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남의 떡 뺏어 먹기 (3)
실컷 웃어댄 막타범이 찔끔 배어나온 눈물을 닦았다.
“하, 시발 걸어 다니는 음식물 쓰레기인줄 알았네.”
“다 웃었냐?”
승지가 어깨에서 오렌지를 꺼냈다.
“크핫! 저건 또 뭐야.”
[프흡….]
아니 씨, 너는 웃으면 안 되지?
간신히 웃음을 참는 상태창을 간신히 외면한 승지가 다른 쪽을 곁눈질했다.
[ 광대 이해도 : 14/100 ]
평생 이만큼 꼴사나웠던 적이 없지만 그나마 올라가는 숫자가 인내심을 만들었다.
“흡!”
어깨를 뒤로 젖힌 승지가 있는 힘껏 오렌지를 던졌다.
막타범은 킥킥거리면서도 가볍게 어깨를 틀었다.
“뭐하냐?”
손쉽게 빗나가는 오렌지를 보며 막타범이 비웃었다.
그의 도발에도 승지는 의외로 침착했다.
맞아도 좋고, 안 맞아도 상관없었다.
광대짓 중에선 과녁 대신 사람을 놓고 물건을 던지는 게 있었다.
광대가 어설픈 솜씨로 던지는 것, 그리고 그 어설픈 솜씨에 맞는 것. 둘 다 관객에게 웃음을 유발하기엔 충분했으니까.
[ 광대 이해도 : 32/100 ]
빠르게 올라가는 이해도를 보니 더 확실했다.
“이야아압!”
오렌지를 다 던진 승지가 허리에 꽂아 들었던 뿅망치를 뽑아 들고 달려갔다.
“오냐, 와 봐.”
피식거리던 막타범이 손을 까딱거렸다.
진심 그대로 쳐버리고 싶었지만, 승지는 일부러 옆으로 빗겨나갔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쿠당탕!
공격 실패는 물론이고 요란하게 미끄러지며 바닥에 뒹굴기까지 했다.
“푸하하, 저 등신! 굴러가는 것 좀 봐!”
일부러 구르는 중이거든.
매트 위에서도 안했던 앞구르기를 콘크리트에서 선보이며 승지가 이를 갈았다.
몸 개그라니.
쪽팔린 만큼 효과는 좋았다.
[ 광대 이해도 : 47/100 ]
[아하하! 승지야, 너 타고 났나봐!]
사람 속도 모르고 성좌가 까르륵거렸다.
쭉 미끄러진 승지가 바닥을 짚었다.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저놈의 시선을 붙잡아두는 덴 성공했다.
[ 광대 이해도 : 49/100 ]
이해도가 올라갔잖아?
느리긴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중에도 계속 이해도가 올라갔다.
저 녀석 때문인가.
웃기는 꼴이었지만 일단 저놈이 계속 자신을 구경하는 중이라 이해도가 올라가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목표를 바꾼 승지가 훌쩍 쓰레기통 위로 뛰었다.
그리고는 벽에 튀어나온 작은 틈을 밟아가며 훌쩍 지붕 위로 올라갔다.
“오, 뭐냐? 어떻게 했냐?”
막타범은 아예 구경꾼 모드로 들어가 팔짱을 꼈다.
팔자 좋은 자식.
승지가 이를 갈며 뛰어다녔다. 튜토리얼에서 이미 훨씬 높은 곳에서 뛰어본 적이 있는 터라 벽을 타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저거 사람 아냐?”
“서커스?”
지붕 위를 넘어가니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훨씬 늘어났다.
흘긋 아래를 내려다본 승지가 나머지 오렌지도 꺼내서 저글링을 했다.
도저히 서 있는 게 불가능한 전깃줄 위에서 말이다.
[와, 승지 너 그런 재주도 있었어? 잘한다아!]
“예전에 오픈 행사 알바도 했었거든.”
뭐든 시키면 잘하는 승지가 가볍게 오렌지를 던졌다.
그때 경력이 도움이 될 줄이야.
[ 광대 이해도 : 82/100 ]
쭉쭉 올라가는 이해도에 만족한 승지가 씩 웃었다.
이제 슬슬 내려가서 조져볼까.
막타범의 위치를 확인한 승지가 전깃줄에서 뛰어내렸다.
“어어, 야!”
알면서도 위치의 특수성 때문에 어물거리던 막타범은 승지의 추락을 피하지 못했다.
뺙!
[ 1콤보! ]
요란한 소리와 함께 뿅망치와 팔이 부딪쳤다.
“웃기는 짓을!”
“받아줘서 고맙다?”
막타범이 거세게 팔을 휘둘렀지만, 오히려 그 반동 덕분에 승지가 무사히 착지했다.
이제는 뿅망치에서 아무리 웃기는 소리가 나도 화가 나질 않았다.
뾱! 뺙!
[ 광대 이해도 : 82/100 ]
[ 광대 이해도 : 83/100 ]
보상이 확실히 있으니까!
승지가 기꺼이 창피함을 감수했다.
자신이 광대짓을 하면 할수록 착실히 미션 성공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조금만 더 하면 돼!]
나도 알아!
승지가 옆으로 파고든 순간, 막타범의 주먹이 날아왔다.
빠악!
[승지야아!!!]
콰당탕!
그대로 버티지 못하고 날아간 승지가 코피를 쏟았다.
아! 뼈 맞았어!
광대 부근에 금이 갔는지 얼굴 한 쪽에 열이 몰리며 붓는 게 느껴졌다.
“다 놀았냐?”
막타범이 짜증스럽게 주먹을 털었다.
그러고도 분을 못 이기겠는지 쫓아오다 말고 홧김에 옆에 있던 쓰레기통까지 후려 찼다.
꽝!
천둥 같은 소리와 함께 쓰레기통 뚜껑이 튕겨 나가 떨어졌다.
“이제 그만해라.”
승지가 숨을 몰아쉬었다.
“일부러 맞아주는 것도 한두 번이지.”
그가 낄낄거렸다.
“씨바,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그는 완전히 흥이 식어버렸다는 눈빛이었다.
그때였다.
띠링!
[ 광대 이해도 : 100/100 달성! ]
[서, 성공이야! 승지야! 성공했어!]
왜 하필 지금이지?
처 맞는 거까지 광대의 일에 포함될 리가 없을 텐데.
승지가 손등으로 코피를 문지르다가 콧등에 걸린 방울토마토까지 딸려 나와 짜증스럽게 던져버렸다.
이젠 더 이상 광대짓을 할 필요가 없다.
“나도 질렸어, 새끼야.”
엉망이 된 얼굴로 승지가 피를 뱉었다.
[ 서브 미션 완료! ]
그토록 보고 싶던 상태창이 눈앞에 떠있었다.
[ 서브 미션 보상 : 스킬 ‘프레임 컨트롤’ 획득! ]
[ 프레임 컨트롤 : 스킬이나 동작에 필요한 프레임 수를 바꿀 수 있다.
단, 대상은 한 번에 하나씩만 지정할 수 있다. ]
스킬을 확인한 승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개… 개 사기 스킬이다!
[뭐야 이게? 이거 좋은 스킬이야?]
아직 프레임 같은 단어에 익숙하지 않은 성좌가 허둥거렸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주지.
“현실 말고 게임에선 동작마다 필요한 장면이 있거든? 1초마다 처리할 수 있는 장면이 많을수록 프레임이 높은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그냥 직접 봐라.”
승지가 뿅망치를 붕붕 돌렸다.
아직 스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막타범이 나불거렸다.
“설마 계속 할 거냐? 나 이제 네 목숨 책임 못 지는데?”
“네 인생도 책임 못 지는 주제에 무슨 자신감이냐? 그냥 덤벼.”
“이새끼가! 그렇게 죽는 게 소원이면 죽여주마!”
방금 전까지 두들겨 맞던 놈이 저러니 어이가 없어진 막타범이 정말로 무기를 꺼냈다.
킹고블린을 죽인 창이었다.
하, 그래. 나도 ㅈ같았다.
내가 봐도 이딴 뿅망치를 들고 덤비는 놈을 보면 웃다가 뒤로 넘어갈 것거지만.
어떡하겠냐고. 이 망할 성좌가 꼭 이 무기로 싸우라는데.
그나마 상황은 바뀌어서 다행이지.
프레임 컨트롤이라니!
원래 게임에서 프레임은 성능과 직결되는 능력이다.
쉽게 말하자면 체감 시간이라고 해야 하나.
같은 시간 속에서도 상대가 더 느려지거나 순간이동처럼 빠르게 느껴지도록 만들 수 있었다.
그러니 쓰는 것만으로도 수치스러운 이 뿅망치로 조지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띠링!
띠링!
띠링!
[화이팅! 승지야!]
[응원의 메시지!]
[^^]
연달아 뜨는 메시지에 간신히 잡혀가던 분위기가 다 깨졌다.
저딴 건 대체 어디서 배운 거야?
“지금 집중하고 있는 거 안 보이냐? 안 치워?”
“뭐?”
“너 말고, 새끼야.”
“이게 보자보자 하니까!”
후.
한숨을 내쉰 승지가 무기를 고쳐 쥐었다.
옆에서 반짝반짝 돌아가는 [\ *^^*/] 이모티콘을 무시한 채 승지가 똑바로 적을 노려보았다.
이번에야말로 99콤보로 간다.
비장한 기세로 그가 뿅망치를 들어올렸다.
그 때 요란한 사이렌이 터져 나왔다.
애애애앵!
“이번엔 또 뭐야!”
머리 위에 매달린 스피커에서 쩌렁쩌렁한 기계음이 터져 나왔다.
“메인 미션 클리어! 메인 미션 클리어! 경계 구역 해제합니다! 대기하던 각성자분들은 신속히 지역 복구 해주시길 바랍니다!”
끝났다고?
막타범도 당황해서 중얼거렸다.
“토벌전이 벌써 끝날 리가 없는데?”
그도 똥 씹은 표정이 되었다.
“젠장…!”
토벌전이 끝났으니 당연히 류의건이 자신을 추적할거라고 여겼는지 막타범이 바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아니 이 새끼가? 잡을 만하면 분위기 작살나고, 조질 만하면 튀냐!”
[행운 스탯이 0이잖아 ^^~.]
“너 이모티콘 그만 써!”
홧김에 소리친 승지가 바로 각성자를 쫓아갔다.
입장이 역전된 승지가 뿅망치를 들고 그를 추격했다.
“야! 거기 서!”
“미친, 왜 쫓아와? 살려준다니까!”
“꺼져! 누가 누굴 살려줘!”
승지가 달려가며 소리쳤다.
“우랏차!”
이를 드러낸 승지가 풀 스윙으로 남자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뺘익!
[ 1콤보! ]
나왔다. 맞아도 어이없는 저 소리!
“아 진짜 이새끼가!”
오, 빡쳤는데?
근데 나도.
지금까지 처 맞은 게 한 번에 떠오른 승지가 씩 웃으며 뿅망치를 흔들었다.
“어딜 도망가? 쫄았냐?”
“이런 ㅆ발!”
결국 어그로 끄는 데 성공한 승지가 가볍게 창을 휘두르는 그를 피했다.
아슬아슬했던 전과 달리 아주 여유로운 동작이었다.
만약 지금 날아오는 창끝이 원래 14프레임이라면, 프레임 컨트롤로 28프레임으로 올려버린 순간 필요한 동작이 두 배로 늘어나게 된다.
원래 현실에선 굳이 그런 걸 자각할 필요도 없이 움직였겠지만, 지금은 스킬의 효과를 받아서 본인이 체감을 해야만 했다.
즉.
“?”
순간적으로 느려진 느낌을 받았던 막타범이 멈칫했다.
좋아, 좋아. 제대로 먹히고 있어.
반대로 해볼까?
자신에게 프레임 컨트롤을 쓴 승지가 뿅망치를 휘둘렀다.
원래였다면 능력이 부족해 상대보다 두 발짝은 느리게 들어갔을 공격이 빠른 속도로 턱을 후려쳤다.
쀽!
[ 10콤보! ]
“큭!”
턱을 접은 각성자가 창을 휘둘렀다.
부웅.
당연히 맞았어야 할 공격은 거짓말 같은 속도로 휙 내려간 머리 위로 빗겨갔다.
“말도 안 돼!”
상대가 포효했다.
“갑자기 약이라도 처먹었냐? 왜 이렇게 빨라!”
“그러게 말이다!”
승지가 유쾌하게 소리치며 뿅망치를 갈겼다.
쀼악!
[ 20콤보! ]
원래 자신이 하려던 동작이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완성되는 속도에 승지도 놀라 감탄했다.
세상을 초고속 카메라로 찍은 다음 마음대로 속도를 바꾸는 느낌이랄까.
심지어 자신은 격투게임을 해오며 모든 스킬의 프레임을 외워서 싸우는 데 익숙해져있었다.
한 번에 동작 하나씩밖에 못 바꾸지만, 선딜 후딜 계산해서 연계 넣는 건 식은 죽 먹기지.
“넌 뒤졌다.”
[ 40콤보! ]
“잠, 잠깐만!”
[ 60콤보! ]
삑삑거리던 뿅망치가 점점 뻑, 빠악! 하는 타격음으로 변해갔다.
어느새 그는 공격 대신 방어에만 급급해졌다. 콤보가 올라갈수록 점점 강해지던 공격이 더 이상 뿅망치라고 무시할 수 없는 수준까지 다다른 것이다.
“말도 안 돼! 저딴 장난감이 왜…!”
“아프냐고?”
뻐억!
큼지막한 옆구리에 꽂힌 앙증맞은 뿅망치가 그를 날려버렸다.
“크아악!”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에 막타범이 바닥을 뒹굴었다.
슬렁슬렁 쫓아간 승지가 가볍게 툭툭 뿅망치로 그의 정수리를 쳤다.
물론 충격은 가볍지 않았다.
쿵!
쿵!
쿵!
맷돌처럼 처박혔다가 고무공처럼 튕겨 나온 머리통에 그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발버둥 쳤다.
“이, 이런 미친! 무슨 스킬인지 몰라도 완전히 사기잖아!”
“네가 뭘 알겠냐.”
이거 한 방 날리려고 내가 쌓아야 될 게 얼마나 많은데.
승지가 양손으로 뿅망치를 쥐었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맞은 원한을 담아 힘껏 머리를 내리쳤다.
[ 99콤보! ]
콰앙!
바닥까지 들썩이는 것과 동시에 현실을 부정하던 각성자가 축 늘어졌다.
완전히.
[쓰러트렸어어어!]
성님이 환호하며 상태창에서 마구 폭죽을 터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