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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돌리고 돌리고 (2)

담배의 주인은 오조희였다. 승지를 본 그가 화들짝 놀라 꽁초를 비벼 껐다.

“실내에선 금연인데.”

“알죠, 알죠. 아아… 죄송해요. 심란해서 그만.”

오조희가 민망한 얼굴로 남은 연기를 휘휘 저어 보냈다. 흥미가 생긴 승지가 물었다.

“마왕도 다 잡았는데 뭐가 심란해서 그래?”

“……으음. 그게, 승지 씨니까 얘기해도 괜찮을 지도 모르겠네요.”

망설이던 오조희가 입을 열었다.

“글라세로 토벌전에서 저희 센터 사람들을 데려간 게 정말 잘한 일인가 생각하고 있었어요. 아! 물론 승지 씨를 도우는 건 당연한 거지만 그거랑 별개로요.”

“누가 심하게 다치기라도 한 거야?”

“아뇨. 그냥. 새삼스럽게 각성자들이 얼마나 위험한 환경에서 싸우고 있는지 깨달아서요.”

오조희가 무심코 다시 담배를 입에 물려다가 아예 그냥 곽 째로 집어넣었다.

“센터 사람들이 각성한 이상 빨리 적응시켜서 각성자 사회로 보내는 게 맞다고 여겼거든요. 그런데 싸울수록 죄책감이 들어요. 무서워하는 사람을 계속 지휘해도 되나. 이게 정말 맞나.”

“던전에선 잘했었잖아. 게다가 이번엔 다친 사람도 없다면서.”

“위험한 순간마다 번태 각성자님이 스킬로 구해주셨거든요. 마왕을 상대하면서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을 하나하나 보고 있는지… 정말 대단했어요.”

오조희가 추욱 어깨를 늘어트렸다.

“그에 비하면 저는 사람들을 수습하는 게 고작이었어요. 고작 이런 실력으로 사람들을 데려가도 되나. 막막했어요.”

[아하! 그러니까 랭킹 1위와의 실력 차를 느끼고 좌절한 거구나!]

성좌가 느낌표를 띄웠다. 그런 거였냐. 승지도 따라 납득하고는 말했다.

“거 번태는 랭킹 1위잖아. 이제 막 각성한 2차 각성자랑 비교하긴 좀 그렇지 않냐.”

“승지 씨도 저처럼 이제 막 각성한 2차 각성자시지만 무려 마왕까지 잡았잖아요? 저도 거기서 다 봤다구요.”

오조희가 밉지 않게 눈을 흘겼다.

[그럼 그럼. 우리 승지는 차원이 다른 걸! 다른 각성자랑 비교할 수조차 없지!]

이 와중에 성좌가 혼자 흐뭇해했다. 으이고, 자식아.

멋쩍어진 승지가 대답을 않자 오조희가 살짝 웃었다.

“알아요. 승지 씨는 특별한 경우라는 거. 제가 괜한 소리를 했네요.”

“음…… 넌 대신 책임감이 있잖아.”

승지가 고민 끝에 대답했다.

“너 잘 싸웠어. 그거면 됐지. 나중에 지휘를 왜 그거밖에 못하냐고 하면 지들끼리 독립하라고 해. 어쩌라고 하면서.”

“아하핫!”

마지막에 어쩌라고 하는 승지의 표정이 얼마나 진지해 보였는지 오조희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게요. 정말 그럴까 봐요. 저 나름대로 진짜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 결과부터 생각하진 않을래요.”

뭔가 혼자 마음의 정리를 했는지 오조희가 개운하게 재잘거렸다.

“가요. 승지 씨. 저 이제 더 안 피울 테니까 감시 안하셔도 돼요. 들어가야죠.”

“어? 어.”

당황한 승지의 목소리가 끊어졌다. 오조희가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팔짱을 꼈던 것이다.

포니테일로 묶어둔 오조희의 머리카락이 살랑 승지의 팔뚝에 스쳤다.

[헉 세상에…! 지금 우리 승지 여자랑 처음 팔짱끼는 역사적 순간인 거야? 그런 거야?]

사실이니까 조용히 해라.

승지가 한숨을 삼켰다. 그리고는 최대한 닿지 않게 조심하며 손바닥으로 오조희의 머리를 밀었다.

“좀 거리를 둘까?”

“으응? 왜요?”

“안에 들어가면 오해할 인간이 너무 많아서.”

“아아. 하긴 최자림 각성자님이 보면 분명히 저희가 사귄다고 소문내시겠죠?”

“바로 그거야.”

승지랑 사귄다는 오해를 받을 순 없었는지 오조희가 사락 팔을 빼냈다.

애초에 나만 신경 쓰는 거 같긴 한데.

승지는 다시 회식 자리로 돌아가며 눈으로 유월을 찾다가 때려 쳤다.

에라이. 다 필요 없고 그냥 집에 가서 게임이나 하고 싶다. 앗 젠장 집도 없고 게임도 없는 처지였지? 하하!

자조한 승지가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여전히 남아있던 류의건은 실컷 사진을 찍혔는지 반쯤 영혼이 빠져나간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그 틈을 타 승지가 그를 불렀다.

“류의건.”

“네?”

“너희 집 방 많이 남더라.”

“아, 계속 머무셔도 괜찮습니다. 지금 신분으로는 집 계약도 못하는 상태시니까요.”

“그렇지. 고맙다.”

자연스럽게 방을 갈취한 승지가 턱을 괴었다.

“이번에도 호구… 아, 아니, 공짜로 머물긴 좀 그런데 다음에 일 있으면 마음대로 써먹어라. 랭킹 2위한테 내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괜찮으니 그런 말씀 마세요.”

류의건이 어색하게 사양했다. 흠. 분명히 나한테 뭐 바라는 게 있는 눈친데 말을 안 하네.

뭐! 말 안하면 나는 개 이득!

승지는 이번 글라세로 토벌 때만 잠깐 류의건에게 신세를 질 생각이었지만. 막상 머물러보니까 넓은 집이 상당히 좋았다.

현재 승지는 부활 신고가 되기 전까진 집 계약이 불가능했다. 즉 여전히 홈리스 상태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길드원이 될 것도 아닌데 미스핏 길드나 어둑시니 길드에 머물 수도 없으니. 유청네 집으로 가기엔 유월이 마음에 걸렸다.

분명히 둘이 가족이라 같이 살고 있을 텐데 아무리 유청이 내 머슴이라도 다짜고짜 유월이랑 동거부터 시작하는 건 좀.

아오, 왜 하필 둘이 쌍둥이인거냐. 둘이 아예 다른 별에서 태어났어야 했는데.

그래서 승지는 차라리 이번 기회에 아예 류의건네 집에 하숙으로 들어가 볼 생각이었다.

물론 그냥 하숙이라기엔 백배는 좋은 집이지만. 집주인인 류의건이 허허실실한 놈이니까 괜찮지 않을까?

미션으로 열심히 벌어서 코인으로 방세 낸다고 하면 받아주려나. 월세 살이도 집주인이 부자여야 편한데.

아무튼 이번 기회에 은근슬쩍 말뚝을 박아보려는 승지의 속내도 모르고 류의건이 여전히 친절하게 말했다.

“그럼 유청 씨도 불러드릴까요?”

“그 놈을?”

“승지 씨 머슴이시니까요.”

“이야 너도 은근 사람 잘 부려먹는 구나. 하긴 금수저로 태어났으니까 잘하겠지.”

“그, 그런 의도로 말씀 드린 건 아니었습니다!”

“괜찮아, 괜찮아. 뭐라고 하는 거 아니야. 돈 있으면 써야지. 사람 있으면 부리고.”

승지가 쌍 엄지를 들어주었다. 류의건이 열심히 항변했다.

“그게 아니라 정말로 제가 또래 사람들이랑 같이 지내본 적이 드물어서 많으면 좋겠다는 뜻이었습니다.”

“응? 그럼 아예 길드를 만들지 그랬냐? 네가 만들면 가입할 젊은 사람이 넘쳐 날 텐데.”

“…….”

류의건이 곤란한 표정으로 대답을 피했다. 승지가 대충 질문을 넘겨주었다.

“아무튼, 뜻은 알겠지만 한 집에 시커먼 남자 놈들이 많아져서 좋을 건 없잖냐. 나까지만 받고 끊자. 괜찮지?”

“네, 알겠습니다.”

좋았어. 류의건 집만큼 좋은 집을 머슴에게 줄 쏘냐. 음하하.

만족한 승지는 노래방 기계를 꺼내온 번태와 최자림이 최악의 음치 박치 대결을 하며 악을 써도 박수를 쳐줄 수가 있었다.

물론 막판에는 작작 좀 하라고 스피커 전원을 뽑아버렸지만 말이다.

* * *

환호도 축배도 모두 하룻밤으로 끝이 났다.

흔들리는 버스에 탄 승지를 보고 어젯밤 마왕 글라세로를 잡은 각성자라는 걸 알아차릴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각성자 역사에 남겨도 될 만큼 지독한 싸움이었는데도 방송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는 게 기분이 이상했다.

정말 알 사람만 알게 되었군.

어젯밤까지 같이 회식을 했던 랭커들이 버스에 달린 화면에서 공익 방송으로 나오는 걸 보고 있으려니 더욱 낯설다.

“모두의 안전을 위해. 더 큰 대한민국을 위해. 각성자들이 함께 합니다.”

“2차 각성자 신고는 국번 없이 9999. 국번 없이 9999. 각성 즉시 등록해주세요.”

“다음 정류장은….”

내릴 곳을 확인한 승지가 하차 벨을 눌렀다.

[◕‿◕✿다 온 거야? 다 온 거야?✿]

“그래.”

승지가 버스에서 내렸다.

원래 부모가 있는 집에 갈 때면 항상 가슴이 답답해졌는데 이번엔 성좌가 같이 가서 그런지 마음이 꽤 편했다.

삐리릭!

한 주택 앞에 도착한 승지가 현관을 열었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는데도 꼭 남의 집에 들어가는 것 같았다.

성좌도 그렇게 느꼈는지 혼자 콩닥거렸다.

[우와 설레! 빈집털이 하는 거 같아!]

“꽤 비슷하지?”

먼지 냄새가 나는 현관에는 아무도 없었다. 성좌는 엄청 서운해 했다.

[텅 비었잖아! 승지가 왔는데 아무도 안 맞아주다니!]

“일하러 갔나 보네. 차라리 잘 됐다.”

승지가 안쪽을 둘러보았다. 유품을 가지러 온 처지지만 역시. 어디에도 내 물건은 안 보이는구만.

설마 무덤에 넣는답시고 다 태워버린 건 아니겠지?

열쇠장이의 고리가 태운다고 사라질 물건은 아니겠지만. 혹시라도 버리고 왔을 가능성을 생각하니 걱정됐다.

“창고가 어디였더라?”

문을 열어보던 승지는 상자로 빼곡한 쪽방을 하나 발견했다.

어, 저거 내가 쓰던 가방이다.

가방에 눌려있던 상자 뚜껑을 열자 드디어 얼마 안 되는 자신의 물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찾았다.

“여기 있었네.”

승지가 무사히 들어있던 열쇠장이의 고리를 챙겼다. 찾은 김에 옷도 좀 가져가자.

그가 인벤토리에 적당히 잡히는 대로 옷을 던져 넣고 있는데, 띡띡띡 소리가 나며 누가 또 집으로 들어왔다.

[헉! 헉! 저 사람은 딱 봐도 승지 아버님이다! 아버님!]

어차피 그에게 보이지도 않을 성좌가 바짝 긴장했다. 마르고 피곤한 인상을 가진 남자는 제법 승지와 닮아있었다.

과연 죽었다고 알려졌던 자식을 다시 만난 아버지의 반응은 어떨까!

성좌의 심장이 터질 듯이 두근거렸다.

마침내 승지를 보고 놀란 아버지가 중얼거렸다.

“어… 너, 살아있었구나.”

[응?? 그게 끝???]

당황한 성좌가 대화창을 흔들었다.

[죽은 자식이 살아 돌아왔는데 반응이 정말 저게 최선입니까?!]

“그러려니 해.”

“무슨 소리냐?”

“별 거 아니야. 그냥 물건 좀 가지러 왔어. 류의건이 전해줬다면서?”

너무도 태연한 승지의 말에 성좌는 그만 어쩔 줄 모르게 되어버렸다. 눈을 끔벅인 승지의 아버지도 딱히 할 말이 없어 보였다.

“맞다. 그 사람이 네가 각성자가 됐다던데.”

“응. 그래서 죽었던 거야. 이제 살아난 거 확인했으니까 부활 신고만 다시 해주겠어?”

“으음, 그래. 해놓으마.”

“고마워.”

[아니 지금 나만 이해 안 되는 거야?]

성좌가 둘 사이를 가로막고 엄청나게 큰 대화창을 띄웠다.

멋쩍게 서 있던 승지의 아버지는 그래도 뭔가 아버지로써 챙기려는 듯 어색하게 물었다.

“너희 엄마 안 보고 갈 거냐?”

“아냐, 됐어. 그보다 밥 좀 잘 챙겨먹고 다녀, 아버지. 전보다 말랐네.”

“그래. 그래야지.”

그것으로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도 바닥이 났다. 어색한 침묵을 3초 더 보낸 승지는 그냥 꾸벅 목례하고 집을 나섰다.

설마설마 하던 성좌는 진짜로 아버지가 더 붙잡지도 않고 승지를 보내버리자 왈칵 대화창을 토해버렸다.

[말도 안 돼!! 설명해줘!!]

[어떻게 저렇게 담담할 수가 있어!]

[정말 둘이 가족이야? 사실 새아빠 였다든가 그런 반전 있는 거야?!]

“진짜 아버지 맞아. 어머니도 진짜 어머니고.”

승지가 귀를 만지작거렸다. 누구한테 이 얘길 해본 적이 없어서 설명하기가 까다로웠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내가 저 집에 있는 것만으로도 패륜이라서 그래.”

[뭐??? 패륜???]

성좌가 당혹스럽게 이해하려고 애썼다.

[(´⊙o⊙`;)]

[가, 간단하게 요약하지 말아줘. 패륜이라니. 긴 설명이 필요하잖아!]

[승지가 무슨 짓을 한 거야?]

“글쎄. 내가 그랬나.”

승지가 중얼거렸다. 일부러 잊어버린 과거라 진짜로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는 아주 잠깐 씁쓸한 얼굴이 되었다.

“길게 얘기하면 꿀꿀하다. 요약판만 들어놔.”

[하지만…!]

“대신 오늘 염색할 때 네가 색깔 고르게 해줄게. 딜?”

[…딜!!! 우리 승지는 빨강! 빨강이 최고야!]

성좌가 냉큼 승지가 화제를 돌리려고 내민 미끼를 물었다.

저 녀석이 귀엽게 보일 때도 다 있군.

그렇게 삼십분 동안 성좌가 고민한 색으로 머리를 다시 물들일 때까지 승지는 다음날,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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