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 139화 친구가 되고 싶어요
두 매니저의 회동. 어쩔 수 없이 이루어졌다. 세실리아도 미래도 서로 말을 나누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녀들이 단 둘이 이야기하고 싶어 하니 당연히 빠져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예전에도 그랬지만 이들은 담배 친구다. 서로 담뱃불을 붙여주며 옛 일을 회상한다.
“아, 그 때 자원봉사 할 때 스케줄이 꽉 찬 것을 억지로 뺐었어요. 그만큼 최우혁 선수를 좋아했었는데 말이에요.”
“저도 안타까워요. 하지만 인연이 아닌 거죠.”
“그래도 너무한 거죠. 독일에 가서 바람이 난 것. 같은 남자 입장이라서 이해는 가지만 저는 또 미래 편에서 볼 수밖에 없어요.”
“근데 그게 바람이 난 게 아니죠. 원래 세실리아랑 알고 있었고, 그 다음에 미래를 만난 거예요.”
순빈은 당연히 우혁의 편이다. 그의 입장에서 변호를 해주고 있다. 지난날의 사정을 다 아는 그로서는 그를 이해한다. 자신이었어도 그와 같은 결정을 내렸을 수밖에 없다. 표현력이 약한 동생 같은 그의 갈등. 그 당시에 그도 괴로워했었다. 세실리아와 미래 사이에서 한 고민. 그는 충분히 보아왔다. 그래서 그의 입장에 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도 최우혁 선수가 잘 못 한 거예요. 만약 미래를 나중에 만났다고 할지라도 결국은 두 여자 사이에서 중심을 못 잡은 것 아닙니까?”
“그게 아니라…”
그는 말문이 막혔다. 사실 그의 말이 맞았다. 엄밀히 말하면 우혁이가 잘못한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적극적이었던 것은 미래다. 그는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었다. 그러나 세실리아가 인어였었고, 그래서 그녀를 만나는 것이 불확실했기에 어쩔 수 없이 찾아 나서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할 수 없었다. 그런 부분이 말을 못하게 막아버리는 것으로, 순빈의 패배가 확정이 된 것이다.
다른 곳은 순빈보다 더 말문이 막혀있다. 종섭에게 부탁하여 접대실 하나를 배정 받았다. 그곳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세실리아가 그렇게 무엇을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정작 미래와 만나고 난 후 침묵에 빠졌다.
미래 역시 그녀가 보자고 하자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맘 반, 그리고 피하고 싶은 맘 반이다. 종섭과 이야기를 나누고 계약을 하기까지의 과정은 그래서 일사천리였다. 뭔가 협상을 해서 몸값을 올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포털사이트에 넣는 광고. 영상물도 인쇄물도 아니지만 결국 사진만 찍으면 간단한 작업. 거기다 모델료도 높았다. 그러니 소속사와 매니저가 아니더라도 그녀는 굳이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 세실리아를 만나게 될 줄이야!
“그는 잘 있나요?”
“네.”
미래의 물음. 그가 잘 있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 물어보는 이유는 할 말이 없어서이다. 이 긴 침묵. 그녀의 성격으로 먼저 깨트릴 수밖에 없다. 답답한 것을 싫어한다. 그리고 매사에 적극적이며 긍정적이다. 우혁을 바꿔 놓은 것은 세실리아일 수도 있지만 그 시초는 그녀부터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말이 또 끝이다. 다시 침묵에 빠졌다. 미래는 그녀를 보는 것을 최대한 자제했다. 그녀는 세실리아가 밉다. 자신의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아 갔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그녀를 보면 자신의 눈초리가 변할 것 같았다. 증오의 눈빛으로 말이다.
반면 세실리아는 그녀에게 미안하다. 그래서 섣불리 어떤 말을 던질 수도 없다. 더군다나 한국말이 엄청 늘었다고 할지라도 이런 미묘한 상황에서 상대방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고 말을 하기는 쉽지가 않다. 그래서 꺼낼 말을 찾고 있는 중이다.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결국 힘들에 입술을 뗀다. 그녀가 말을 하자 미래는 시선을 세실리아의 얼굴에 고정을 시켰다. 아름답다. 그 생각뿐이다. 우혁이 빠질 수밖에 없다. 아니 그뿐 아니라 다른 모든 남자들을 매혹시킬 수 있는 외모다. 그리스 여신상의 조각을 닮았다고 해야 하나?
“뭐라고 하던가요?”
“칭찬을 했어요. 그리고 미안해하기도 하고.”
“그렇군요.”
“나 한국말 서툴러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요.”
미래는 그 말에서 진심을 느낀다.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우혁. 그것이 정말일 수도 있지만, 세실리아의 마음일 수도 있다고 생각을 했다. 한국말을 잘 못한다? 그렇지 않다. 외국인이 이렇게 금세 우리말을 익힌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괜찮아요. 하고 싶은 말 하세요. 이제 많이 좋아졌어요.”
오히려 세실리아를 이해한다는 말을 한다. 솔직하지 못해서인가? 우혁이 떠나고 잘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그렇지 않다. 그녀는 아직까지 그를 사랑한다. 그에게 말했다. 친구로라도 남게 해달라고. 하지만 그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원인이 앞에 앉은 이 여자였다.
그 때 그녀는 일로서 그를 잊어보려고 했다. 그러나 잘되지 않았다. 먼발치에서라도 보고 싶었다. 그런데 이사를 가버렸다. 찾으면 찾을 수 있겠지만 그 때의 마음이란… 자신을 피하는 것 같기도 했다. 옹졸해졌던 것이다.
그러다가 정말 시간이라는 것이 그녀를 치유했다. 상처를 치유한 게 아니다. 그를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가 했던 말을 믿지 않았던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을 했다. 세실리아가 인어라는 말. 그 진위여부를 떠나서 이전부터 인어를 사랑한다는 그 말을 믿지 않아서 나타난 결과였던 것이다. 즉, 인어가 나타나면 그녀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운명이었는데, 그런 그를 자신이 유혹한 것이다.
“그에게 들었어요. 당신의 이야기를. 그를 사귀기 전부터.”
이번에는 세실리아의 눈이 더 커졌다. 자신의 이야기를 미래에게 처음부터 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런데 믿지 않았죠. 지금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문제는 당신이 인어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게 아니죠. 어차피 당신을 만나면 운명처럼 사랑에 빠질 텐데, 그것도 모르고 인연을 강제로 끼워 놓은 것은 나였어요. 그러니 아까 말했다시피 당신을 원망하지는 않아요. 약간 밉기는 하지만.”
계속된 그녀의 말. 세실리아는 자신이 할 말이 있다고 불러놓고 오히려 청자 입장이 되어 버렸다. 뭐라고 중간에 그녀의 말을 반박할 게 없다. 한국말이 서툴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녀의 이야기에서 아직도 우혁을 사랑하고 있는 감정의 편린을 느꼈기 때문이다.
“미래씨와 친구가 되고 싶어요. 그럴 수 있어요?”
“네?”
“친구. 나 인간세상에서 여자와 친구한 적이 없어요. 아직까지.”
인간세상이라. 우혁이가 헤어지자고 이야기 했을 때 정신이 나갔었다고 까지 생각한 미래. 이제 직접 세실리아에서 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가슴속에 품고 있는 의심이 사라져 간다. 진짜인가 보다. 그녀는 진짜 인어인가 보다.
“내가 인어라는 것 믿기지 않죠? 언제든지 확인시켜줄 수 있어요. 친구가 된다면.”
“우혁이가 싫어할 거예요.”
“상관없어요. 그가 싫어하는 짓 가끔 해요, 난. 모델일도 원래 반대했었거든요.”
뭐라고 이야기해야 하나? 세실리아에게. 미래는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몰랐다. 친구라는 의미. 자신의 남자를 가진 여자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강하게 끌린다. 그렇게 해서 우혁의 곁에 남고 싶기 때문에.
정작 본인의 이야기를 하는 줄도 모르고 우혁은 계속 전화를 하고 있다. 세실리아의 핸드폰. 며칠 전에 개통했다며 그렇게 좋아하더니 받지도 않는다. 집에 그녀가 없으면 사실 불안하다. 순빈이에게 맡겨서 한시름 놓기는 했지만 그래도 항상 그녀에 대한 조심성이 필요하다.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그래서 집에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이 그녀에게 전화를 한 일이다. 물론 오는 동안 내내 했지만 말이다. 그는 꿈에도 모를 것이다. 세실리아가 미래를 만나고 있을 줄은. 그리고 그녀에게 친구가 되어달라고 말을 할 줄은 더욱 더 알 수 없을 것이다.
“순빈이형도 안 받네. 어떻게 된 거지?”
그날따라 배터리가 방전된 순빈이의 핸드폰. 하긴 승헌이와 오랫동안 통화했었다. 그래서 받지 못하는 우혁의 전화. 결국 모든 조건은 갖추어 졌다. 다시 매듭이 꼬이는 미묘한 관계. 세실리아에 의해서 시작이 된다.
============================ 작품 후기 ============================
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