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 152화 깨끗한 승부
결승을 앞두고 우혁을 찾아온 손님. 세실리아다. TV로 비친 그의 부상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순빈을 재촉해서 온 것이다. 걱정이 되었는지 오자마자 그를 만나러 왔다. 경기장 사무실에서 둘만의 공간이 마련이 되었다.
“피곤하게 뭐 하러 와? 오늘 경기 끝나고 갈 건데.”
“걱정이 되어서. 어디가 아파? 어깨가 안 좋은 것 같던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우혁은 그녀를 보게 되자 힘이 샘솟는 것 같았다. 달콤한 감정. 그녀를 매우 사랑하긴 하나보다. 애정이 묻어나는 눈빛이었다. 세실리아도 마찬가지다. 걱정과 애정을 담아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잠시 휴식을 취하고 곧 결승에 임해야 한다. 어깨가 좋지는 않았지만 최선을 다해 볼 작정이다. 그런데 그녀에게 아픈 모습을 보여주기는 싫었다. 그리고 그 아픔을 참고 경기에 나간다는 사실도 알리고 싶지 않았고.
“이왕 왔으니 세실리아가 많이 응원해 줘.”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안겼다. 그리고 입술을 찾는다. 갑작스러운 애정 공세. 아무리 사무실이라지만 유리로 된 곳이라 남에게 고스란히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우혁도 별로 그런 것을 의식하지 않았다. 진한 입맞춤.
그런데 치유가 시작이 되었다. 그의 어깨 통증. 갑자기 사라졌다. 그는 이제야 깨달았다. 그녀에게 있는 치유 능력. 사실 그에게 의사가 필요가 없는 것이다. 움직이는 만병통치약이 곁에 있는데 무슨 걱정인가?
“뭐야? 나 고쳐 주려고 왔구나.”
“응.”
“이거 나중에 물어보려고 했는데, 어떻게 하는 거야? 아니다, 지금 시간이 너무 없어. 자세한 설명은 이따 꼭 해줘.”
세실리아는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치유 능력을 이제야 물어보고 있다. 사실 예전에 묻고 싶었어도 그녀와의 의사소통이 한계가 있어서 설명을 듣지는 못했을 것이다. 인어에게 있는 능력. 그 치유 능력이 있다는 것은 매우 편리할 것 같았다. 앞으로 부상 걱정은 없을 듯 보였다.
“그럼, 좀 있다 봐.”
말을 하고 나서는 우혁. 세계 신기록에 예선 1위로 통과했다. 4레인을 배정 받은 것은 당연한 결과물이다. 그런데다가 그의 몸이 회복이 되었다. 매우 고무적인 일이지만 다른 이들은 이 까닭을 알 수가 없다. 당연히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환수가 다가왔다. 그의 어깨 상태를 체크해보려고 하는 것이다.
“괜찮아진 것 같아요.”
“응?”
“어깨 통증이 없어졌어요.”
“그럴 리가… 며칠은 갈 것 같은데. 나 안심시키려고 하지 말고 어깨 내밀어봐.”
예선을 마치고 점점 부어올랐던 우혁의 어깨. 이제는 의사가 아닌 다른 동료들도 볼 수 있었다. 영욱은 심각하게 경기 포기까지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의 결정을 따를 준비까지 했던 팀원들.
그런데 환수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다시 한 번 안경을 들어 올린다. 초점이 맞지 않은 것 아닌가 생각을 하나 보다. 그의 눈이 잘 못 된 것이 아니었다. 진자 어깨의 붓기가 사라져 버렸다.
“어떻게 된 거지? 무슨 마술을 부렸니?”
“하하하. 그럴 리가요? 갑자기 나았나 봐요.”
“거 참. 신기하군.”
그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더 심해질 줄 알았던 그의 어깨. 그런데 말끔하니 그의 의학적 상식으로는 도저히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주변에 있던 동료들도 마찬가지다. 그에게 눈으로 묻고 있다. 우혁의 말이 사실이냐고. 영욱은 아예 직접 물어보았다.
“진짜 괜찮은 것입니까?”
“육안으로 보기에는 괜찮아요. 안에서 문제가 있다면 모를까… 그런데 그럴 확률은 없어요.”
“그러니까 부상이 없다고 봐도 되는 거죠?”
“육안으로는…”
같은 말을 되풀이 할 수밖에 없다. 설명할 길이 없기에. 아무튼 확신하는 말은 아니었지만 그가 별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하자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들이다.
“자, 자. 그럼 금메달 따야지? 지금 와서 순번을 바꿀 수 있나요?”
우혁은 동료들을 재촉하고 영욱에게 물어본다. 순번의 교체. 그는 여전히 2번이었다. 될 수 있으면 4번으로 가고 싶었다. 미국의 조이 로덕션이 바로 그 위치에 포진하고 있었기에.
“아, 일단 가서 바꿔야겠다.”
일단 우혁의 말이 맞다. 그가 4번에 위치하는 것. 그래서 그는 순번 조정을 하러 심판진에 갔다 왔다. 조정이 완료되고 드디어 1번 위치에 선 일수.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마음이 두근두근 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반쯤 포기 상태였는데.
‘우혁이 형이 괜찮단 말이지? 그럼 나도 3관왕이 가능하다는 거 아니겠어?’
이 때문이다. 그가 가슴이 벅찬 이유가. 그 역시 3관왕을 할 수 있다는 생각. 우혁도 이번 계영에서 우승을 하면 3관왕. 그리고 일수도 3관왕. 자신이 좋아하는 형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생각이 그의 몸을 지배하자 없는 열정이 생겼다.
열정은 몸짓으로, 그리고 몸짓은 속도로 변화한다. 그가 지금 질주하고 있는 그 속도. 어제 우승했던 그 때의 그것과 같다. 이미 어제 세계 랭킹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 그의 힘. 그것이 발휘되며 100미터를 가장 앞서서 턴을 찍고 있다.
“우혁이가 에이스인지 알았더니 일수가 에이스인가봐.”
“어리니까. 원래 어린놈이 체력이 더 좋잖아. 나도 요즘 여자 친구한테 힘 떨어진다고 구박 받고 있어.”
“너무 야하잖아. 지금 같은 상황에 어울리는 대화야?”
“다 큰 어른끼리 뭐.”
“야, 이 저질 오라버니들아!”
응원을 하는 선수단. 김훈과 찬규의 대화를 듣고 있는 가희가 한 마디 한다. 그래도 야한 이야기를 서슴없이 하는 그들. 오히려 가희를 보고 한 마디 던진다.
“저질? 네가 할 소리가 아니지. 예전에 일본에서 다 벗고 있는 내 알몸을 그 순수했던 몸을 적나라하게 여자에게 드러냈을 때, 얼마나 황당했는지.”
“맞아. 어떻게 들어올 수가 있지? 그건 무슨 무개념이야? 지금에서야 이야기 하지만 보고 싶으면 말로 하지 말이야.”
“이런…”
가희는 할 말이 없었다. 그들의 말대로 작년 일본에서 벌어진 동아시아 오픈 챔피언십 대회에서 우혁을 쫓아 샤워실까지 직행했던 자신이었기에. 지금 들으니 자신이 너무 했다 싶었다. 개념이 없다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영욱은 눈을 크게 뜨고 있다. 이들의 대화처럼 이제 대표 팀에 우혁만 있는 게 아니다. 일수의 실력이 만개하고 있다. 함께 조용히 응원하고 있는 지미도 있다. 병묵과 종수도 아직 어린 유망주이다. 이들이 경쟁하게 될 한국의 수영 천하. 그의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어떤 대회 때는 우혁이가 우승하고, 그것에 자극받아서 승부욕을 불태우는 모든 선수들. 그리고 그들을 지도하는 자신. 너무 행복하다. 지금 이 순간이.
150미터 턴을 할 때쯤 해서 일수의 체력이 약간 떨어져 보인다. 그러나 거리를 내준다는 뜻이 아니었다. 상대 역시 마찬 가지다. 모두가 같은 상황. 오히려 미국의 선수는 멘붕이 온 듯하다. 아무리 주최국이라지만 수영이라는 경기는 편파 판정이라는 것이 해당되지 않는 깨끗한 승부다. 홈팀의 이점은 단지 익숙한 환경과 응원뿐인데, 자신들이 실력에서 지고 있다니.
지켜보는 다른 팀 선수들도 마찬가지의 심정이다. 그들 역시 실력으로 이기고 있는 대한민국의 계영 팀에 놀라움을 가득 머금고 있다. 수영에서 승부의 원칙은 간단하다. 빠르면 이긴다. 속도가 가장 위인 개인이나 팀이 이기는 것이다. 판정시비는 없다. 그런 꺼리는 존재하지 않는 승부의 세계. 그리고 그 승부의 꼭대기에서 일수의 터치가 이어지고 2번 주자가 출발을 했다.
============================ 작품 후기 ============================
열심히 쓰겠습니다. 읽어주시는 분께 감사히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