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3화 마력을 지닌 얼굴
물속에 빠진 우혁이 걸을 수 있다는 것을 안 그의 부모님은 날아갈 듯이 기뻤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도 자신도 모르겠다고 하는 그의 대답. 상관이 없었다. 어쨌든 걷고 있다는 게 중요한 것 아닌가?
혹시나 몰라서 병원에 갔었다. 의사도 놀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도무지 이건 기적이라는 말 밖에 못하겠다고 감탄사를 연발한다. 여러 검사를 해도 여전히 결과는 같다. 그의 다리는 완치되었다.
의사의 말을 듣고 우혁은 기뻤다. 물론 표현하지는 않았다. 오랫동안 하반신 마비로 지내왔던 탓에 그는 표현력이 약하다. 거기다가 세상에 마음을 약간 닫아 두었다. 좀 삐뚤어졌다고 해야 하나? 주변 사람에게 마음을 주지 않는 성격이 되어버렸다.
이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그의 발로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싶었다. 여행도 다니고 싶었고, 운동도 하고 싶었다. 학교는 싫었다.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곳은 원하지 않았다. 이것도 그동안 아파왔던 그가 가지고 있었던 삐뚤어짐의 한 가지 요소. 약간 대인 기피증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틈나는 대로 로렐라이 언덕에 가 보았다. 혹시나 자신을 도와준 인어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말이다. 하지만 한 번도 다시 본 적은 없다. 물속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사람 마음이 항상 같지는 않다. 죽으려고 들어갔던 그 때와는 달리 지금은 물을 보며 약간의 공포감이 들었다. 물속에서 호흡할 수 있다 할지라도 그냥 무서웠다. 물에 빠져 죽을 뻔한 트라우마가 그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나 보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났다. 그리고 독일에서의 생활은 그의 아버지가 외교관의 임기가 끝나면서 한국으로 귀국하게 되었다. 부모님은 먼저 자신보고 들어가라고 했다. 한국에 살던 집이 있으니 상관은 없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계셔서 굶을 일은 더더욱 없다.
그렇게 탄 비행기가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출국수속을 다 마치고 나오는데 저기서 플래쉬가 터지고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물론 우혁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사람들이 많은 곳을 싫어한다.
“뭐야? 무슨 일이야?”
“박태원이가 귀국했대. 은퇴를 할 거라는 소문이 있어서 저렇게 기자들이 나왔나봐.”
“마린소년? 은퇴한다고? 그럼 이제 우리나라는 어떻게 해? 걔 말고 수영하는 애가 또 있나?”
지나가는 사람들의 목소리. 우혁은 살짝 호기심이 생겼다. 박태원은 그도 잘 아는 수영선수다. 대한민국의 수영을 한 단계 발전시켰던 인물. 한국인 최초로 메달을 땄고, 그것도 금메달 수상자다. 별명은 마린소년. 그 유명한 사람을 모른다는 게 말이 안 된다.
‘한 번 보고 갈까?’
하지만 우혁은 고개를 저었다. 저 수많은 인파를 헤치고 나갈 자신이 없어서였다. 아직도 그는 휠체어에 타고 있는 것 같았다. 누가 등을 떠밀어 주어야 앞으로 나아갈 그런 상황. 지금은 그렇게 밀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없다.
호주에서 열린 국제 그랑프리 대회에서 참가하고 온 모양이다. 방송과 뉴스에 나갔던 것을 스마트폰으로 접했었다. 멀리서 보니 그 말고 몇 명의 수영스타들이 보인다. 그의 뒤를 이을 사람들 중 그나마 괜찮다는 평을 듣는 장일수가 보였다.
여자들도 보인다. 수영을 하는 여자 선수들은 몸매도 좋고 예쁘다. 멀리서 보더라도 미모가 돋보이는 한 여인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박빛나. 그녀 역시 방송과 매체에서 얼짱 수영선수로 이름을 날렸으니 당연히 그도 알고 있다.
하지만 역시 큰 관심이 없다. 아니 약간 관심이 있지만 발걸음을 돌릴 만큼은 아니다. 잠시 후 이들은 어디론가 떠났다. 급하게 인터뷰를 마친 모양이다. 그들이 가는 방향. 우혁도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런데…
“저 사람 봐…”
“연예인인가?”
“한 번도 못 봤는데…”
그의 귀에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여자들의 목소리. 그의 외모를 보고 난리가 난 것이다. 아직 가지 않은 기자들도 그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당연히 연예인이라고 생각을 한 모양이다. 혹시나 몰라 찍어두는 몇 명의 기자들. 그러다가 다시 몇 명이 붙었다. 어차피 박태원 선수의 인터뷰도 끝나고 이대로 별 소식 없이 들어갔다가는 편집장에게 핀잔을 들을 지도 몰라서 일단 찍고 보는 것이다. 혹시 아는가? 뭐 건질게 있을지?
우혁의 입장에서는 귀찮기 짝이 없다. 왜들 갑자기 사진을 찍어대는지 모르겠다는 표정. 사람 많은 것을 싫어하는 그의 얼굴에 짜증이 묻어 나왔다. 옆에서 걷고 있는 수영선수들도 이 광경을 목격했다. 방금 전까지 자신들에게 주어졌던 관심이 다른 사람을 향하니 호기심이 생긴 것이다.
“뭐지, 저 남자애?”
“연예인인가 봐…”
“한 번도 못 봤는데? 신인인가? 어쨌든 정말 잘 생겼다.”
빛나와 미래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제 스무 살. 그들도 남자를 알기에 충분한 나이이다. 운동만 하느라 제대로 연애 한 번 못 해봤다. 빛나는 특히 따라다니는 남자들이 많았다. 얼짱인데다가 수영도 수준급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래는 그렇지 못했다. 얼굴과 몸매가 그녀 못지않았지만 역시 실력이 그 정도가 아니라서 제대로 출전을 할 기회가 없었다.
국내 대회 때야 입상을 몇 번 했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언제나 국제 대회다. 그런 곳에서 거의 초반에 떨어지니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그냥 무명의 예쁜 수영인 정도로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원망하지 않았다. 언젠가 노력하면 자신에게도 기회가 올 것 같았기에…
“짜증나는군.”
갑자기 멈춰선 우혁.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주변에 자꾸 사진을 찍는 사람들 때문에 가는 길이 막혔다. 그의 얼굴에 짜증의 빛이 잔뜩 묻어 있다. 처음에 사진을 찍던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 점점 무슨 일인가 호기심을 빛내며 모이는 사람들. 자신을 찍으러 핸드폰까지 사용을 하고 있다. 찰칵. 찰칵.
“비켜요!”
그는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아무도 그의 말을 듣지 않는다. 갑자기 경쟁적으로 사진을 찍어 대고 있다. 도대체 자신에게 왜 이런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 결국 그는 정면을 향해 밀치고 나아갔다.
그래도 길은 열어주었다. 하지만 그 뒤의 인파들이 또 있다. 헤치고 헤쳐서 그렇게 가는 동안 엘리베이터에 다다랐다. 문이 열리고 그가 들어간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들어오지 않을 모양이다.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그는 빨리 문을 닫으려 했다.
“자… 잠시만요.”
빛나와 미래가 엘리베이터를 탔다. 수영 선수들은 이제 각자 자신의 집에서 휴식을 부여받았다. 이들도 주차장까지 가서 집으로 향할 예정이다. 미래는 모르지만 빛나의 차는 주차장에 있다. 그래서 미래가 그녀의 차로 함께 이동하려고 했다.
“저… 신인이에요?”
미래는 같이 엘리베이터를 탄 우혁에게 말을 붙여 보았다. 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얼굴을 지닌 남자다. 그런데 자신의 말을 못 들었는지 아무 반응이 없다. 엘리베이터는 금세 이동을 했다. 그가 누른 버튼은 그녀들보다 위에 층. 곧 문이 열리고 그가 빠져나간다. 아쉬움의 눈빛. 빛나를 보니 그녀 역시 마찬가지의 눈을 가지고 있다. 어디를 가나 이 나이에는 잘생긴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게 당연한 일이다.
우혁은 당연히 그녀의 질문을 들었다. 그런데 신인이라니?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가? 이해도 안 되고 대꾸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다. 조금 전 일어난 일 때문에 만사가 귀찮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리무진 버스까지 빨리 가서 서울에 있는 자신의 집에 가는 동안 아무 일도 없었으면 하고 내심 바랐다.
그러나 에스컬레이터를 탔는지 자신을 향해 밀려오는 인파들이 그의 눈에 보였다. 어디로 가야 하나? 버스를 타기 전까지 무척 귀찮은 상황이 일어날 것 같았다. 아까보다 더 많아진 사람들이다. 누군가 SNS에 인천공항 얼짱이라고 올렸고 순식간에 공항에 있는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그는 다시 뒤를 돌았다. 다행히 이 점을 예측한 듯 미래가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는 순간 열림 버튼을 눌렀다. 결국 셋이 탄 엘리베이터가 어쩔 수 없이 주차장으로 갔다.
“귀찮으시죠? 저희랑 같이 가요. 방향이 같으면…”
“서울인데…”
“저희도 서울이에요. 일단 그럼 제 차를 타세요.”
빛나의 말.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왜 자신에게 선심을 쓰는 지 의심스러운 눈치를 잠시 보여주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제안은 무척이나 귀찮은 일을 피하기에 적합하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였다.
“신세 좀 질게.”
============================ 작품 후기 ============================
그렇죠. 맞습니다. 저도 주제 의식이 있는 무거운 소설을 쓰려고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장르 소설은 읽기 편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도 예전에 그래서 술술 넘어가는 글을 찾았던 것이고요. 쉽고 편하게 읽었지만 뭔가 남는 것도 좀 있으면 좋겠구나, 이런 생각을 잠시 해 보았던 것이죠.
그래서 이 수영 소설에서 뭔가 기술적인 부분은 기대하시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서두에 밝혔지만 물에 빠져 죽을 뻔한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이 쓰는 '나도 이랬으면 좋겠다.'의 대리 만족형 소설입니다^^
수영연맹을 언급한 것은 뭐, 아쉬운 것은 아쉬운 거니까요. 솔직히 이번 소치 올림픽이 좀 아쉬운 것은 사실이죠. 선수들이 열심히 해주긴 했는데, 여러가지 밑바탕이 있었다면 더 좋았을 걸. 올해 월드컵도 있는데, 잘 되서, 좋은 결과 있기를 바라네요.
아무튼 오늘 연참 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