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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44화 부적의 효과는 없었다

대회 첫날. 남자 프리스타일 100미터 예선과 결선이 있다. 오전에 예선, 그리고 오후에 결선이다. 그 이전에 여자 배영 100미터가 있었다. 놀랍게도 예선 기록 1위를 유카리 미호가 차지했다. 매일 연습은 안하고 농땡이만 치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닌가 보다.

“오니짱, 파이팅!”

그녀는 관중석에 들어가서 경기를 앞두고 있는 우혁에게 응원을 보낸다. 물론 그가 아닐 수 있다. 일본 선수들도 많기 때문에. 결론적으로는 그녀만 알 터인데, 왠지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빛나는 확신이 갔다. 그녀가 누구를 응원하는지.

국제 대회 첫 무대. 떨리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예선 A조 2레인. 현재 경기하고 있는 선수들 중에 가장 강자라 평가 받는 쇼타 스카이가 4레인에 있다. 결국 그의 기록이 A조에서 가장 좋다는 것이다. 총 24명이 예선을 거쳐서 여덟 명만 결선을 치른다.

각 조에서 1위가 되더라도 8명 안에 들지 못하면 탈락이다. 그러니 일단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나중을 위해서 힘을 비축하는 따위를 할 선수들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스타트대에 선 선수들은 모두 각오를 다진다.

삐익.

드디어 출발한 선수들. 잠수 거리 15미터 제한. 잠영은 물의 저항을 덜 받기에 이를 최대한 이용하려는 선수들이 나올까봐 수영의 규칙은 출발 시 그리고 턴을 할 때 각각 15미터의 거리 제한을 둔다.

머리가 들리고 드디어 폭풍처럼 팔을 휘두르는 선수들. 그들의 프리 스타일이 펼쳐진다. 자유형은 특별한 영법 제한이 거의 없다. 그래서 프리 스타일이라고 하는 것이다. 자신만의 장점을 유감없이 발휘하려고 최선을 다해 기술을 연마한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

촤악. 촤악. 우혁은 항상 1위를 목표로 했다. 다소 비현실적이라도 그의 승부욕은 항상 그를 재촉하는 편이다. 남보다 뒤지고 싶지 않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그는 특히 더 심하다. 50미터 턴을 하는 지점에서 쇼타 스카이에 이어 2위를 하고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의 눈을 번쩍 뜨게 만들었어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순간적으로 턴하고 나서 긴 잠수거리를 이용해 먼저 머리를 내 놓은 일본 선수를 제치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앞선 것은 그게 마지막이다. 아쉽게도 다시 그에게 선두를 빼앗기고 말았다. 그 순서 그대로 경기를 마쳤다.

“잘했어. 우혁아.”

“잘하긴요. 졌잖아요.”

“무슨 소리야? 쇼타 스카이라고.”

그게 어쨌단 말인가? 우혁의 눈에 떠오르는 빛을 영욱은 보았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그의 승부욕에 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너무 심하면 본인이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다시 한 번 격려해준다.

“기록을 봐. 넌 충분히 잘 했어. 48초 01이야. 점점 앞당기고 있어. 어쩌면 47초대를 태원이 이후 네가 돌파하는 첫 수영선수가 될 지도 몰라.”

세계 기록은 46초대이다. 47초면 거의 1초 남짓 차이다. 그러니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격려도 소용이 없는가. 우혁은 패배감에 그대로 선수대기실에 앉아서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쇼타 스카이가 방금 세운 46초 99. 아무리 그가 따라 잡으려고 해도 방금 느낀 그 한계는 그의 힘을 빠지게 했다. 그래서 더욱 이 모양이다. 그런 그를 대기실로 보내고 B조의 한국 선수를 다시 응원하는 영욱. 안타깝게도 두 명이 사이좋게 7위와 8위를 했다.

C조는 달랐다. 일수가 출전을 해서 당당히 1위를 했다. 47초 98. 그가 아까 말했던 박태원 이후 최초로 47초대를 기록한 한국 선수가 그가 된 것이다. 머쓱한 것도 잠시 그는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경기장에서 달려 나오는 방금 1위를 한 자랑스러운 한국 선수와 얼싸 안았다. 누가 보면 올림픽 금메달이라도 딴 것 같았다.

낭보는 계속 되었다. 400미터 예선 3위로 빛나가 결선에 진출한 것이다. 다소 단거리에 강한 그녀인데, 이런 규모 있는 대회에서 400미터 결선까지 간 것은 처음이라 그녀 또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 동안 흘린 땀이 아깝지 않았다.

한편 남자 선수 대기실을 기웃거리다가 이제야 나오는 우혁을 발견하고 유카리가 밝은 얼굴로 그의 앞에 섰다.

“오니짱, 저 왔어요.”

역시 묵묵부답. 하지만 전혀 좌절 모드가 아니다. 그의 앞에서 미소를 지으며 작은 종이 하나를 건네준다.

“부적이에요. 우승의 기적을 가져다 줄 수 있을지도.”

엉겁결에 받아들었다. 하지만 그의 기분이 지금 좋을 리가 없다. 당연히 다시 그녀에게 돌려준다.

“이미 준 선물이에요. 버리든 말든 오니짱이 알아서 해요.”

그녀는 곧바로 자신의 말의 결과를 보게 되었다. 그는 그 종이를 무참히 구겨서 그녀의 앞에 버린 것이다. 그토록 밝았던 그녀의 얼굴에 한 줄기 당혹감이 떠오른 것은 물론이다. 이번에는 좀 화가 나나 보다. 그녀를 스쳐 지나간 그의 앞길을 막고 그에게 말했다.

“이건 너무 하잖아요.”

“버리든 말든 알아서 하라고 했잖아. 그래서 알아서 한 건데.”

“뭐라고요? 정말… 정말, 너무 하는 군요. 난 그래도 오니짱이 이번 결선에서 우승하기를 진심으로 바랐단 말이에요.”

우혁은 약간 후회가 되었다. 생각해보니 자신이 좀 심했던 것 같았다. 그녀가 눈물을 글썽이는 것을 보고 더욱 그런 심정이다. 사실 그는 냉정한 척 하는 사람이다. 전형적으로 겉에 보이는 그런 까칠함과 어울리지 않게 마음이 약한 사람. 이런 사람의 특징은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하다. 지금도 그렇다. 그녀가 눈물을 흘리자 인상을 구기며 뒤를 돌았다. 그리고 다시 종이를 줍는다.

“알았어, 알았다구. 울지 마.”

“헤에…”

금세 눈물을 멈추는가? 신기한 소녀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순간적으로 속았다는 느낌이 약간 들었지만 어쩔 수 없다.

“그 부적 수영모에 넣고 경기해요. 아마 행운의 여신이 도와줄 거예요. 그런데 구겨져서 우승까지는 아니고 2, 3위 정도로 밀려났어요.”

그녀는 무슨 점쟁이처럼 이야기 한다. 어이가 없어서 웃는 우혁. 그러자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좋아한다.

“우와, 정말 웃는 모습이 매력적이에요. 그렇게 아찔한 미소는 처음 봤어요. 왜 안 웃고 다녀요?”

그 말을 듣자마자 다시 굳은 표정이다. 좋았다 말았다고 생각하는 유카리. 그래도 소득은 있다. 이 남자 여자의 눈물에 의외로 약한 것 같다. 진짜 냉정한 남자는 절대 뒤 돌아 보지 않는데 말이다. 종종 써먹어야 하겠다고 머릿속에 입력해 놓았다.

오후에는 그녀의 배영 100미터 결선으로 시작을 한다. 다음 경기가 자신의 결선이기에 선수 대기실에 있는 화면으로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우혁. 살짝 관심이 생겼나 보다. 배영은 스타트대가 아닌 물속에서 시작을 한다. 출발 신호가 들리고 앞서나가는 유카리. 50미터를 찍을 때쯤 거의 동시에 세 명이 턴을 한다. 기록을 보니 그녀의 기록이 1위.

신기하게 그녀를 응원하고 있었다. 며칠 사이 미운 정이라도 들은 것일까? 어차피 한국 선수는 모두 다 탈락 해서 일본과 중국 선수의 대결 구도다. 그의 애국심 척도는? 어차피 왜놈이나 떼놈이다 똑같다는 심정? 그래서 안면 있는 사람을 응원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1위부터 3위까지는 일본의 강세다. 따라서 그 중에 콕 찍어서 유카리가 우승했으면 좋겠다는 심정이다. 그의 염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아깝게 3위에 그쳤다. 국제 대회에서 느끼는 거지만 국내와는 다르게 정말 간발의 차로 우승이 정해진다. 압도적인 것은 없다. 그래서 더 억울할 지도 몰랐다.

자신에게 그런 억울한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이제 자신의 차례다. 스타트대에 오르면 항상 드는 생각. 절대 지고 싶지 않다는 각오다. 자신의 실력을 몰라서 그렇게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다. 정서의 불안이다. 솔직히 그는 나중을 기약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갑작스럽게 치유된 다리. 다시 아프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러니 아프지 않을 때 많은 것을 이루고 싶다. 장기적인 생각은 원래 건강했고, 앞으로 꾸준히 건강할 예정인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짧은 시간 많은 것을 이루고 싶은 그가 돌고래처럼 튀어 나갔다. 그의 예선 기록 5위. 일수가 3위. 쇼타 스카이는 1위. 놀랍게도 셋이 비슷하게 50미터를 찍었다. 수많은 일본과 중국 선수를 제치고 말이다. 끝까지 가야 할 텐데…

누구에게나 똑같은 염원이다. 하지만 100미터는 아직 그에게 무리인가? 점점 그들에게 쳐지기 시작했다. 오히려 3위도 힘들다. 뒤에서 쫓아오는 중국 선수에게 그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이제야 국제 대회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중국 선수의 후반 스퍼트. 결국 일수 역시 2위 자리를 내주고, 경기는 그렇게 끝났다.

“잘했어, 잘했어. 얘들아.”

무엇을 잘했단 말인가? 우혁은 그렇게 생각을 했다. 우승을 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고. 참 신기하다. 스스로를 그렇게 스트레스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고 있다. 아무도 그에게 승리를 강요하지 않는데 말이다. 오히려 대견해 하고 있다. 국제 대회 첫 출전에 4위. 나쁘지 않은 성적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닌가 보다. 고개를 숙이며 쓸쓸히 퇴장하는 그의 눈에 눈물이 비친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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