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 일억 이천의 개들 (2)
잡아먹을 듯이 달려드는 개들에 놀란 유청이 반사적으로 주먹을 치켜들었다.
“미친, 멈춰! 괴물 아니야!”
승지가 기겁해서 소리쳤다. 간신히 정지한 유청의 팔을 개들이 마구 물어뜯었다.
“크르륵! 크릉!”
“카그극!”
“뭡니까, 대체?!”
어리둥절해진 유청이 소리쳤다. 여전히 팔뚝에 개 세 마리가 매달린 상태였다.
[휴 다행이다! 개는 무사해!]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어차피 아프지도 않잖아?”
“안 아파도 놀라긴 합니다. 게다가 적인 줄 알았다고요.”
유청이 조심스럽게 개의 머리를 흔들어 떼어내려고 시도해보았다. 역시나 그도 각성자라고 팔엔 흠집 하나 없었다.
별 걱정 없이 승지는 구경하기만 했다.
“이상하네. 왜 널 공격하냐? 탐지견이라 더러운 인성 냄새도 맡나?”
“…….”
[그러게! 유청을 공격할 이유가 없잖아?]
내내 얌전하던 개들은 여전히 유청에게 공격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하나뿐이다.
“너 몰래 마약하고 다니냐?”
“말이 됩니까!”
결국 유청이 버럭 소리를 쳤다. 그것마저도 쓸 수 있는 팔에 모두 개가 매달려서 숙인 채 말해야 했다. 최선을 다해 개를 떼어보려고 했지만 다치게 하지 않고서는 떼어낼 수가 없어 보였다. 결국 유청이 부탁했다.
“…보고만 있지 말고 좀 떼어주십시오.”
“쯧쯧, 이렇게 한심한 머슴을 어따 써먹나.”
승지가 개 턱을 살살 누르자 겨우 개들이 입을 벌렸다. 그리고는 여전히 유청을 경계하며 쪼르르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간신히 풀려난 유청이 불쾌감을 표시했다.
“갑자기 웬 개입니까?”
“인사해라. 왼쪽부터 케로, 베로, 스야다.”
“스야?”
유청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개를 내려다보았다.
“사연이 긴데 넌 알 필요 없고. 나가기 전에 개 좀 보라고 부른건데 개들이 널 무지하게 싫어하네?”
“기껏 개보기를 시키려고 부른 거였습니까.”
투덜거리려던 유청은 여전히 세 마리의 개들이 빤히 쳐다보는 시선에 꽂혀있었다. 승지가 말렸으니까 가만히 있지 다시 물고 싶다는 얼굴들이다.
[그치만 정말 이상하다! 방금 전까진 얌전했는데!]
“흐음. 혹시 이게 마왕의 힘에 영향을 받은 전조인가?”
“마왕이요?!”
마왕이란 단어에 예민한 유청이 펄쩍 뛰었지만 승지의 관심은 여전히 개에게 쏠려있었다.
정말 마왕의 힘 때문에 공격성을 드러낸 거라면 처분해야겠지만….
승지를 바라보는 개들의 눈은 순진무구했다.
“좋아, 데려가 보자.”
[어딜?!]
“산책.”
진짜 아무나 봐도 달려드는지 확인해봐야지.
영문을 모르는 유청을 일단 대기하라고 지시한 승지가 개에게 목줄을 채웠다.
“기다리는 동안 청소나 해 놔라.”
승지의 집은 개가 열심히 뛰어다닌 결과로 개털 천지였다. 유청은 우울한 눈으로 돌돌이 테이프를 내려다보았다.
덜컹.
현관을 열고 나오자 쾌청한 하늘에서 햇살이 쏟아졌다.
[꺄아! 상쾌한 공기! 산책하기 너무 좋은 날씨야!]
성좌가 즐겁게 대화창을 띄웠다. 승지는 당장이라도 달려 나갈 듯이 힘이 센 개 세 마리의 목줄을 한 손으로 잡고 메시지부터 확인했다.
“보자. 나간 김에 어쨌든 윷놀이 팀원도 뽑긴 뽑아야 하는데.”
[어? 승지 쫄쫄이 입고 나왔어!?]
“미쳤냐. 그냥 아는 사람한테 부탁할 거다.”
류의건처럼 쫄쫄이를 입고 사람을 모집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근데 승지 아는 사람… 많아? 번태 아저씨가 여는 윷놀이에선 사람이 많을수록 좋다고 그랬잖아!]
승지가 멈칫했다. 그렇다. 자신의 사회적 인간 관계망이란 한 없이 좁았으니.
류의건 같이 얼굴만 까도 팀원이 몰려드는 놈이랑은 사정이 달랐다.
물론 류의건은 고지식하게 알러트와 관련된 사람을 찾겠다고 무작정 신청을 받은 모양이었다.
승지는 그렇게까지 협조할 생각은 없었다. 찾으면 좋고 아니면 마는 거고.
무엇보다 번태 길드장이 그냥 크게 놀아보고 싶어서 벌이는 판이라는 생각이 떠나가질 않았던 것이다.
“몰라. 일단 있는 놈부터 연락해보지 뭐.”
승지가 전화를 돌렸다. 개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사방을 킁킁거리고 다녔다.
“여보세요?”
“어, 난데. 시간 좀 있냐?”
[승지야, 어쩜! 보이스 피싱처럼 사람을 낚네!]
어쩔 수 없다고.
승지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대강의 상황을 전달했다. 다행히 번태의 행사가 대대적으로 방송을 탄 뒤라 다른 각성자들도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 알고 있었다.
마약과 알러트에 관한 속사정은 모를 테지만.
어쨌든 승낙은 수월했다.
“촤하하! 재밌을 거 같은데요? 좋습니다! 참가하죠!”
“얼마든지요!”
“그래요.”
좋아. 최자림, 오조희, 유월 확보.
[음?]
문득 팀원이 된 사람들을 세어보던 성좌가 물음표를 띄웠다.
[가만, 지금까지 승지 팀원은 다 여자잖아?! 에엑? 맙소사?! 승지 사실은 인기 있는 거 아니야?!]
“뭐?”
성좌의 얘기에 오히려 승지가 더 깜짝 놀랐다. 내가 인기가 있다니. 말이 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그렇잖아?! 세상에! 승지가 사실은 자기만 모르는 인기인이었다니! 거짓말 같아!]
“나 지금 여기서 열 받으면 되냐?”
[솔직히 승지도 놀랐잖아!]
“그냥 아는 남자 놈들은 다 다른 팀장이 돼서 못 부른 거잖아. 과장하기는.”
[아아! 우리 승지가 너무 인기 많아지면 싫어! 영원히 내 계약자로만 남아줘야 하는데!]
성좌가 실컷 극적으로 연출해댔다. 어차피 진짜 연애가 아니라는 걸 알아서 더 마음껏 놀려대는 모양이다.
별 생각이 없던 승지도 자꾸 성좌가 저렇게 말하니 살짝 마음이 흔들렸다.
아무것도 아닌 사이라는 거야 서로 다 알지만. 문제는 유월이다. 승지가 신중하게 물었다.
“호… 혹시 유월도 오해하려나?”
[어?]
성좌가 거짓말처럼 대화창을 뚝 멈췄다.
[우, 우와… 승지 방금 진짜….]
“아니다. 잊어라.”
[꺄악! 아니야! 의외의 일면이었어! 유월한테 보여주면 당장 넘어올 거야! 승지에게 빠져빠져!]
“됐다고, 인마.”
바로 후회한 승지는 그냥 개들만 달리게 시켰다.
하긴 유월이 나랑 다른 인간들 사이를 오해하겠냐. 그것도 호감이 있어야 오해하고 말고가 있지. 내 팔자야.
승지가 무념무상으로 커다란 개들을 끌고 다녔다.
몰랐는데 큰 개들은 목줄을 채울 때도 하네스 같은 조끼를 입히고 거기에 줄을 달았다. 달려가면 당기는 힘이 웬만한 성인을 끌고 가고도 남기 때문인 모양이었다.
물론 승지는 한 손가락으로만 잡아도 개들을 붙잡고 있을 수 있었지만 일단 주변을 생각해 손으로 쥐어주었다.
그러나 유청을 공격했을 때와 달리 개들은 온순하고 침착했다.
거리 두 개를 지나칠 동안 사람에게 달려들기는커녕 애정을 듬뿍 받을 정도였다.
“아이고 순해라.”
“얘는 종이 뭐예요?”
“셰퍼드였나…….”
개를 키워본 적 없던 승지는 길 가던 사람들이 뜬금없이 말을 걸어 당황했다.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개를 좋아했나?
덕분에 뜻하지도 않은 사람들과 대화하게 된 승지가 어색하게 대답을 이어나갔다.
그 때 얌전히 꼬리를 흔들고 있던 스야가 갑자기 고개를 뻣뻣하게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어느 한 쪽을 뚫어져라 바라보기 시작했다.
[스야, 왜 그래?]
성좌가 대화창을 띄웠지만 당연히 보일 리 없던 스야는 쳐다보는 것도 모자라 아예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런 변화는 다른 두 마리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케로와 베로도 일어나더니 꼬리를 흔드는 걸 멈춘 것이다. 승지도 알아차렸다.
“왜 이래?”
갑자기 줄이 팽팽해졌다. 세 마리가 동시에 달려 나가려다 승지의 손에 걸린 것이다.
“컹! 컹!”
몸은 앞으로 끄는데 나아가질 않으니 개들이 보내달라는 듯 짖기 시작했다.
[개들의 반응이 이상해!]
“아까 유청 봤을 때랑 비슷하잖아?”
승지가 살짝 잡은 손에 힘을 늦췄다. 그러자 세 마리가 한꺼번에 달려가기 시작했다.
[쫓아가보자!]
“쫓아가야 돼.”
어차피 줄을 잡은 사람인 승지는 가볍게 개를 따라 달렸다.
개들은 처음 보는 골목임에도 망설이지 않고 방향을 꺾었다. 주변을 둘러보며 달리던 승지는 곧 개들의 목표가 무엇이었는지 발견할 수 있었다.
골목 안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컹!”
“!”
개를 보고 놀란 왜소한 체격의 사람이 후다닥 도망갔다. 반대로 앞에 있던 인간은 사나운 개 짖는 소리에도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어? 저 사람은…!]
얼굴이 묘하게 익숙하다.
누구였더라.
기억을 되살리려고 빤히 쳐다보는 승지에게 그 쪽이 먼저 아는 체를 해왔다.
“오랜만이군.”
“누군데?”
[백정민이잖아! 알러트 부하!]
그제야 승지도 놀랄 수 있었다.
맞다, 그런 놈이 있었지.
코스모스 센터가 납치당했을 때 문을 열어줬던 문지기였다. 이상하게 협조적이었던 악당.
비로소 정체를 파악한 승지와 달리 저 쪽은 처음부터 기억하고 있던 모양인지 개보다 사람에게 관심을 주었다.
“이런 곳에서도 만나는군.”
“뭐하냐? 여기서.”
알러트를 만난 승지의 말투는 당연히 곱지 않았다. 마치 주인을 닮듯 케로, 베로, 스야도 그를 향해 사나운 울음소리를 흘려댔다.
백정민은 개 셋이 안 보이는 것처럼 태연하게 말했다.
“일하는 중이다.”
“아직도 알러트에서 일하냐? 하긴 문지기였지. 또 어떤 놈들은 납치하려고?”
승지가 손을 뿌득거리는 데 백정민이 아무렇지도 않게 정정했다.
“아니, 승진했다. 지금은 약을 팔지.”
“그 딴 것도 승진이냐.”
어이가 없어진 승지가 헛웃음을 내뱉었다. 백정민이 어깨를 으쓱했다.
“신고하고 싶다면 네 자유다.”
“신고하면 잡혀갈 생각은 있고?”
“도망가야지.”
백정민이 가볍게 던전 열쇠를 흔들어보였다. 튈 수단이 있다 이거냐.
하여튼 처음 볼 때부터 이상한 자식이었다.
그를 잡아볼까 고민하던 승지는 문득 알러트로 의심 가는 사람도 팀원으로 받아들이라던 번태의 말이 떠올랐다.
저놈은 확실한 알러트니 일단 끌어들여 볼까.
승지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혹시 번태 각성자가 여는 윷놀이라고 들어봤냐?”
“어둑시니 길드에서 연말 행사로 연다던 그거 말이군.”
“그래. 지금 팀원 모집 중이다.”
그도 꼴에 각성자라고 뉴스를 본 모양이었다. 백정민은 약간 흥미를 보였다.
“참가하면 얼마나 주나?”
“…얼마냐고?”
무작정 팀으로 영업하려던 승지가 멈칫했다.
“공짜.”
“못하겠군.”
백정민이 바로 사양했다.
“네가 어느 팀인진 몰라도 사람을 구하려면 돈을 좀 챙기라고 대장한테 전하는 게 좋겠군.”
[그 대장이 바로 승지잖아!]
난 돈까지 줘가며 사람 구할 생각은 없다.
백정민은 도망간 마약 구매자를 아쉬운 듯 한 번 돌아보고는 말했다.
“그나저나 보스가 널 찾더군.”
“엉? 나를?”
“무슨 스킬 때문이라고 하던데.”
[꺅! 페널티 스킬 때문에 알러트가 역시 승지한테 눈독을 들인 거야!]
성좌가 난리를 쳤다. 한 번 죽었다 살아나서 기록이 말소된 걸로 끝난 줄 알았건만.
알러트 보스 놈이 날 기억한다고? 혹시 코스모스 센터 때 봤나?
의문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가장 시급한 의문은 눈앞의 남자였다.
“근데 너 뭔데 알러트 내부 일을 나한테 술술 부는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