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74화 밝혀지는 병력
결국 탈이 났다. 아침에 일어나서 몸이 안 좋다 싶더니 하반신에 고통이 오고 있다. 걷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아니 굳이 말하자면 살짝 신경이 쓰이는 정도였다. 그러나 그의 입장에서 하체 쪽의 고통은 큰 공포감으로 다가왔다.
“오늘은 말 잘 듣네.”
“응? 아, 내일 시합이니까.”
잠시 스트레칭 후 가만히 앉아 있는 그에게 다가와 빛나가 한 마디를 한다. 아직 주변 사람들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괜히 걱정을 끼치기 싫어서라기보다는 내일 대회에 불참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어디 아픈 것은 아니지?”
“아냐, 그런 거.”
그의 목소리가 살짝 커졌다. 여자의 육감.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빛나. 그것을 느꼈는지 우혁은 갑자기 물속으로 들어갔다. 건재함을 보여주겠다는 듯. 의심이 풀렸는가? 아니다. 다만 풀린 척 하고 있다. 분명히 이상하다. 저런 식으로 보여 주기 식 수영을 살짝 하고 다시 올라오는 것을 보아서는.
평소 그는 물에 한 번 들어가면 도무지 나올 생각을 잘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뭔가 시작도 하기 전에 올라왔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아, 맞다. 감독님이 오늘 가장 기본 적인 것만 하라고 했지. 큰 일 날 뻔 했네.”
사실 신경 쓰이는 그 부분이 물에 들어가니 조금 더 고통으로 다가왔다. 아차 싶어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한 말. 영욱 핑계를 댄다. 연기력도 엉망이다. 연기자 여자 친구를 뒀다고 그가 연기를 잘하는 것은 아닌가 보다.
“그래. 오늘 무리하면 어떤 일이 있어도 말리려고 했어.”
“그래서 어제 미래에게 고자질 했냐?”
“고자질이라니? 걔도 알아야 할 것은 알아야지.”
“요즘 세상은 너무 개인 통신 수단이 발달했단 말이야.”
딴 소리를 한다. 하지만 그의 입장에서 항상 이놈의 개인 휴대 장치가 원망스럽다. 사람들이 가지고 다니면서 자신을 찍고 허락도 없이 막 올리는 통에 자유가 상당히 억압 되어 있다. 몇 번 화도 내 봤다. 그러면 그 날은 꼭 악플이 달렸다.
그는 철퍼덕 앉았다. 그리고 등을 기대고 다리를 쭉 폈다. 일단 신경 쓰이는 게 경기 당일인 내일까지 없어져야 할 텐데 큰일이다. 사람들에게 내색은 안했지만 거짓말을 잘 못하는 성격이니 드러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영욱을 찾아간다. 그에게는 우혁도 제자지만 다른 선수들도 있다. 잠시 그들을 보고 있는 상황이다.
“오늘은 혼자 훈련 마무리 하고 일찍 가서 쉬겠습니다.”
“뭐? 혹시 어디 가서 또 훈련 하려고 그러는 것 아냐?”
“아니에요. 오늘은 꼭 감독님 말씀 들으려고 왔습니다.”
“그래?”
의심스럽다는 듯 우혁의 아래 위를 한 번 훑어본다. 물론 그도 생각이 있어서 자신의 말을 들을 때가 되었다고는 여기지만 그래도 어제와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혹시 어디 아픈 것은 아니지?”
“아닙니다.”
“정말이지?”
“정말입니다.”
영욱은 잠시 시선을 다른 데다 두었다. 그러느라 우혁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보지 못했다.
“알았다. 조금이라도 몸이 불편하면 이야기해야 한다.”
“네.”
그렇게 잠시 이야기를 마치고 약간의 훈련도 없이 그냥 집으로 들어갔다. 사실 점점 몸이 아파왔다.
‘하룻밤 자고 나면 괜찮아 질 거야. 그럼, 물론이지.’
스스로를 자위하듯이 그렇게 속으로 주문을 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소망일뿐이었다. 다음날은 억지로 일어나야 할 정도로 골반에 통증이 왔다. 원래 자유형 선수에게 찾아오는 통증 부위가 바로 어깨, 허리 그리고 골반이다.
“끙…”
똑똑.
“오늘 시합이지? 힘내라고 장어 요리 했어. 근데 아침 일찍 가야 하는 거 아냐?”
“네, 나가요.”
아홉시에 첫 시합이다. 그러니 최소한 한 시간 전에 도착해야 한다. 그런데 몸을 일으키는 게 만만치가 않았다. 두 가지가 마음속에서 상충되고 있다. 병원에 가야 한다는 것과 시합을 강행해야 한다는 것.
어쨌든 아주머니가 차려준 식사를 하러 식탁에 앉았다. 곧 순빈이도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뉴스를 틀고 보고 있다. 장치앙린의 인터뷰가 반복되어 나오면서 여성 캐스터가 이렇게 마무리를 한다.
“오늘은 S 생명배 국제 초청 경영 대회의 첫 날입니다. 장치앙린. 생각할수록 얄밉죠? 우리 최우혁 선수가 오늘 콧대를 납작하게 해주기를 바라면서 아침을 여는 스포츠 뉴스 마무리하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그 뉴스를 보는 순간 도저히 시합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순빈이 눈치 채지 않게 식사를 하고 대충 씻은 후 경기장으로 왔다. 숨겨진다고 숨겨질 일이 있고, 그렇지 않은 일이 있다. 그의 얼굴. 아무리 평소에 미소가 없다지만 찡그리는 것만으로 그의 몸 상태를 알 수 있다. 특히나 그를 아직도 짝사랑하는 빛나의 눈은 그를 주시하고 있다.
“너 어디 아프지?”
경기를 앞두고 모여 있는 자리에서 나온 그녀의 목소리. 당연히 모두의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나 영욱이 역시 얼굴이 굳어졌다.
“뭐냐? 너 몸 안 좋은 건가?”
“아닙니다. 약간 찌뿌둥해서요.”
“아니에요. 아픈 게 분명해요. 아까도 계속 찡그리는 것을 보았어요.”
빛나의 눈은 예리했다. 그녀의 관심이 발견한 그의 몸 상태다. 부정을 해봤자 소용이 없는 게 그의 안색이 장난이 아니었다. 고통을 참는 것이 느껴진다. 낯빛은 노랗게 되었고, 비 오듯 땀을 흘리고 있었다.
“병원으로, 빨리 병원으로 가야 할 것 같아요.”
결국 그는 후송이 되었다. 무리한 훈련이 불러온 참사다. 앰뷸런스에 실려 가면서 그는 눈물까지 흘린다. 자기 자신이 싫었다. 조금만 참을 것을. 항상 그렇다. 자신의 충동적인 성격. 그로 인해 가끔 발생하는 트러블. 그래서 가끔 참으려고 노력하지만 그런 성격은 거의 고치기 불가능했다.
병원에 도착해 엑스레이를 찍고 결과를 기다리는 순간에도 그는 애꿎은 병상 침대를 치고 있었다.
“젠장, 젠장!”
지금 쯤 경기가 한창 진행이 되고 있을 것이다. 그는 이번에 전종목이 아닌 400미터 이상만 경기에 출전하고자 했다. 물론 이것도 영욱의 권유였다. 아직까지 단거리가 아닌 장거리가 그의 주 종목이다. 오늘은 400미터 내일은 800미터 대회 마지막 날은 1500미터다.
“선생님, 저 내일 경기 할 수 있습니까?”
그는 의사가 오자마자 물었다. 옆에 있는 순빈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혁아,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이번 대회는 포기하자. 너 어떻게 하려고 그래?”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MRI 사진 상으로는 크게 문제는 없습니다. 아마 과도한 훈련으로 근육이 놀란 것 같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더 심하면 근육 손상이 올 수 있습니다. 흔히 햄스트링이라고 하는 부위에요.”
의사는 그렇게 그의 부상 부위에 대해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결론은 이번 대회를 쉬라는 것이다. 그나마 이정도가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하마터면 큰 부상이 올 수도 있었다.
“근데 의사 선생님, 근육이 놀란 정도로 저렇게 힘들어 하는 애가 아닌데…”
“그것은…”
의사는 말을 하기가 약간 곤란하다는 눈치를 보였다. 그러다가 마음을 먹은 듯 드디어 입을 열었다.
“최우혁 선수, 혹시 어렸을 때 소아마비를 앓으신 적이 있나요?”
그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MRI에 그 병력이 드러났다고 생각이 되었나 보다. 그러자 의사는 그제야 알겠다는 듯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마도 근육이 놀라서 여러 신경을 자극 했고, 그 과정에서 척추와 연결된 부분에 고통이 느껴지자 환자분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예전에 안 좋은 기억을 떠올리셨나 봅니다. MRI에서도 미세하게 그 병력이 드러났는데, 진짜 앓으셨는지는 저도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어쨌든 지금은 안정이 최고입니다.”
안정이 최고다. 그런데 몸은 그렇게 휴식을 취할 수 있지만 정신은? 그의 정신은 온통 시합에 가 있다. 지금쯤 자신 없이 치르게 된 대회. 거기로 온통 신경이 가있으니 정신적 안정을 취하기는 다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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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