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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 (1)

혜화역.

무기 판매자는 일찍 도착해 4번 출구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곧 만나기로 한 시간인데 연락이 없다니. 판매자가 경매장으로 다시 연락하려고 했을 때였다.

“어이 거기!”

판매자가 고개를 들었다. 웬 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필사적으로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외쳤다.

“오이오이!!”

“아… 오타쿠신가요?”

“뭐? 아니, 중고 거래 말이야! 오이라고!”

“아하! 당근당근!”

그제야 알아차린 판매자가 앞으로 나섰다.

익명으로 거래한 거라 서로 알아보기 위해서 프로필에 뜬 사진으로 말을 걸기로 했었다.

둘 다 따로 설정한 사진이 없어서 경매장 기본 사진인 야채로 암호를 결정 했었다.

아무튼 구매자를 발견한 판매자가 주섬주섬 인벤토리에서 무기를 꺼냈다.

“별로 안 늦으셨으니 그만 뛰어오셔도 돼요. 어차피 이거 손에 익으시려면 꽤 시간이 필요….”

“됐고, 일단 구입할 테니까 먼저 써봅니다!”

“어!”

승지가 무기를 탁하고 낚아채갔다. 당황한 판매자가 어벙벙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설마 이대로 날치기를?

다행히 그가 의심하기 전에 거래창이 떴다.

[ 오이 님이 보낸 1500코인을 받으세요! ]

물건 대금은 정확했다.

판매자가 얼떨떨하게 수락하는 동안 승지는 무작정 뺏어든 무기로 바닥을 노려보았다.

꾸득꾸득.

지금까지 그를 따라온 소리가 하수구 배관을 타고 울리듯 터져 나왔다.

[곧 올라올 거야! 여긴 그게 없으니까!]

“나도 알아!”

승지가 보도 공사 때문에 헤집어진 흙바닥을 노려보았다.

도시 대부분은 콘크리트와 시멘트가 깔려 바닥이 단단했다.

이 몬스터는 힘이 부족해 단단한 부분은 밀어 올릴 수 없었지만, 조금만 지반이 약한 곳을 발견하면 귀신같이 파고 올라왔다.

지금처럼!

흙이 들썩이더니 꼼장어처럼 생긴 괴물이 바깥으로 돌출했다.

“퀘에에에엑!”

[나왔다!!]

“우오어어!”

괴물을 본 판매자가 비명을 질렀다. 주름이 빽빽하게 진 미끈한 몸체에 톱니처럼 갈린 이빨에서 누런 액체가 튀었던 것이다. 크기가 거의 가로등만 했다.

미리 기다리고 있던 승지가 메이스로 괴물의 머리를 힘껏 내리찍었다.

빠악!

[ 1콤보! ]

“께에엑!”

철퇴에 머리를 얻어맞은 꼼장어 괴물이 꿈틀거리더니 다시 땅 속으로 도망쳤다.

승지가 분통을 터트렸다.

“젠장! 또 들어갔네!”

메이스에 묻은 살점을 승지가 마구 흔들어 털어냈다. 이래가지고 어느 세월에 잡냐고!

다소 놀라서 물러나 있던 판매자가 물었다.

“아아~. 지금 미션 중이신거군요?”

“그건, 아니… 설명하기 복잡합니다.”

승지가 머리를 마구 헤집었다.

이 빌어먹을 놈의 글라세로!

몽봉스를 잡고 얼마 되지도 않았다. 순조롭게 무기 거래를 약속하자마자 또 다시 글라세로가 보내놓은 추적자가 현실에 떨어진 것이다.

저주 진행도가 50퍼센트를 넘긴데다 추적자가 죽은 걸 보니 내가 여기 있다고 확신한 모양이다.

하나를 잡아도 바로 다음 추적자가 나타나는 글라세로의 저주 때문에 뭘 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내가 이젠 하다못해 류의건까지 이해가 간다니까.

그 자식도 미션할 때마다 마왕이 보낸 부하가 쫓아왔을 텐데 어지간히 거슬렸을 것이다.

“차라리 내가 마왕을 잡고 말지.”

“예?”

“아닙니다. 아무튼 무기 사용법이 어떻게 된다고요?”

“아아, 거기 보시면 손잡이 쪽에 튀어나온 부분이 있죠?”

승지는 설명을 들으며 계속 장어 괴물이 나왔던 쪽을 응시했다.

쿠루룩.

여전히 하수구 소리가 들리는 걸로 봐선 멀리 가진 않았는데.

다시 밖으로 유인해낼 방법이 있을까?

꼼장어 괴물은 눈이 어둡고 소리도 잘 듣지 못하는 듯 했다. 대신 냄새는 기가 막히게 잘 맡았다.

하필 저게 처음 나타났을 때 승지의 팔을 물어버려서 계속 정확하게 그를 추적해왔던 것이다.

승지는 피와 침으로 너덜너덜해진 소매를 밀어 올렸다.

“사용법은 대충 알겠습니다.”

“그게 쉬워 보이지만 막상 실전에서 쓸 때 타이밍이 엄청 중요하거든요.”

“뭣하면 보고 가시죠.”

“예에?”

승지가 인벤토리를 열었다. 저번에 정령 유희에서 잡아들였던 정령들이 항아리 안에서 지들끼리 꽉꽉 뭉쳐있었다.

성수는 벌써 다 핥아먹었냐.

항아리 속에 물의 정령도 갇혀있던 덕분에 자체적으로 성수가 조금씩 계속 생성되고 있었다.

승지는 사탕 바구니처럼 한 번 항아리를 흔들어서 물의 정령만 쏙쏙 집어냈다.

그리고는 꼼장어 괴물이 숨어들어갔던 구멍으로 쇽쇽 집어넣었다.

꾸르륵…!

곧 흙을 만난 정령들이 마구 물로 바꿔놓고 있는지 바닥에서 차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승지가 하려는 일을 이해한 성좌가 키득거렸다.

[불의 정령을 넣지 그랬어?]

“내 손으로 때려잡고 싶어서.”

곧 흙탕물이 된 거품이 부글거리며 넘쳐흐르더니, 숨을 쉬지 못한 꼼장어 괴물이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쿠어어억!”

타앗!

바로 허공답보로 뛰어 오른 승지가 괴물의 옆면을 후려갈겼다.

[ 1콤보! ]

“퀘에엑!!!”

크게 몸통이 휘청거린 꼼장어 괴물이 새로 구멍을 파고 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이미 승지의 손은 설명을 들었던 대로 손잡이를 누른 뒤였다.

차칵!

왕관처럼 메이스를 감싸고 있던 부분이 거미처럼 확 펼쳐졌다. 뾰족하게 박혀있던 징이 순식간에 위를 향해 솟구쳤다.

[ 2콤보! ]

가시 덫처럼 꼼장어 괴물의 살갗을 파고든 메이스는 그대로 갈고리가 되어주었다.

“퀘아아악!”

그 즉시 땅굴파기에 실패한 괴물이 몸부림쳤다.

바닥으로 착지한 승지가 힘겹게 요동치는 괴물을 양 팔로 붙잡았다.

“힘 한 번… 더럽게 세네…!”

펄떡거리는 힘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버티는 승지의 발에서 끼기긱 소리가 났다.

[조금만 더! 승지야! 한 방만 더!]

승지가 이를 악물자 불끈 근육이 부푼 어깨가 단숨에 괴물을 당겼다.

“소류겐!!”

[ 3콤보! ]

“케아아아악!”

역방향으로 동시에 갈라지는 공격에 꼼장어 괴물이 버티지 못하고 터져나갔다. 머리에 있던 핵이 바깥으로 튀어나오자 괴물은 힘을 잃고 쓰러졌다.

“허억…! 허억….”

승지는 그제야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승룡권으로 공격할 때 반대로 당긴 메이스까지 끌려가지 않으려고 버티느라 어깨가 찢어질 것 같았다.

덕분에 찢어진 건 꼼장어가 되었지만.

승지는 물끄러미 갈라진 내면을 응시했다. 힘을 썼더니 배가 고팠다.

“혹시 먹을 수 있나, 이거.”

[에엥?? 이걸 왜 먹어?? (;° ロ°)]

“진짜 꼼장어는 맛있거든.”

이 괴물은 기껏 잡았는데 먹을 수도 없다니 정말 쓸모가 없구만.

승지는 달라붙어 있던 메이스의 갈고리를 다시 잡아당겼다.

약간 힘이 필요하긴 했지만 박혀있던 징이 매끄러웠던 터라 잘 비트니 다시 당겨 원래의 왕관 형태로 돌아갔다.

“역시 오타쿠 맞으셨군요? 공격할 때 스킬 이름까지 외치시다니. 본격적이시네요.”

“뭐요?”

“에이 괜찮아요. 컨셉이 있다는 건 좋은 거니까. 각성했으니까 기분 내고 싶죠. 알아요, 저도.”

“아니 누굴 관심 종자로 알아.”

승지가 해명할 틈도 없이 판매자는 흐뭇하게 손을 흔들었다.

“딱 컨셉질하기 좋은 무기니까 많이 쓰시고 행복한 미션 되세요!”

“야! 아니라고!”

흥분한 성지가 열을 냈지만, 판타지에서 나올법한 무기를 흔드는 모습에는 설득력이 없었다.

[ 성좌 연결도가 올라갔습니다! ]

“넌 또 왜.”

[관객이 좋아했잖아!]

“…….”

의욕이 사라진 승지가 조카와 세 시간 놀아준 삼촌처럼 중얼거렸다.

“성좌야.”

[응!]

“난 다 필요 없고 미션만 잘하면 되거든? 분명히 이번 서브 미션은 요 꼼장어 괴물 사냥이었지?”

[그랬지?]

“그런데 왜 아직도 완료가 안 뜨냐?”

* * *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삐 소리 후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

류의건은 여전히 부재중인 통화를 끊었다. 혹시나 해서 시도한 건데 역시 안 되나.

하지만 그는 실망하지 않았다.

상대방은 무시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통화가 간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많은 정보를 제공했다.

일단 전화 수신이 되니, 채승지의 스마트폰은 현실에 있으며 누군가 충전까지 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거기에 더해 계속 전화를 걸어도 차단이 아니라 무시를 한다면 다른 사람이 습득할 가능성도 제외할 수 있었다.

즉 채승지는 살아있지만, 의도적으로 사람을 피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미스핏 길드로 왔다.

“앗! 류의건 각성자님!”

“안녕하세요!”

늘 고요하던 미스핏 길드는 전에 없던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뜻밖의 모습에 류의건은 예의상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그게 사실은 드디어 글라세로의 저주의 치료제가 만들어졌거든요!”

“아! 정말 잘 됐군요!”

류의건도 덩달아 얼굴이 밝아졌다. 그도 몇 번 글라세로의 저주에 걸린 환자들을 본 적이 있었던 것이다.

“정말 믿기지가 않아요! 어제 드디어 오빠의 원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었다니까요.”

“치료법이 없는 걸로 알았는데 대체 어떻게 치료제를 만들었나요?”

“이게 다 채승지 각성자님 덕분이에요!”

“헉…!”

신나서 떠들던 미스핏 길드원이 급하게 입을 다물었다.

류의건이 채승지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잘 알았던 것이다.

“죄송해요. 아직 그 이름 듣기 힘드실 텐데.”

“괜찮습니다.”

류의건이 애써 침착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보다 서명구 각성자를 좀 만나고 싶은데요.”

“명구 씨요?”

“바로 불러 드릴게요!”

쪼르르 연락한 길드원은 곧바로 최자림과 함께 있다는 서명구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류의건은 추적 스킬을 가진 서명구에게 채승지의 행방을 물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류의건을 보자마자 안색이 달라진 서명구가 그대로 도망치는 게 아닌가!

“!”

왜지?

잠깐 어안이 벙벙해진 류의건은 일단 그를 쫓았다. 당연히 비전투계 각성자인 서명구는 류의건에게 30초만에 붙들리고 말았다.

“류, 류의건 각성자님!”

“서명구 각성자님.”

류의건이 최대한 위협적이지 않게 이름을 부르자 서명구는 흠칫하면서도 주절거렸다.

“간만에 뵙네요. 하, 하하.”

“왜 도망가십니까?”

“저, 전 의리를 지킬 거니까요!”

서명구는 질끈 눈을 감았다. 의리?

이건 또 무슨 소리지?

어리둥절해진 류의건에게 볼이 터져라 웃음을 참고 있던 최자림이 류의건의 팔을 툭 건드렸다.

“놓아주세요, 류의건 씨.”

“하지만! 최자림 각성자님!”

“명구야. 괜찮아. 이분은 이미 알고 계실걸.”

그제야 조금 눈치를 챈 류의건이 말했다.

“혹시 여러분도 채승지 각성자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까?”

“헉.”

“역시 알고 계셨군요!”

최자림이 눈을 찡긋했다. 오히려 류의건이 더 놀랐다.

“여러분은 어떻게….”

“명구의 스킬로 한 번 추적한 대상은 일부러 지우지 않는 이상 계속해서 기록이 남거든요.”

“이건 비, 비밀로 해주셔야 합니다. 불법 위치 추적이나 마찬가지라.”

명구가 안고 있던 책을 더 꽉 끌어안았다.

최자림이 능청스레 말했다.

“저도 새벽까지 자다가 혼비백산한 명구가 뛰어와서 알았죠. 죽은 승지 씨가 움직인다면서요. 촤하핫, 우리 길드에서도 저랑 명구 둘밖에 몰라요.”

“놀랍군요. 왜 길드장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까?”

“승지 씨의 서프라이즈를 방해할 순 없으니까요!”

“게다가 승지 씨는 저희 길드의 은인이십니다. 먼저 나타나지 않으신다면 같이 숨겨드리고 싶었어요.”

명구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자신과 같은 판단이다. 류의건이 힘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합니다. 하지만 승지 씨가 살아있다면 더더욱 글라세로가 소환되기 전에 승지 씨를 찾아내야만 합니다.”

“아하! 맞아요, 그거. 슬슬 대책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했죠!”

최자림이 쾌활하게 아픈 곳을 찔렀다.

“미리 승지 씨를 데려와 봤자 또 죽으면 무슨 소용이겠어요?”

“이번에는 다를 겁니다.”

류의건이 진지하게 부정했다.

누구를 신용할 것인가.

마왕 소환보다도 더 어려운 문제였다.

“신변을 감추고 있는 승지 씨에게 먼저 접촉하려고 합니다. 이번엔 길드 연합의 힘을 빌리지 않고요.”

길드 연합이 세상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알지만, 그들의 대의엔 따를 수 없다.

다행히 서명구와 최자림은 협조적으로 나왔다.

“저희도 최대한 돕겠습니다.”

“와우! 드림팀 결성이네요!”

“우선 채승지 씨를 확보하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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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라면 99콤보까지 - 광대라면 99콤보까지-5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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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라면 99콤보까지 - 광대라면 99콤보까지-5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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