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108화 나비효과
세실리아는 벌써 우혁이 그립다. 이제 이틀 떨어졌을 뿐인데. 다행히 그녀의 곁에는 좋은 사람들이 있다. 지연. 처음에 자신에게 좋은 눈빛은 아니었다. 하지만 마음을 열자 자신에게 잘해준다. 은환도 마찬가지다. 다만 오늘같이 옷을 사준다고 백화점에 들렀다가 그들도 큰 봉변을 당했다.
“또 왔다, 또 왔어.”
“그 여신?”
“응. 저기 있잖아. 그런데 사람들을 더 데리고 왔네. 누구지?”
직원들이 수군수군 거린다. 지난번에 왔던 그 여신이 다시 백화점을 방문했으니 이렇게 술렁술렁 거리는 것이다. 순빈이는 반면 의기양양하다. 모든 매니저의 꿈은 소속사를 차리는 것이다. 그의 꿈도 마찬가지. 언젠가 그렇게 되면 우혁과 세실리아를 통해 엄청 빵빵한 슈퍼스타들을 거느리게 될 것 같았다.
지난번에 들렀던 매장. 세실리아가 왔다는 그 한 가지 이유만으로 유명세를 탔다. 그 이후에 많은 연예인들이 왔었나 보다. 액자에 걸린 사진들이 붙어 있다. 백화점이라서 그런지 고급스럽게 치장해서 매장 안에 걸어 놓았다.
“저건 세실리아 아냐?”
“맞습니다. 지난번에 이 매장에서 옷을 샀어요.”
은환의 말에 답변은 순빈이 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드디어 매장 주인과 점원이 호들갑을 떨며 반기고 있다.
“어서 오세요. 어서 오십시오.”
“어머, 그 때 그 언니네. 우리말 잘하는 언니.”
당연히 반길 수밖에 없다. 매장의 매출이 대폭 증가했으니 말이다. 인터넷에서 그녀가 입은 옷을 보고 문의하던 연예인들과 재벌가의 여인들. 값 싼 옷 몇 개 파는 것보다 그런 옷을 몇 개 파는 게 훨씬 이익이다. 사실 그런 옷 말고도 일반인들 역시 이 매장을 찾는다. 덕분에 모든 백화점을 망라해서 이곳 매장의 매출이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자, 오늘은 어떤 옷을 고르러 오셨나요?”
“저희 어머님이…”
“어…머…님?”
생소한 말이 세실리아의 입에서 나오자 매장 주인은 놀란다. 그녀의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일단 중년의 남녀는 부부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중년 여인을 향해 어머님이라는 호칭을 쓰다니? 진짜 엄마는 아닌 것 같다. 그럼 시어머니라는 소리인데…
“아, 관계가 어떻게 되시나요?”
“…….”
매장 주인은 오지랖을 발휘하여 물어 보았다. 그런데 아직까지 마땅하게 관계라고 말할 수 있는 꺼리가 없다. 며느리도 아니고, 예비 며느리? 물론 그것에 가깝지만 세상일은 모른다. 천지가 개벽하지 않는 한 관계가 바뀌지 않는 것도 있지만 어떤 경우는 어제까지 가족이었다가 오늘은 남남인 경우도 발생하니 말이다.
“사… 사장님. 그런 것을 함부로 물어보시면…”
“앗, 죄송합니다. 고객님의 프라이버시를 제가 침범했네요.”
“아, 아니에요. 저희 아들 여자 친구에요.”
결국 지연은 세실리아와의 적절한 관계를 설정한다. 여기저기서 찍어대는 카메라. 곧바로 SNS에 올라간다. 포털 사이트 검색어 순위 다시 1위를 차지하는 문구.
1. L 백화점 여신 재등장
2. 여신의 남자 친구
3. 여신의 시어머니
마구마구 양산되는 갖가지 추측들. 더구나 누리꾼 또한 가만히 있을 수 없다. 그녀와 함께 있는 사람을 분석하기 시작한다. 드디어 지연이의 신분이 알려졌다. 놀랍게도 수영선수 최우혁의 어머니다. 엄청난 대한민국의 네티즌들. 그들은 아마 미국의 CIA에서 감탄할만한 정보 분석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형, 여자 친구가 이 여자야?”
“응? 그게 무슨… 헉!”
숙소에서 오늘도 게임을 하던 우혁. 그의 불타는 승부욕에 다시 녹다운 일보직전인 일수가 쉬는 시간을 달라고 하고 인터넷을 하던 도중에 검색어 순위 상위를 보며 깜짝 놀란다. 이제 검색어 순위가 바뀌었다.
1. 최우혁 여자친구
2. 최우혁 결혼
3. 최우혁과 L 백화점 여신
“이…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일수는 자신의 말에 대답을 하지는 않는 그가 답답했다. 혼잣말만 하고 있는 우혁. 그리고 그는 핸드폰을 꺼내서 곧바로 자신의 매니저에게 전화를 했다.
“형, 어떻게 된 거야?”
- 아니, 어머니께서 옷을 사주신다고 해서 갔다가 이런 봉변을 맞아 버렸다.
“소… 소속사한테 전화해서 기사좀 막아주면 안 돼?”
- 일단 그렇게 하려고 최선을 다해서 수습하고 있어.
소속사의 역할이 중요한 시점이다. 아예 이참에 공개를 해도 상관은 없었지만 자신보다 그녀가 불편해 할 것 같아서 기사를 막아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네티즌의 블로그는 절대 못 막는다. 결국 이것은 자신이 해명해야 할 텐데.
“오라버니! 오라버니!”
드디어 올 게 하나씩 오고 있다. 제일 먼저 반응이 온 것은 가희다. 그녀의 문을 두드리는 속도로 봐서 열어주지 않으면 부수고 들어올 기세였다. 결국 일수가 눈치를 보다가 문을 열어주었다.
“어떻게 된 거야? 오라버니 여자 친구. 이 외국 여자 누구야?”
“내가 왜 대답해야 하는데. 빨리 나가! 나가!”
그는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어제 오늘 좀 친절하나 싶었다. 그런데 다시 얼굴을 굳히고 그녀를 쫓아내는 그 장면을 보니 여전히 까칠할 수밖에 없다. 언제나 시원스런 그의 대답을 들을까? 가희는 눈에 그렁그렁 눈물을 매달고 말한다.
“내가… 내가 1년만 기다려달라고 했잖아. 으아아아앙.”
결국 울음보가 터졌다. 우혁은 일수에게 눈짓을 했다. 마치 귀찮으니 치워달라고 부탁하는 눈치다. 어쩔 수 없다. 그는 가희를 토닥이며 말했다.
“야, 아직 확실한 것도 아니야. 본인이 그렇다고 이야기도 안했는데 왜 울어. 나가자. 응? 우혁이형 이러면 더 신경질 내는 거 알잖…”
거기까지 말하고 아차 싶었다. 말을 하다 보니 우혁이를 까고 있었다.
“험. 험. 빨리 나가자.”
그래도 말을 잘 듣는 동생이다. 궁시렁 거리면서도 그녀를 방 밖으로 끌고 나갔다. 하지만 그녀가 시작이다. 다음날 훈련장에는 기자들이 잔뜩 갈렸다. 영욱이는 진땀을 흘리며 그들을 막고 있다.
“최우혁 선수는 언제 오나요?”
“태릉 선수촌에 얼마 전에 입소한 것으로 아는데, 그동안 여자 친구랑 밀회를 즐겼나요?”
“박빛나양하고는 헤어진 건가요?”
그들의 질문에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우물쭈물하고 있는 영욱. 다만 이렇게 소리 높여 외치고 있다.
“저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제발 선수들 훈련 좀 하게 나가 주십시오. 아시안 게임이 코앞입니다. 이래서는 곤란합니다.”
하지만 물러날 생각이라면 오지도 않은 기자들이다. 멀리서 이것을 보고 우혁이가 걸어왔다. 그는 훈련하는 동료와 코칭스태프에 폐를 끼칠 생각은 전혀 없다.
“여러분!”
“어? 최우혁 선수다.”
“최우혁 선수, 뭐 좀 물어볼 게…”
그나 나타나자 득달같이 달려드는 기자들. 마치 먹이를 노리는 하이에나처럼 그렇게 그의 주변을 삽시간에 포위했다. 그리고 쏟아지는 질문들. 그의 인기를 실감하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훈련을 해야 하니 나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만 대답해 주십시오.”
“하나만 대답하면 나가주시겠습니까? 다시는 여기에 오시지 않으실 겁니까? 아니 스캔들 같은 것으로 여기에 안 오실 거냐고요?”
그의 목소리가 커졌다. 기자들은 상대적으로 조용해지고. 하나를 알면 둘을 알고 싶은 법이다. 당연히 하나만 알고 돌아가지는 않을 텐데, 그것을 어떻게 약속하는가? 다만 고민을 하고는 있다. 우혁은 지금까지 질문에 제대로 대답해본 역사가 별로 없다. 항상 까칠했던 선수. 그래도 압도적인 여성 팬 때문에 그에 대한 악평을 쓸 수 없었다.
원래 시대의 흐름에 따라 기사를 써야 하는 게 기자들이다. 모양비디오 사건이 터졌을 때도 그렇게 그녀를 까더니 나중에 동정론이 확산되자 그녀를 보호하는 기사들이 나오고 있다. 지금도 그렇다. 그가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물어뜯고 할퀼 것이다.
“휴우. 하나만 알고 돌아가시지는 않겠죠. 그럼 어떻게 할까요? 저 하루 종일 훈련하지 않고 붙들려서 기자님들 질문에 대답을 할까요? 그래서 이번에 금메달 못 따면 이런 인터뷰 때문이라고 국민들에게 말 할까요? 오늘은 이만 돌아가 주세요. 아시안 게임이 끝난 뒤에 밝히겠습니다.”
그의 설득. 그리고 우혁이라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힘. 바늘로 찔러도 절대 원하지 않으면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알기에 기자들은 돌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그들이 순순히 물러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아마 오늘 기사는 애매하게 쓸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 기사에는 이런 제목들이 신문 타이틀로 나갔다.
「최우혁, 침묵하다」
「그녀는 과연 최우혁의 여자인가?」
「최우혁이 금메달을 바칠 그녀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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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