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60회 우혁의 노력
영욱에게 자신의 뜻을 전달한 우혁. 어차피 훈련장에서 하는 훈련은 점점 지원이 끊기고 있었고, 그의 기량을 위해서 더 투자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허락을 했다. 즉, 훈련은 하되 대회가 있으면 아마추어 경기일지라도 그렇게 참가를 한 것이다.
“언론은 아마 이번 대회가 끝나야 터질 것 같아. 어차피 그 이전에 드라마에서 먼저 떠 버렸으니 잘 되었지 뭐야?”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말 드라마 좋아하네요.”
“그러게. 그런데 그 힘이 한류가 된 거지. 요즘은 글로벌로 퍼져 나가고 있어.”
그렇다는 이야기는 비록 까메오라고 할지라도 그의 얼굴이 전파를 탔다는 이야기다. 한국의 힘. 한류. 어쩌면 그의 얼굴을 알아보는 세계 속의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여행을 계획한다면 말이다.
충북 음성. 순수 아마추어 대회가 열렸다. 그 대회에서 당연한 일이지만 그는 우승을 했다. 그리고 이것이 보도가 되었다. 최우혁이라는 이름. 의외로 인지도가 높았다. 기사 타이틀이 제 2의 박태원이라고 보도하니 사람들은 점점 그가 참여하는 대회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아마추어 대회를 두 개 정도 참여하게 되니, 세 번째 부터는 사람들이 많이 관람하러 오기 시작했다. 물론 대부분은 여학생이다. 네 번째는 그래도 큰 도시에서 열렸다. 대구다. 실내 체육관이 만원이 되었는데, 이런 소규모 대회에서 관중들이 꽉 들어찬 경우는 처음 본다고 한다.
“오늘도 잘 할 수 있지?”
“네. 이왕 왔으니 우승 해야죠.”
그가 대회에 참가해서 우승을 쓸어가는 바람에 다른 자유형 선수들은 타이틀을 가지고 가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좋아했다. 이런 대회에서 지명도 높은 선수가 그들과 같이 경쟁한다는 점은 동네방네 떠들고 다닐 일이다. 결국 이 대회에서도 그는 우승을 했다.
그가 다섯 번째 참가한 대회부터는 드디어 선수 출신들도 참가하기 시작했다. 이들도 그와 동참하겠다는 생각을 했나 보다. 아니면 그와 경쟁을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거나. 이제 타이틀을 지켜야 하는 입장은 우혁이다. 국내에서는 도전자가 아닌 챔피언의 위치에서 혹시나 자신을 이기려는 사람들의 거센 도전을 맞이해야 한다.
그는 그것을 즐겼다. 나쁘지 않았다. 경쟁은 즐거웠고, 그가 참가한 대회는 점점 많은 관중들이 뜨거운 호응을 해주었다. 그 뿐만 아니라 여론 또한 점점 수영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가끔씩 나오는 뉴스에 그의 지금 행위가 신기한 일로 비추어지고 있었다. 얻을 게 별로 없는 그런 수영대회 참가로 그는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것도 좋은 이미지로.
점점 쌀쌀해지는 날씨. 그래도 그는 두 번의 수영대회에 더 참여했다. 그런데 문제에 봉착했다. 역시 체력이 관건이었다. 그는 철인이 아니다. 점점 고갈되는 체력으로 인해 이제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도 순빈도 느끼고 있었다. 결국 늦가을에 그는 연말까지 남은 대회에 불참을 선언했다. 남은 대회가 자신의 고장에서 열릴 것이라 기대했던 사람들은 좀 아쉬워했지만, 그럴 만큼 수영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다는 뜻이었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그에 대한 높은 관심으로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그는 그것을 모두 거절했었다. 훈련과 시합만으로 벅찬 일정이었다. 특히 대인 기피증이 약간 있는 그로서는 이런 인터뷰는 익숙지 않았다.
“그래도 인터뷰를 해서 여론 몰이를 더 해야 해. 이번에는 SBC 방송이야. 축구나 야구 말고 다른 스포츠 선수는 잘 안하는 인터뷰니까 고려해 봐.”
순빈의 충고. 그는 받아들였고 드디어 인터뷰를 하러 훈련장에 찾아온 방송국 리포터와 스태프들. 방송 준비가 다 된 후 그는 자리에 앉았다. 그를 취재하러 온 리포터는 상큼한 미모로 밝은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다가왔다.
“준비 되셨죠?”
“아, 제가 좀 말을 잘 못해서요.”
“괜찮아요. 있는 대로 솔직하게 말씀해주시면 되죠.”
“네, 알겠습니다.”
“생방도 아니니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나중에 잘 안 된 것은 편집할 게요.”
그녀는 그에게 긴장을 풀어주는 말로 격려를 해주었다. 그는 잔뜩 긴장했다. 원래 카메라 공포증이 있기도 했지만 얼마 전에 까메오로 출현한 드라마에서 물에서 호흡하는 것을 들켰을까봐 마음을 졸였던 것이다. 아마도 그 때 미래가 이상하게 생각한 것은 그녀가 수영선수 출신이라서 그랬을 것이다. 수중에서 눈썰미가 일반인보다 더 나으니까.
“자,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네, 네.”
“수영을 하신지 10개월 정도라고 들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그 정도만 하면 최우혁 선수만큼 할 수 있나요?”
“네?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 질문부터 막혔다. 아니라고 말하면 잘 난 척 하는 것 같고, 맞다고 하면 거짓을 말하는 것 때문에 모른다고 한 것이다. 그래도 그녀는 웃으며 다른 질문으로 들어갔다.
“그렇군요. 듣자하니 노력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런 노력이 지금의 최우혁 선수를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지방 대회를 찾아다니며 출전했다고 하는데, 무슨 목표가 있으셨나요?”
“네. 사실 지금 수영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내년부터 이 훈련장을 저희가 맘대로 이용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정부 지원이 줄어서요. 그래서 지방 대회를 다니며 홍보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그러니까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켜서 정부 예산 삭감을 재고해달라는 뜻이었군요.”
“그렇습니다.”
실제로 그는 순빈과 상의하여 대회 때마다 현수막을 내걸었다. 물론 내용은 내년 수영 예산 삭감을 반대한다는 글귀로 표현했지만 지금의 인터뷰는 그 이상의 효과를 가져 오게 될 것이다. 방송 한 번 타는 게 얼마나 큰 효과를 가지고 있는지 그는 실감하고 있다. 지난번에 까메오 출현으로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더욱 더 늘었다. 이제 거의 혼자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인터뷰는 대략적으로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다 표현을 했고, 이제는 사람들의 관심으로 최소한 이 훈련장에서 훈련하는 선수들은 계속 남았으면 좋겠다는 게 그의 소망이었다. 그 자신은 상관없었다. 지금 짓고 있는 수영장. S 생명에서 투자를 한다고 하며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영욱도 감독직을 승낙했다. 일수와 빛나, 그리고 김훈과 찬규까지. 가희도 실업팀에 소속될 것이다. 고등학생이지만 부모님이 대리로 계약을 했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프로가 아닌 실업팀이기에 더더욱.
문제는 다른 선수들이었다. 이곳을 유일한 희망으로 생각하는 다른 수영 선수들은 생존의 길목 앞에 놓였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서 개인 훈련을 치를 생각을 하니 선뜻 그럴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은퇴도 고려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년이 아시안 게임이다. 이렇게 사기가 저하된 상황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는 쉽지 않다. 언제까지 몇몇 엘리트에 의존을 할 것인가? 그리고 그 선수들이 만약 부상이라도 당한다면? 지금 우혁이 지방 대회를 다니고 있는 것도 연맹은 반대했다. 좋은 취지라는 것을 알지만 그가 부상이라도 당하면 내년 아시안 게임의 전망은 암담해진다. 좋은 성적은 내지 못하고 그렇게 되면 그 다음해 예산은 더 줄지도 몰랐다.
결국 우혁의 어깨에 많은 짐이 놓이게 되었다. 그는 연맹을 위해서 뭔가를 하기는 싫었다. 그래서 청개구리처럼 대회에 더욱 참여를 하게 된 것이다. 비록 지금은 체력적 한계를 느끼고 중단한 상태지만.
그래서 당분간 체력 회복 운동에 중점을 맞추게 되었다. 오늘도 일찍 일어나서 러닝을 한다. 머리까지 후드를 덮어쓰고 하는 이유는 보는 사람의 눈길 때문이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푹 덮어쓴 후드.
“휴우.”
산책로를 그렇게 한참을 뛰다가 벤치에 앉았다. 하얀 입김이 입에서 뿜어져 나왔다. 이제 이런 훈련이 익숙해져야 한다. S 생명에서 수영장을 짓고 있다지만 시간이 필요했고, 그 동안은 개인 훈련을 해야 한다. 아시안 게임은 내년 가을. 그 동안은 몸을 다지는 게 중요하다. 부상 없이.
그렇게 일어나려고 할 때쯤 그의 뒤에서 누군가가 그의 눈을 가렸다. 그리고 목소리를 변조하며 말을 하고 있다.
“내가 누굴까요?”