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113화 이제 겨우 시작이다
예선 2위와 3위가 다 한국인이다. 우혁과 일수. 그들은 4레인의 쇼타 스카이를 두고 좌우에 포진했다. 결승전. 장치앙린은 체면을 구겼다. 현재까지는 말이다. 6레인. 전관왕을 목표로 한다더니 첫 날은 컨디션이 아닌가? 아니면 막판 대 역전을 이끌 수도 있다.
그가 우혁을 본다. 아직 스타트대에 서기 전이다. 달라졌다. 뭐라고 딱 꼬집을 수는 없지만 분명히 올 초에 봤던 모습과는 다르다. 아무리 그래도 그를 적수로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그의 단거리 라이벌은 쇼타 스카이였다. 그리고 50미터에서는 한 번도 그를 이겨본 적이 없었다. 이번 대회는 단단히 벼렸다. 그런데 오히려 두 한국인 선수에게 기록에서 뒤졌다.
‘한 끝 차이다. 한 끝. 50미터는 변수가 많다. 충분히 이번에 승리를 거두겠다.’
그의 말이 사실이다. 단거리이기 때문에 어떤 변수가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다. 장거리의 최강자는 잘 바뀌지 않는다. 예선 성적이 끝까지 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단거리는 다르다. 단판 승부. 그래서 묘미가 있다.
우혁은 그를 보지 않는다. 그가 보는 것은 저 멀리에 있다. 마지막 지점. 어떻게 하면 그 곳에 더 빨리 도착할 수 있는지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수와 우혁, 그리고 우혁과 일수. 서로에게 선의의 경쟁자로서 여기에 왔다.
‘아무리 같은 나라지만 양보하지 않겠다.’
그는 다짐한다. 일수에게도 양보를 하지 않겠다고. 아니 그 뿐만 아니라 자신의 좌우에 있는 양국 선수에게도 절대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장치앙린. 지난번 이 중국 선수에게 말려서 결국 부상까지 갔었다. 그런데 원망스럽지 않다. 어떻게 보면 그 때문에 세실리아를 만난 것이다. 그렇다고 그의 성격으로 고마워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의식하지 않는 것이다. 다만 자신과 일수가 금메달과 은메달을 나누어 갖고 싶다. 물론 더 진한 색의 메달은 자신의 것이다. 세실리아의 목에 걸어줄 것이다. 그녀에게 약속했다. 반드시 그녀의 목에 걸어줄 거라고.
지난번 독일에서 세실리아를 보지 못했던 때. 그녀는 그가 놓고 간 금메달을 항상 간직하고 있었단다. 그 때 만났다면 더 좋았을 것을. 그녀는 그 때 요양 중이었다고 한다. 자신에게 호흡을 나누어준 대가로.
그 이후 갑작스럽게 오게 돼서 놓고 온 그 금메달이 너무 아쉽단다. 그래서 그는 약속했다. 최소한 그 메달 수 이상으로 그녀의 목에 걸어주기로. 그 때 가져다 놓은 게 세 개였으니 이번에는 네 종목 이상을 바라보고 있다.
쉬운 것이 아니다. 쇼타 스카이는 단거리에서 그리고 장치앙린은 중장거리에서 최강자다. 아시아에서 이들을 넘는 게 숙제다. 더군다나 잠룡들도 있다. 중국의 샤오 헤이씽. 지난 동아시아 대회 때 그에게 두 종목이나 지고 말았다. 사토 료이치도 만만치 않다. 물론 이들은 50미터에서 예선 탈락했다. 하지만 잠재적 라이벌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같은 나라에서도 적수는 있다. 최근 2년간 대한민국의 수영은 급작스럽게 발전했다. 여러 가지 원인을 분석하는 전문가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박태원 키즈들의 성장과 우혁의 영향을 받은 선수들의 분전. 그래서 미래는 이제 밝다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고 있다.
참으로 달라진 평가였다. 불과 작년만 해도 암울하다느니 이제 박태원의 은퇴로 메달이 어렵다는 전망을 내놓았었는데…
덩달아 여성부도 강해졌다. 빛나의 분전. 그리고 가희의 선전. 이 두 미녀가 이끄는 대한민국 여자 수영은 향후 몇 년 동안 탄탄하다는 말이 나왔다. 더구나 미래가 뜨면서 미모와 몸매를 가꾸는데 수영만한 것이 없다는 이야기가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바야흐로 수영 열풍이 불고 있는 가운데 이것에 불을 지필 첫 번째 결승전이 부저에 맞추어 시작이 되었다.
이번에도 스타트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결승전답게 고개를 내밀었을 때 한 치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접전이 펼쳐졌다. 관중들도 지켜보는 동료 선수들도, 그리고 TV를 시청하고 있는 많은 대한민국의 국민들도 한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다.
“제… 제발, 제발. 우리 아들에게 힘을 주소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그 짧은 순간에 기도를 하는 지연.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인어 아가씨는 두 손을 마주 쥔다. 자신이 나가서 대신 뛰어 주고 싶었다. 그렇다면 우승은 식은 죽 먹기인데 말이다. 원래 치맥을 먹으면서 오늘 시청할 예정이었지만 지난 번 세실리아 혼절 사태로 그 계획은 취소가 되었다.
어쨌든 이 모든 사람들의 염원으로 그는 약간씩 앞으로 치고 나갔다. 아주 미세하게 그가 선두다. 아니다. 금세 쇼타 스카이가 또 앞으로 나간다. 50미터가 이래서 변수다. 1초 1초가 선두가 바뀌니.
“질 수 없다!”
그의 목소리. 들은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그는 외쳤다. 물을 먹으면서 그렇게 입을 벌렸다. 이제 거칠 것이 없다. 물을 다스리는 자가 이곳을 제패할 수 있다. 여기서 가장 물을 잘 다스리는 자가 누구겠는가? 물에서도 호흡할 수 있는 우혁이 아닌가?
물론 쇼타 스카이의 저항은 남달랐다. 우혁이 세운 아시아 신기록을 0.01차로 경신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지금 이 둘의 접전은 지켜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손에 땀을 흘리게 한다. 20초의 경기. 50미터. 마치 육상 100미터를 보는 듯한 기분으로 사람들의 호흡을 빼앗고 있다.
폭발적인 막판 스퍼트가 선수들의 발에서 모터가 달린 듯 뿜어져 나오고 있다. 그 안에는 일수도, 쇼탸 스카이도, 그리고 우혁도 있다. 삼파전이다. 장치앙린은 경쟁에서 뒤진 모습이다. 이제 10미터도 남지 않은 지점.
“세! 실! 리! 아!”
마지막 부르짖음. 아무도 듣지 못하겠지만 우혁의 목소리에 담긴 그 의미. 그것으로 그는 한 번의 추진력을 더 얻었다. 촤악. 촤악. 그가 헤쳐 가는 물. 그리고 마지막 그 혼신의 힘. 거의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세 명의 손이 벽을 찍었다.
결과는?
1. Woohyeok Choi 21' 00''
2. Shota Sky 21' 02''
3. Ilsoo Chang 21' 03''
우혁의 눈에 기쁨이 서린다. 그를 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눈에 기쁨이 서린다. 비록 친구로 남았지만 그를 여전히 마음에 두고 있는 빛나도, 4차원 소녀 가희도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호들갑을 떤다.
“와아아, 오라버니!”
“우혁아… 우혁아… 드디어 해냈어!”
영욱은 두 주먹을 불끈 쥔다. 감격적이다. 드디어 해냈다. 그의 제자가. 그것도 두 명이 메달을 땄다. 한 명은 수영을 시작한지 일 년이 조금 넘었다. 다른 하나는 그보다 두 살이 적어서 앞으로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대한민국 수영계에 서광이 비치니 그가 주먹을 쥐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예스! 예스!”
너무 좋다. 이 쉬운 영어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만큼.
간발의 차. 아니 그 이상의 표현을 찾지 못해서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결과가 나왔다. 50미터가 이래서 박진감이 넘친다. 이긴 자는 승리의 기쁨을. 패배한 자는 아쉬움의 눈빛으로. 그렇게 경기가 끝났다.
수영장을 나오는 우혁의 두 손. 스스로에게 박수를 치는가? 공중에서 몇 차례 마주친다. 그리고 그의 눈. 물에 젖었지만 자세히 보면 눈물이 흐른다. 그렇다. 그는 이런 남자다. 억눌린 감정의 공황에서 사실 표현력이 절제되었지만 한 번 분출하면 그 감정의 편린을 온 몸으로 내뿜을 수 있는 남자. 얼마나 참았던가? 이 순간 그의 눈물은 그래서 값어치가 있다. 그리고 그런 감정을 유일하게 받을 수 있는 대상.
세실리아.
그녀가 TV를 보며 울고 있다. 이것이 사랑이다. 이것이 스포츠다. 감격이란 것을 이렇게 알려 준다. 옆에 있는 지연과 부둥켜 않는다. 마음으로 이미 가족이 된 사람. 그의 어머니이지만 이제 자신의 어머니이도 한 사람. 같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존재와 함께 이 감격을 누린다.
그렇게 수영 첫날. 대한민국은 금메달 두 개, 은메달 하나, 동메달 하나를 따낸다. 우혁과 가희, 그리고 빛나. 그들이 만들어낸 금은메달. 일수는 아쉽게 동이다. 그러나 가능성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다.
이제 수영은 메달밭이다. 언제 이런 적이 있었을까? 박태원 하나에 의존해서 살아왔던 세월.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탄탄해지고 있다. 수영의 인재들이 촘촘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들이 뿌리를 내리고 더 밝은 미래를 닦을 것이다.
이제 겨우 시작이다.
============================ 작품 후기 ============================
식사 맛있게 하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