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웃음 공세 (2)
천천히 입을 벌리는 성좌는 이 상황을 인지할 수 없었다. 대신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승지만이 마왕의 힘이 퍼져나가는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우하하하하!”
“하하하하핫!”
“깔깔깔!”
다나우 주변에 있던 왕과 꼬맹이 성좌가 입을 크게 벌린 채 웃음을 터트리는 것과 동시에 벽을 사이에 두고 있던 병사들과 하인들이 들고 있던 걸 떨어트리며 웃어젖혔다.
“우호호호!”
“하하하하!”
그들이 배를 잡고 바닥에 뒹굴었다. 도저히 웃겨서 못 참겠다는 듯 바닥을 쾅쾅 내리치는 자도 있었다.
성 전체가 웃음바다에 잠겨버렸다.
웃지 않는 사람은 딱 둘뿐이었다.
얼굴이 창백해진 금테 안경이 노기를 불태웠다.
“자네!”
“체엣, 역시 당신을 상대하기엔 아직 힘이 부족했나.”
노파가 드디어 낄낄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누가 봐도 자신의 통제 하에 있는 웃음이었다.
마법의 힘으로 자신을 보호했는지 마왕의 힘에 영향을 받지 않은 금테 안경이 분노했다.
“어떻게 내 거짓말 탐지 마법을 통과했지? 아무리 마왕의 힘을 빌렸더라도 불가능한 일일 텐데!”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제 말은 거짓이 아닙니다요. 진짜로 마왕 같은 걸 소환할 생각은 없으니까.”
노파가 이죽거렸다.
“그저 이 늙은 육신에 힘을 더해주면 족하지.”
“이, 이 반역자 같으니! 제국의 이름으로 자네를 처단하겠네!”
스릉!
금테 안경이 칼을 뽑았다. 펜싱에서 쓰는 칼처럼 얇고 날카로운 레이피어였다.
그러나 노파는 혀 하나를 놀리는 것으로 상황을 바꿨다.
“공주님. 웃을 시간입니다.”
“흐읍!”
노파의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움찔한 다나우의 웃음이 멈추고 말았다. 아이러니한 상황이었지만 그만큼 다나우에게 새겨진 기억은 강력했다.
“허억! 커헉. 무슨, 무슨 일인가?”
“왜 이리 숨이 가쁘지?”
강제로 웃음을 터트렸던 사람들이 목을 부여잡으며 어리둥절해 했다. 금테 안경이 소리쳤다.
“폐하! 공주님의 말이 옳았습니다! 다들 대피하십시오!”
“무슨 말입니까! 도망이라니….”
상황을 이해 못한 왕 대신 다나우가 소리쳤다.
“어디로 도망가란 말이에요!”
“공주의 말이 맞아. 도망갈 곳은 없지.”
“그럼 내가 만들어주겠다!”
금테 안경이 매섭게 달려오며 칼을 휘둘렀다. 유연한 탄력이 만들어낸 궤적이 채찍처럼 노파를 후려쳤다.
쩡!
노파의 코앞에서 칼이 부들거리며 멈췄다. 방어막에 가로막힌 것이다.
“제국의 마검사 실력이 예전 같지가 않지?”
“무엄한!”
분노한 금테 안경이 맹렬하게 노파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왕은 사태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다나우를 대피시켜야 한다는 건 알았다.
“병사들이여! 공주를 지켜라!”
“소용없다! 히히히히!”
노파가 소름끼치는 소리로 웃어 젖혔다. 다나우에게서 뽑아낸 마왕의 힘을 흡수했는지 달려오던 병사들이 똑같이 웃음을 터트리며 고꾸라졌다.
“저 사람들 가만 놔둬!”
“꼬마야. 내가 언제까지 공주라고 봐줄 줄 알았더냐?”
다나우의 눈이 번쩍 돌았다. 그가 말릴 틈도 없이 바닥에서 돌멩이를 집어 들더니 노파를 향해 던졌다.
“윽!”
방어막에 닿은 돌은 칼과 달리 그대로 통과하더니 노파의 이마를 맞췄다. 왕은 대경실색했다.
“다나우!”
“저 미친 꼬맹이가!”
“내가 널 죽일 거야! 죽여 버릴 거라고!”
다나우가 소리를 질렀다.
노파는 미친 듯이 분노했지만 그를 공격하던 금테 안경이 가만 놔두질 않았다.
마법을 쓰지 않은 검은 방어막을 통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검법을 바꿔버린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몸을 급히 빼내며 노파가 노성을 내질렀다.
“이노오옴!! 가만두지 않겠다!”
“덤벼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다나우의 다리를 꼬맹이 성좌가 붙잡고 늘어졌다.
“뭐하는 거야아!”
“그러고 있지 말고 도망가! 도망가게 해주게! 제발!”
왕이 소리쳤다. 꼬맹이 성좌가 다급하게 다나우를 잡아끌었다.
챙!
노파를 노린 공격이 허공을 가르며 떨어졌다. 여우처럼 펄쩍펄쩍 뛰어오른 노파가 다시 금테 안경에게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다나우는 성좌와 왕의 애걸에 마지못해 물러났다. 꼬맹이 성좌는 이때만 기다렸다는 듯이 공주를 붙들고 달렸다.
조그만 다리가 젖 먹던 힘을 다해 달렸다. 성좌가 헐떡였다.
“어디로 가! 우리 어디로 피해!”
“……경관의 집으로 가자!”
다나우가 다시 앞서나갔다.
“거기서 뭔가 이 일을 막을 비밀이 있을 거야!”
쿵!
달려 나가던 성좌가 성 밖에 있던 어른과 부딪쳐 나뒹굴었다.
“아야아!”
“으앗!”
손을 잡고 있던 다나우가 덩달아 넘어져 뒹굴었다. 그러나 벌떡 일어난 다나우가 정신없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뭐야! 마녀야!? 쫓아왔어?”
꼬맹이 성좌가 딸꾹질을 했다. 부딪친 손은 공주가 아니라 성좌의 팔을 붙잡고 일으켰다.
“…반대역아! 너 맞지?”
“어이! 찾았어!”
꼬맹이 성좌가 성에서 나오질 않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유랑극단이었다.
설마 그들을 다시 만날 줄 몰랐던 꼬맹이 성좌가 입을 헤 벌렸다.
“어, 어어….”
“이 녀석아, 얼마나 찾았는 줄 알아? 대체 며칠 간 어디서 뭘 하고 있었던 게야?”
“성에 들어갔으면 진작 쫓겨 나왔을 거 아니냐?”
어리둥절하게 바라보던 다나우의 표정이 굳어졌다. 자신이 성좌에게서 억지로 떼어놓은 집단이라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꼬맹이 성좌는 순간 반가움으로 눈 앞이 글썽했지만 곧 정신을 차렸다.
“마, 마왕이 쫓아와요!”
“뭐?”
“공주님을 도망시켜야 돼요! 안 그럼 공주님 안에 있는 마왕이 막! 터지고! 여기 사람들이 다! 막!”
꼬맹이 성좌가 횡설수설 말했다. 다나우는 겁도 없이 자신의 비밀을 불어버리는 꼬맹이 성좌를 보고 기겁했다.
그러나 유랑극단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았다!”
“어디로 가면 되냐!”
캐물을 시간에 일단 움직여주는 게 빠르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다나우가 놀란 숨을 삼켰다.
그러나 그도 지체하지 않고 마차에 올라탔다.
“저쪽이에요!”
덜컹덜컹! 바퀴가 빠르게 굴러갔다. 낡은 수레는 부서질 듯이 흔들렸지만 간신히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는 버텨 주었다.
“저기야!”
꼬맹이 성좌와 공주가 굴러 떨어질 듯이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얘들아!”
“제발 조심히 가라! 아이고 저러다 다칠 라!”
“문 부숴요! 빨리!”
다나우가 손가락질 했다. 마차에서 내린 어른들이 다가오는 걸 기다릴 여유도 없는지 문을 두드리다가 아예 어깨를 박아댔다.
쾅! 쾅!
“아이고 공주님!”
“다칩니다, 비켜요!”
그들이 천막을 박는 말뚝으로 문을 때려 부쉈다. 다나우가 쏜살같이 안으로 들어갔다.
뒤따라가려던 꼬맹이 성좌를 어른들이 붙잡았다.
“잠깐만! 너까지 따라갈 필요는 없잖아! 여기서 기다려라. 우리가 가서 도와줄 테니….”
“안 돼요, 나도 공주라서…!”
“뭐?”
“공주 대역이에요!”
다람쥐처럼 몸을 굴려 빼낸 성좌가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다나우가 엉망으로 헤집고 들어갔는지 집안 물건은 죄다 박살나 있었다.
조심스레 다나우의 흔적을 찾던 꼬맹이 성좌는 지하로 통하는 계단을 발견하고는 따라 내려갔다.
그 아래서 다나우는 정신없이 책을 펄럭이며 읽고 있었다. 도와주려던 꼬맹이 성좌가 책에 적힌 글씨를 보고 갸웃거렸다.
“못 읽겠어.”
“당연하지. 이건 옛 제국 사람들이나 쓰던 말이라고.”
다나우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손가락이 한 곳을 짚었다.
“웃음의 마왕은 사람에게 감염되는 걸 좋아하고, 대가로 기억을 가져간다. 웃음이 길어지면 무엇 때문에 웃었는지 기억도 안 나는 것처럼. 그것이 마왕의 힘.”
“기억?”
그 때 머리 위에서 모골이 송연해지는 웃음소리가 울렸다.
“후하하하하!”
“핫핫핫핫!”
유랑극단 사람들의 웃음소리였다. 다나우와 꼬맹이 성좌가 동시에 얼어붙었다.
그러나 끓어오르는 분노로 다나우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떻게 없애요! 어떻게 봉인하는데! 그 말을 바로 밑에다가 적어놔야 할 거 아니야아!”
다나우가 소리를 지르며 책을 넘겼다. 책을 읽을 줄도 모르면서 꼬맹이 성좌도 덩달아 책을 넘기며 뒤적거렸다.
그러나 그렇게 쉽게 봉인하는 법이 발견되었다면 이 일이 이렇게 악화될 리도 없었다.
저벅저벅.
천장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성좌의 호흡이 가빠졌다. 그가 공주의 치마를 당겼다.
“공주님. 나가야 돼.”
“안 돼! 여기서 마왕을 잡을 방법을 찾아야 해!”
“그럼 그것도 가져가.”
성좌가 치마 폭에 책을 넣고는 손짓했다. 다나우도 똑같이 따라했다.
“이 꼬맹이들이 어딜 갔을까…?”
노파는 금테 안경에게 호되게 당했는지 생채기며 옷이 갈가리 찢겨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음산해 보였다. 지켜보는 승지마저 긴장해 숨을 죽였다.
삐걱. 삐걱.
“여기 문이 열려 있네?”
노파가 지하로 통하는 계단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문 뒤에 숨어 기다리고 있던 다나우가 기다렸다는 듯이 엉덩이를 걷어찼다.
“죽어!”
“억!”
설마 꼬마가 저지르리라곤 생각도 할 수 없는 단호한 일격에 노파가 계단을 굴러떨어졌다.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나면 좋았으련만.
목이 부러지는 대신 허공으로 굴러간 노파가 머리를 치켜들었다.
“네놈들!!”
“꺄아아악!”
당장이라도 달려들듯한 모습에 꼬맹이 성좌가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금빛 섬광이 그들을 가로지르더니 노파를 날려버렸다.
쿠당탕!
“여기 계셨군요!”
마찬가지로 엉망진창이 된 금테 안경이 헐떡이며 그들을 뒤로 물렸다. 반쪽이 쪼개진 안경을 다시 밀어올리며 말했다.
“지금 당장 배로 가십시오. 배를 띄워놨습니다. 곧 이 별을 떠날 테니 올라타기만 하면 알아서 모성까지 움직일 겁니다!”
“나 혼자선 안 가!”
“그럼 둘이 가십시오!”
죽어도 여기 남겠다는 다나우의 말을 짜증스럽게 받아친 금테 안경이 꼬맹이 성좌와 다나우를 움켜쥐고 위로 던졌다.
“제국으로 가서 보호를 받고 기다리세요! 당신 때문에 저 노파가 더 미쳐 날뛰는 거란 말입니다!”
“꺄아악!”
마법으로 올라간 두 아이가 하늘로 비산했다. 미리 금테 안경에게 연락받았는지 배에 타고 있던 선원들이 아이들을 붙잡고 배에 실었다.
꼬맹이 성좌는 헉헉거리며 바닥에 주저앉았지만 다나우는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난간에 매달렸다.
“다른 사람들은!”
“체자라님이 보호하실 겁니다! 위험하니까 이리 오세요!”
선원들의 만류에 결국 다니우가 물러났다.
금테 안경의 이름이 체자라였구나.
지켜보던 승지가 마지막으로 생각할 수 있는 건 거기까지였다.
똑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려 승지는 성좌의 기억에서 깨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