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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4화 각자의 길

우혁은 자신이 무슨 말을 했었는지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니 기억은 난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에게 하는 위로였다. 실제로 그는 그녀가 오랫동안 자신만 바라보지는 않을 것이라고 여겼다. 좋은 남자가 생길 수도 있고, 자신의 성격에 실망을 해서 좋아하는 마음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을 했다. 그녀에게 많은 희망을 줬다고는 전혀 짐작도 못하고 있다.

빛나가 싫은 것은 아니다. 그리고 미래 역시 마찬가지다. 그녀들이 싫은 것은 아니다. 아니 실제 그녀들은 이성으로 그에게 다가왔다. 문제는 둘이 동시에 다가왔다는 것에 있다. 그의 마음은 혼란스러웠다. 판타지 세계 속에나 있을 법한 인어. 그리고 현실 세계에 자신을 바라보는 두 여자.

사회성면에서 볼 때 그는 인간관계에 매우 서툴다. 그래서 두 여자에게 상처를 주는 일 따위를 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동경의 대상. 그것이 사랑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단 하나 그가 답을 얻고 싶은 것은 있다. 그 때 보았던 그 인어가 자신을 살려 줬던 이유. 그 어떤 이유에서건 자신을 원한다면 그 때에는 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을 했다.

그녀가 사랑을 원한다면 사랑을, 생명을 원한다면 생명을. 후자는 아닐 것 같았다. 그 때 그 눈빛. 그는 아직도 기억이 난다. 아니 이제야 깨달았다. 빛나와 미래의 눈빛을 보니 그 때의 그 눈빛과 닮아 있었다. 그래서 지금 이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우선순위를 정한다면 그 때의 그 인어가 먼저이기에…

복잡하다. 특히나 사랑이라는 감정. 이리 저리 요동치고 지나고 보면 많이 헤매고 다니다가 다시 제 자리에 왔다고 생각하는 그 요절복통의 심정. 그래서 지금은 수영에만 몰입하고 싶었다. 그게 다다. 어려운 남녀 간의 문제는 솔직히 그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을 했다. 확실히 보통 남자들과는 다르다. 이 정도라면 양다리를 걸쳐도 될 텐데.

문제는 자신도 원하지 않는 양다리를 걸치게 되었다는 점이다. 주말에 미래가 만나자고 해서 나간 자리. 커피숍에 앉았다. 그리고 그녀의 표정을 살펴보니 오늘은 뭔가 말을 할 것만 같았다. 어렵게 이야기를 꺼내는 그녀.

“나 수영 그만 두게 되었어.”

“뭐? 아니, 왜?”

“자신의 한계를 알게 된 거지. 호호.”

나름 밝게 웃으려고 했지만 그의 눈에는 보인다. 그녀가 매우 큰 상실감에 젖어 있다는 것을. 자신의 첫 친구다. 그리고 왜 모르겠는가? 그녀가 자신에게 품고 있는 마음을. 아무리 그가 인간관계에 먹통에 가까울 지라도 이제는 느끼고 있다. 미래가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너를 지원하는 소속사도 생겼다는데, 포기하기에는 일러. 다시 한 번 생각해 봐. 나한테 말했잖아. 그 자리에서 기다리라고. 난 기다리고 있어. 이제 네가 와 주면 될 것 같아.”

“맞아. 넌 그 자리에서 기다려. 그리고 그 자리로 내가 곧 갈 테니까. 하지만 그건 다른 의미야.”

그녀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뜨거운 열기. 그녀의 눈에 그런 것이 느껴졌다. 그녀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대충 알겠다. 그녀는 결국 공간적인 의미가 아니라 심리적인 부분을 표현한 것이다. 자신의 마음에 그녀가 들어갈 자리를 만들라는 뜻이다.

“그리고 소속사는 네가 생각한 그런 곳이 아니야.”

“그게 무슨 소리야?”

“나 기획사에 들어가게 됐어.”

“기획사라면…?”

“응. 연예 기획사. 케이스타라는 곳인데 주로 연기자들이 많이 소속되어 있어.”

케이스타. 그 곳의 대표는 일본에서 공전의 드라마를 히트 치며 슈퍼스타로 자리매김한 사람이다. 그런 곳에서 그녀에게 접선을 하고 그녀의 상품성을 알아볼 줄은 그녀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다.

물론 고민을 많이 했다. 수영을 포기하는 것.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하지만 결국 언젠가는 못하게 되는 일이다. 그 때가서 지도자의 길로 가든, 아니면 또 다른 길을 찾듯 해야 한다.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했기에 늘 불안한 선수 생활이었다.

더구나 우혁이라는 존재는 점점 멀어져 간다. 그가 잘하면 잘할수록 기쁘다. 하지만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그의 옆자리에서 초라하지 않기 위해서는 다른 정상의 길을 찾고 싶었다.

“아마 바로 데뷔하기는 힘들 거야. 연기 연습을 맹렬히 해야겠지.”

“그… 그래?”

“하지만 난 자신 있어. 어쩌면 수영보다는 이게 내 길에 맞을 지도 몰라.”

그는 그녀의 선택을 아쉬워했다. 그녀는 사실 자신을 수영으로 이끈 존재다. 누구나 그렇지만 처음 무언가를 가르친 사람은 기억에 남기 마련이다. 그래서 미래는 우혁의 기억에 아마도 영원히 남을 것이다.

“그렇구나. 난 몰랐네. 네가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응원해줘. 네 응원이 필요해. 그래서 오늘 만나자고 한 거야.”

“당연히 응원해야지. 정말 진심으로 잘되기를 바랄게.”

“그렇게 이야기하니까 우리 왠지 멀어진 느낌이다.”

“아니,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넌 언제나 내 첫 친구잖아.”

그녀가 웃었다. 미래 역시 그의 과거를 들었다. 그가 하반신 마비였다는 것. 어렸을 때 갑자기 찾아온 병. 원인도 모르고 치료도 불가능했는데, 어느 순간 기적같이 일어설 수 있었다는 이야기. 당연히 인간관계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가 그의 첫 친구가 된 것이다.

“기뻤어. 네 첫 친구가 되었다는 것.”

“뭘 그런 것 가지고. 그나저나 여기 참 불편하다.”

“응? 아…”

이제 그는 진짜 맘대로 돌아다닐 수 없는 처지다. 날은 점점 더워지고 있다. 모자를 쓰기에는 더욱 힘들다. 벌써 여름인가? 중요한 것은 이렇게 맨 얼굴로 나오니까 사람들이 알아본다. 제법 유명한 것도 있지만 그의 외모가 너무도 매력적이다. 주변에서 벌써 그를 힐끗 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나갈까?”

“응. 여기는 좀 그래.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가자.”

“그래.”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나온 그들. 그들을 따라오는 사람들까지는 없었지만 늘 그렇다. 그는 주목의 대상이었고, 사람들의 시선을 한번쯤 끌 수 있는 외모를 가지고 있다. 더구나 오늘 그녀 역시 화려하게 꾸미고 나왔다. 연예인 급 남녀가 다니는 것. 당연히 사람들은 관심을 둘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 저기 사람들이 없는 곳을 찾는다. 그러나 불가능하다. 압구정동에서 그런 곳을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워도 모자를 쓰고 올 걸 그랬다. 그랬다면 조금 사람들의 관심의 방향에서 빗겨나갔을 텐데.

“불편하다.”

“그러게. 사실 나보다 네가 오히려 연예 기획사가 어울릴 것 같아.”

“난 그런 것 싫어.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싶지 않거든. 예전에 휠체어 타고 다녔을 때 너무 사람들의 시선을 받았나 봐. 그래서 누군가가 나를 이렇게 쳐다보는 게 꺼려져.”

“그 때하고 다른 시선일 거야. 이럴 때는 좀 즐겨. 그래도 돼. 당당하게. 호호.”

“그게 더 싫어. 내 얼굴은 변한 게 없어. 단지 일어설 수 있고 걸을 수 있다는 게 다를 뿐이야. 정상인과 장애인에게 차별 없는 시선을 해야 하는 거 아냐? 난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그 눈빛이 정말 싫어.”

그는 그래서 잘 웃지 않는다. 그녀가 간절히 그 모습을 보고 싶은데 말이다. 아쉽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그가 자라온 환경을 사실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다 문득 그녀는 망설이듯 한 마디를 질러 버리고 만다.

“나도 네가 휠체어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면 과연 너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그렇게 갑자기 하는 고백. 어제 오늘 두 여자에게 같은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듣는다. 하나는 애절했고, 다른 하나는 무심한 듯 평소와 같은 어조다. 하지만 그녀는 작심을 하고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의 반응이 중요한데 그는 말이 없이 걷기만 한다.

“그건 모르지.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봐. 내가 만약 앞으로 다시 아프게 되어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한다면 너는 나를 계속 좋아할 수 있니?”

그러다가 그가 꺼낸 화두. 그녀는 걸음을 멈추었다. 보조를 맞추어 걸었기 때문에 그가 약간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러다가 그녀가 정지하자 그 역시 더 걷지 않았다. 이윽고 다시 진행된 걸음. 그녀가 먼저다. 그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면서.

“당연하지. 언제까지나 마찬가지야.”

그녀의 확신. 절대 의심하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결국 한숨을 쉬며 다시 그녀의 옆에서 보조를 맞추었다.

그는 잠시 생각했다. 그녀의 말이 맞을 수도 있지만 그건 그 때 가 봐야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러고 보니 그는 자신의 앞일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본 일이 없다. 아니, 다른 것은 다 해 봤지만, 건강에 대해서는 아니다. 갑자기 치료된 다리. 진짜 영원히 이 상태로 정상일까? 어쩌면 기간이 정해진 것 아닐까?

“역시 물어봐야 할 것 같아.”

“응?”

“나를 치료해 준 사람에게 말이야.”

“그게 무슨…”

“아냐, 그런 게 있어.”

그녀가 알 리가 없다. 그가 나중에 꼭 인어를 찾아서 물어봐야 하는 내용을. 그 역시 인어를 만날지 아닐지 모르는데 그녀가 어찌 알까? 다만 쉽게 보이지만 어렵게 한 고백에 대해서 그의 반응이 뜨뜻미지근하다. 그래서 좀 아쉽다. 도대체 이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다시 묻기에는 지금 대화의 방향이 달라져 버렸다.

둘이 걷는 길. 이제 그들을 쳐다보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어도 그들 둘만 있는 길이다. 서로 평행선을 가게 될지 아니면 어떤 교차점을 만나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 둘의 길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재미있게도 남자는 여자에 의해 이끌림을 받은 새로운 세계로 진입했고, 여자는 자신이 이끈 그 남자의 옆에 서기를 원하면서 다른 세계를 택했다. 이 선택들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아마도 신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 작품 후기 ============================

그러시군요^^ 사실 이번 작품 부터는 비축분을 충분히 만들고 가려고 합니다. 만드는 이유는 아낀다기 보다는 제가 쓴 글을 올리기 전에 다시 한 번 검토하기 위함입니다. 지난 작품들에는 그렇게 못했습니다. 그래서 오류가 많았죠.

물론 지금 이 작품도 그럴 수 있습니다. 아직은 서툰 초보 작가이니까요. 그래도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하루에 3연참 정도로 정한 것이니 양해를 부탁드려요^^

빛나의 소속사. 연예 소속사입니다. 여러분들의 예상과는 달랐죠? 그래도 조폭이니 사기를 치는 것이니, 아니면 소속사를 못 구했는데 구한 척 한 그런 설정은 전혀 없었습니다. 애초부터 두 여자의 길이 달랐으니까요. 처음부터 설정한 것입니다. 하나는 수영의 길로, 다른 하나는 수영에 한계가 와서 외모로 먹고 사는 것으로. 그리고 쭉 갈등하게 됩니다. 여기까지. 더 이상의 스포는 끝.

이따가 또 하나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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