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65화 현실과 판타지 사이에서
“무… 무슨 일 이라니?”
이로서 다 들켜 버렸다. 거짓말을 잘 못하는 성격이다. 그를 안 시간이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지만 미래는 우혁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저렇게 더듬는데다가 얼굴까지 빨개지니 확실하다. 둘은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다.
“아님 됐고.”
하지만 여기까지다. 더 알려고 해서 좋을 게 없다. 어디까지 그와 빛나가 갔는지는 알고 싶지 않다. 알아서 기분이 좋겠는가? 괜히 그를 곤란하게 할 뿐이다. 지금은 여기까지다. 아니 앞으로도 더는 캐묻지 않는 게 좋다.
“나 씻어야겠어. 고기 냄새가 배어서…”
“씨… 씻어? 여기서? 아니 왜?”
“왜 그렇게 놀라? 아까 말했잖아. 너 안 덮친다니까. 걱정 말고 먼저 자. 난 여기 소파에서 잘게.”
“아냐. 내가 소파에서 잘게. 너 안방에 샤워실 있으니까 거기서 씻어. 칫솔은…”
“세면도구는 다 준비해 왔네. 내가 그런 것도 없을까봐? 만반의 준비를 다 해가지고 왔지.”
그렇게 말하고 안방으로 들어간 그녀. 뭔가 도대체? 다 준비를 했다는 것은 이미 계획을 다 세웠다는 뜻이 아닌가? 그는 황당했다. 어차피 자신의 승낙 따위는 개의치 않을 마음가짐이었다. 그런데 왜 화가 나지 않을까? 그에게 있어서 미래와 빛나는 화를 내야 할 대상이 아닌가 보다. 이제는 마치 자신의 인생의 한 부분처럼 느껴지는 그녀들. 친구든 아니면 그 이상이든 그들은 이제 소중한 존재들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전혀 화나지가 않는다.
그 역시 거실에 있는 화장실에서 급하게 샤워를 했다. 하는 도중 갑자기 야한 생각이 났다.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난번에 있었던 그녀와의 일은 계속 그의 욕망을 자극하는 영상으로 그의 머릿속에 남아있다. 지금도 그렇다.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으며 그의 아래쪽에서는 반응이 온다. 인간의 당연한 생리적 현상, 성욕. 이제 건장한 남자가 된 그에게 이런 생물학적인 자극과 반응의 현상이 없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다.
소파에 대충 잠자리를 마련하고 목이 말라 물을 마셨다. 아주 일상적인 고민이 계속 되고 있다. 불을 꺼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그녀가 그냥 그대로 잠을 잘 것인지 아니면 나와서 자신과 대화를 나눌 것인지. 자잘한 고민이다. 그러느라 쉽게 소파에 누울 수가 없다. 이리 저리 왔다 갔다.
“뭐 해? 안자고?”
“응? 아, 잠이 안 와서…”
“그래? 나도 그런데. 그럼 우리 이야기나 하자.”
그는 이 장면을 예상했다.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자신의 욕망이 관건이다. 참을 수 있을까? 세상 그 어떤 남자가 그럴 수 있을까? 샤워를 마친 여인의 모습. 아름답다 못해 자극적이다. 젖은 머리. 그것을 보는 시선. 아마 타인이 지금 자신의 눈동자를 보았다면 분명히 느낄 것이다. 불이 붙어 있을 것 같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고. 그래서 숙였다. 그녀가 눈치 챌까봐.
“네 옛 여자 이야기 좀 해 볼까? 내 라이벌? 어떤 여자야?”
“응?”
“내 남자 입술을 훔쳤다던 그 여자 말이야.”
예전에 그가 했던 이야기를 그녀는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자신의 남자라니?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자신을 거의 남자 친구 취급하듯 말하고 있다. 신기한 것은 그 표현에 그가 중독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네 남자는 아니라서 말해줄 수 없다. 어차피 말해도 믿지도 않을 거고.”
“그래? 왜 내가 믿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데.”
“빛나도 믿지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난 믿을래.”
별 걸 가지고 다 라이벌 의식을 표현해 낸다. 빛나가 믿지 않으니 자신은 믿겠다고 말을 하고 있는 미래. 그녀를 그렇게 한참 보다가 결국 그는 말을 하고 말았다.
“인어야.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는.”
“…….”
미래의 표정. 지난번 그가 빛나에게 말했을 때 그녀의 표정과 거의 같은 표정이 되었다. 그를 보는 그 시선. 황당하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표정.
“거 봐. 믿지 않을 거라고 했지.”
“흠. 믿어야 하나? 나 다음 드라마 선택했거든? 그게 지구에 온 외계인이 조선시대에 와서 현대까지 살다가 한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드라마야. 넌 이 이야기를 들으면 어떻게 생각해?”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저… 정말? 이거 사고방식이 나랑 정말 다른 걸?”
“너랑만 다르겠어? 보통 사람이랑 다르겠지. 원래 어렸을 때부터 난 판타지 세계를 믿으며 자라왔어. 왜냐하면 휠체어를 탄 사람은 기적을 믿거든. 누군가가 나를 일어서게 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현대 의학이 아닌 마법이나 그 어떤 초능력으로 나를 구해줄 거라는 생각으로 살아왔어. 아마 나 뿐만 아니라 내 처지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해 봤을 거야.”
“꼭 그 처지가 아니더라도 나이가 어리면 한 번쯤 했던 생각이야. 그래서 판타지 소설이 재미있는 거고. 나도 많이 읽었지. 그런데 지금은 솔직히 믿기 힘든 이야기야.”
“힘들면 말아. 더 이상 믿지 않는 사람을 믿도록 설득하고 싶지는 않거든.”
그는 포기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누군가를 설득할 생각도 그리고 그럴만한 능력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물었기에 대답을 했을 뿐이다. 그가 체념을 하는 얼굴을 하자 그녀는 갑자기 그의 말이 믿고 싶어졌다. 이번에 대본을 받고 생각을 했다. 이런 일은 없을 거라고. 제목도 「별에서 온 당신」. 어린 왕자 이야기도 아니고 흥행을 장담할 수 없지만 작가가 유명하니 선택을 한 것이다. 자신 같은 신인은 찬 밥 더운 밥 가릴 수 없다. 주인공은 아니지만 거의 주연에 가까운 조연이다. 기회를 잘 살리는 수밖에 없다.
“아니, 믿을게. 그래서?”
“그래서라니?”
“인어랑 첫 키스를 했다며? 좋았어?”
“아니. 아… 안 좋았다는 게 아니라, 그렇다고 좋았다는 게 아니라, 아 횡설수설하고 있네.”
“괜찮아. 너 누구한테 여기까지 이야기 한 적 없지?”
그녀가 말한 누구란 빛나다. 그녀는 여기서부터 그녀와 차별화를 두고 싶어 했다. 분명 이런 판타지를 믿고 싶지 않은 자신의 친구라면 아마도 인어와 키스했다는 이야기 다음부터는 듣지 않았을 것이라 확신했다.
“응. 없어. 미친놈 취급 받고 싶지는 않으니까.”
“아냐. 난 널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거 알아? 나 독일에서 다리를 회복하고 나서도 초반에 정신과 진료도 받았다. 대인 기피증이 심해서 말이야. 그런데도 더 듣고 싶어?”
“응. 난 널 믿거든. 그러니까 말해줘.”
“그녀와 엄밀히 말하면 키스라고 볼 수 없어. 난 그 때 자살을 하려고 했으니까. 그런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그 인어는 나에게 입을 맞추었어. 그리고 다리가 회복되었지.”
“뭐? 그 때 그럼 다리가 나은 거야?”
“응. 맞아. 그 때 다리가 나은 거야.”
그녀는 그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고민 중이다. 안 믿자니 그의 표정이 진지했다. 그렇다고 믿자니 너무 황당했고. 그의 정신 상태를 의심해야 하나? 그럴 수 없다. 사랑은 가끔 여인에게 합리화를 심어준다. 그는 절대 미치지 않았다고. 잠시 어떤 계기로 착각한 거라고.
“그랬구나. 신기하네.”
그녀의 말. 눈으로는 믿지 않는 눈치지만 입으로는 믿는다는 투의 내용이 나오고 있다. 자신의 말을 믿어준다고 생각한 우혁. 드디어 지음을 발견한 기분이다. 사람은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좋아하기 마련이다.
“진짜 내 말을 믿는 거야?”
“믿어. 우혁이 말이니까.”
“정말? 와, 드디어 내 말을 믿어주는 사람을 만났네. 아무도 안 믿을까봐 부모님께도 말을 안했는데.”
갑자기 신이 난다. 그래서 그는 물속에서 숨까지 쉰다는 말을 할까 말까 고민까지 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 그녀는 화제를 돌렸다.
“이렇게 네 말을 믿어주는 유일한 사람 어때?”
“응?”
“여자 친구로서 말이야. 들어 보니 인어가 네 첫사랑이었다는 말 같은데, 그 이후 못 만난 거지?”
결국 이걸 원한 것이다. 결국 인어는 못 만났고 앞으로 만날 가능성이 없으니 현실적인 사랑을 찾으라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은 어떠냐고 한다. 흔들리지 않을 수 없다. 그녀 말대로 인어를 만나지 못했고 앞으로도 가능성은 희박하니 말이다.
“지난여름에 그녀를 찾으러 로렐라이 언덕에 갔었어. 결국 못 찾았지. 하지만 언젠가는 찾고 싶어. 그래서 물어보고 싶어. 날 살려준 이유가 무엇인지.”
“계속 만나지 못한다면? 그럼 어떻게 할 거야?”
“음… 생각해 보지 못했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앞으로 만나지 못할 거라 생각하면 안 될까? 나, 너, 정말 좋아해. 알잖아.”
그녀의 눈빛이 그를 유혹하고 있다. 논리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그는 매우 흔들리고 있고. 아름다운 여인의 고백. 자신만 받아들이면 된다. 선택은 매우 간단하다. 앞일을 생각해보면 잘 알 수 있다. 설상 인어를 만난다고 그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다. 그 불확실한 대상보다는 실체가 분명한 존재가 자신의 선택을 강요하는데 망설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 작품 후기 ============================
1. 작가는 글로 의사소통합니다.
2. 오늘 연참은 끝.
3. 자정에 66회 올리는데 수위가 제법 높습니다. 67회랑 같이 올릴 테니 거부감 느끼시는 분들은 스킵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