다.

유월의 촉촉한 모습은 파괴력이 막강했다. 심지어 박스 티에 트레이닝 숏츠라 거리감까지 확 사라진 느낌이다.

[승지야. 침착해. 모솔 티 내면 망하는 거야. 알지?]

성좌의 말에 정신을 차린 승지가 정신적인 심호흡을 한 다음에 말했다.

“뭐… 씻는 거야… 금방이니까…….”

“쓰레기장에다 글라세로까지 너무 독해서 냄새가 아직도 나는 것 같아서요. 다들 그래서 오래 씻는 걸걸요.”

…설마 나 아직 냄새 나냐.

승지가 빠르게 확인해 보려고 팔을 치켜들었다. 그런데 그보다 빨리 유월이 자신에게 다가오더니 머리를 승지의 가슴팍에 가까이 가져갔다.

그리고 킁하고 코를 움찔했다.

“승지 씨는 향긋해요.”

승지는 사고가 정지했다.

향긋해요.

향긋해요?

뭐냐…? 방금 내 냄새 맡은 거?

유월이 아무렇지도 않게 물러났다. 그러나 승지는 유월의 근거리 공격에 그만 고장 나버렸다. 멍해진 것이다.

[꺄아아아아악!! 침착해!! 여기서 상대방도 호감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말로 모솔 같은 짓이야!! 선 넘지 말자!! 좋아하는 거 아니야!!]

아니, 여기서 네가 제일 흥분했는데.

난리 법석을 떠는 성좌를 보니 자연스럽게 마음이 가라앉았다. 유월은 굳어있던 승지를 보고 고개를 기울였다.

“어둑시니 길드장님이 회식한대요. 이따가 보죠.”

“아, 예. 그럼 이따가….”

승지는 되는대로 말을 주워섬겼다. 유월이 총총 사라졌다. 그가 멀어졌다고 확신한 뒤에야 승지가 중얼거렸다.

“…행운 올라가니까 이런 일도 생기는구나.”

[크흡]

행운 스탯이 30까지 올라간 사람의 이득치고는 너무 소박해서 성좌는 눈물이 날 거 같았다.

[…정말이지 승지 결혼하면 나 울 거야. 진짜 눈물밖에 안 나와. 으흐흑 어떻게 이런 사람이 있을 수가 있어! 우리 승지 연애 해! 하고 싶은 거 다 해!]

“아, 시끄러.”

괜히 민망해진 승지가 대화창을 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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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라면 99콤보까지 - 광대라면 99콤보까지-6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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