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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158화 그들의 설정 : 인간관계

도대체 세실리아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단지 죄책감만으로 자신의 남자에게 옛 여자 친구를 위한 자리를 만들어 준다는 것? 아무리 인간 세상에서 태어나지 않아 인간들의 습성을 모른다고 할지라도 그녀가 우혁을 사랑하는 그 마음의 크기가 커질수록 다른 여자에 대한 질투라는 감정 역시 높아져만 간 게 사실일 텐데.

실제로 그랬다. 가장 적극적이었던 가희에 대한 경계심. 그녀가 집에 왔을 때에 그 감정은 절정에 다다랐다. 일부러 더 애정의 행위를 그녀에게 보였으며, 살짝 경계하는 표정과 눈빛도 보냈었다. 그래서 현재 세실리아가 하는 행동의 원인은 매우 복잡하고 미묘한 출발선에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녀가 아무리 인어일지라도 이미 인간 세상에 다 적응을 한 상황이다. 질투라고 불리는 그 감정이 우혁이 다른 여자와 함께 있을 때에는 당연히 생겼으며, 자신의 자리를 양보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다만 그녀가 걱정하기 시작한 것. 바로 아이에 대한 문제다. 그녀는 잘 알고 있다. 인어가 번식을 못한다는 것. 어쩌다 잉태를 하는 경우가 있다면 그 날은 모두가 나서서 하루 종일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인어의 개체수가 줄어드는 이유는 잦은 죽음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잉태를 그만큼 잘 못하기 때문이었다. 하늘을 많이 보지 않아서 그런 것도 아니다. 의외로 자살을 선택하는 인간은 많았으며 그들을 절망에서 구했을 때 쾌락을 위한 그들의 몸부림은 엄청났고, 그로 인한 성관계의 횟수 역시 무수히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잘 갖지 못하는 인어들. 세실리아 자신 역시 우혁과 첫 관계 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임신의 징조도 없었다. 그녀는 절박하게 아이를 갖고 싶었지만, 신은 이런 면에서 공평한 것 같았다. 그녀에게 뇌쇄적인 아름다움을 주었지만 2세에 대한 자비는 아직까지 없었으니 말이다. 달리 피임도 하지를 않으니 가임 여성체가 그토록 잦은 성관계를 하는데 임신을 하지 않는다면 그녀 또는 그가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그녀는 그 문제를 자신으로 보았다. 그 때부터 생각한 것이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몸. 어쩌면 자신이 그를 독점할 수는 없다고. 그리고 그 때가 되면 그의 옆자리에는 미래가 있으면 좋겠다고.

물론 이것은 그녀가 매우 오해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혁이 아이를 바라는 이유는 사실 그녀 때문이다. 이 세상에 자신 말고 맹목적으로 그녀의 편이 되어 줄 그 누군가는 결국 핏줄밖에 없기에. 그래서 가끔 아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 것뿐인데…

그런 대화를 왜 시도하지 않을까? 그것은 두려움 때문이다. 혹시나 자신이 아이를 가지기 힘든 몸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 그의 사랑이 줄어들까봐. 가끔 사랑하는 감정이 너무 커지면 시야가 너무 좋아진다. 이것 때문에 자라난 마음이다.

그녀는 미래가 아직도 우혁을 사랑한다는 것을 안다. 직접 물어본 적은 없다.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녀는 세실리아에게 단지 친구로서만 옆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항상 표현하는 말이 있다. 다른 남자는 절대 사랑하지 않겠다고. 그 두 가지 상충되는 말을 상대방에게 일부러 하는 것은 아니다. 일 방향적인 사랑이 만들어낸 허상이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가끔 모르는.

거기다가 가끔씩 내비치는 슬픔. 일에 대한 성공도 그녀를 메워줄 수는 없다는 표현을 자주 한다. 사는 것이 괴롭다는 말까지도. 이 부분이 세실리아가 가지고 있는 그 어떤 것을 건드려 버렸다.

세실리아는 어렸을 적부터 양보와 희생을 잘하는 인어였다. 그래서 레지나가 그녀의 포용력을 높이 사서 다음 대의 로드로 생각을 했었던 것이다. 우혁과의 첫 만남에서 그녀가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그에게 호흡을 나누어 준 이유는 이런 필연성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니 미래에게 그 말을 들었을 때 우러나오는 심정은 자신도 자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으로 인해 결국 우혁을 움직이고 말았다. 말은 우정으로 미래에게 다가서라는 것이지만 실상은 그 이상을 열어두고 있는 것이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열릴 수 있는 그 공간. 다른 여자를 들일 마음의 한 공간을 말이다.

자원봉사를 하러 온 그들. 여기서 미래를 만나기로 했다. 자주 오는 곳이다. 최소한 자원봉사를 할 때에는 언론이 건드리지 않는다. 그들이 매우 불편해 하고 자원봉사 단체에서도 자주 항의를 하기 때문이다. 잘못하면 지난번처럼 여론을 자극하게 되는 것이니 때로는 데이트 겸 봉사를 하는 곳. 이곳에 왔다. 그의 옛 여자 친구이자 그에게 친구로 남고 싶어하는 그녀가.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잘 지냈겠는가? 그래도 의례상 물어본다. 세실리아는 자리를 피했다. 그가 원하든지 그렇지 않든지 간에 그녀는 그 둘이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다.

“결혼한다는 소식 들었어.”

“응. 올림픽 이후에 하려고.”

“그래? 잘 됐다.”

“미래야, 솔직히 말할게. 세실리아가 너와 내가 친구가 되기를 원해. 그래서 나왔어. 그런데 이 이야기는 우리 몇 번 한 이야기야. 내 생각은 다르니까.”

언제나 그는 직설적으로 표현을 한다. 사람의 마음을 콕콕 찌르듯이. 그러나 오늘 미래는 작정을 하고 나왔다. 그를 설득하기로. 이 자리를 만들어준 세실리아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

“너랑 사귀었던 지난날 때문에 우리가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난 너무 억울해. 그렇다면 빛나는? 그리고 네 옆에 있는 가희는? 그들과는 편안하게 지낼 수 있잖아. 나도 그렇게 지내고 싶어.”

“…….”

“물론 네가 걱정하는 바는 잘 알고 있어.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거짓말을 하고 싶지도 않고.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을게. 그냥 친구로서 옆에 있게 해줘. 가끔 너를 볼 수 있도록. 언젠가 너를 봐도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도록. 그렇게 해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믿을지 모르겠지만, 난 너를 친구로서 좋아해.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은 거짓말일 수도 있겠지만, 그냥 예전처럼 친구로서도 괜찮을 것 같아. 그러다가 적응되면 그 때가 되면 진짜 우정으로 남을 수 있을 것 같아. 그게 다야.”

이것이 그녀가 표현하고자 하는 그녀의 마음이다. 그리고 우혁은 지금 그녀가 하는 그 긴 이야기를 듣고 이제야 깨달았다. 너무 처음부터 그녀에게 일방적으로 이별을 강요하고, 그리고 자신의 곁에서 그녀를 물러나게 한 것은 아니었나? 매우 독단적이며 이기적이다. 거기다가 그래야 그녀가 자신을 빨리 잊을 수 있고 상처도 덜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하기까지 했다.

왜 사람은 사랑하다가 헤어지면 서로 보지 말아야 하는가? 그게 아닐 수도 있다. 때로는 상대에게 시간을 줘야 했다. 사랑에서 우정으로, 그것도 아니라면 계속 사랑으로 남을지언정 자신에 대한 면역력을 높여주어야 한다. 사람은 모두 제각각이다. 보지 않으면 더 좋은 상황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는가 하면, 반대로 보지 않았을 때 더 악화가 되는 것으로 진행되는 경우도 있다.

미래는 후자다. 그녀는 기회를 부여받고 싶었다. 그의 눈에 여자로서의 기회가 아니라 친구로라도 남을 수 있는 기회를. 그와 보지 않고 슬퍼하는 것.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르면 그 슬픔이 잊힐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빛나와의 통화에서 그녀가 느낀 것. 이미 자신의 친구는 그의 곁에서 친구 관계를 설정하고 있었다. 그의 결혼소식을 통해서 우정으로 남을 수 있다고 한 그녀의 말. 자신도 그녀처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기회를 주지 않는 우혁이다. 그래서 잠적을 하고 나쁜 생각까지 마음을 먹었었다. 세상을 떠나고 싶다는.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왔지만 역시나 주변에 남는 것은 허무함이다. 일을 해서 그녀가 얻을 것은 별로 없다는 그 마음. 그 때 그에게 연락이 왔었다. 그리고 나오면서 몇 번이나 연습을 했다. 자신의 논리로 그를 설득하기 위한 연습.

그 절박함이 먹히고 있다. 그는 마음을 열고 있다. 친구라는 말. 그녀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그것조차도 박탈한 것인데, 그는 신도 황제도 아니다. 그럴 권리가 없다. 당연히 그녀의 자유의지를 존중해야 하며 자신을 떠났을 때 더 상처를 입는다면 옆에서 친구로 남아 그 상처를 조금씩 아물게 하는 것이 도리일지도 몰랐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로서 남는다… 너와 나… 우정으로 시작된 것이니, 우정으로 끝맺는다.”

“…….”

“미안해. 당연한 것인데, 내가 나빴구나. 여전히 난 철없고, 생각이 부족해. 정말 미안해. 그래 네가 그렇게 원하는데 내가 뭐라고, 정말 내가 뭐라고 너를 막았을까? 다른 말 다 필요 없어. 넌 네 감정에 충실하고 난 내 감정에 충실할 거야. 그렇게… 그렇게 할게.”

“세실리아의 신경을 건드리는 짓은 절대 안할게. 친구의 본분을 철저히 지킬게. 정말이야. 약속할게.”

그 말을 듣고 우혁은 웃는다. 그리고 그 표정을 멀리서 보며 세실리아도 웃는다. 그가 가진 인간관계의 협소함. 미래로 인해 열리기 시작했고, 세실리아를 통해 다시 그 끈을 잡게 되었다.

그 날 셋은 <소망의 집> 장애 아동들에게 아름다운 미소와 사랑스런 손길로 최고의 선물을 선사하게 되었다. 그리고 헤어질 때에는 다음을 기약하는 세 남녀. 어찌 보면 복잡한 관계. 하지만 그 어떤 것으로 확실하게 정리되는 인간의 삶은 많지가 않다. 결혼하고 후회하고 불륜을 맺고 막장으로 가는 수많은 사람들도 있기에 이들의 지금 설정된 관계는 그것에 비해 아직 순수하고 단순하다.

같이 걸어가는 인생이라는 길에 놓여 있는 청춘들. 그 과정에서 아플 수도 있고, 기쁠 수도 있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아니면 미련이라는 이름으로 비칠 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 미묘한 관계를 시작한 이들. 해피엔딩으로 끝나리라.

주말을 보내고 새롭게 맞이한 한 주. 우혁은 다시 연습에 매진한다. 그가 가는 길에 있는 또 다른 목표. 바로 올림픽이다. 그것도 어쩌면 불가능한 목표를 잡았다. 전관왕. 그가 참가하는 전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을 목표로 다시 이 돈암동 국제 수영장에 물살을 가르는 그의 모습.

그리고 그의 옆에서 같이 구슬땀을 흘리는 동료들은 어찌 보면 그의 협력자이자, 그리고 동반자이자, 마지막으로 그의 목표를 저지할지도 모르는 라이벌들이다. 신기한 인간관계. 여기서도 설정이 된다.

============================ 작품 후기 ============================

댓글들을 보면 느낍니다. 보는 독자들은 상당히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고. 아마도 그렇게 써 왔으니까 당연한 것이겠지만, 쓰는 당사자는 사실 잘 모릅니다. 시간이 지나면 알 수 있습니다. 아, 이렇게 써서 불안해 했고, 이렇게 써서 욕을 먹었구나. 아마도 오늘 쓰고 지금 또 올린 게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망설인다면 글이 안 써진다는 것을 또 잘 알고 있습니다.

차라리 올리고 나중에 욕먹고 그리고 고쳐가면서 좀 더 나은 작가가 되자. 이게 지금 제 마음입니다. 못난 글 읽어주셔서 항상 감사합니다. 안녕히 주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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