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81화 독일 생활 시작
인천공항. 사람들이 북적인다. 경기도 안 좋다는데 해외여행을 많이 가는 사람은 또 간다. 독일행 비행기를 앞두고 우혁과 순빈이 나와 있다. 그를 마중하러 영욱도 왔다. 그 뒤로 빛나도 있다. 그나마 일수와 가희는 개학 때문에 오지 못했다.
“어? 김미래 아냐?”
“맞다. 김미래. 어디 가나? 해외 촬영 있나봐.”
갑자기 모인 사람들이 술렁거린다. 이들에게 이미 좋은 눈요기 감이 있었다. 우혁과 빛나. 특히 마성의 매력을 지닌 이 사나이는 여자들에게 절대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래서 요즘 가장 핫한 존재다.
그런데 그가 빛나와 함께 있으니 다시 스캔들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다. 그 자리에 나타난 미래. 원래 오기로 했으니 우혁은 놀라지 않았다. 목발을 짚고 서서 그녀에게 미소를 짓고 있으니 주변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나 왔다.”
“기자들 몰고 온 것은 아니지?”
“당연하지. 하지만 오래 있으면 몇 명 오지 않을까 싶어.”
언제나 근처에 무슨 일이 터지면 재깍재깍 움직이는 기자들.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람들의 손에 들려 있는 개인 휴대 전화기. 이것 때문에 사실 우혁은 아무도 나오지 말라고 했다. 지난번처럼 스캔들 터지는 게 싫다.
그런데 다 나온단다. 그와 친한 사람들은 모두. 그래 봤자 몇 명 안 되지만. 그 중에 최근 엄청난 인기 상승을 맞고 있는 미래도 있다.
“잘 갔다 와, 친구!”
그녀는 일부러 크게 외친다. 사람들에게 그들의 사이가 친구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맞아, 김미래 수영 선수 출신이잖아.”
“아, 그래서 서로 친하구나. 지난번에 드라마 카메오도 그래서 최우혁이 나왔지?”
“전에 인터뷰하는 거 봤는데 박빛나랑 최우혁이랑 셋이 절친이래.”
“남녀 사이에 친구가 있어? 혹시 삼각관계?”
“드라마 많이 봤구나?”
사람들이 웅성대는 가운데 그들은 석별의 정을 나눈다. 눈빛으로 대화를 하면서. 당분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눈을 마주치고 있다. 그것을 보는 빛나의 슬픈 눈.
“잘 갔다 올게.”
그가 답한다. 그리고 뒤 돌아 선다. 너무 오래 있으면 구설수에 오르니. 그러나 미래는 눈물이 나는 것을 억지로 참고 있다. 왠지 지금 보내면 다시 보기 힘들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왜 그럴까?
비행기를 타고 가는 우혁. 다리가 아프니 생각나는 존재가 있다. 바로 인어다. 지금이라도 찾으면 찾을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그런데 한 번 꼭 가보고 싶다. 아니 그 곳에 당분간 있고 싶다.
“거처는 S 생명에서 마련해 준데. 병원 근처로.”
“네.”
그의 상념을 잠시 방해하고 있는 순빈. 그는 걱정이 태산이다. 아무래도 독일에 가면 그가 우혁을 도와주는 게 아니라 도움을 받을 것 같은 기분이다. 독일어를 모르니 당장 입국심사에서도 헤맸다. 미국은 그래도 한국인 도우미를 쓰기도 하지만 모든 나라에 그런 사람들이 있을 리가 없다.
그래도 든든했다. 우혁이 입국심사를 다 해결했고, 그는 단지 짐꾼만 되었다. 한적한 곳에 거처가 마련되고, 그들의 독일 생활이 시작이 되었다. 병원 의사는 그를 알아보았다. 특히나 기적의 환자라고 하면서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물음까지 했다.
“수영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발은 왜?”
“무리하게 훈련하다가 햄스트링을 다쳤습니다.”
“흠.”
“우혁아, 여기… 자료들.”
이전 병원에서 떼어온 사진과 의사 소견서. 영어로 기록되어 있었지만 의사는 그것을 읽는데 무리가 없나 보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말했다.
“가까운 날에 경기가 있나? 일 년 안에 말일세.”
“네. 있습니다.”
“쉽지는 않을 거야. 아마 전 병원에서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
“부정적으로 이야기 했습니다. 아예 생각도 하지 말라고.”
“그럴 걸세.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자네에게 생긴 기적도 있지 않나? 난 요즘 환자들에게 그것을 이야기 하고 있네. 희망을 가지면 완치될 수 있다고.”
그는 쉽게 말을 했지만 그 당시에 우혁은 죽고 싶었다. 휠체어에서의 삶보다는 차라리 죽음 이후의 삶을 동경했다. 그런데 지금 이 의사는 그가 희망적인 생각, 긍정적인 미래를 그렸기에 기적적으로 완치가 되었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 속으로 좀 웃겼지만 그 때 일을 회상해서 뭐 하겠는가?
“형, 로렐라이 언덕으로 가자.”
“응? 나 길 잘 모르는데…”
“네비게이션 있잖아.”
“독일어를 몰라서…”
“내가 알려줄게. 하라는 대로 하면 돼.”
“생각해 보니까 너 좀 나으면 운전 배워라. 아니다. 매니저 역할을 소홀히 하고 있네. 언어의 장벽이 문제가 되니까 별 말을 다한다. 하하하.”
“아냐, 형 말 들을게. 운전 면허 따야지. 언제까지 형 신세를 질 수는 없잖아.”
“그 말 들으니까 섭섭한데… 난 네가 평생 내 신세를 져도 괜찮은 사람이야.”
“그런 이야기가 아닌데.”
“알아, 농담이야. 어쨌든 빨리 나아라. 참, 그리고 어머님도 오신단다.”
“뭐라고?”
그에게는 아무 이야기도 안했던 어머니다. 하지만 자식이 아픈데 오지 않을 리가 없다.
“안 돼. 평생 나 때문에 힘드셨던 분인데, 절대 오지 말라고 해. 아니 잠시만 전화를 해야겠어. 지금 거기가 몇 시지?”
따져보니 새벽이다. 몇 시간 있다가 아침에 다시 전화를 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 독일에서의 앞으로의 삶. 그런 것이 화제가 되어 이야기를 나누며 곧 도착한 로렐라이 언덕.
차 안에 있었다. 아직까지 기브스를 풀지 않아서 거동이 불편해서 말이다. 인어의 동상을 보고 있다. 전설로 내려오는 이야기. 하지만 우혁은 저게 전설이 아닐 것 같았다. 분명히 저걸 만든 사람은 인어를 보았을 것이다.
“형은 인어를 믿어?”
“저 동상 보고 이야기 하는 거지? 용궁을 믿는다고 말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설마 내가 그런 동심을 가졌을 리가 있겠냐?”
“그렇구나.”
“뭐야? 넌 믿는 거야?”
“응. 난 믿어.”
“역시, 순수한 놈이구만.”
그는 우혁의 배경을 알고는 있다. 과거 다리가 다쳐서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그래서 그런지 항상 순수해 보였다. 가끔 짜증을 낼 때도 있지만 초반만 그랬지 지금은 자신을 형처럼 생각한다. 차라리 이게 낫다. 영악하고 교묘하며 세상을 잘 알아서 때가 잔뜩 묻어있는 것보다. 다만 그런 사람들에게 이용을 당할 수 있으니 자신이 잘 보호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우혁은 피식 웃었다. 역시 이 반응이다. 미래도 처음에는 믿는 눈치였지만 결론적으로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아마 직접 보기 전에는 그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 그렇다고 직접 볼 수도 없다. 만약 그게 가능했다면 자신도 벌써 그녀를 찾았을 것이다.
“가자, 형.”
“응? 그래. 할 일이 많긴 하다. 내가 독일을 몰라서 말이야.”
그의 말이 맞았다. 그래서 어머니를 설득시키는 것은 결국 실패했다. 당장 비행기를 타고 온단다. 자식을 끔찍이도 사랑하는 분이다. 하긴 그랬으니까 그 오랜 세월동안 그를 돌보면서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힘들어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가 가슴 아파할까봐.
본격적인 독일 생활이 시작이 되었다. 어쩌면 그의 생애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고, 또 다른 변수를 가지고 올 곳이다. 그는 그 어떤 운명을 느꼈을까? 무언가 그를 잡아당기는 게 있어서 이곳에 오고 싶었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누군가의 부름. 그리고 운명. 그것을 느꼈기에 이곳에 오지 않았을까 싶다.
============================ 작품 후기 ============================
아이쿠, 생각보다 더 많이 욕을 먹는군요. ㅠㅠ 그래요. 그래도 열심히 쓰겠습니다. 포기... 하지 않고... 그래야겠죠? ㅎ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